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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디지털 신질서

디지털 시대는 불안정한 유동적 상태, 자전거처럼 계속 움직이며 균형 잡아야

김경준 | 238호 (2017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상대적 시간 개념인 카이로스적 관점에 따르면 2018년은 ‘아날로그의 종언’과 ‘디지털 신질서 확산’의 변곡점이 될 해다. 그리고 변화의 촉매제로는 센서와 인공지능, 블록체인을 꼽을 수 있다. 가치를 창출하는 네트워크 차원에서 볼 때 기존 아날로그 연결망 사업은 퇴로를 걷고 있다. 가상화폐의 출현으로 부의 원천도 변하고 있다. 국가의 부가 아날로그 시대의 인구, 영토, 군사력에서 20세기 후반, 정보혁명을 통해 총체적 정보기술(IT) 역량으로 이전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전략적 균형이 ‘정적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동적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움직이는 자전거 위에서 쉬지 않고 페달을 밟으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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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이고 객관적 개념으로 ‘초, 분, 월, 연’ 등 시계로 측정된다. 반면 카이로스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으로 중요도와 의미는 각각 다르다. 지구 어디서나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는 동일한 속도로 흘러가지만 지역과 개인에 따라 상대적 시간인 카이로스는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역사책에서 수백 년이 1페이지로 압축되지만 시대적 분기점을 이루는 100년이 수십 페이지로 기술되기도 한다.

 
2018년, 초연결사회 전환의 변곡점

인류문명의 역사를 산업발달의 관점에서 보면 3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1만여 년 전 중동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농업혁명,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20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정보혁명이다. 시간적 중요성에서 3번의 분기점이 혁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경제산업은 물론이고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도 기존 질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파괴와 창조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카이로스의 관점에서 2018년은 아날로그의 종언과 디지털 신질서 확산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정보혁명과 글로벌화가 교차해 발전한 글로벌 정보화 사회이다. 정보혁명은 1947년 작동을 시작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 이후 70년 동안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 스마트폰과 플랫폼 출현이라는 2가지 변곡점을 지났다. 초소형화된 디바이스와 초고속 통신망이 결합해 2007년 출시된 스마트폰은 초연결사회를 출현시키며 오늘날 제4차 산업혁명 또는 디지털 격변(Digital Transformation)으로 통칭되는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변화의 촉매제는 ‘센서와 인공지능, 블록체인’이다.

디지털 센서는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서 센싱 범위도 종전의 전압, 전류, 진동, 압력 등 물리적 범위에서 뇌파, 홍채, 미각, 후각에 이르는 생체 범위로 확대됐다. 또한 센싱데이터를 네트워크로 서버에 수집해 분석하는 알고리즘 단계에 인공지능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저렴하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 가치 있는 정보를 생성할 수 있게 됐다. 또 블록체인 기술은 투명하고 신뢰성 높은 데이터 교환과 검증을 가능하게 하는 분산형 정보처리 방식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프로세스와 상거래 구조에 접목되면서 가상화폐를 비롯한 다양한 탈중앙 플랫폼이 출현하고 있다.

아날로그 네트워크 사업의 퇴장

인간이든, 사물이든 연결되면 가치가 창출된다. 고립된 인간은 자급자족하면서 제한된 자원으로 생활하지만 연결된 인간들은 분업을 통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 사물들도 마찬가지다.
1대의 전화기는 무용지물이지만 100대의 전화기는 상호연결된 통신수단으로 가치를 창출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문명사는 연결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언어와 문자로 사람을 연결하고, 도로와 철도로 지역을 연결하며, 무역으로 국가를 연결한다. 따라서 연결망의 확보는 경쟁우위를 의미하며, 새로운 기술의 발달에 따라 먼저 연결망을 확보한 기업들이 다음 세대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철도망을 확보한 운송회사, 지점망을 확보한 은행, 송출망을 확보한 방송국, 통신망을 확보한 전화회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아날로그 시대의 이러한 연결망, 즉 네트워크들은 구축과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에 국가 단위나 거대 기업들이 소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연결망이 저렴한 비용으로 구축되고 낮은 가격으로 개방되는 질서변화가 일어난다. 아날로그 연결망에 의존했던 전통적인 사업자들인 공중파 방송사나 금융회사 등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날로그 연결망 사업의 대표적 유형이 은행이다. 전국에 지점을 개설해 만든 네트워크를 통한 이체와 결제를 주요 사업으로 영위해 왔다. 지점망 개설에는 부동산 임대와 관리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높은 신뢰도와 안정성이 필요한 금융전산망의 구축과 운영에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나아가 국제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금융거래를 지원하기 위한 전 세계 지점망 구축이나 다른 지역 은행과의 연계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아날로그 시대의 은행은 지점망과 전산망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연결망 사업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이러한 독점적 연결망을 개방적 네트워크로 대체할 수 있다. 은행을 통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한 개인 간 자금이체가 가능해지면서 다른 사업자들도 이러한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소위 핀테크로 통칭되는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면서 신생 스타트업 기업들이 전통적인 은행들보다 저렴하고, 신속하며, 만족도 높은 금융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하고 있다.

