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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고객이 취향 따라 조립하는 냉장고 ‘삼성 비스포크’

큰 냉장고보다 나만의 냉장고
고객 경험 반영한 리디자인(re-design)의 힘

윤명환 | 287호 (2019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삼성전자 비스포크가 냉장고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냉장고 용량이나 에너지 효율과 같은 스펙에 집중하는 생산자 중심의 관점을 고객이 냉장고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등 수요자 중심의 관점인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으로 전환해 냉장고를 ‘Re-design’했다.
2. 고객이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직접 냉장고 모델과 냉장고 문 패널 색상과 소재 등을 선택, 구성할 수 있도록 제품을 개인화했다.
3. 기존 제품 생산 시스템에 고객 주문방식(Build to Order)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대량 고객 최적화’를 달성했다.



사실 산업혁명이 기계적인 엔진에서 시작했다고 한다면 인류의 라이프스타일 혁명은 전기 엔진인 ‘모터’의 발명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모터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공장에서 사용되던 여러 기계를 소형화할 수 있게 됐다. 세탁기, 건조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1920년, 프레온 가스를 냉매로 사용하면서 가정에는 또 다른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바로 냉장고 보급의 시작. 음식의 부패를 막아주고 병균의 번식을 억제해주는 냉장고는 이제껏 가정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냉장고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때는 1965년이다. 이때부터 냉장고의 진화는 ‘성능’과 ‘크기’에 집중됐다. 얼마나 온도를 잘 유지할 수 있는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가족의 기본 단위로 여겨졌던 4인 가족이 충분히 쓸 수 있는 크기와 수납공간을 갖췄는가 등을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경제 발전과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주방 공간이 넓어졌고 저장하고자 하는 음식이 다양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냉장고의 크기와 구조도 함께 변화했다. 실제로 국내 가전 회사들은 지속적으로 냉각 기술과 최대 용량 개발에 매진해왔다. 그 결과, 냉장고는 1문형 형태에서 양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2문형, 더 나아가 3문형, 4문형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최근 이 흐름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더 이상 소비자들이 냉장고의 성능과 크기에 집중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집밥’을 해 먹는 사람들이 줄면서 큰 용량의 냉장고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냉장고 제조 기술이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면서 소비자들은 냉장고 성능에 대해선 차별점이 없는 것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 대신 냉장고의 디자인, 집안과의 조화 등에 더 많은 가치를 뒀다. 이 변화의 흐름을 간파한 것이 삼성전자가 2019년 6월 새롭게 내놓은 냉장고 비스포크(Bespoke)가 최근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이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기존 냉장고에 대한 상식을 깬 제품이다. 보통 한 개의 신제품 모델을 출시하는 것과 달리 비스포크는 9가지 타입을 한꺼번에 출시했다. 기존에 통용되는 냉장고의 깊이를 줄여 주방용 가구들과 매끄럽게 연결하면서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키친핏(Kitchen-Fit) 모델도 내놨다. 냉장고 문 패널 소재는 3가지, 색상은 9가지로 다양화했다.1 4도어 냉장고와 1도어 냉장고의 조합만으로 무려 2만2000개의 다른 냉장고를 주문할 수 있다.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조합의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출시 이후 6개월 정도 지난 현재, 비스포크 냉장고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밀레니얼세대가 주축인 신혼부부, 비혼 세대는 물론이고, ‘냉장고는 무조건 커야 한다’고 주장하던 일부 기성세대도 비스포크 냉장고를 선택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 전체 냉장고 중 비스포크 냉장고 판매 비중이 6월 20%에서 11월 56%까지 증가했다. 6∼11월 월평균 매출 성장률도 약 36%에 달한다. 소비자들이 가전제품에서 기대하는 가치와 효용의 변화를 포착해 이를 신속하게 제품 기획과 생산 프로세스에 반영한 덕분이다.


