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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문맹 아동 위한 학습 소프트웨어 - 에누마 ‘킷킷스쿨’

공부 앱에 게임 기법 넣어 재미있게
스스로 글 깨치는 ‘탄자니아의 마법’으로

이방실 | 279호 (2019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우승한 에누마 ‘킷킷스쿨’ 성공 요인
1.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기초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
: 게임화(gamification) 기법을 적극 활용, 반복 훈련 과정에서 학습자들이 재미를 잃지 않고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
2.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및 사용자경험(UX) 개선을 통해 학습자 접근성 제고
: 탄자니아 현지 테스트를 통해 학습자들의 사용 습관을 면밀히 관찰, 최적화된 UI와 UX 설계
3.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통해 교육 효과 극대화
: 난청, 색약 등 장애가 있는 아이들까지도 학습에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이승빈(숙명여대 경영학부 4학년), 홍지선(경희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2019년 5월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서부에 위치한 플레이야비스타 구글캠퍼스에서 엑스프라이즈(XPRIZE)가 주최한 국제 대회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The Global Learning XPRIZE)’의 최종 시상식이 열렸다. 엑스프라이즈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중대 문제를 혁신적 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하에 거액의 상금을 내건 국제 경연대회를 개최, 솔루션을 찾는 비영리 재단이다. 민간 우주선 개발 프로젝트 ‘안사리 엑스프라이즈(Ansari XPRIZE )’, 구글과 공동 기획한 민간 달 착륙선 개발 프로젝트 ‘구글 루나 엑스프라이즈(Google Lunar XPRIZE)’ 등이 대표 사례다. 1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엑스프라이즈 최초의 대회로, 전 세계 2억5000만 명이 넘는 개발도상국 아동 문맹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번 대회의 미션은 “학교도, 교사도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아이들 ‘스스로’ 문해(literacy)와 산술(numeracy)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태블릿PC용 학습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라”는 것. 쉽게 말해 문맹 아동들이 태블릿PC 하나만 갖고 스스로 글도 깨치고 셈도 할 수 있게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인 만큼 이 대회에 걸린 상금 액수는 무려 1500만 달러. 2 2014년 9월에 시작해 장장 5년에 걸쳐 진행된 경연대회로, 상금 외에 문맹 아동들에게 나눠 줄 태블릿PC 비용, 학업 성취도 평가를 위한 대단위 현지 테스트 진행 비용 등까지 고려하면 수백억 원은 족히 들어간 프로젝트다.



이 엄청난 대회의 시상식에서 최종 승자로 호명된 이름은 ‘킷킷스쿨(Kitkit School, ‘킷킷’은 태국어로 ‘생각하다’는 뜻)’. 엔씨소프트의 게임 개발자 출신인 이수인·이건호 부부가 지난 201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스타트업 에누마(Enuma)가 개발한 학습 애플리케이션이다. 이날 킷킷스쿨(에누마)은 영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기관인 원빌리언(one billion)과 함께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의 공동 우승자로 선정됐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에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출품한 전 세계 198개 팀과 겨뤄 일궈 낸 성과였다. 3

특히 2017년 12월부터 시작해 경연대회 막바지 마지막 15개월 동안은 유네스코(UNESCO) 및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의 관리하에 엄격한 현장 테스트까지 거쳤다. 구체적으로 엑스프라이즈는 탄자니아 북동부에 위치한 탕가 지역 내 170개 마을에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약 3000명의 아이를 다섯 개 그룹으로 구분하고, 킷킷스쿨을 포함해 결승 진출 5개 팀의 학습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태블릿PC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면서 15개월간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태블릿PC 사용 ‘전’과 ‘후’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해·산술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치름으로써 가장 높은 학습 성취도를 보인 팀을 최종 우승자로 뽑는 방식을 취했다.

사진

에누마는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빌리언과 함께 최종 우승의 영예를 차지했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출품한 유일한 한국인 팀이 거둔 성과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원빌리언과 에누마의 특성을 비교해보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원빌리언은 10년 넘게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교육 사업을 벌여왔던 비영리단체로 개도국 아동 문맹 이슈에 정통한 기관인 반면 에누마는 스와힐리어는커녕 아프리카에 대한 기본 지식과 경험조차 전무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에누마는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에 도전해 온 세상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일까? DBR이 에누마의 킷킷스쿨 개발 과정과 성공 요인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DBR mini box I : 에누마 회사 소개
“한 명의 아이도 뒤처지지 않도록” 장애아동 학습 앱에서 출발



에누마는 ‘장애로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도 혼자서 학습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 도구를 만드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 회사다. 2019년 7월 말 기준 미국 본사와 한국 지사에 약 50명이 일하고 있다. 공동 창업자인 이수인·이건호 부부는 에누마 창업 전 엔씨소프트에서 각각 게임 기획자와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이건호 현 에누마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 과정(컴퓨터공학)을 밟던 중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장애 아동을 위한 학습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된다.

처음엔 엔씨소프트의 기업 사회공헌 프로젝트로 인지 장애가 있는 영·유아용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연구했고, 2012년 미국 버클리에서 로코모티브랩스(LocoMotive Labs, 현 에누마)를 창업, 이듬해 6월 ‘토도수학(Todo Math, 토도는 ‘모든’을 뜻하는 스페인어)’을 출시했다.

토도수학은 미국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커리큘럼을 담은 수학 교육 애플리케이션으로 수학 개념을 놀이하듯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700여 개 이상의 게임을 통해 어린이들이 많은 분량의 수학 문제를 즐겁게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학습 소프트웨어로, 스탠퍼드와 버클리, 하버드 등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은 물론 특수 교사, 아동 수학 평가 분야 박사 등과도 긴밀히 협력해 내놓은 작품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원래 타깃은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게임화(gamification) 기법이 잘 적용돼 있어 일반 아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에 선보인 지 6년이 지났지만 토도수학은 여전히 애플 앱스토어에서 많이 다운로드되는 앱 중 하나다. 지금까지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700만에 달하며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20개국에선 2014년부터 애플 앱스토어 교육 카테고리 톱다운로드(Top Downloads), 톱그로싱(Top Grossing, 매출액 기준 순위) 1위를 여러 번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영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8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으며 전 세계 애플 매장에 있는 데모용 디바이스에 학습 애플리케이션 샘플로 설치돼 있다.



