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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희비

구호 요란한 테슬라 vs. 니즈 파악한 닛산

임수빈,황장석 | 264호 (2019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아무리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을 보유한 선두주자라도 소비자의 니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기자동차 시장을 이끌어 온 테슬라의 경영 위기가 대표적인 예다. 테슬라는 최신 기술과 디자인, 신모델 출시에 집중하다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공급 일정을 맞추지 못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반면 전기자동차 시장의 후발주자로 나선 닛산의 중저가 전기자동차인 ‘리프’는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타깃 소비자층의 니즈에 집중해 성공했다. 합리적인 가격,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성능, 수요 예측에 따른 점진적인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닛산 리프만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테슬라는 이론의 여지 없는 글로벌 전기자동차 선두기업이다.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모토를 바탕으로 2003년1 설립됐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전기자동차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테슬라의 이력을 살펴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2008년 전기배터리의 효율을 높이고 가정에 공급되는 전기로도 효과적인 충전이 가능한 스포츠카 ‘로드스타(Roadster)’를 시장에 내놔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2년 모델S, 2015년 크로스오버 SUV인 모델 엑스를 잇따라 개발했다. 2016년 신차 발표회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중저가 전기차 세단 모델3는 32만5000대 예약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 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배터리 수명이 큰 장점이다. 이 모델은 2017년 하반기 출시된 이후 한 해에 20만 대 이상이 판매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 말에는 한 번 충전으로 640㎞를 갈 수 있는 트럭인 ‘세미(Semi)’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트럭은 30분 만에 충전을 완료할 수 있는 메가 차저(mega charger)를 이용해 쾌속 충전이 가능하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에도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전기자동차 개발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중심으로 엔진 구동 기술과 미래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인 오토 파일럿(Auto Pilot), 자동 주차(Auto Park), 자동 호출(Auto Summon) 기능을 개발했다. 이렇듯 테슬라는 미래 지향적인 기술개발 전략으로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독점적 경쟁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18년부터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수익이 나는 경영 모델을 찾기에 급급했던 테슬라에 많은 악재가 찾아 왔다. 우선 도요타의 생산공장을 개조해 만든 프리몬트 공장의 생산능력 제한으로 새 모델인 모델3를 한 달에 2만 대밖에 생산을 못하고 있었다. 그전 해에 예매된 32만5000대의 모델 3를 약속한 시간에 맞춰 생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산 라인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시판되고 있는 로드스타, 모델S, 모델3 등의 다양한 모델의 수요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것도 문제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생산 효율을 높여 수요를 충족할 해법으로 구입한 로봇에도 문제가 생겼다. 생산 라인에서 복잡한 자동차 조립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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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는 단기간에 신차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혁신적인 이미지를 고객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회사의 이익과 직결되는 수급 조절에는 실패했다.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라인을 확충하는 등의 장기적인 경영 계획에 소홀했던 것이다. 그 결과, 생산량과 판매량의 불일치로 미국 시장 내에서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큰 불만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외부 평가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월스트리트와 언론에서 일론 머스크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테슬라가 이익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구심을 던졌다. 언론에서는 인명사고로 이어진 SUV 모델 엑스의 사고를 부각하고 제조공장 종업원 부상의 은폐, 모델S의 리콜과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의 비효율성 등 테슬라의 잠재적 문제점을 하나하나씩 지적하고 나섰다.

머스크는 이 상황을 수습하기보다 자신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머스크가 언론을 향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오히려 큰 역풍을 맞게 됐다. 그는 회사를 비상장 회사로 복귀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테슬라의 주가가 크게 출렁였고, 미국 SEC(US Security and Exchange Commission)와 테슬라의 이사회가 일론 머스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테슬라는 2018년 3분기에 최대의 생산과 판매가 이뤄지고도 이익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 만성적자에 허덕이게 됐다. 당연히 이 상황은 테슬라와 경영진을 향한 소비자들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숨은 승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인 닛산의 ‘닛산 리프(Nissan Leaf)’다. 닛산 리프는 테슬라처럼 매스컴과 투자자들에게 폭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지속적인 순이익을 내고 있다. 2018년 1월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30만 대가 판매되면서 단일 차종으로는 테슬라 모델S를 제치고 가장 많이 판매된 전기차 모델이 됐다.