가장 초보적 미디어인 책은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급속히 보급됐다. 일반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미디어로서의 신문은 19세기 대량 고속 인쇄가 가능한 윤전기의 발명과 전국 일일 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철도망의 결합이 빚은 매체였다. 한편 전파미디어인 라디오와 TV는 20세기 전기전자 기술의 산물이다. 근대 미디어인 신문은 배급망을, 라디오와 TV는 전파망을 통해 종이, 음성, 동영상을 송신하는 사업이었다.

제작과 유통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에서 일반인은 미디어 수용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제한은 사실상 사라졌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많은 돈을 들여야 만들 수 있었던 종이 책을 개인이 PC와 프린터만 있으면 인쇄하게 됐고,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영화사나 방송국만 제작 가능했던 음성과 동영상을 개인이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손쉽게 작성한다. 나아가 개인이 만든 텍스트, 사진, 동영상을 스마트폰이나 PC를 활용해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블로그 등의 플랫폼을 경유해 손쉽게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연결된 수십억 명에게 유통시킬 수 있다. 아날로그 미디어의 특징인 일방향, 대량 생산 - 대량 소비 구조가 급속히 쇠퇴하는 반면 1인 미디어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사분석에서 오락, 게임, 음식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반인들이 제작해 유통시키는 프로그램들은 아날로그 미디어 기업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디지털 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

지금까지 북핵 사태 등 국제 정세의 위험성이 커지면 미국 달러화 가치가 상승했지만 2017년에는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일반인들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사이버 네트워크에 기록된 데이터에 불과한 신기루로 여겨졌던 가상화폐가 개념적 차원이 아닌 기존 화폐의 보완 수단으로 실생활에 연결되는 단계에 진입했다. 아마존, 페이팔, 라쿠텐 등 글로벌 온라인 사업자들이 가상화폐 결제를 도입했거나 검토 중이다. 독일과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공식 인정했다. 나아가 스웨덴과 아이슬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자체적 가상화폐 발행을 검토하면서 법정통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과 기술의 접점에서 생겨나고 확산되는 가상화폐는 탈중앙 패러다임의 디지털 시대를 상징한다.

전문가들은 결제 수단으로서 가상화폐의 장점은 인정하면서도 해킹 위험성, 높은 변동성 등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금속화폐 단계에서 국가 권력이 주조한 실물화폐도 위조화폐 출현과 귀금속 함량 변경에 따른 가치변동성에 항시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가치를 금과 연동한 금태환 포기를 선언한 이후 현존하는 모든 법정화폐는 본질적으로 국가권력이 인쇄한 종이에 불과하고 국가기관의 자의적 결정에 따라 남발될 위험이 상존한다. 또한 오늘날 법정화폐는 대부분 금융회사 서버에 보관돼 금융회사가 보증하는 일종의 데이터다. 따라서 전쟁 등 극단적 상황으로 국가 소멸, 금융회사 파산이 발생하면 가치가 보장되기 어렵다. 21세기에도 특정 국가 또는 은행이 망할 확률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글로벌 사이버 네트워크 전체의 소멸은 인류 문명 자체의 종식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상화폐가 더욱 안전한 측면이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가상화폐 출현은 부의 원천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문명사적 의의가 있다. 국가의 부는 근대 이전의 무력을 통한 정복이라는 물리적 힘에서 출발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토지·노동·자본의 결합을 통한 실물생산 능력으로 발전하고 20세기 후반 정보혁명을 통해 총체적 정보기술(IT) 역량으로 이전되고 있다. 부의 원천이 아날로그 시대의 인구, 영토, 군사력에서 디지털 시대에 맞춰 IT 역량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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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준

    김경준kjunkim@hanmail.net

    CEO스코어 대표

    김경준 대표는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및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기업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디지털 인문학』 『세상을 읽는 통찰의 순간들』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마흔이라면 군주론』 등이 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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