통합적 고객 경험을 반영해 냉장고 ‘Re-design’

최근 제품이나 서비스를 논할 때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는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의 미적인 반응, 행복감이나 불쾌감, 편리함이나 불편함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즉 사회심리학적으로 사용자 반응을 분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통해 구매자가 궁극적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측정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에는 이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과 관계없이 필자와 같은 인간공학 연구자들은 제품이나 시스템을 개선해 사용자를 만족시키면 궁극적으로 이들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회사가 소비자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들의 니즈를 세심하게 파악해 과거에 충족되지 않았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은 시장을 제품으로 보지만 고객 입장에서 보면 제품은 생활의 일부이다. 고객을 잘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대단한 경영 전략이 아니다. UX 관점에서 보면 통합적 고객 경험(total customer experience)을 설계하다 보면 자연스레 고객이 이 가전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집안에서 어떤 동선을 보이는지, 제품에 대해 어떤 감성을 요구하는지 알게 된다. 이에 맞춰 고객이 원하는 경험에 맞춰 서비스 디자인을 하면 고객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밀레니얼세대는 개인의 경험에 맞춘 제품 디자인에 대한 니즈가 기존 세대보다 높다. 따라서 이들 소비자를 타깃으로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것은 가전제품 제조사들이 필수적으로 생각해야 할 요소다.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냉장고 매출의 약 30%가 신규 구매를 통해 발생한다.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연령대인 밀레니얼세대가 처음으로 냉장고를 사는 것이 이 신규 구매에 속한다. 이들의 구매 욕구와 제품 니즈를 면밀하게 파악해 ‘구매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껏 대부분의 브랜드 냉장고는 과거 모델보다 더 좋은 성능, 더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을 기획하는 데 집중했다. 일부 기능을 추가하거나 에너지 효율을 높인 제품을 매해 신제품으로 내놓는 것이 일반적인 ‘혁신’ 방식이었다.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는 이러한 고객의 미충족 ‘경험’을 철저하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부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연구개발에 돌입하기 전, 1년을 할애해 소비자가 냉장고에 대해서 느끼는 불만이나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파악해 본 것이 주효했다. 과거에 진행했던 고객 설문 조사, 내부 직원 평가는 물론 포털 업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 전문 업체와 함께 SNS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밀레니얼세대의 특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해 낼 수 있었다. 밀레니얼세대는 가전제품의 사용 형태도 기존 세대와 매우 달랐다.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자립’이다. 1인 가구, 독립화로 대표되는 가정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대형화 추세로 변화한 냉장고보다 자신이 필요한 용도나 상황에 맞는 냉장고를 선호했다. 식생활 습관이 변화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맞벌이 가정이 늘고, 배달 음식을 즐기는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요리를 하지 않는 가정이 늘어났다. 게다가 당일 배송 시스템이 강화되면서 식재료를 오랜 기간 냉장고에 보관해야 할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또한 파티 등을 통해 손님을 초대해 자신의 주방을 공개하려는 욕구와 반대로 설거지와 같은 가사 노동은 기피하는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즉, 주방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노동의 공간에서 모임의 장소로서 그 가치가 변환되는 것이다. 이때의 주방은 ‘원 스페이스’ 개념의 확대로 인테리어가 중시된다. 즉, 냉장고의 경우 일상생활에서는 가사 노동을 줄이는 요긴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파티와 같은 사회적 모임을 위해서는 주방과 일체감을 주고 집안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 예쁜 디자인이어야 한다. 냉장고나 주방 가구가 주방과 어우러지면서 각기 튀지 않는 것이 트렌드라고 여기는 고객의 요구사항도 늘었다. 각 개인의 니즈에 맞춘 새로운 개념의 냉장고가 설 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집에 가구를 맞추듯 가전을 맞춘다는 ‘비스포크’의 개념은 이처럼 ‘나만의 조합’ ‘나만의 디자인’ ‘나만의 핏’을 추구하는 밀레니얼의 요구사항과 잘 어우러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밀레니얼 시대의 고객은 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과 성능보다는 자기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과 가치를 주는지, 심미적 가치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피는 경향이 있다. 서울대가 2016년 조사한 냉장고의 수납 편의성에 관한 통계적 모형과 사용자 조사를 살펴보자. 냉장실과 냉동실의 용량 부족을 불편해하면서도 인테리어 면에서 돌출된 외관을 좋아하지 않는 점, 외부 손잡이의 편의성을 중시하지만 돌출된 도어 그립을 선호하지 않는 점 등이 밀레니얼 소비자의 취향을 드러냈다.