회사명을 에누마로 바꾼 건 2015년. 영어 단어 ‘enumerate(열거하다)’에서 따온 이름으로 하나하나 이름 붙여 세듯이 모든 아이를 위한 학습 도구를 만들어 단 하나의 아이도 학습에서 소외되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꿈을 사명에 담았다. 이어 2017년엔 이수인 대표가 전 세계 사회 혁신가를 지원하는 국제 비영리단체 아쇼카(Ashoka)로부터 ‘아쇼카 펠로(Ashoka Fellow)’로 선정되기도 했다. 게임 기법을 접목해 아이들의 학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장애 등 여러 이유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기초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이수인 대표는 “사업을 하다 보니 공부를 못하는 건 반드시 장애 때문만이 아니라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모든 아이가 자기 속도에 맞춰 흥미를 잃지 않고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읽기와 셈하기를 한다면 기본적인 생활 안내문을 읽을 수 있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 거스름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며 “전 세계 모든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2학년 말에 2학년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익히도록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개도국 문맹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전례 없는 현장 테스트 기회

엑스프라이즈에서 전 세계 아동 문맹 퇴치를 목표로 하는 국제 경연대회 개최를 발표한 2014년 9월은 에누마가 수학 학습 애플리케이션 ‘토도수학(Todo Math)’을 출시한 지 1년이 좀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당시 토도수학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중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소식을 접하게 된 것.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무엇보다 개도국 문맹 아동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만든 학습 애플리케이션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데 눈이 번쩍 뜨였다”고 말했다.

“전례가 없는 현장 테스트를 통해 에누마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반드시 대회에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도 개도국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테스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처럼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 환경 속에서 장기적으로 대단위 테스트를 실시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누마가 개발한 학습 애플리케이션의 효과성이 이런 대회를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면 시장에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디지털 교육의 확산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고 봤다.” 이 대표의 설명이다.

물론 고민도 컸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회사가 5년이나 소요되는 대회에 출전하겠다는 게 정신 나간 일은 아닌지, 토도수학 하나도 버거운데 다른 제품을 만들 여력이 과연 있을지, 스와힐리어로 소프트웨어를 제작 4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운 좋게 상금을 받더라도 오픈소스로 공개해야 하는데 영리 기업이 참가하는 게 맞을지 등 여러 가지 걱정과 불안, 위험 요소들이 이 대표의 뇌리를 스쳐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 무엇보다 에누마의 역량을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인지 장애가 있는 영·유아용 학습 애플리케이션과 토도수학 개발을 통해 축적한 역량을 활용하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회사에 능력 있는 개발자는 물론 교육학 석사, 특수교육 석사 등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드디어 2015년 4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참가할 팀 구성원을 확정 지어 대회 등록을 신청했다. 이후 첫 번째 관문은 2017년 1월까지 엑스프라이즈에 출품할 교육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제출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에누마는 최고의 교육 연구진과 게임 개발자를 투입하는 한편, 국제 개발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reative Technology Solution, CTS) 5 에 지원했다. 이어 국제 아동 구호 비영리단체인 ICRI(International Child Resource Institute), 아동 권리 증진과 사회 복지 및 국제 구호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GoodNeighbors) 등과 협력해 두 차례 현장 테스트를 실시하며 킷킷스쿨 개발에 나섰다.

당시 에누마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사용자 경험에 대한 배려’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킷킷스쿨을 경험할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에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이는 이 대표가 기존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대부분의 교육 시스템은 단계(학년)별로 분명한 교육 목표가 있어서 아이들이 정해진 정보량을 해당 기간 안에 어떻게든 소화하도록 강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정작 개별 사용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미없는 물건을 만들면 회사가 망하는 게임 업계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부조리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학업 성적이 부진한 1학년 아이를 단지 시간이 됐다는 이유로 2학년으로 진급시켜 버리는데, 이걸 게임에 빗대 보면 레벨1에서 걸어 다니는 좀비와 싸워 진 아이를 날개 달린 좀비가 나오는 레벨2로 올려버리는 꼴이라는 것. 이 대표는 “이렇게 되면 그 아이는 레벨2 시작과 동시에 시체가 된다”며 “이런 아이를 다시 레벨3으로 올려버리는 건 총까지 들고 날아다니는 좀비와 마주치게 하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게임이나 학습이나 잘하기 위한 기본은 ‘반복 훈련’”이라며 “학교에서 공부를 못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정규 수업 과정에서 진행하는 반복 학습 훈련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도 포기해서인데, 그 이유는 바로 ‘재미’가 없어서”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잃지 않고 몰입할 수 있게 한다면, 비록 시간은 걸릴지라도 끝까지 배워야 할 분량을 마칠 수 있게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글로벌 엑스프라이즈가 치러질 현장은 너무나도 극단적인 실험 환경이라 재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였다. 아이들에게 태블릿PC를 한 대씩 나눠주되 선생님이나 부모,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태블릿PC를 가지고 뭘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게 중요한 규칙이었다. 심지어 태블릿 PC 충전조차 아이들의 자유 의지에 맡겼다. 마을마다 중심부에 태양광 패널을 하나씩 설치해 놓고, 아이들이 직접 태블릿PC를 가지고 와서 충전하도록 했다. 경우에 따라선 충전을 위해 집에서 왕복 2시간 거리를 도보로 오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태블릿PC를 가지고 노는 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먼 길을 걸어올 이유가 없었다.

