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5. 트렌드 전문가 윤덕환 마크로밀엠브레인 이사 인터뷰
243호 (2018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국의 힙스터는 미국의 힙스터보다 더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확실한 것은 새로운 트렌드 세터로서의 힙스터 등장이 ‘욜로족 현상’과 강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굳이 저축하고, 절약하고, 투자하지 않는다. 친목 활동과 무리 짓기의 양식도 변하고 있다. ‘목적 중심’으로 끝없이 모이고 흩어진다. 타인이 궁금하긴 하지만 엿볼 뿐이지 굳이 피곤하게 관계를 만들어 상호작용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단기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지점에 비즈니스 기회가 존재할 수 있다. 힙스터적 삶이 ‘힙한 것’으로 점점 사람들에게 퍼져나갈수록 기업들 역시 기존 타기팅 방식을 버리고, 그들의 ‘감정’을 흔드는 방식으로 마케팅 전략을 바꿔나가야 한다.
DBR mini box 조직 내 힙스터 활용법 “관리 느슨하게, 혁신 숨통 틔워줘야” 시장과 마케팅에서 힙스터는 소비를 유발하는 동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차별적인 고객군으로 심지어 숭배되기도 한다. 그들은 트렌드를 깨고 다시 설정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에 그들을 잘 따라가면 시류를 타고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성장과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지만 내부에서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대기업들은 그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트렌드나 비즈니스를 M&A하는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최근 네슬레가 서드웨이브커피의 대표 브랜드였던 블루보틀을 인수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갖게 된다. 왜 대기업들은 내부에서 그러한 시도를 하기 어려운 것일까? 수많은 밀레니얼이 이미 조직에 상당 부분 유입돼 있다. 그들은 조직의 외부에 존재하는 힙스터들과 전혀 다르게 자라난 젊은이들일까? 그렇지 않다. 자유로운 사고에 강한, 기업가적이고 창조적인 그들이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지배하고 있는 기업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페르소나’이기에 지속된 압박과 훈련, 제도권의 HRD에 의해 그들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서서히 거세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조직에서는 힙스터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그들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며, 그러한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키우고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그들의 특성과 그들이 조직에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첫째, 힙스터들은 일을 할 때 독특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일을 완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흥미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관리자들은 힙스터들이 일하는 과정에 대한 관리를 하지 말고 결과에 집중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보여만 준다고 하면 그들이 택한 방법대로 진행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힙스터들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부지런하다. 그들은 보통의 밀레니얼들이 추구하는 일과 삶의 밸런스를 넘어 일과 삶의 통합(Integration)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일은 직업이자, 놀이이자, 휴식이기도 하다. 이는 전통적인 직장생활의 규범을 버리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조직이 그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규칙적인 성실성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규칙에는 엄격한 출퇴근 시간이나 복장 규칙, 전통적인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조하며 조직의 룰에 순응하게 하는 형태의 압박이 모두 포함된다. 셋째, 힙스터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관점이 가장 혁신적이라고 믿으며, 그것을 공유하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 기성세대의 눈으로는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사실 창조성의 신호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들이 자유롭게 회의에서 발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넷째, 힙스터들은 퀄러티와 디테일에 집중한다. 다른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내려고 한다. 또한 이들은 꾸미고 포장하는 데 탁월하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근사하게 눈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이들에게는 중요하다. 이러한 디테일은 그 ‘개성과 근사함’을 좋아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취향 저격’한다. 단순히 소비하는 고객이 아니라 함께 그 비즈니스를 즐기고 성장시키는 파트너임을 증명하는 활동을 통해 강력하게 묶어두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소수이지만 그들이 반복해서 구매하고 열렬히 로열티를 보여주며, 나의 경험을 전파하기를 자발적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개성 없고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되는 상품을 통해 성장해왔기에 이러한 비즈니스 창출은 기존 조직 내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이러한 ‘영향력 비즈니스’가 중요한 회사는 조직 내 힙스터들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퀄러티에 집중하고 디테일을 끌어올림으로써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조직이 힙스터들을 키우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쉽게 말해 ‘관리를 느슨하게 하고, 혁신을 위한 여지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을 책상에 묶어두고 평범한 일 속에 가두는 것은 결국 불만만 많고 오너십 없는 직원을 데려다 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많은 기업에서 리더들이 요즘 직원들을 평가할 때, 동일한 표현을 많이 쓰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혹시 그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직원들 중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힙스터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은지 이머징(Emerging Leadership Interventions) 대표 ejchang@emerging.co.kr 장은지 대표는 서울대 사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모니터그룹, 액센추어 등 글로벌 전략컨설팅 펌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맥킨지 서울사무소 맥킨지리더십센터장을 지냈다. 국내외 유수 기업 대상 전략 및 조직개발, 리더십/인재육성 관련 프로젝트를 15년간 수행했으며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진행한 한국 100개 기업 기업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진단보고서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최근에는 기업정신건강 및 리더십/조직개발 컨설팅 전문회사를 만들어 기업을 돕고 있다. |
