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인터뷰

“생명자본주의가 경영의 미래
넙치, 참치 아닌 ‘날치’형이 돼야”

268호 (2019년 3월 Issue 1)



이어령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약력
▲1967년 이화여대 교수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자 ▲1989년 문화부 초대 장관 ▲1999년 대통령 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주요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디지로그(2006년)』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4)』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지우(서강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현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2019년 새해 초 “설 명절 후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정작 인터뷰 날짜를 사흘 앞두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이사장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니 인터뷰를 아예 취소하든지, 아니면 최대한 미뤄야겠다”는 연락이었다. 이 전 장관의 컨디션에 따라 또다시 일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기사 마감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날짜를 늦춰 다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두 달을 기다려 2019년 2월25일,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3년 만의 재회였다. 1

오랜만에 얼굴을 맞댔지만 요즘 건강은 어떠시냐는 안부는 묻지 않았다. 나이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에게, 더욱이 암(癌) 선고를 받고도 방사선이나 항암 치료로 ‘투병(鬪病)’하는 대신 친구 삼아 ‘친병(親病)’ 중이라는 대학자에게, 어쩐지 의미 없는 질문이지 싶어서였다. 다행히 3년 전에 비해 다소 여윈 모습이었지만 열정이 넘치는 모습엔 변함이 없었다.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카랑카랑한 음성도 그대로였다. 어떤 질문을 받아도 ‘그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달변도 여전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감성을 덧입힌 아이폰이 출시(2007년)되기도 전인 2006년, 이미 자신의 저서 『디지로그』를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내다봤던 그다. 시대 변화를 꿰뚫어 미래를 앞서 보는 그의 혜안과 통찰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게다가 언론인, 교수,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기호학자 등 그가 그린 삶의 궤적 또한 광대하다. 자연스레 그의 생각과 말은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며 ‘사통팔달’ ‘종횡무진’일 수밖에 없다.

이미 10년도 전에 “디지털 기술의 부작용을 보완하고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켜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선두주자로 올라서자”고 선언했건만, 정작 이 사회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제때 읽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이번 인터뷰에서 이어령 전 장관의 화두는 5년 전 출간한 『생명이 자본이다』에 집중됐다.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른바 ‘생명자본주의(Vita Capitalism)’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명자본주의란 물질이나 산업 기술이 밑천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 공감을 원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를 뜻한다. 생명 가치가 모든 생산수단과 목적의 전제가 되는, 즉 생명에 대한 가치를 토대로 인류의 행복이 곧 상품이 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이 전 장관은 “20세기가 물질과학기술 발견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생명 발견의 시대”라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 ‘디지로그(Digilog)’를 통해 이제는 산업화, 정보화가 아니라 생명화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문학부터 첨단과학, 수렵 채집시대부터 정보화시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넘나든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3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이 있은 후 뵙고는 처음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에 대한 학술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이미 1960년대인데 한국은 바둑을 매개로 한 게임을 보고 ‘위기가 왔다’며 호들갑을 떠는 게 안타까웠다. 정보기술(IT)이든, AI든 기술 자체보다 중요한 건 이런 것들을 어떠한 틀 안에서 바라보고 활용하느냐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IT와 AI가 계속해서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 관점에서만 활용된다면 재화는 더 풍부해지고 돈은 더 많이 벌지 모르지만 자연은 점점 훼손되고 자칫 인간성마저 파괴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크다. 더 이상 공장에서 공해를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에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생명자본주의’ 관점에서 기술을 생명화해야 한다. AI를 전쟁을 일으키거나 금융 무기로 활용하는 데 쓸 게 아니라 의료 로봇 ‘왓슨’처럼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적용해야 한다. AI가 생명자본주의 관점에서 새로운 생명을 위한 기술로 활용되면 인류는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행복한 시대를 경험할 수 있다.


생명자본주의의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지렁이를 예로 들어보자. 지렁이는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위치한 가장 약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물이다. 다윈이 제일 처음 연구하고 맨 마지막에 연구한 대상이 모두 지렁이였다. 지렁이는 부패한 생물체를 먹이로 삼는 토양 생물이다. 지렁이의 배설물인 분변토엔 식물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많이 포함돼 있다. 천연 비료인 셈이다. 죽은 것을 해체해 유기물로 돌려놓음으로써 먹이사슬에 속해 있는 모든 생태계를 이어주는, 그렇게 리사이클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생명체가 바로 지렁이다. 이런 지렁이처럼 생태계의 순환과 연결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생명자본이 되는 지혜(Wisdom, W)다.

