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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컨셉빌딩

지성, 공감, 상상력의 팀플레이 끌리는 컨셉 창출의 필수 요소

김근배 | 242호 (2018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컨셉은 고객이 제품을 사야 할 이유다. 기업은 어떻게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것인지의 수단을 찾기 이전에 고객이 바라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파악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고객이 바라는 결과는 적은 수의 인터뷰로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시제품의 실패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개발자는 소비자와 공감을 토대로 개념을 정립하고 이에 기반해 상상력을 발휘해 혁신적 컨셉을 완성할 수 있다. 실제 컨셉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12가지 도구와 과정을 담은 컨셉빌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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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컨셉빌딩1 인가?

2017년 블룸버그에서 발표한 혁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GDP 대비 R&D 지출액 등에서 이스라엘,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생산성은 32위에 그쳤다. 한국에서 혁신의 투자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 발간된 책 『축적의 시간』에서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은 개념(컨셉) 설계 역량이 떨어지는 문제를 지적했다.2  이들이 언급한 혁신은 기술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기술력보다 사업화 능력의 부족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품 혁신에 필요한 컨셉 설계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필자가 신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 컨셉에 집중하는 방법론을 일명 ‘컨셉빌딩’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컨셉빌딩은 신제품 개발의 다른 단계보다 초기의 컨셉 설계 단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념(concept)을 명확히 한 후에 제품설계(building)에 착수하라고 조언한다.

제품혁신에 관한 방법론은 이미 다양하게 개발돼 있지만 이들은 초기의 컨셉 설계 과정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는 한계를 보인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미국 MIT의 얼번(Glen Urban) 교수와 하우저(John Hauser) 교수가 공저한 『신제품 설계와 마케팅(Design and Marketing of New Products)』3 이 교본으로 쓰인다. 품질경영과 관련해서는 6시그마 이론인 DFSS(Design For Six Sigma) 모델4 이 거론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은 정량화된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블루오션을 발굴하는 데 필요한 컨셉 설계 과정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산업디자인에서 유래한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5 이 건축, 가구나 장식품뿐 아니라 IT와 통신 관련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분야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또 창업과 관련한 방법론으로는 린스타트업(lean startup)6 이 자주 거론된다. 이들 방법론에 따른 혁신 사례는 주로 오프라인에서 성공한 사업을 IT나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빨리 시제품(prototype)을 만들어 소비자 반응을 체크하는 방법을 강조하면서 초기 개념 설계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초기에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하면 제대로 된 시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소비자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다시 처음의 개념 설계부터 해야 하는 수고를 반복해야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절름발이도 길만 바르면 헤매는 준족보다 빠르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걸음이 빠르면 빠를수록 정도에서 더 멀어진다”고 말했다.7  많은 사람이 개념 설계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지레 겁먹는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 컨셉빌딩을 하면 최적의 신제품을 개발하는 종착지에 오히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초기에 컨셉에 집중하지 않고 해결책이나 기술에만 매달렸을 때 오히려 혁신적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산하 연구소의 크랜웰(Cranwell)과 헌터(Hunter)는 제품의 생애주기를 컨셉 개발, 제품 설계, 생산, 운영 유지로 나누고 제품개발·유지·보수에 관련된 총비용을 제품생애비용(product life cycle cost)이라고 불렀다. 이 제품생애비용의 95%가 컨셉 개발과 제품 설계 단계에서 결정되는데 실제 이 단계에서 사용되는 생애비용은 1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컨셉 개발 단계에서는 3%의 비용만 쓰이는 반면, 정작 비용의 70%는 이 단계에서 결정된다고 지적했다.8  3%와 70%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품 설계 이전의 컨셉 개발 단계에 대한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필자는 제품혁신을 위해서는 제품 개발 초기에 고객의 니즈를 컨셉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판단해 그 방법론을 개발하고 실전에 적용해 가다듬는 데 공을 들여왔다. 데카르트는 “천천히 걷되 곧은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다”고 말했다.9  초기 컨셉에 집중하는 작업은 천천히 곧은길을 가는 과정이지만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신사업 혹은 신제품 아이디어들이 최종적으로 고객이 원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돼 실패로 귀결됐는지 돌아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충족 수단 이전에 바라는 결과를 먼저 찾아야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행동에 ‘동기’가 있고 그것을 ‘인식’이 매개한다고 했다. 이를 마케팅 상황에 적용해 보면 ‘구매 동기(이유) → 소비자 인식 → 구매 행동’의 인과 사슬을 생각할 수 있다. 소비자는 사야 할 이유가 있으면 사고, 이유가 없으면 사지 않는다. 여기서 컨셉은 “다른 제품이 아닌 이 제품을 사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소비자 인식은 컨셉과 물리적 제품으로 구성되는데 바로 컨셉이 소비자 인식에 관여해 사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컨셉에는 고객이 사야 할 이유를 담아야 한다. 사야 할 이유는 바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된다. 고객가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이 바라는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제품혁신 과정에서 많이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소비자들의 바라는 결과를 제대로 규명하지도 않고 충족 수단부터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지만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 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컨셉빌딩은 바라는 결과와 충족수단을 명확히 분리하는 데서 출발한다. 데오도르 레빗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의 말을 빌리면 “소비자는 0.25인치 드릴(drill)이 아니라 0.25인치 구멍(hole)을 원한다.” 여기서 ‘드릴’이 ‘충족 수단’이고 ‘구멍’은 ‘바라는 결과’, 제품을 사용하는 목적이다. 바라는 결과는 시간과 장소가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충족 수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전에는 구멍을 뚫기 위해 송곳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주로 전동 드릴을 쓰고 앞으로는 레이저가 사용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송곳을 사용한다.

