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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와 조직 불안

위기경영 선포하고, 특별 기구 만들고? 조직통제만으론 문제 못 풀어.

이용석,이경민,장은지 | 232호 (2017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두려움은 유독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증폭된 형태로 나타난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조급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고민과 해결이 없는 대비책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 조직의 불안을 근시안적으로 해결하다 보면 조직이 더 관료화되고 경직된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인증절차를 없애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내놓는 사이 은행은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 스스로 경쟁력을 잃었다. 조직 불안에 대응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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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차 산업혁명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언론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서점에는 관련 책이 넘쳐나며, 대선에서도 중요한 어젠다로 부상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없으며 유독 한국에서만 이러한 ‘트렌드 이름짓기’에 열광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공존한다. 정작 4차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독일이나 가치사슬 파괴 또는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에 기반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매번 만들어내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광적이지는 않다.

유독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광풍이 몰아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정확한 실체를 모르겠다는 두려움, 또한 4차 산업혁명이 이전 단계의 산업혁명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들 하는데 혹시나 우리 조직이 뒤처지거나 패배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섞여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주어진 산업에 들어가서 경쟁자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경쟁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경쟁자가 나타나 나의 비즈니스를 위협할지 모르는 세상이 됐다고 하니 어떻게든 이해하고 대응해보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용어를 통해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이를 빌미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들도 부분적으로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사회와 기업들이 유독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것이 4차 산업혁명만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세계화(Globalization), 밀레니얼을 앞두고 Y2K,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도 ‘제2의 IMF’가 언론에 오르내리며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는 ‘불안’이라는 정신적 방어기제로 설명할 수 있다. 불안이란 불쾌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거나 위험이 다가온다고 여겨질 때 느끼는 정서이며 위험이 예상될 때 자아가 방어기제를 작동하도록 준비시키는 신호의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와 기업 조직들은 오랫동안 어려운 경제 여건, 불안정한 국내 정치, 국제적 갈등과 분열의 환경 속에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안’을 촉발시키고, 이를 통해 방어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구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이러한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해온 방법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관료적인 조직문화다.

정신의학에서도 조직이 ‘불안’에 대응해 만드는 방어체계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를 한 사례가 많은데 대표적인 학자가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멘지스(Isabel Menzies Lyth)다. 불안과 분노에 대해 연구하던 그녀는 삶과 죽음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을 다루는 병원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병리현상에 주목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연구 대상 병원의 수련 간호사들이 업무를 할 때 비효율적일 만큼 일을 세분화하고 관례화, 체크리스트화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각 간호사는 병동의 일들을 잘게 나누어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그 일만 수행했다. 예를 들자면, 한 간호사는 병동을 돌아다니면서 채혈만 한다. 이러다 보니 그 간호사는 어떤 환자가 어디가 아파서 현재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간호사와 환자의 관계는 단절됐고 간호사들의 업무는 오로지 특정한 처치를 수행해 체크리스트를 채워 나가는 루틴(routine)이 전부였다. 멘지스는 이를 불안과 조직의 방어기제로 설명했다. 자신의 결정과 행위에 따라 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업무를 하다 보니 간호사들은 늘 긴장 상태에서 강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한 방어기제로 조직은 간호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일을 비인격화해서 관례화, 세분화, 체크리스트화 한 것이다. 즉, 한 간호사는 오로지 병동 전체 환자들의 채혈 업무만을 함으로써 환자들을 전체적으로 돌보는 데 따른 불안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잠을 자고 있는 환자를 깨워서 체크리스트대로 수면제를 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생겼다. 한마디로 지나친 업무의 관례화가 낳은 촌극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유사하지 않은가? 한국의 기업 조직은 위기가 반복되자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단절시키고 업무를 관례화, 세분화, 체크리스트화했다. 수많은 부서들이 생겨났고, 각 부서들의 업무 역시 잘게 쪼개지며 단절과 경쟁이 심해졌다.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직원, 다른 부서, 그리고 회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인식하기보다는 정해진 일만 잘못되지 않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만든 수많은 보고서와 회의들 역시 경영자와 상사의 불안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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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석yslee@emerging.co.kr

    - 이머징 파트너/ 정신과 전문의
    - 조직병리 분석 및 임상 치료 전문가
    - 대한분석치료학회 정회원 및 학술이사, 학회지 편집위원
    - 前 건국대 및 차의과학대학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 前 용인시 정신보건센터 센터장, 前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대한분석치료연구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수료
    - 런던 타비스톡센터 정신분석학적 연구 석사 (Master of Arts in Psychoanalytic studies at the Tavistock & Portman NHS Foundation Trust in Londo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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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민kmlee@mindroute.co.kr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건강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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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은지chang.eunji@gmail.com

    -(현)이머징(Emerging Leadership Interventions) 대표
    -모니터그룹, 액센추어 등 글로벌 전략 컨설팅 펌에서 컨설턴트
    -맥킨지 서울사무소 맥킨지리더십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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