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朝鮮: 조준의 토지제도 개혁

개혁의 열쇠는 ‘반대파도 수긍할 명분’

255호 (2018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준이 기득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토지 소유권을 통제하는 강력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 고려 태조의 토지제도 레퍼토리를 검토해 개혁안의 실현 가능성과 완성도를 높였다.
2. 최종 정책 목표로 ‘인정(仁政)의 실현’이라는 대의를 제시해 기득권의 반발을 잠재웠다.
3. 정책 수단과 정책 목표를 논리적으로 연결해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다.


정도전과 더불어 조선 건국을 주도한 송당 조준(松堂 趙浚, 1346∼1405) 1 은 새 왕조의 법과 제도를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특히 토지문제가 민생안정을 위한 선결 과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 초기의 토지제도인 ‘과전법(科田法)’이 확립되는 데 있어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이번 글은 조준의 토지개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에도 토지는 중요한 ‘재산권의 객체’지만 전통 사회에서 그 비중은 더욱 컸다. 토지가 거의 유일한 생산 수단이었으며 부(富)의 대다수가 토지를 통해 창출됐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고 신분을 결정짓는 일들이 모두 토지를 매개로 이뤄졌고, 토지의 분배·소유·사용 형식이 곧 국가 체제의 성격을 결정했다. 2

국가를 의미하는 단어인 ‘사직(社稷)’이 토지신(土地神)과 곡신(穀神)에게 제사 지내는 곳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지는 국가 재정 확충이나 민생안정의 문제를 넘어서 정신적인 영역으로까지 연결됐다. 일찍이 맹자(孟子)는 “백성들이 살아가는 도리를 보면 항산(恒産)이 있는 자에게는 항심(恒心)이 있고, 항산이 없는 자에게는 항심이 없다” 3 라고 했는데 백성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줌으로써 그들의 정신적 향상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때의 물질적 필요가 바로 토지였다.

그런데 조준이 관직 생활을 시작한 고려 말기에는 토지제도가 매우 어지러웠다. 토지의 공적인 의미가 사라졌고 지배층의 이익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고려시대의 토지제도 전시과(田柴科)는 기본적으로 공직 또는 국역(國役)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그 직위에 해당하는 토지를 분급하는 체제다. 이들이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나면 토지는 국가에 환속되는데 이를 반납하지 않고 사유화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에 무신정권의 집권자들, 권문세족 등이 ‘토지겸병(土地兼并)’을 자행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조준의 설명을 살펴보자.

“토지를 나눠주고 회수하는 법이 무너지고 겸병이 판을 치니 재상이 돼 (녹봉으로) 밭 3백결을 받아야 할 자가 송곳 세울 만한 땅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실을 호위하고 외적을 방비할 군사의 옷, 양식, 무기가 모두 토지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그것을 감당할 비용이 없습니다. … 사전(私田)이 다툼의 씨앗이 돼 관련자들로 감옥이 가득하고 판결을 기다리느라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문안(文案)이 산처럼 쌓여 있어 관리들이 토지 송사를 처리하는 일에만 매달립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토지를 요구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원한을 품습니다. 부모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형제간이야 어떻겠습니까? 사전으로 인해 인륜이 금수와 같아진 것입니다.” 4

137

조준에 보기에 모든 문제의 원인은 사사롭게 소유한 토지, 즉 ‘사전’에 있었다. 사전이 확대되면서 전쟁에 나갈 군인이나 새로 관리가 된 사람, 심지어 일국의 재상에게까지도 지급할 토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를 위해 일하고, 국가를 위해 전쟁터로 나가겠냐고 의문을 던진다. 또한 토지 분쟁이 증가하면서 지방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으며 사전을 두고 부모와 자식, 형제가 다투고 있다고 한탄했다.

“조종(祖宗, 선왕들)이 세운 법에 따르면 백성으로부터 (토지세로) 취한 것은 (생산량의) 10분의 1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토지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사사롭게 백성에게 거둬들이는 것은 열 배, 천 배가 되니 하늘에 계신 조종의 영령을 어찌 대하겠습니까? 국가의 인정(仁政)은 또 어찌 되겠습니까? 토지는 백성을 기르는 것인데 도리어 백성을 해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지금 백성들이 사전의 주인에게 소작료를 낼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서 겨우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 빚은 아내를 팔고 자식을 팔아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봉양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 원통한 절규가 하늘에까지 닿고 있습니다.” 5 더욱이 사적으로 토지를 차지한 자들이 백성에게 무거운 소작료를 뜯어내니 백성의 원한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 조준은 이와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려 태조의 정책에 주목한다. “삼한(신라, 후백제, 후고구려)이 통일되자 태조께서는 곧바로 토지제도를 바로잡았습니다. 관리와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되 관리가 죽거나 죄를 지으면 회수했습니다. 모든 이가 정해진 법도에 따라 토지의 소출로 생계를 꾸렸고, 그 땅에 정착해 생업을 편안히 해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전에 먼저 ‘프로그램 레퍼토리(program repertory)’6 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혁하고자 하는 대상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례와 관련해 과거, 혹은 다른 집단에서 채택했던 프로그램 목록을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개혁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정보까지 담겨 있으므로 새로운 개혁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데 유용한 도움을 준다. 조준은 ‘프로그램 레퍼토리’ 중에서 고려 태조의 토지제도 프로그램을 롤모델로 선택했다. “태조께서 지극히 공정하게 토지를 나눠 주신 법을 준수하고 사사로이 주고받아 겸병하는 폐단을 고쳐야 합니다. 규정에 어긋나는 사람에게 토지를 주지 말고 법을 엄격히 세워 마음대로 사고팔지 못하게 하소서.”