이에 따라 에누마는 ‘게임화(gamification)’ 기법을 적용해 아이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자극을 줌으로써 콘텐츠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잃지 않도록 만드는 데 게임 개발의 최우선 순위를 뒀다. 마치 게임 유저가 게임이 재미없어서 때려 치고 싶어 하는 순간을 어떻게든 뒤로 미뤄보고자 게임 개발업자들이 매달리는 것처럼, 에누마는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고 포기하는 시점을 최대한 뒤로 늦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킷킷스쿨의 프로그램 구성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게임 설계 기법 적용한 학습 애플리케이션 개발

킷킷스쿨은 알들(eggs)을 하나하나 터치하면서 그 안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기도록 구성돼 있다. 즉, 메인 시작 화면을 클릭하면 들판 위에 헛간 이미지가 보이고, 이 헛간을 클릭해 들어가면 여러 개의 알이 놓여 있어서 알을 하나씩 눌러가며 다양한 게임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한 개의 알에는 대략 1달 정도(하루에 15∼20분씩 놀 때 기준) 분량의 게임형 학습 콘텐츠가 들어 있어서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닭, 도마뱀 등 조류와 파충류에 속하는 각종 동물이 알에서 부화해 나온다. 6 각 게임을 끝낼 때마다 ‘잘했어요(Great!)’라고 칭찬해 주고, 별 모양 코인도 줘서 단계별로 다양한 보상을 제공했다. 부화하는 동물들의 모양도 도마뱀, 이구아나, 코브라 등 알마다 달라서 아이들이 계속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심지어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동물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한 달 분량(한 개의 알)의 모든 학습을 마치면 해당 동물(닭이나 도마뱀 등)에게 왕관을 씌워줬다. 이런 게임 외에도 에누마는 ‘라이브러리(전자 동화책 및 각종 비디오 콘텐츠)’와 ‘툴(드럼, 실로폰, 카메라 등)’ 메뉴를 애플리케이션에 추가했다. 이로써 에누마는 학습 게임 콘텐츠와 함께 크게 세 부문으로 킷킷스쿨을 구성했다.

킷킷스쿨 게임의 큰 틀을 헛간에서 알이 부화하는 설정으로 잡은 이유는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맥락(familiar context)’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 아프리카 하면 ‘밀림의 왕자’인 사자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에누마도 처음엔 사자, 기린처럼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는 동물들을 게임의 메인 테마로 사용할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게임 개발을 위한 사전 스터디 결과, 탄자니아 시골 마을 아이들의 절반은 사자 사진을 봐도 사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얼핏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아프리카 시골은 TV나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 매체가 발달해 있는 문명사회와 다르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다면 쉽게 수긍이 된다. 이 대표는 “만약 아이들이 사는 시골 마을 주변에 사자가 어슬렁거렸다면 애초에 그 아이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TV는커녕 제대로 된 책 한 권 읽지 못한 아프리카 아이들 입장에서 사자를 몰라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 개발자들의 단순한 선입견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할 수 있는지 깨달았고 우리 관점이 아니라 실제 아프리카 현지 아이들 입장에서 익숙한 맥락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에누마는 게임의 큰 틀로 아프리카 아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맥락(알이 부화하는 설정)을 제시한 것 외에 개별 게임 속에서도 가급적 친숙한 이미지들을 사용하려 애썼다. 가령, 숫자를 더하고 빼는 등의 연산 관련 게임에 망고 같은 과일이나 개미, 풍뎅이 같은 곤충, 돌이나 막대기 등 탄자니아 시골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물을 주로 등장시켰다.

동시에 에누마는 게임별로 정보를 제시할 때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을 모두 활용해 가급적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설령 그렇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 방침에 어긋난다 해도 이 원칙을 고수했다. 대표적인 예가 ‘사운드 트레인(Sound Train)’이라는 학습 게임이다. 가령, 스피커 모양 버튼을 눌러 ‘sing’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 왼쪽에는 ‘ing’, 오른쪽에는 ‘s’라는 글자가 각각 적혀 있는 두 개의 카드 순서를 ‘s’와 ‘ing’로 바꿔 열차의 각 차량에 퍼즐처럼 끼워 맞추는 게임이다. 일종의 파닉스(Phonics) 콘텐츠로, 단어의 ‘소리’를 듣고 글자를 맞추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킷킷스쿨에선 ‘sing’이라는 완성된 단어를 화면에 함께 제시해 소리를 듣지 않고 글자 모양만 보고도 정답을 맞출 수 있게 했다.

엄밀하게 파닉스 게임의 학습 목표만 생각한다면 ‘sing’이라는 글자를 정답으로 미리 제시해선 안 된다. 아이가 소리를 듣고 답을 맞힌 것인지, 글자를 보고 맞힌 것인지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에누마는 한 아이도 빠짐없이 재미있게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아프리카의 경우 아동 귓병 발병률이나 난청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어서 자칫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시각적 보조 정보까지 함께 제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연장선에서 색채 디자인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가령, ‘리터러시 매칭(Literacy Matching)’ 같은 짝 맞추기 게임의 경우 글자와 배경 사이의 색채 대비(contrast)를 크게 함으로써 색맹이나 색약 등 시각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무리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에누마는 7∼10세를 타깃으로 하는 킷킷스쿨에 3∼4세 정도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인지 발달 콘텐츠를 풍부하게 포함시켰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 집이나 유치원에서 충분히 ‘사전 교육’을 받은 문명국 아이들과 달리 개도국의 경우 일반 가정에서 이런 선행학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글자를 이해하려면 먼저 삼각형과 사각형 기호가 서로 다른 모양이라는 걸 알아야 하고, 같은 삼각형이라 해도 거꾸로 놓여 있는 역삼각형인지, 피라미드 형태로 바르게 놓여 있는 삼각형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알파벳이란 게 모양은 똑같은데 방향만 바뀐 경우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b, p, q, d는 다 똑같이 생겼지만 그냥 방향만 바뀐 것이다. 이것들이 모두 다른 것이라는 걸 인식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호에 대한 사전 학습이 쌓여야 한다.”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에누마는 삼각형, 사각형, 원 등 도형을 늘어놓고 같은 모양끼리 짝을 맞춰보게 하는 연습 등을 킷킷스쿨에 많이 탑재했다.