지혜는 하늘에서 내린 생명정보요, 생명지식이다. 과학 용어로는 생태학적 지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자연 생태계에서 특정 종(예: 최상위 포식자)을 멸종시키면 먹이사슬이 교란돼 안 된다는 환경 의식을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문명사적으로 인류의 출발은 지혜(생명자본)에서부터 비롯됐다. 살기 위해선 삶의 기술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지혜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깃들어 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지혜를 넘어 지식(Knowledge, K)을 필요로 하게 됐다. 수렵 채집시대엔 생명자본과 함께 주어진 지혜만으로도 살 수 있지만 농경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지식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산업화와 금융자본주의(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네트워크화된 지식, 즉 정보(Information, I)가 문명을 이끄는 힘이 됐고, 이제는 클라우드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데이터(Data, D)를 가진 자가 돈을 버는 데이터 자본주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우선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에 데이터를 분석하는 건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이 아닌 AI라는 사실이다. 분석해야 할 데이터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 인간의 능력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AI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향후 인류 문명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지금까지 ‘지혜→지식→정보→데이터(W→K→I→D)’의 순서로 발전돼 온 문명사의 흐름은 오늘날 AI의 출현과 함께 ‘DIKW 피라미드(DIKW pyramid)’, 즉 ‘데이터→정보→지식→지혜’라는 역순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지식경영 모델에서 이야기하는 DIKW 피라미드가 어떻게 생명자본과 연결된다는 것인가.
우선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D)는 개별적으로 놓고 봤을 때 하나의 자료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데이터가 의미를 가지려면 적절한 가공을 통해 어떤 규칙을 부여함으로써 정보(I)로 구조화돼야 한다. 이런 정보를 특정 맥락을 고려해 해석하면 구체적 의미를 갖는 고유의 지식(K)을 도출할 수 있고, 이렇게 얻은 지식과 정보들을 모두 활용하면 종국에는 지혜(W), 바로 새로운 생명자본에 이르게 된다.

암 환자를 예로 들어 보자. 지구상에는 암 환자가 수없이 많다. 지금은 이 사람들 각각에게 임상 실험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할 수 있는 시대다. 분석의 주체가 사람일 때는 엄두도 못 냈던 일이지만 AI를 활용하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미 있는 정보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학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종국엔 보건 정책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을 뽑아낼 수 있게 된다. 이건 과거 WKID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생명자본의 출현을 뜻한다. WKID 시스템에서 말하는 생명을 첫 생명, 즉 ‘Life 1’이라고 한다면, 내가 말하는 생명자본주의, 즉 DIKW 피라미드의 결과로 도출되는 생명은 ‘Life 2’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가 말한 인간 욕망의 5단계 중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와 연결된다. 앞으로는 저차원의 물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한 노동(labor)이나 작업(work)보다, 고차원적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자기목적적이고 창조적인 활동(activity)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생명, ‘뉴라이프(New Life)’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등 각종 폐해가 생겨난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어진 정보혁명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머니게임을 초래했다. 생태계의 복원과 지구환경 문제, 금융위기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지식경영의 DIKW 피라미드에 생명(Life, L)이라는 새로운 층을 하나 더 쌓아야(DIKWL) 복원과 회복이 가능해진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아닌 생명자본으로 바뀌어야 한다.

생명자본주의 관점에서 새로운 생명자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하나가 될 때, 즉 ‘디지로그’가 이뤄질 때 탄생한다. 디지털 기업인 구글이 아날로그의 대표격인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개발한 자율주행차가 대표적 예다. 자율주행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녀노소의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복지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생명자본을 탄생시켰다. 이런 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AI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이며 내가 10년 전부터 말했던 디지로그의 실현이다. 디지로그가 생명자본주의와 맞닿아 있는 이유다. AI로 인해 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없애고 인간의 육체적, 지능적, 사회적 핸디캡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디지로그라는 해법을 통해 우리는 핸디캡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시대를 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명자본주의다.