또한 밀레니얼세대 가운데 싱글족이나 신혼부부들은 일반적인 냉장고의 용량과 사이즈가 고정된 상태, 대부분 대용량으로 출시되는 바람에 필요 이상으로 집안 공간이 낭비되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비스포크 냉장고의 실제 사용 장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용자가 기존 주방의 인테리어 벽면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냉장실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납공간의 편리성을 구현하기 위해 서랍형 수납공간이 있는 냉장고와 1문형 냉장고를 믹스앤드매치의 형태로 활용하고 있었다. 냉장고의 수납 편리성을 주거 환경에 맞게 최적화하는 방법을 비스포크 냉장고가 만들어 준 셈이다.



고객의 생애주기(Life Cycle) 확장성을 고려

비스포크 냉장고 사례를 보면 가전제품의 혁신에도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 발전의 초기 단계에는 제품 자체의 성능과 기능, 즉 냉장고 본연의 기술적 구현능력(enabling technology)이 중요하지만 그다음 단계에서는 사용성과 감성, 즉 얼마나 사용하기 편리한가, 얼마나 고객이 요구하는 감성 품질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 두 단계에서의 제품 수준이 모두 만족되면 그 이후에는 사용맥락(context-of-use)에 따른 제품의 수용 능력을 구현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바로 이런 단계적 구현 전략에서 제일 마지막 단계인 사용맥락 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단순히 밀레니얼세대만을 공략하는 제품은 아니다. 밀레니얼뿐 아니라 모든 소비자가 자신의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냉장고를 선택하고 모듈화할 수 있도록 제품을 기획했다. 이는 SNS 기반 조사에서 찾아낸 소비자의 새로운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단순히 소비자를 나이나 세대 같은 획일적인 기준으로 구획 짓고 이들을 공략할 수 없다는 점을 포착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나이보다 자신이 처한 생활환경, 가족의 형태,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필요한 냉장고의 형태와 기능이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혼자 사는 싱글족의 경우 소형 냉장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친구들과의 파티를 즐기거나 요리를 좋아하는 경우는 대형 냉장고를 선택했다. 또 아이가 있는 경우 아무리 개성 강한 밀레니얼세대라도 아이 전용 식재료를 보관할 수 있는 별도의 냉장고 공간을 확보하려는 니즈가 강했다. 손자, 손녀를 돌보는 60대 부부는 식구가 늘어나 김치냉장고와 양문형 냉장고를 집에 들이지만 부부만 살고 있는 경우에는 소형 냉장고를 택했다. 세대 구분 없이 인테리어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기존 양문형 냉장고가 다른 주방이나 거실 가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점을 해소할 수 있는 냉장고를 원했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 출산 등 자신의 상황이 변화하면 그에 맞춰 필요한 냉장고의 기능과 구성도 함께 변화했다. 결국 이러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사용자 맥락을 충족하기 위해선 ‘개인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들이 현 상황에 맞는 냉장고를 구매하되 추후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가족 구성원이 변화함에 따라 냉장고 구성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냉장고가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판단한 배경이다.