마지막으로, 에누마는 태블릿PC 잠금 화면 해제 방식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7 의 기본 설정 방식인 손가락으로 밀어 여는(swipe-to-open) 방식에서 단순히 두드려 여는 방식(tap-to-open)으로 바꿨다. 발달 단계상 손에 소근육 발달이 약해 드래그 동작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는데다 태블릿PC를 처음 접한 아이들의 경우 손가락으로 밀어야 잠금 화면이 열린다는 걸 깨닫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렇게 에누마는 등록 신청서 제출 후 약 1년9개월 동안 오픈 소스 기반의 확장형 학습 소프트웨어 킷킷스쿨을 성공적으로 개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제출했다.


현지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애플리케이션 수정

킷킷스쿨 출품 약 3개월 뒤인 2017년 4월, 에누마로 낭보가 날아들었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준결승에 진출할 11개 팀 중 하나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8 이와 함께 영상 파일 하나도 도착했다. 엑스프라이즈에서 준결승 진출자를 가리기 위해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킷킷스쿨을 사용해보도록 하고 촬영한 파일럿 테스트 영상이었다. 이 대표는 “특수 교육 분야에 나름 전문성이 있다고 자부하던 터라서 일반 교육자보다 틀에 박힌 사고를 덜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영상 파일을 여는 순간 교만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영상을 면밀히 확인한 결과, 몇몇 아이들이 게임을 진행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걸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 ‘툴’ 메뉴에 들어 있는 카메라 프로그램을 누르고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사진이나 사진기를 본 적이 없다 보니 화면에 상이 맺히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가령, 태블릿PC를 나무 책상에 내려놓은 채로 버튼을 누르면 갈색 화면이 찍히는데, 갑자기 화면이 갈색으로 바뀌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멀뚱멀뚱 스크린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표는 “애초에 카메라 기능을 포함시킨 이유는 아이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보면서 재미있게 놀기를 바랐던 것인데 완전한 착각이었다”며 “인간이 아무것도 안 배웠을 때 과연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류 심사와 필드 테스트 결과를 거쳐 선정된 11개 준결승 진출팀은 2017년 6월 무려 17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자사 소프트웨어의 특장점에 대해 직접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누마는 이 관문도 무사히 통과해 최종 결승에 오를 5개 팀으로 뽑혔다. 결승 진출 팀들은 엑스프라이즈로부터 제공받은 파일럿 테스트 영상과 대면 심사 과정에서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자사 소프트웨어를 수정·보완해 개선한 애플리케이션을 그해 9월까지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총 1000만 달러의 상금을 놓고 실력을 겨뤄야 하는 만큼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최종 결승을 코앞에 둔 에누마는 이건호 CTO의 절친이자 전 직장 동료였던 김형진 전 엔씨소프트 상무(현 에누마 게임 디자이너)에게 도움을 청했다. “탄자니아 아이들이 실제 킷킷스쿨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현지에서 면밀히 관찰해 게임 디자인에 반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SOS를 친 것. 김형진 전 상무는 “딱 하루 고민한 후 이직을 결심했다”며 “워낙 급하게 결정하고 탄자니아로 날아가 킷킷스쿨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현지에 도착해 처음 봤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9



탄자니아 남동부 음트와라 지역에 있는 한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이 킷킷스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관찰한 김형진 게임 디자이너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발견했다. 당초 에누마는 태블릿PC 화면 기준으로 왼쪽에 ‘킷킷스쿨’ 게임 메뉴를, 오른쪽에 ‘라이브러리’와 ‘툴’ 메뉴를 각각 배치해 놓았다. 특히 게임 메뉴는 스크린의 약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큼지막하게 만들어 처음 태블릿PC를 접하는 아이들도 쉽게 게임을 시작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실제 현지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해 본 결과, 상당수가 화면 오른쪽 맨 위 구석에 있는 톱니바퀴 모양의 ‘설정(settings)’ 버튼을 제일 먼저 눌렀다. 그 뒤에 벌어질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애플리케이션 기본 세팅은 관리자 외에는 아무나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에 설정 버튼을 누르면 패스워드를 입력하라는 팝업 창이 뜬다. 이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난제’였다. 팝업창을 없애려면 취소 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이를 아이들이 알 턱이 없었다. 결국 아이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며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왼쪽에 큼지막한 킷킷스쿨 시작 버튼을 놔두고 오른쪽에 잘 보이지도 않게 만들어 놓은 설정 버튼을 맨 처음 누르는 걸 보고 처음엔 너무 황당했다. 그러다 글을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읽고, 태블릿PC 화면도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으로 훑어 내려가며 보는 습관조차 사전 학습의 결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어려서부터 책도 많이 보고 스마트폰 같은 기기에도 일찍부터 노출돼 시각 정보를 인식할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걸 당연시한다. 하지만 문명과 동떨어져 책 한 권 제대로 접해본 적 없는 문맹 아동들에겐 오른손잡이는 오른쪽부터, 왼손잡이는 왼쪽부터 화면을 누르는 게 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가령, 화면에 A, B, C가 각각 적혀 있는 카드 세 장이 왼쪽부터 일렬로 늘어져 있다면 오른손잡이 아이는 C가 적힌 카드를 제일 먼저 클릭하는 식이다. 글을 어떤 방향으로 읽어야 하는지, 스크린을 볼 때 맨 처음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조차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수없이 많은 책을 읽어주면서 글자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쳐 준 결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형진 게임 디자이너)