조준은 ‘공무를 맡는 자에게 토지를 분급하고’ ‘사적인 토지교환을 금지하는’ 것을 토지개혁의 2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1) 토지의 수조액을 1결당 쌀 20두로 낮추고 2) 관료에게는 품계에 따라 토지를 분급하되 그 직을 그만둘 경우 곧바로 토지를 반납하도록 하며 3) 1결이라도 적게 반납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고 4) 군전(軍田) 7 은 20세에 받고 60세에 국가에 반환하도록 하는 등의 세세한 시행 방안을 마련했다. 주로 토지 환수절차를 엄격하고 투명하게 운용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가 구상하는 공전적(公田的) 토지제도의 성공은 결국 토지에 대한 소유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조준의 개혁은 기득권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된다. 기득권이 막대한 이익과 부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조준과 같은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 집단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대부들의 정신적 지주 이색(李穡)은 “법을 경솔히 개혁할 수 없다”고 했으며 그를 따르던 관리들도 토지를 ‘겸병’ 8 하는 것이 문제지 ‘사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준은 이와 같은 반대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강력하고 조직적인 개혁 저항을 뚫고 어떻게 새로운 토지제도를 확립할 수 있었을까? 반발이 심한 개혁정책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조준의 토지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강압적인 ‘정책집행 순응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의 개입, 위반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 등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혁명적 상황이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정책이 진정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성원들을 설득해 새 정책에 동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준이 토지개혁의 ‘정책목표’로 ‘인정(仁政)의 실현’을 내세운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선 ‘정책 목표’란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나 정책을 통해 미래에 있어서 발생하도록 하고자 하는 상태, 9 정책 추진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상태(desirable state)” 10 를 말한다. 즉, 정책 목표에는 어떠한 상태를 이룩하고자 하는 ‘소망성(desirability)’이 담겨야 한다. 이 소망성이 바람직할 때 ‘정책 대상 집단’의 순응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정책 피해집단’의 반발을 줄일 수 있다.

‘인정’은 바로 조준의 토지개혁정책이 가진 ‘소망성’이었다. 맹자가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인 인정은 유교정치사상의 핵심 이념이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民惟邦本]’라는 인식 아래 백성을 교화해 착한 본성을 고양하고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인정은 정책적 구체성을 갖기보다는 일종의 도덕적 이상이자 선언(宣言)이다. 그럼에도 조준이 인정을 정책 목표로 삼은 것은 누구나 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원칙을 내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대의(大義)를 전면에 내세운다고 해도 그것이 추진하는 개혁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냥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이에 조준은 “국가의 운명은 백성들의 삶이 괴로운 상태냐, 즐거운 상태냐에 달려 있다”며 11 국가를 가진 이는 마땅히 경계(經界=境界)를 인정(仁政)의 시초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12 “무릇 인정은 반드시 경계로부터 시작한다”는 맹자의 말을 재확인한 것인데, 인정의 실현이라는 정책 목표는 민생안정을 통해 이뤄질 수 있고, 민생안정은 토지 개혁을 통해 가능하다고 정리한 것이다. 요컨대 조준의 정책은 ‘하위 목표 또는 정책 수단(토지제도 개혁)’→‘상위 목표(민생안정)’→‘최종 목표(인정의 실현)’로 구조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토지제도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인정(仁政)을 실현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절대적 대의인 인정을 거부하는 것을 보니 참된 유학자(관리)라고 할 수 없다”라는 공격이 가능하다. 실제로 반대파들은 ‘인정’이라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토지 개혁을 관철하려는 조준에게 적어도 가치/논리적으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상 조준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명분의 중요성이다. 어떤 대상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현 가능한 최선의 대안을 찾은 다음, 반대집단의 저항을 극복하고 구성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가’에만 집중하면서 그 수단에 힘을 실어주는 명분을 놓치곤 한다. 반대파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명분, 대의와 원칙을 가져와 자신의 논리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개혁을 성공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은 오늘날의 기업이 참고할 만하다.

필자소개 김준태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