이는 닛산의 갑작스러운 성공이 아니다. 닛산은 1997년부터 알트라(Altra)라는 전기차를 시장에 출시했고, 1998년부터 소형 전기차인 닛산 Z10 모델을 만들어 일본에서 판매를 시작한 전기자동차 선도 기업이다. 하지만 닛산은 전기차의 충전소 설치나 쾌속 충전기 개발 등 전기차와 관련된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해 전기차 상용화를 이루지 못했다. 2009년이 돼서야 첫 플러그인 전기차인 닛산 큐브(Cube)를 양산해 미국과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소형차임에도 불구하고 넓고 편안함을 주는 인테리어를 무기로 젊은 고객층을 공략했다. 그해에 자동차 전문 잡지인 켈리블루북에서 1만8000달러 이하의 모델 중 가장 쿨한 자동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닛산 큐브의 성공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발판으로 삼아 닛산은 2010년 12월에 3만 달러대의 중형 세단 전기차인 닛산 리프를 미국 시장에 시판하게 됐다.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인 테슬라의 로드스타보다 2년 이상 늦게 출시돼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닛산은 타깃 소비층을 정해 전략적으로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중저가 전략으로 중단거리를 출퇴근하는 고객들에게 집중했다. 리프는 공식적으로 1회 충전으로 약 170㎞ 정도를 주행할 수 있다. 테슬라보다 주행거리는 짧지만 도시에 사는 직장인들이 출퇴근용 차로 사용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닛산은 리프의 성공을 기반으로 2018년에는 한 번 충전으로 서울과 부산의 거리인 360㎞까지 갈 수 있는 2세대의 리프를 출시했다. 닛산 리프는 새로운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획기적인 운영 시스템, 공학적인 혁신성을 기반으로 한 미래 지향적인 차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 승용차와 내부 인테리어나 외형에서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차다. 그러나 닛산 리프는 안정적인 생산, 실속형 모델 구축 등으로 확실한 시장 입지를 구축했다. 닛산은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개발하는 혁신적인 이미지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고객 지향적인 차세대 모델을 집중적으로 개발해 나갔다.

우선, 고객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생산 라인의 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각 지역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주요 시장에 전기차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공급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닛산은 타깃 고객을 세계 주요 지역별로 확장하겠다는 경영 계획하에 일본 오파마현, 미국 테네시주, 영국 선덜랜드, 중국 광둥에 순차적으로 공장을 지었다. 각 지역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주요 시장에 전기차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공급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결과다.

또한 고객의 니즈를 잘 취합하고 반영하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닛산은 지속적인 시장조사를 통해서 고객의 목소리(voice of customer)를 모니터해 충전 시간과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2013년도 모델에서는 완전 충전에 걸리는 시간을 7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이고, 한 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를 20% 이상 늘렸다. 또한 트렁크 공간이 좁다는 고객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간을 넓히고, 히터와 에어컨의 효율을 올려 고객 만족도를 높여갔다. 거기에다가 닛산 리프는 중저가의 전기차를 원하는 목표 고객을 잘 설정해 고객이 선호하는 사양을 제품에 포함시키고 기초 모델의 가격을 2만9000달러까지 내렸다. 흔히 말하는 타깃 고객이 가장 원하는 ‘스위트 스팟(sweat spot)’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이익을 창출한 것이다.

테슬라가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와우(wow)’ 제품으로 어필해 몰락해 나가던 미국 자동차 산업을 부활시키는 기폭제가 된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생산과 수요의 불일치 등의 문제로 위기를 경험했다. 반면 닛산 리프는 평범하지만 차별화된 제품 전략으로 효율적인 제품을 적정가격에 타깃 고객이 원하는 대로 제공했다. 지속적인 시장조사를 통해서 시장을 다변화하고, 점진적인 혁신을 해나갔다.

물론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테슬라와 같이 선도주자로서 혁신제품을 처음 출시해 타깃 시장의 얼리어댑터를 공략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하지만 닛산과 같이 후발주자로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해 이에 적합한 신제품을 출시하는 전략도 의미가 있다. 경영자들은 이 두 회사의 사례를 참고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전략이 회사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보고 회사의 중장기 제품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임수빈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mktgprofim@gmail.com
임수빈 연세대 경영학과 마케팅 교수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사를 거쳐 미국 뉴욕 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에서 MBA 학위를 받은 후 노스캐롤라이나대(University of North Carolina)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2013년 AMA(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 학회에서 우수혁신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마케팅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자다. 주요 관심 분야는 신제품 개발, 혁신 전략 등이다.

황장석 작가 surono1004@gmail.com
황장석 작가는 전 동아일보 기자.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다. 2012∼2013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며 한국 언론을 통해 실리콘밸리와 IT 기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7년 실리콘밸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조망한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냈다. 기술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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