같은 맥락에서 에누마는 킷킷스쿨 헛간 속 알이나 게임의 디스플레이 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에누마는 ‘적응형 학습(adaptive learning, 학습자의 수준과 학습 스타일에 맞춰 학습 정보와 방법을 제공)’ 원칙에 따라 각각의 알과 게임의 난이도를 달리해 놓고 레벨 표시를 위해 1, 2, 3 등 숫자를 붙여놓았다. 이렇게 해 놓으면 아이들이 쉬운 순서대로 차근차근 눌러가며 게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맹 수준이 높은 탄자니아 아이들은 숫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른손잡이들은 대부분 오른쪽에 있는 걸 먼저 눌렀다. 작은 화면에 여러 가지 콘텐츠를 수준별로 담아낼 때, 개발자들은 은연중에 왼쪽부터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스크린 오른쪽에는 낮은 레벨보다 높은 레벨의 콘텐츠가 놓여진다. 이는 킷킷스쿨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탄자니아 문맹 아동들처럼 사용자들이 화면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먼저 누른다면 처음부터 자기 수준을 넘어서는 어려운 문제를 계속 접하게 되고, 그 결과 쉽게 좌절하고 흥미를 잃어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탓이다. 김 디자이너는 “‘탄자니아 아이들도 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게임을 만든 우리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절감했다”며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면서 개선해 나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기존 킷킷스쿨을 개선하는 데 있어 에누마가 가장 주력했던 건 콘텐츠의 절대 양을 늘리는 일이었다. 결승에서는 아이들이 향후 15개월 동안 가지고 놀 수 있는 양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누마는 현지 테스트를 통해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질적 개선에도 힘썼다. 우선 화면 오른쪽 위에 배치해 놓았던 톱니바퀴 모양 설정 버튼을 삭제했다. 대신 ‘킷킷스쿨’이라는 제목을 한참 동안 누르고 있어야 설정 메뉴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우연히 제목을 살짝 눌러보는 아이들은 있어도 몇 초씩 꾹 누르고 있을 아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헛간에 있는 알을 제시하는 방식도 바꿨다. 원래는 쉬운 수준부터 어려운 수준에 달하는 모든 알을 밝은 화면에 한꺼번에 다 보여줬지만 개선된 버전에선 사전 학습용 콘텐츠와 레벨 1에 해당하는 알만 밝게 만들고 나머지 알이 배치된 스크린은 모두 어둡게 만들었다. 각각의 게임도 레벨 1을 끝내지 않으면 레벨 2가 선택되지 않도록 설계를 변경해 아이들이 쉬운 레벨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도록 유도했다.

문제가 됐던 툴 메뉴의 카메라 기능도 당연히 삭제했다. 대신 칠판이나 색칠하기 등 아이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들을 추가했다. 이 밖에 아이들이 레벨 초반에 접하게 되는 쉬운 콘텐츠의 경우 일러스트레이션이나 그래픽 형태로 표현된 이미지들을 가급적 실사 이미지로 대체하려고 노력했다. 사전 학습의 부재로 기호나 추상화된 이미지에 익숙하지 않은 문맹 아동들을 위한 배려였다. 이렇게 에누마는 크고 작은 수정을 거쳐 킷킷스쿨 수정본을 완성, 2017년 9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결승을 치를 애플리케이션을 다시 출품했다. 이로써 결승에 진출한 다른 4개 팀과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최종 출품 후에도 현지 테스트 및 업데이트
병행하며 개도국 시장에 대한 지식 축적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요기 베라)”라고 했던가. 에누마를 포함해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결승 진출 팀들에게는 향후 15개월간의 대단위 필드 테스트 기간 중 총 2번의 업데이트 기회가 주어졌다. 테스트가 이뤄지는 곳은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지역이라 학습자들의 사용 패턴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원격으로 업데이트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대회의 공정성을 위해 테스트 기간 중에는 해당 지역에 소프트웨어를 출품한 참가팀들의 접근이 일절 통제됐다. 오직 기댈 곳은 세계식량계획 직원들이 해당 지역에 2주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서 USB에 저장해 온 자료(학습자 로그 데이터)뿐이었다. 이 자료를 기초로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유추해 그에 맞는 업데이트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에누마가 최종 결승 출품작을 제출한 후에도 탄자니아에서 자체 현지 테스트를 계속한 이유다.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에누마는 KOICA의 지원을 받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의 테스트가 진행되지 않는 지역에서 킷킷스쿨의 효과성을 검증했다. 구체적으로, 경연대회에 최종본을 제출한 직후인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탄자니아 바가모요 지역 초등학생 160명(1∼3학년)과 음트와라 지역의 학교 밖 아동보육센터 아이들(5∼10세) 38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실시했다. 특히 음투와라에선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와 유사하게 킷킷스쿨이 탑재된 태블릿PC를 아이들에게 한 대씩 나눠준 후 마음껏 사용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학교 밖 환경에서 아이들은 3개월간 거의 매일 하루 평균 4시간씩 사용하는 것만으로 눈에 띄는 실력 향상을 보였다. 문해 테스트의 경우 평균 정답률은 킷킷스쿨 사용 전 36.3%에서 사용 후 51.9%로 15.6%p 높아졌고, 수학 테스트는 27.3%에서 47.7%로 20.4%p 증가했다. 김현주 에누마 사업개발팀장은 “음트와라 지역에서 실시한 것과 똑같은 시험을 탄자니아 바가모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치렀을 때 문해와 수학 테스트 평균 정답률이 각각 53%, 48%였다”며 “킷킷스쿨을 단 3개월 사용한 것만으로 제대로 학교에 가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정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비슷한 학업 성취도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자체 현장 테스트로 킷킷스쿨의 유효성을 검증한 것도 큰 성과였지만 에누마는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됐다. 그동안 에누마 게임 개발자들이 몇 차례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 중 하나는 태블릿PC를 멀뚱히 바라만 볼 뿐 잘 만지려고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살짝 클릭 한 번만 한 후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김 디자이너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탄자니아에선 아이들이 집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혼난다고 교육을 받고 실제 체벌도 심하다”며 “태블릿PC처럼 새로운 물건, 특히 고가로 보이는 물건을 보면 아이들이 신기하게 생각은 해도 섣불리 만지려 하지 않았던 이유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에누마는 첫 번째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2018년 5월) 때 태블릿PC 전원 버튼을 켜자마자 인자하게 생긴 탄자니아 선생님이 나와서 “이 태블릿PC는 너희들이 자유롭게 사용해도 되니 마음껏 만져보고 눌러보면서 탐험해보라”는 메시지를 담은 안내 동영상 10 이 나오도록 했다.

