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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Biz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교훈 효율성보다 품종 다양화 먼저

문정훈 | 219호 (2017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음식 문화가 발달하기로 유명한 나라들은 대부분 가톨릭 국가들이다. 그러나 가톨릭 국가 중 아일랜드는 유일하게 음식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이유는 1845년부터 5년간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 때문이다. 당시 아일랜드는 한 가지 품종의 감자를 집중 재배하고 있었는데 이 품종이 감자 역병에 취약하다 보니 주식인 감자가 부족해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은 것. 이는 최근 효율성을 앞세워 품종 다양화를 등한시하는 국내 농가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사건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다녀봤던 곳들 중에서 식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스페인이라고 답을 한다. 현란한 조리 기술로 따지자면 물론 프랑스가 우위겠지만 동쪽엔 지중해, 북서쪽엔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반도국가인 스페인은 언제나 신선한 해산물과 건강한 농작물이 넘쳐난다. 이 다양한 식재료가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조리법을 만나 스페인을 말 그대로 ‘음식의 천국’으로 만든다.

음식의 천국 스페인은 예로부터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Desayuno)을 일단 7시쯤 가볍게 먹고, 11시쯤 ‘아점(Almuerzo)’을 먹는다. 점심(Comida)은 보통 오후 두 시쯤 먹는다. 점심은 보통 전채, 메인, 그리고 디저트와 커피까지 주로 3품 코스 요리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후 6∼7시에는 ‘점저(Merienda)’를 먹는데 간단한 음료와 타파스(Tapas) 요리를 먹으며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점저를 끝내면 저녁 9시에 이제 본격적으로 저녁(Cena) 식사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보통 11시나 자정이 되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2차로 술을 마시러 간다. 매일이 불금이고,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끝없이 음식과 술을 즐기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날씬한 몸매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먹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은 토마토 요리만 하더라도 아주 다양하고, 또 각 요리에 따라서 적합한 품종의 토마토를 먹는다. 예컨대 샐러드엔 토마테 엔살라다, 차가운 토마토 수프인 가스파쵸엔 토마테 페라, 빵에 토마토를 발라 먹는 판 콘 토마테엔 토마테 라마를 고르는 식이다. 이렇게 다양한 토마토가 없다면? 화려한 스페인 식문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이라고 모두 식문화가 화려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가장 균형 잡힌 식단으로 유명하다. 이 결과로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먹는 나라로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식탁은 대체로 단출하고 검소하다. 같은 유럽인데도 왜 이리 큰 차이가 날까? 물론 농업 생산성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한몫을 한다. 16세기를 기점으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은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들(로만 가톨릭, 그리스정교, 이슬람 등의 영향권)보다 단출한 식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당시 프로테스탄티즘은 검소와 금욕이 중요한 가치였으므로 음식은 배고픔을 해결하고, 영양을 공급해 일을 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것은 지양했다. 반면에 가톨릭 영향권에 있었던 지역은 지금까지도 화려한 식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같은 가톨릭 문화권 지역의 경우는 다양한 식재료와 함께 화려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딱 한 곳이 예외인데 아일랜드다.



깜짝 놀란 아일랜드의 식탁

출장으로 아일랜드에서 머물렀던 일주일은 음식의 관점에서 충격과 공포의 나날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영국보다 심하다. 이보다 심한 말이 있을까! 주식은 감자튀김이고 먹는 생선은 대부분 두 종류로 요약된다. 대구와 연어. 그래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영국과 마찬가지로 ‘피시 앤드 칩스’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이 대표 음식인 나라들에서는 미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일단 ‘밑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감칠맛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간은 소금과 식초로 조절한다. 양념과 소스는 그레이비와 마요네즈를 빼면 뭐가 더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10년 묵은 겹간장 맛을 이들에게 보여주면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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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주요 산업은 농업, 특히 목축업이다. 전체 면적의 80%가 농지와 목축지이며 육류 수출대국이다. 축산업이 국민소득의 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많은 방문객들은 아일랜드의 고기 요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는데 불행히도 아일랜드의 고기 요리는 육류 근섬유에 대한 인간의 저작력(咀嚼力)의 한계치를 테스트하는 용으로 매우 적합했다. 기대했던 아일랜드 전통의 콘드 비프(Corned Beef)를 비롯한 양고기 요리 등도 단지 삶거나, 끓이거나, 오븐에서 로스트해서 꺼낸 다음 나이프로 잘라먹는 것 이상의 조리법은 없었다. 곁들어 먹는 야채도 그냥 익혀서 내놓는 수준이었다. 그 어떤 식당에 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재료도 다양하지 못했고, 조리법도 단순하고, 양념도 단순하며, 발효의 개념은 찾기조차 힘들었다. 아일랜드의 식문화는 왜 이리 뒤처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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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아일랜드는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했던 아일랜드 섬의 거주민들은 바이킹족들과 섬에서 공존했으나 1172년에 영국에 지배당한다.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 국민들은 수차례 봉기했으나 독립하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 1912년에 이르러 독립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커다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1845년부터 5년간 일어났던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건이다. 이 감자 대기근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당시 850만 명의 인구 중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신대륙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아일랜드의 인구는 600만 명대로 줄어들게 된다. 이때 이후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고 이후 북아일랜드를 영국에 빼앗기면서 현재 아일랜드 인구는 감자 대기근 이전의 절반 정도인 490만 명에 머물고 있다.