컨셉빌딩은 소비자가 바라는 결과와 충족 수단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나중에 이 둘을 다시 결합해 ‘끌리는 컨셉’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컨셉은 con-과 -cept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Con-의 ‘여럿이 함께’라는 의미와 -cept의 ‘붙잡다’는 의미를 합쳐 “여럿을 붙잡아서 하나로 만든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일이관지(一以貫之)’, 흐트러진 구슬을 하나의 실로 꿴다는 의미와 정확히 일치한다. 컨셉은 기획이나 전략을 실행할 때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컨셉에서 con-이 꿰는 것, -cept가 꿰어지는 것이라면 꿰는 것은 바라는 결과, 꿰어지는 것은 충족 수단들을 의미한다. 결국 컨셉빌딩은 양자를 결합시켜 ‘끌리는 컨셉’을 만들고 이를 브랜드로 발전시킴으로써 제품을 혁신하는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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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실무자가 스티브 잡스의 주장을 좇아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 소비자에게 바라는 바는 물어볼 필요도 없고, 물어봐도 알 수 없다는 말을 맹신한다.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 쓰이지도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그런데 ‘고객이 원하는 것’에는 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때에는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바라는 결과를 지칭하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그 결과를 충족시키는 수단을 지칭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충족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발명은 충족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즉 ‘바라는 결과’를 명확히 해야 한다. 충족 수단은 반드시 바라는 결과에 의존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바라는 결과를 먼저 명확히 한 후에 충족 수단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소비자 욕구를 파악한다면서 바라는 결과를 물어보지 않고 충족 수단을 먼저 찾으려 한다. 지금부터 100년 전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라는 하늘을 나는 수단을 발명하기 전에 하늘을 날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소비자의 바람은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마케터는 소비자에게 묻거나 관찰을 통해 바라는 바를 우선 파악한 후 충족수단을 숙고해 찾아야 한다.

소비자가 바라는 결과는 적은 수의 소비자와 인터뷰만 해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최소 2명에서 최대 10명까지 인터뷰하면 가능한 모든 바라는 결과를 알 수 있다. 충족 수단을 알려면 많은 수의 소비자를 면접해야 하는 반면 바라는 결과는 소비자 간에 차이가 많지 않아 적은 수의 소비자를 면접해서도 알아낼 수 있다.