동시에 에누마는 또 다른 안내 동영상도 만들었다. 업데이트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학습자들의 이전 사용 기록은 다 지워진다. 이는 몇 달 동안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이 축적했던 별 모양 코인도, 그동안 애써 부화시킨 새나 파충류도 다 사라진다는 걸 뜻했다. 게임으로 치면 그동안 공들여 쌓아 온 경험치와 각종 아이템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들 입장에선 큰 상실감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김 디자이너는 “게임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고민 끝에 원래 한 개만 있던 헛간 11 을 두 개로 늘려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을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그동안 아이들이 모아놓은 코인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0으로 떨어지고, 코인이 우르르 쏟아지면서 한 개였던 헛간이 두 개로 바뀌는 동영상을 맨 처음 킷킷스쿨 게임을 시작할 때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모아 놓은 코인이 사라진 이유는 너희가 돈을 많이 벌어서 살림이 늘어난 덕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김 디자이너는 “애초에 업데이트 과정에서 콘텐츠의 양(알의 개수)을 계속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헛간을 두 개로 나누는 작업이 어차피 필요했다”며 “현실적으로 필요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아이들의 정서까지 고려한 최선의 조치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탄자니아에서의 자체 테스트 외에도 에누마는 케냐, 르완다 등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서도 현지 테스트를 계속 이어갔다. “상금만 타는 게 목적이었다면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하는 이 대표로선 당연한 의사결정이었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는 ‘전 세계 모든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2학년 말까지 배워야 할 내용을 모두 다 배우게 만든다’는 에누마의 미션을 이루기 위한 이정표(milestone)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더 중요한 건 이를 어떻게 사업화해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갈 것이냐의 문제였다. 이를 위해선 탄자니아 외 전반적인 개도국 시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계속 쌓아나가는 게 중요했다.

특히 2018년 케냐 카쿠마 난민 캠프에서 총 27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지 테스트는 난민 교육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 NGO 자비에르 프로젝트(Xavier Project)의 의뢰를 받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제출한 킷킷스쿨과는 다른 ‘상용’ 버전을 만들어 진행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대회 제출본과 상용 버전 간 가장 큰 차이점은 태블릿PC 한 대당 총 9명까지 접속해 여러 명이 나눠 쓸 수 있도록 복수의 계정을 통해 로그인하는 기능을 탑재했다는 점이다.

테스트 결과는 놀라웠다. 무작위로 추출한 아동 35명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한 결과 영어 알파벳도 모르던 아이들이 단 8주 동안 주 5일 30분씩 매일 킷킷스쿨을 사용한 것만으로 문해 능력 평가 시험에서의 정답률이 32∼46%p나 증가한 것. 가령, 독해(reading comprehension) 분야 정답률은 16.6%에서 62.8%로 상승했고, 발음 지식(letter sound knowledge) 분야 정답률은 49.9%에서 88.6%로 뛰었다. 수학 능력 평가 결과 역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킷킷스쿨을 사용하기 전에는 총 122점 만점인 테스트에서 20점 미만의 성적(8∼19점)을 받았던 하위 20%(7명) 아이들이 8주 만에 49∼95점으로 뛰었다. 최저점(49점)을 받은 한 아이를 제외하면 71점이 두 번째로 낮은 점수였다.(그림 1)



카쿠마 난민 캠프에 마련된 학교의 경우 교사 한 명당 평균 학생 수가 180명일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난민 캠프의 특성상 아이들이 쓰는 언어도 스와힐리어, 아랍어, 아프리카 부족어 등 제각각이어서 교실에 앉아 있는다 한들 선생님이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알아듣기도 힘들다. 김 팀장은 “어찌 보면 아프리카 오지의 시골 마을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킷킷스쿨의 효과성이 입증됐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며 “특히 모국어도 아닌 제2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의 문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킷킷스쿨이 단지 개도국 문맹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만 국한돼 사용되지 않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이민자 가정 아이들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으로 확장돼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 제대로 못 읽던 아이들이 스스로 글을 깨치는 마법 실현

2019년 3월, 엑스프라이즈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개최 선언 5년 만에 드디어 대장정의 막을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탄자니아 탕가 지역에서 태블릿PC를 사용한 아이들(실험군)과 사용하지 않은 아이들(대조군) 간의 실제 학업 성취도를 비교하기 위한 테스트를 실시한 것. 평가의 기준점(baseline)을 잡기 위해 이미 최종 결승 5개 팀을 발표하긴 직전(2017년 8월) 약 300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테스트 12 를 실시한 터였다.

당시 엑스프라이즈가 학업성취도를 평가한 아동 중 74%는 단 한 번도 학교에 다니지 않은 아이들이었고, 집에서 글을 배우거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아동 역시 80%에 달했으며, 90%가 스와힐리어를 읽지 못했다. 한마디로 ‘문맹’ 아동들이라는 소리다. 다행히 15개월 동안 태블릿PC를 사용한 덕에 문맹 수치는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5개 팀이 출품한 작품 모두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유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킷킷스쿨(에누마)과 원빌리언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월등한 성과를 보여 최종 우승팀으로 결정됐다.