왜 지금 생명자본주의인가.
옛날에는 생명의 가치가 논의의 대상에도 속하지 않았다. 자살은 나쁜 것이고, 출산은 좋은 일이며, 생명은 귀중하다는 데 대해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의 가치는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처럼 무조건적,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도덕률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가치였기에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반(反)생명주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살예찬론까지 등장하는 세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최근엔 인도의 20대 남성이 왜 자신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신을 낳았느냐며 부모를 고소할 예정이라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이 남성의 주장은 반(反)출생주의(anti-natalism)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며 삶은 너무나 비참하기에 인류는 종족 번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생명에 대한 도전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생명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가르치지 않고서는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과거엔 개울가의 물을 마음대로 먹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걸 당연시했지만 지금은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사서 먹고 미세먼지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다. 이 모든 게 생명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고 위협이다. 우리의 일상을 조금만 둘러봐도 지금 생명자본주의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지금 문명사의 새로운 진화 경로가 가능해진 역사적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앞으로 세계 문명은 새로운 생명자본의 출현이 가능해진 시대 변화의 흐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생명화 기술에 앞장서는 나라가 선도하게 될 것이다. 생명자본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AI를 비롯한 기술의 활용 가치를 바로 알아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런 거대한 시대 변화의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많은 이가 우려하듯이 AI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산아 제한과 남아 선호로 인해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중국에선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남성들이 급증하면서 AI가 미래 인류의 성생활로까지 영역을 넓힐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2 현재 중국은 제도적으로 결혼 못 하는 노총각들에게 싼값에 ‘로봇 마누라’를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공상과학(SF)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평생 장가를 안 가고 로봇 색시와 사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시대가 오게 된다. 사람과 기계가 함께 혼합된 사이보그, 이른바 ‘맨신(Manchine, man과 machine을 합친 신조어)’이 출현하고 있다. 어떤 기술을 활용하든 생명자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패러다임 안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생명자본주의 시대에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잠재력과 가능성이 풍부하다. 우리만큼 문화적으로 생명자본이 많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어떤 생명자본이 있나.
모든 문명의 출발점은 수렵 채집시대에서 시작한다. 거기에 대우주의 생명 질서가 녹아 있다. 그런데 21세기에도 수렵 채집시대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의 식문화, 특히 나물을 한번 생각해 봐라. 나물을 캐 먹는다는 건 수렵 채집시대 때부터 있었던 일인데 우리의 식탁엔 여전히 나물이 주된 반찬이다. 심지어 콩잎을 먹고 콩나물을 키워 먹는다. 서양에선 독초로 여기는 고사리도 나물해 먹는 사람들이 한민족이다.

어디 식문화뿐인가. 관광버스 안에서 늙은이들이 막춤 추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싸이의 말춤, 방탄소년단의 군무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자기 흥에 겨우면 어디서고 춤을 췄다. 수렵 채집시대부터 이어온 문화유전자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언어만 봐도 그렇다. 전 세계에서 의성어, 의태어가 가장 많은 언어가 한국어다. 무려 8000여 개에 달한다. 사실 의성어나 의태어는 언어 이전의 단계, 즉 생명이 시작되는 태아의 옹알이다. ‘곤지곤지’ ‘맘마’ ‘지지’ ‘응가’ ‘끙가’ 등으로 아기와 소통을 한다. 의미 이전에 가장 직관적인 태초의 언어, 생명에 가장 근접한 소리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밖에도 우리가 가진 생명자본은 너무 다양하다. 아마존에서 우리 농기구인 호미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포대기도 마찬가지다. 구글 검색창에 ‘Podaegi’라고 입력하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포대기로 애를 업고 있는 이미지와 영상이 나온다. 유모차에 애를 태우지 말고 포대기로 애를 업고 스킨십을 하라고 한다. 엄마는 팔을 뒤로 돌려 아이를 받쳐 주고, 아이는 엄마 등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달라 붙는다. 포대기를 통해 갓난아기에게 생을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자질인 상호성(interdependence)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 문제도 업고 업히는 상호성에 대한 존중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갑을 관계로 보면서 나온 결과다.)