‘쿨하다’라는 말이 사라지고 ‘힙하다’라는 말이 대세가 됐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힙스터의 주류 거부 현상, 이탈 현상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쿨’과 ‘힙’의 차이는 제3자의 시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아니 인식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힙’에는 3자의 시선이 거의 배제돼 있다. 즉 누군가가 힙하냐, 아니냐는 1인칭 시점에서 판단된다. 내가 내 취향대로 주류적 질서가 강제하는 취향이 아니라 나만의 취향을 추구하면서 살면 그냥 그게 힙한 거다. 그런데 ‘쿨함’의 판단 근거에는 ‘제3자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깔려 있다. 패션이나 외모를 봐도 ‘타투’ ‘수염’ ‘빈티지’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힙과, ‘깔끔함’ ‘댄디’와 ‘지식인적 면모’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쿨은 좀 다르지 않나. 쿨은 좀 세련된 느낌이다. 주류의 시선을 의식해서 끊임없이 차별화하려고 하지만 완전히 비주류로 가기에는 부담스러워 하는 게 쿨이다. ‘쿨하시군요’라는 건 칭찬이지만 ‘힙스터이신가 봐요’라고 하면 진짜 힙스터도 싫어하는데 그게 누군가가 자기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거 자체가 전혀 힙하지 않은 것이라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효리가 현재 제주도에 사는 원조 힙스터의 상징처럼 돼 있는데, 효리는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원조 걸크러시’이자 ‘쿨함’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런 ‘세련되고 쿨하고 멋진 언니’가 어느 날 제주도 애월의 힙스터가 돼 유기농 채소를 즐기며 수더분한 모습으로 힙하게 살고 있다.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그녀가 아이유와 함께 빈티지 옷가게에 가서 옷을 고른다. 효리라는 상징의 변화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힙스터의 존재감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주류에서 벗어난 언니’ 효리는 이제 그저 ‘대안소비’를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비라는 프레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아,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고 라이프 스타일의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힙스터가 트렌드세터로 자리매김하는 지금 시대에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늘 하던 기계적인 타기팅부터 버려야 한다. ‘서울 사는 20대 남성’과 같은 분류와 타기팅 말이다. 요새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롭게 타기팅해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예전과 같은 타기팅 방식을 하기 원한다. 그런데 소비자 조사를 하고 트렌드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진짜로 이제 하나도 안 맞는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참고할 만했다. 지금은 진짜 아니다. 수입이 100만 원이 안 되는데 20만 원짜리 헤드폰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예전에는 직관적으로 자기가 돈을 벌지 않는 20대 초반, 혹은 돈을 벌더라도 아직 충동적 소비 경향이 강한 20대 남성일 것이라고 봤다. 지금은 아니다. 방금 말한 저소득-고가헤드폰 구입은 굳이 예전식의 타기팅 그룹으로 나눠보자면 40대 초반에 많다. 아마 적은 수입으로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자 하는 힙스터나 욜로족일 것이다. 지금은 소비자 타깃 세그먼트의 전형성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기업들이 강하게 가질 시기다.
라이프 스타일 단위로 먼저 타깃 세그멘트를 쪼개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 그 층 안에 연령대가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를 봐야 한다. 장기적 관점의 라이프 스타일인지, 단기적 관점의 욜로나 힙스터인지를 먼저 보고, 만족감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인지 등을 봐야 한다. 이렇게 라이프 스타일을 몇 가지 나눠놓고 이 안에서 다시 연령층별로 어떤 분포가 있는지를 역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분석이 끝났더라도 절대 몇 년 이상 그대로 써먹으면 안 된다. 이제 소비행태는 그냥 1년 단위로 보는 게 맞다. 취향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판단해야 할 것은 어떤 이슈가 등장하고, 그 이슈가 어떤 감정을 일으킬 것인가다. 타기팅한 라이프 스타일 집단이 어떤 이슈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됐는지 분석해야 한다. 지금은 감정을 먼저 흔들어놓지 않으면 어떤 마케팅 메시지도 먹히지 않는다.
힙스터들이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데 마케팅 전략도 그런 식으로 짜고, 광고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번에 나온 삼성의 새로운 스마트폰 광고를 봤는데 정말 잘 만들었고 세련되긴 한데 여전히 ‘쿨’한 광고다. 멋지다. 그래서 아쉬웠다. 힙스터가 트렌드세터가 되고 있는 이 시대에는 그냥 새 광고를 솔직하고 익살스럽게 ‘이번엔 안 터집니다’ 정도로 갔으면 사람들이 엄청 열광했을 수도 있다. 힙하니까. LG 그램 노트북은 그런 전략으로 성공했다. 15.6(인치)형 그램이 나왔을 때 그게 진짜 980그램밖에 안 될지 사람들은 의심을 품었다. 그러니까 그냥 저울에 달아버려서 사람들이 동영상을 보게 만들었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솔직했다. 힙했다. 현대차가 항상 수출용과 내수용의 강판 두께가 다르다는 루머에 시달렸는데, 줄줄이 정량적인 데이터를 갖고 언론을 통한 기사화를 한 게 아니라 결국 수출용 차와 내수용 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두 차가 똑같다는 걸 증명했다. 엄청난 동영상 클릭 수가 나왔다. 전 세계 인구 35%는 신문은 전혀 보지 않고 페북으로만 뉴스를 본다. 거기에 동영상이 올라가면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재밌다. 얘네 진정성 있네’라고 메시지를 단다. 이게 ‘힙한 마케팅’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예전의 브랜드 전략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힙스터의 시대’에 ‘내가 이 제품을 사서 쓰면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신경을 안 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면 힙스터가 선택하고 그 뒤에 힙스터 추종자들이 따라올 것으로 본다.
인터뷰이 소개
윤덕환 이사는 마크로밀엠브레인 컨텐츠사업부를 이끌며 ‘트렌드모니터’를 총괄하고 있다. 고려대에서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장기불황시대 소비자를 읽는 98개의 코드』 『불안 권하는 대한민국,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다』 『2018 대한민국 트렌드』 등을 공저했다. 막연한 감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소비자 트렌드 분석을 하는 국내 최고 트렌드 전문가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옥엽(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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