이수인 대표가 5년 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참가를 결정했을 때 목표로 했듯 킷킷스쿨은 에누마 소프트웨어의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해 냈다. 구체적으로, 1분 동안 문장에 나와 있는 단어들을 아이들이 얼마나 유창하게 읽을 수 있는지 평가하는 문장 읽기(oral reading fluency) 테스트에서 킷킷스쿨을 사용하지 않은 아이들(대조군)은 0.47개(baseline)에서 2.45개로 고작 1.98개 단어를 더 읽는 데 그쳤지만 킷킷스쿨을 사용한 아이들(실험군)의 경우 0.75개(baseline)에서 9.61개로 무려 8.86개 단어를 더 많이 읽게 됐다. 필드 테스트 종료 시점에 실시한 독해력 측정 테스트에서도 효과성이 입증됐다. 대조군의 정답률 상승폭은 3.6%p에 그쳤지만 실험군은 16.8%p를 기록했다. 받아쓰기 정답률 역시 대조군은 16.44%p에 그쳤지만 실험군은 37.55%p로 2배 이상 높은 성과를 보였다.(그림 2)



이와 관련, 에누마 사업 초기인 2013년 이 회사에 투자한 임팩트 투자사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의 이덕준 대표는 “에누마는 일반 교육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솔루션을 만들어낸다는 사명(mission)을 확고하게 가진 소셜 벤처”라며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참가해 자사 학습 툴의 효과성을 입증함으로써 향후 사업의 확장성(scalability)을 증명해 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에누마에 투자한 옐로우독의 제현주 대표 역시 “킷킷스쿨은 에누마라는 회사의 사업적 성장과 회사가 창출할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의 크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에누마 ‘킷킷스쿨’을 포함한 5개 결승 출품작들은 모두 오픈 소스로 깃허브(GitHub)에 공개된 상태다. 전 세계 문맹 퇴치를 위해 엑스프라이즈가 대회 개최를 선언하면서부터 내건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에누마에 남은 과제는 교육 효과를 검증받은 킷킷스쿨로 실제 사업화를 하는 일이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킷킷스쿨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클라이언트 상황에 맞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가 수반돼야 한다”며 “오픈 소스로 공개한다 해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 출품한 버전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은 만큼 사업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선생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학습자 주도 프로그램으로 설계돼 있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버전을 일반 학교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 진보로 태블릿PC 대당 가격이 떨어진다 한들 개도국에서 개인이 1인용 태블릿PC를 자비로 구입해 자기 자녀에게 주는 경우는 드물 게 뻔하다. 결국 개도국 정부, 혹은 세계은행, 유니세프, 유네스코 등 교육 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제기구나 NGO 등이 킷킷스쿨이 탑재된 태블릿PC를 대단위로 구입해 보급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엔 교사가 아이들의 학습 진도나 성적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부가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 에누마는 바로 이 부분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목표다. 마치 기업용 오픈 소스 개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레드햇처럼 디지털 교육 업계의 ‘레드햇’이 되겠다는 게 에누마의 전략이다.

실제로 에누마는 작년부터 탄자니아, 케냐, 르완다, 우간다 등에 상업용 킷킷스쿨(가칭 ‘킷킷스쿨 프로’)을 공급하고 있다. 이렇게 보급된 킷킷스쿨은 정규 학교의 방과후 활동 도구나 학교 밖 커뮤니티 센터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런 프로젝트들이 확장되면 향후 개도국 정부나 NGO, 국제구호기구 등에 대단위로 납품하는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앞으로 교육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게임 업계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할 목적으로 수백억 원대 자본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는 흔하다”라며 “현재 상업용 게임에 투자하는 만큼의 돈을 아이들을 위한 학습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해 쓴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재미있고, 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킷킷스쿨 성공 요인
1. 공급자가 아닌 사용자 중심으로 기초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
에누마 킷킷스쿨의 가장 큰 특징은 학습자의 경험을 중시한 교육 프로그램 설계를 통해 기초 교육의 패러다임을 기존 교육 당국/교육기관(교육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학습자) 중심으로 바꿨다는 데 있다. 사실 디지털 콘텐츠는 대표적인 경험재(experience goods, 경험을 하기 전에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재화)다. 그럼에도 상당수 교육 콘텐츠들은 정해진 학습 목표를, 정해진 기간 안에 가르치기 위해 ‘재미’라는 측면에서의 사용자 경험은 외면한 채 양적 공급에 치중한 측면이 강했다. 반면 킷킷스쿨은 게임 설계 기법을 십분 활용해 어떻게 하면 학습자들이 재미와 흥미를 잃지 않고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우선 아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헛간, 알, 풍뎅이, 돌멩이, 꽃, 풀 등 시골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자연물들을 소재로 삼아 게임을 설계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익숙한 맥락을 제시했다. 이어 게임을 할 때마다 단계별로 칭찬이나 코인, 왕관 등 다양한 보상 시스템을 마련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보상을 제공할 때에는 언제나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효과를 배가했다. 이는 아이들이 게임이라는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반복 훈련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었다. 이 밖에 게임을 진행할수록 알에서 부화한 동물의 크기가 커지게 만들어 아이들에게 게임을 할수록 무언가 계속 진전되고 있다는 느낌(sense of progression)을 줬다. 이는 아이들로 하여금 학습 콘텐츠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철저하게 학습자 관점에서 ‘개인화된(personalized)’ 시스템을 제공한 덕택이다. 그 결과 킷킷스쿨은 다른 경쟁 출품작 대비 아이들로부터 높은 학업 성취도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2.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및 사용자 경험(UX) 개선을 통해 학습자 접근성 제고
에누마는 5년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를 치르면서 초기 제출 버전(2017년 1월), 필드 테스트 버전(2017년 9월), 1차 업데이트 버전(2018년 5월), 2차 업데이트 버전(2018년 10월) 등 총 네 차례 애플리케이션을 출품했다. 프로그램을 수정할 때마다 콘텐츠의 양을 늘려나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 속에서 에누마는 매번 아프리카 현지 테스트를 통해 학습자들의 사용 습관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및 사용자 경험(UX)도 함께 개선해 나갔다.