‘비스포크(Bespoke)’라는 용어는 흔히 서양에서 ‘맞춤 양복’을 뜻할 때 많이 사용한다. 개인 맞춤형 혹은 고객 맞춤형의 개념은 대량 고객 개인화(Mass Customization)라는 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BMW 자동차가 ‘Design Your Own BMW’라는 슬로건을 통해 인테리어 색상, 엔진, 인테리어 가죽색 등 7가지 조합을 주문 시 고객의 요구대로 결정하고 이를 주문 생산으로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오래된 조립 컴퓨터인 델컴퓨터와 소니사의 노트북 브랜드 바이오도 ‘Design your own PC or Notebook’의 개념을 시도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대량 고객 개인화(mass customization) 전략은 생각하기는 쉽지만 구현하기는 극도로 어렵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고객을 세분화하고, 고객의 기대에 맞는 제품을 생산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시장의 세분화(Segmentation) 중 수직적 세분화(Vertical Segmentation)에 익숙하다. 이는 제품 가격대, 즉 고객의 구매력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에서 출발한 플랫폼의 개념이 바로 수직형 세분화 모델이다. 자동차는 플랫폼에 따라 소형·중형·대형이 있고 이것이 바로 가격 및 자동차의 고급화 수준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명한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는 바로 이 수직적 플랫폼에 ‘클래스’라는 단어와 개념을 직접적으로 사용한다. 식당 메뉴부터 자동차까지 우리가 만나는 거의 모든 제품 서비스에 수직적 세분화, 즉 클래스의 개념이 적용된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경향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계층의 철저한 구분을 드러내는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씁쓸한 ‘뒷맛’, 즉 기분 나쁜 UX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호텔의 등급이나 비행기의 좌석, 살고 있는 집에서도 이런 계층화의 뒷맛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수직 위주의 제품 세분화 정책은 이런 ‘뒷맛’이 반갑지 않은 고객들의 숨겨진 니즈는 반영하지 못한다.

수평적 세분화(Horizontal Segmentation), 더 나아가 플랫폼 수평화(Platform Horizontalization)는 수직적인 세분화에 반해 성별, 연령대, 생활 특성 등 고객의 사용맥락에 기반해 이뤄진다. 세대의 특성, 생활환경의 특성, 때로는 젠더(gender) 구분까지도 수평적 세분화에 포함된다. 아직은 낯설지만 여성용 자동차, 밀레니얼을 위한 주택 등을 상상할 수 있다.

비스포크 냉장고의 혁신적인 시도는 바로 이런 면에서 냉장고의 수평적 세분화를 통한 혁신의 첫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다양한 사용맥락에서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사용 시나리오가 변함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제품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평적 세분화와 사용맥락에 따른 설계안이 구현된 제품 전략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공학 전공자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필수 자료인 ISO 9241-210 표준 ‘사용자 중심 설계 방법론’은 사용자를 위한 제품 서비스의 설계에는 사용자 특성(user characteristics)과 사용맥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비스포크 냉장고는 사용맥락을 제품 기획안에 포함한 인간공학적 제품화 사례로도 기억될 것이다.

고객 맥락을 이해한 비스포크 냉장고는 고리타분한 대형 가전제품에서 고객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사용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이른바 ‘핫’ 아이템으로 거듭났다. 과거 신모델 냉장고를 구매한 고객들이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나 SNS, 유튜브 등에 공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반면 비스포크를 구매한 고객들은 자신이 어떤 제품을 구매했는지, 어떻게 배치했는지 등 상세한 구매 후기를 자발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비스포크와 관련한 언급이 있었던 게시물이 약 5만 건에 달했다.


‘대량 고객 최적화’를 위한 제조 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

비스포크 냉장고를 개발하기 위해선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기존에 한국 시장에서 판매하지 않았던 ‘키친핏’ 모델의 냉장고를 제대로 구현해 내는 일이었다. 이는 과거 유럽 시장에서 제조됐던 세미 빌트인 제품을 응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이미 유럽에서는 주방가구와 일체감이 있는 냉장고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2015년 기존 2문형 냉장고보다 깊이가 줄어든 냉장고를 출시한 경험을 살려 키친핏 냉장고 개발에 응용했다.



두 번째 문제는 ‘어떻게 냉장고를 일반 서랍장이나 책장처럼 각 가구 간의 틈 없이 설치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냉장고는 냉매를 통해 내부를 차갑게 만들고, 흡수한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배출시키는 원리로 작동된다. 그만큼 열을 배출시킬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냉장고가 다른 가구들보다 앞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냉장고의 측면에 나 있는 열 배출구를 냉장고 하단과 상단으로 배치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냉장고의 외벽 두께를 최소화하는 방법도 모색했다. 단열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벽의 두께를 줄일 수 있는 소재를 찾아 나선 것이다. 키친핏의 경우 기존 냉장보다 외벽의 두께가 8㎜ 줄어들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태스크포스(TF)팀이 최초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치열한 논의를 거듭한 결과이기도 하다. 마케팅팀을 중심으로 제조, 영업, 물류, 경영관리, 개발, 구매 등 8개 부서가 함께 모여 비스포크 냉장고 개발의 전 단계를 세밀하게 검토해 나갔다. 실제 비스포크 냉장고를 구현하기 위해 어려운 점이 발견되면 각 부서에서 관련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고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제품 개발이 개발 프로세스별이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제품 출시에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보통 냉장고 제품 개발에만 1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비스코 냉장고는 제품 연구개발과 생산이 6개월 만에 이뤄졌다. 비스포크가 9개 타입의 냉장고를 동시에 출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품 개발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 것이다.