현재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 정치적으로는 차이메리카(Chimerica, 중국 China와 미국 America의 합성어) 3

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모두 사실상의 데이터 독점을 통해 그들만의 제국을 만들어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상탕커지(商湯科技) 같은 AI 스타트업은 안면 인식 시스템을 통해 수만 명이 운집해 있는 콘서트장에서도 범죄자를 색출해 낼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주된 이유는 바로 클라우드 기술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중앙집중적인 기술 특성상 규모가 클수록 유리해 우리나라 같은 작은 나라가 아니라 거대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구조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화되면 이들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강점은 무효화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분산형’ 시스템이다. 이는 지금까지 규모를 무기로 삼았던 미국과 중국의 경쟁 우위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똑같은 경쟁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바로 이때, 한국이 우리 문화에 풍부하게 내재돼 있는 생명자본을 기반으로 DIKW 피라미드 경로를 선점한다면 전 세계의 선두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산업혁명에 뒤처져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정보화 시대에도 뒤처져서는 안 되겠기에 10년도 전에 디지로그를 주장했지만 구글, 아마존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제는 생명자본주의 시대다. 더 이상 뒤처져서는 안 된다. 인류 문명을 새로운 생명의 단계, ‘뉴라이프’로 이끌 수 있는 잠재력, 생명자본이 대한민국에 가장 많다는 것을 기억하고 디지로그를 통한 생명화에 힘써야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통해 AI를 인류의 불행을 끝낼 구원자이자 행복을 실현하는 동반자로 만들어 낼 사명이 한국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생명자본주의를 실현해 나가면 좋을까.
산업화 시대에 뒤로 밀려났던 의료, 교육, 농업, 복지, 엔터테인먼트를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의료는 선제의학, 선제치료로 가야 한다. 생명자본주의 관점에서 병원 치료는 엄밀히 말해 의료가 아니다. 병원에 안 가도록 해야지, 이미 발병했는데 그걸 어떻게 의료라고 하겠나. 또한 생명자본주의 시대에선 태교부터 시작해 세 살 이전까지의 교육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 내가 집필하고 있는 책(가제: 탄생)의 내용도 바로 이것이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힌 입시 교육에서 탈피해, 생명이 탄생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세 살 아기 때까지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농업에선 드론, 3D프린팅 등으로 신(新)농업을 만들 수 있다. 가령, 드론으로 병충해 발생지를 정확히 촬영해 그 지역에만 농약을 뿌린다면 환경오염도 줄이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이외에 토양 산성화와 사막화 문제에 대한 해결,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 4 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한 비즈니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복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복지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격차 해소를 뜻한다. 가령, 자율주행차처럼 장애가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상관없이 보편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비즈니스가 바로 생명자본주의 관점에서의 복지 비즈니스다. 엔터테인먼트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이 대표적 예다. AI가 바둑을 둔다고 사람이 죽나? 단지 재미있을 뿐이다.

어떤 분야에서 생명자본주의를 실현하든, 자연과 생물로부터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 생체모방) 5 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제아무리 훌륭한 산업기술이라 해도 그 역사는 고작 2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생명체의 생존기술은 무려 38억 년 동안 지속돼 왔다. 단적으로, 산업기술은 어마어마한 폐기물을 배출하지만 자연 생태계의 시스템은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법이 없다. 누군가의 배설물이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생명자본과 지혜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지렁이가 대표적 예다. 자연 생태계는 생명의 순환과 생식을 통해 모든 자원을 낭비 없이 재이용하고 재투자한다. 오랜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자연계의 생명기술, 바이오미미크리는 오늘날 전 인류가 겪고 있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일으키는 데 주효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미 모기의 침(針)을 모델로 아프지 않게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주삿바늘이 개발됐고, 거미줄에서 착안한 섬유 기술로 방탄조끼가 제작됐으며, 도마뱀 발바닥에 대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강력 접착 테이프까지 나왔다. 이런 혁신이 이어지려면 먼저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자연을 ‘착취’의 대상이 아닌 ‘배움’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런 관점의 전환을 통해 패러다임이 바뀌고 전혀 다른 창조가 나올 수 있다.