태블릿PC의 잠금 화면 해제 방식을 스와이프 방식에서 터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나, 오른쪽 상단에 자리 잡고 있던 설정 버튼의 위치나 접근 방식을 바꾼 것, 쉬운 단계부터 어려운 단계로 차근차근 밟아 올라갈 수 있도록 UI 설정에 변화를 준 점 등이 대표적 예다. 업데이트 과정에서 부득이 프로그램의 큰 틀이 변경(헛간 1개→2개)된 데 대해 아이들이 당황해 하지 않도록 안내 영상을 따로 만드는 세심함도 돋보인다. 에누마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의 UX는 물론 학습자가 태블릿PC를 받아 든 최초 순간에서부터의 UX를 중시하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3.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통해 교육 효과 극대화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란 건축(도시공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누군가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많은 이가 편익을 누리게 되는 디자인을 뜻한다. 가령, 보도블록에 턱이 없는 구간을 만드는 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지만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나 사이클링 취미 활동을 위해 자전거를 올리고 내려야 하는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TV 화면에 나오는 캡션도 원래는 청각 장애자들을 위해 개발됐지만 헬스클럽에서 트레드밀을 이용하는 이들이나 외국어를 공부하려는 이들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는 이런 개념을 학습 환경에 적용한 것이다.

킷킷스쿨에서 UDL 원칙이 적용된 대표적 예는 ‘사운드 트레인’ 게임이다. 설령 정통 교수법 원칙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가급적 많은 복수의 자극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려 했다. 즉 파닉스라는 원칙에 붙들려 혹여 귓병을 앓고 있거나 난청인 극소수의 아이들이 학습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시각적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게임을 즐기며 반복 훈련을 할 수 있게 유도했다. ‘리터러시 매칭’ 게임처럼 색맹이나 색약이 있는 아이들까지 고려해 색채 배색까지 신경 쓴 것도 대표적인 UDL 기반 설계다. 장애로 인해 특수한 필요를 가진 극소수의 아이들까지 고려함으로써 단 하나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에누마의 기업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혹자들은 이 정도까지 투자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이런 점들이 극소수의 장애아동은 물론 일반 아이들에게까지도 킷킷스쿨의 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만약 에누마가 비용 효과적인 관점에서 적당한 수준의 기술만 투입해 특수 상황에 놓여 있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만 했다면 향후 활용도나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에누마는 장애인과 일반인, 부유층과 빈곤층, 선진국과 개도국 등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유효한 최고의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고, 객관적인 실험을 통해 그 효과성을 입증함으로써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증명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DBR mini box II : 에누마 ‘킷킷스쿨’ 성공 비결
교육 전문가가 깨지 못한 ‘교육 틀’, 게임 개발자 출신이 혁신

지난 2019년 5월15일 엑스프라이즈가 주최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에누마의 킷킷스쿨은 영국의 원빌리언과 함께 공동 우승자로 선정됐다. 전 세계 198개 팀과 경쟁해 이룩한 성과다.

이런 에누마의 성공 비결은 지식 경영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일찍이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지식 산업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 기업이 지식을 관리하는 역량은 기업 생존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식은 조직 내 학습을 통해 산출되며, 기업은 지식을 통해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 경영이란 기업 내부에 존재하는 지식을 활용해 기업 가치를 상승시키고 신규 지식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성장과 혁신을 이끌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지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헝가리 출신의 영국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와 지식경영의 대가인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에 의하면 기록과 이전 가능 여부에 대한 분류로는 크게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로 나눌 수 있다. 형식지는 정형화될 수 있고, 문서로 기록할 수 있으며, 외부 조직과 공유할 수 있는 성격의 지식이다. 암묵지는 정형화하기 어렵고, 문서로 기록하기도 어려우며 타 조직으로 이전, 적용이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암묵지의 축적과 조직적 활용은 지식 경영에서 핵심적인 가치로 에누마의 성공은 조직 학습을 통한 지식의 축적과 ‘게임’에서 축적된 암묵지의 활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에누마는 아프리카라는 이질적인 학습 환경에 대한 능동적인 조직 학습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화면에 여러 가지 콘텐츠를 배치하는 문제와 관련, 개발 초기에는 ‘사람들이 왼쪽 위부터 눌러볼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인터페이스를 설계했으나 실제 탄자니아 아이들은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파악한 후 기존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기본 전제부터 다시 설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이런 과정이 몇몇 개인의 시행착오에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이 에누마 전체에 확산됨으로써 기업 조직 전체가 능동적인 조직 학습 과정을 거쳤다.

둘째는 ‘게임’이라는 이질적인 암묵지를 교육산업에 도입, 적용한 것이다. 에누마의 핵심 멤버가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의 개발자 출신이라는 점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재미 요소를 교육에 접목하려고 시도했다.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즉 ‘재미’라는 요소를 기반으로 한 게임산업 관점에서 볼 때 ‘무미건조한’ 교육 현장의 방식은 이수인 대표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경험은 2010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공립학교에 G러닝(게임 기반 학습) 콘텐츠를 도입했던 필자 역시 경험한 바 있다.

여기서 에누마는 기존 교육학 이론을 과감하게 벗어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에누마는 게임별로 정보를 제시할 때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을 동시에 활용해 가급적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설령 그렇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 방침에 어긋난다 해도 이 원칙을 고수했다. 이런 교육방식은 기존 교육업체나 교육학자가 교육을 틀을 깨고 시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에누마의 이런 파괴적인 시도는 게임이라는 이질적인 산업의 암묵지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한 도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게임을 기반으로 한 교육과의 결합(교육을 기반으로 한 게임의 결합이 아닌)이라는 새로운 혁신이 에누마의 성공 비결이었다.




필자소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도쿄대에서 전략경영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UCLA 교육학연구소에서 초빙 교수로 재직하면서 G러닝(게임 기반 학습)의 미국 LA 공교육 도입을 진행했다. 현재 한국게임학회 회장과 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 콘텐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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