고객 맞춤형 제품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또한 새로운 과제였다. 그러나 실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비스포크 냉장고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 시스템과는 완전히 차별되는 고객 중심의 맞춤형 주문, 제조 시스템이 가능해야 한다. 비스포크 시스템을 제시하는 삼성 냉장고의 제품력이 보여주는 사업적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9개 타입, 3가지 소재, 9가지 색상을 바탕으로 가능한 조합이 모두 2만여 개를 훌쩍 넘는다. 이와 같은 빌드 투 오더(Build to Order, BTO) 시스템은 과거의 대량 생산 시스템과는 다른 주문 처리, 제조, 재고 관리, 배송 시스템을 갖춰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었다. 주문을 받은 후 냉장고 제조를 시작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제품을 받는 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주문 후 고객 집까지 4일 만에 배송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결 방안을 찾아 나섰다.

비스포크 팀은 기존 제조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개인화된 상품을 제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다른 모델의 냉장고이지만 모듈화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는 데에도 주력했다. 각 냉장고의 높이를 1853㎜로 단일화하고,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동일하게 구성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기존 생산 시스템에서 효율적으로 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품을 설계한 것이다.

생산 체제도 이원화했다.먼저 화이트나 메탈 소재와 같이 소비자 선호도가 높을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 수요 예측을 통해 재고를 확보했다. 다양한 색상의 모델은 고객이 주문한 후 제작하는 BTO 방식으로 진행된다. 단, 일부 모델은 냉장고 본체를 미리 생산하고 고객이 주문한 문 패널을 BTO 방식으로 생산해 조립하기도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통합 시스템에 입력되는 주문번호를 통해 생산 계획과 일정 계획 배송 일정 등은 컴퓨터로 관리한다. 정확한 예측 시스템에 따라 생산 완료 시점과 배송 일정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생산 및 배송에 따른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예측 가능한 자료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비스포크 제조 시스템의 운영으로 얻어지는 간접적인 이익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고객의 주문 형식과 선호 주문 패턴은 그대로 데이터화돼 제조 시스템에 핵심 정보로 입력됨과 동시에 다음 단계 혹은 이후의 주문 생산 시스템의 가치 있는 데이터가 된다. 획득한 데이터는 다시 효율적인 수요 예측, 재고관리 및 공급망 및 생산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는 선순환의 구조를 갖게 된다. 또한 이와 같은 맞춤형 사업모델을 통해 수집한 고객 데이터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시스템상 중요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고객이 선호하는 기능 및 성능 모델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 개발로 연결된다.

물론 냉장고에서 파악된 고객정보는 이후 다른 제품의 선호도와 구매 성향 예측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마존 구글과 같은 플랫폼 기업은 이미 여러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이와 같은 고객 데이터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회장은 여러 공개석상에서 “현대 기업에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경영자는 멍청한 경영자이며, 데이터를 모으는 경영자가 훌륭한 경영자”라고 설명한 바 있다. 비스포크 시스템은 이러한 데이터 기반 제조를 위한 의미 있는 시작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필자소개 윤명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mhy@snu.ac.kr
필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인간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 연구 분야는 인간공학, 감성공학, 휴먼 인터페이스다.
  • 윤명환 | - (현) 서울대 휴먼인터페이스 소장
    - (현) 공과대학 미래융합 최고과정(FIP) 주임교수
    - ㈜하이터치 연구개발 실장
    -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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