바라는 결과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찾아야 한다. 소비자가 바라는 결과들을 시장에 존재하는 경쟁 제품들의 충족 수단과 매칭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 제품들이 이 바라는 결과를 잘 만족시키면 그 바라는 결과들은 지워버리자. 남아 있는 바라는 결과들을 종합해 2∼3개의 키워드로 된 컨셉을 만들어 보자. 이 바라는 결과들과 경쟁자들이 제공하지 않는 충족 수단을 연결하면 바로 ‘끌리는 컨셉’이 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질문을 통해 고객에게 충족 수단을 얻으려 한다면 대부분 실패한다.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충족 수단이 아닌 ‘바라는 결과’나 ‘수행 과제(jobs to be done)’다. 바라는 결과와 충족 수단을 분리해 생각하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말대로 고객은 충족 수단을 잘 알지 못한다. 충족 수단은 개발자가 바라는 결과를 명확히 파악한 후 상상력을 발휘해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점만 잘 이해해도 제품혁신 과정을 효율적이고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창의적 컨셉빌딩은 지성×공감×상상력의 팀플레이

창의적인 컨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컨셉빌딩의 개념적 모델은 [그림 1]과 같은 삼각 창의사고 모형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 창의성을 다룬 책들은 상상력과 창의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상력은 창의적 사고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다. 상상력은 공감과 개념화 능력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창의적 사고로 귀결될 수 있다. 결국 창의적 사고는 ‘개념화 능력(지성)×공감×상상력’, 이 세 가지 능력의 결합으로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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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예로 설명해보자.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는 ‘내가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의미 없었던 몸짓은 꽃이라는 이름(개념)이 주어지자 꽃으로 인식됐다. 사물(꽃)은 개념(이름)이 부여됐을 때 비로소 인식됐다. 소비자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비자는 개념(컨셉)과 물리적 제품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결합해 상품을 인식한다. [그림 1] 상단의 화살표가 이를 보여준다. 개념을 이해하고 추출하는 인간의 능력을 지성(understanding)이라고 한다. 신제품 개발 초기의 컨셉이 출시 후에 브랜드로 발전한다. 따라서 브랜드가 소비자 인식에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기획 단계에서 컨셉을 꿰는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일이관지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와 개발자의 인식이 같을 수가 없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감은 이런 서로 다른 인식의 비대칭을 극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림 1]에서 소비자 인식은 공감을 통해 개발자 인식으로 옮겨가고, 개발자 인식은 상상력을 통해 물리적 제품으로 구체화된다.

이 상상력은 개념에 의해 소비자에게 다시 인도된다. 개념이 상상력을 어떻게 이끄는지는 소설 창작의 예로 설명할 수 있다. 소설에서 개념(컨셉)에 해당하는 것이 플롯이다. 소설가는 사전에 플롯을 면밀히 구성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이야기를 배열함으로써 소설을 완성한다. 소설가가 사전 플롯을 짜지 않고 오로지 자유로운 상상력에만 의지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면 그 소설은 뒤죽박죽이거나 짜임새가 없어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상상력의 독창성은 만약 그것이 개념들과 합치한다면 천재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이 개념들과 합치하지 않는다면 광신(狂信)이라 일컬어진다”고 말했다.10  마찬가지로 신제품 개발자는 도출된 개념을 잡은 후에 상상력을 발휘해 물리적 제품으로 구현해야 한다. [그림 1] 하단 왼쪽 화살표가 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창의적 사고는 상상력만의 개별 플레이가 아닌 개념과 공감, 그리고 상상력의 팀플레이로 발휘된다. 창의적 사고는 즉 고객과 공감에 기초해 사야 할 이유를 개념화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이질적인 것과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개념, 공감, 상상력의 삼각 창의 모형은 결국 혁신의 씨앗이 인간 외부의 자원이 아니라 내면에 달려 있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독일어로 ‘create’는 ‘schőpfen’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국자로 퍼 올리는 행위(scoop)’다. 창조란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를 퍼 올려(scoop) 세상을 바꾸는 활동이다.11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흔히 회사의 자원이 부족해 제품혁신에 불리하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외부 자원이 부족해도 컨셉빌딩을 통해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제품을 혁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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