생명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기업 경영자들을 위해 마지막 조언을 부탁한다.
물고기 중에 넙치, 참치, 날치는 모두 ‘치’자 돌림으로 끝나지만 생김새도, 성격도 모두 다르다. 우선 넙치는 바다 밑바닥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다가오는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해저에서 꼼짝 않고 누워만 있어서 그런지 오른쪽 눈이 왼쪽으로 쏠려 찌그러져 있을 정도다. 절대로 먼저 먹이를 찾아 나서는 법도 없다. 그저 먹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눈에 띄면 잡아먹는, 육상 동물로 치면 나무늘보와 같은 ‘게으름뱅이’다.

참치는 넙치와는 정반대다. 대표적인 회유어(回游魚)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을 때까지 한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헤엄친다. 헤엄치는 속도에 따라 물을 빨아들이고 내뱉으며 산소를 흡입하고, 심지어 잠잘 때조차도 몸을 흔들어 헤엄친다.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이동하는, 소위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산다.

날치는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물고기다. 해수면 위로 높게 뛰어올라 30∼40초 이상 길게 비행할 수 있다. 날치가 날아오를 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다. 헤엄치는 속도보다 비행 시 순간 속도가 훨씬 빨라, 바닷속 포식자들에게 쫓기는 날치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도주가 불리한 바닷속보다 공중 비행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이런 비약이 가능한 이유는 바닷속에서 헤엄칠 때의 ‘지느러미’가 수면 밖에선 ‘날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변환 역량이 도약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날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트랜스포머(Transformer)’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날치는 반드시 바다로 돌아와야 한다. 제아무리 높고 멀리 하늘을 나는 날치라 해도 본질상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물고기인 탓이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살기 위해’ 떠났던 바다지만 역시 ‘살기 위해’ 다시금 바다로 돌아오는 게 날치다.

가만히 앉아 머리로만 생각하는 ‘넙치’형 인간이나, 잠시도 쉬지 않고 세계를 누비는 ‘참치’형 행동인들은 이제 생존하기 힘들 때가 온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돼야 할 생명자본주의에서 정말 필요한 유형은 넙치도, 참치도 아닌 ‘날치’형이다.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바닷속에만 있어선 안 된다. 바다 밖으로 나와야만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다. 넙치, 참치를 포함해 대부분 물고기는 평생 물속에서만 헤엄치다 생을 끝낸다. 날치는 다르다. 바다를 헤엄치다 바다 밖으로 힘차게 치솟아 올라 활공하며 바다를 본다. 바다를 뛰어넘어 바다 아닌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물고기다. 하지만 자신의 근본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반드시 바다로 돌아와 또 다른 비약을 준비한다. 이처럼 ‘초월(超越)’과 ‘재귀(再歸)’의 삶을 이어가는 날치 같은 존재들만이 생명자본주의를 이끌어 갈 주체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드론처럼 상상의 하늘로 높이 날아 세상을 조망하고 지느러미가 날개로 변하는 트랜스포머의 재능을 지닌 날치형 인간만이 미래를 선점하고 지배할 것이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듯, 생명과 죽음은 본디 하나로 처음부터 만남과 이별이 함께 존재한다. 이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순환하는 게 생명의 본질이다. 잠깐 외출한다는 표현조차 ‘나가고 들어온다’는 상반된 의미를 함께 내포한 ‘나들이’로 쓸 정도로 융합에 능하고, 전문용어로 ‘애드혹(ad-hoc)’이라 표현하는 ‘변통’에 능한 게 한국인의 기질이다. 허공과 바다의 경계마저 쉽게 넘나드는 한국인의 특성을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 Physics System, CPS), 즉 AI 같은 디지로그 기술과 결합해야 할 때다. 이제, 서구적 발전사관과 성장론에 치우친 “날자, 날자”라는 외침을 새로운 생명을 위해 “살자, 살자”로 바꿔라. 그게 앞으로 산업화, 정보화 시대처럼 장차 우리에게 닥칠 생명화 시대의 구호다.




인터뷰이 이어령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어령 전 장관은 기자의 노트에 손수 그림까지 그려가며 ‘생명자본주의’의 개념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수렵 채집시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돼 왔던 인류 문명의 발전사와 오늘날의 지식경영 모델인 ‘DIKW 피라미드’를 생명과 연결해 자신만의 통찰로 재해석해 내는 그는 천상 뼛속까지 뿌리 깊은 인문학자였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사진=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