당시 아일랜드를 초토화시켰던 감자 역병은 아일랜드에서만 유행했던 것이 아닌 전 유럽의 문제였는데, 특히 아일랜드가 치명적 타격을 입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지배 국가였던 영국의 착취였다.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밀 등의 농산물은 지주였던 영국인들에게 수탈되고 싼 가격으로 영국으로 수출됐다. 당시 기록을 보면 아일랜드 국민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수출하는 항구에는 많은 양의 곡물들이 배에 실려서 영국으로 나갔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이유 외에도 인간의 선택에 의한 생태계 왜곡이 이 문제를 걷잡을 수 없는 큰 재앙과 파국으로 몰고 갔다는 증거가 있다.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은 신대륙에서 들어온 감자가 주식이었는데 감자 수확이 감자 역병으로 급감을 하게 되니 먹을 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감자 역병은 진균류의 곰팡이였고 유럽 전역에 퍼졌으나 유독 아일랜드의 감자 농사만 전국적으로 심하게 망치도록 만들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 재배하던 감자의 품종은 다양하지 못했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선호해 전국에 심었던 그 감자 품종이 유독 감자 역병에 약했던 것. 아일랜드는 이 기근으로 많은 인구를 잃어버렸으며 아직도 당시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품종의 다양성이 훼손됐을 때 어떠한 재앙이 생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더블린을 관통하는 리피강 한편에는 당시의 고통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에 나타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나 처참한지 이 옆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일랜드가 그들의 음식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우기에는 이 역사적 대기근은 아일랜드에 너무나 큰 생채기를 냈고, 이 대기근은 품종의 다양성 훼손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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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종의 다양성과 우리의 식탁

먼지 바람만 남고 대부분의 농작물은 사라진 황량한 지구의 모습을 그린 영화 ‘인터스텔라’는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미래판을 그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작물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의 손에 의해 개량이 됐다. 단 하나도 자연 상태인 품종은 없다. 그리고 이 개량의 방향은 주로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실은 품종만이 문제가 아니다. 종의 다양성도 줄어들고 있다. 고작 12종의 작물과 5종의 가축이 인간이 소비하는 음식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생산되는 대부분의 작물들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기보다는 다수확을 통한 농가 소득 증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 농정의 방향도 지금까지 그러했다. 양돈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 개체 수의 대부분이 생산성이 좋은 하나의 품종으로 맞춰져 있다. 새끼를 많이 낳고, 사료효율성이 좋은 돼지로 통일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과는 어떠한가? 후지(부사)와 홍로 이 두 품종을 합치면 전체 사과 재배 면적의 80%를 차지한다. 새콤달콤한 홍옥은 저장성이 나쁘다는 이유로 이제는 마트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기후의 변화로 사과 재배 지역과 면적 역시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우리가 선택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소수의 품종들이 미래의 환경 변화와 새로운 질병에 취약하다면 우리는 또다시 재앙에 빠지게 되고 그 말로는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보다 더 혹독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주위에서 자주 듣고 있는 ‘로컬 푸드’ ‘슬로 푸드’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자. 로컬 푸드와 슬로 푸드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은 육체적 건강함에서 찾고자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햄버거, 피자, 프라이드 치킨과 같은 표준화된 식단, 즉, 글로벌 푸드와 패스트푸드 자체가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글로벌 푸드와 패스트푸드는 표준화가 핵심이고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므로 품종의 다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는 전 세계 어딜 가도 똑같다. 그것이 그들의 핵심역량이다. 반면에 로컬 푸드와 슬로푸드는 품종의 다양성, 식문화의 다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야말로 로컬 푸드와 슬로푸드의 진정한 가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프렌치 프라이는 ‘러셋’이라는 품종의 감자로 전 세계가 통일돼 있다. 하지만 슬로 푸드인 감자탕은 ‘남작’과 같은 당 함량이 높은 품종의 감자로 끓여야 맛있고, 들기름으로 달달 볶는 또 다른 슬로 푸드인 감자볶음은 ‘수미’로 해야 좋다. 로컬 푸드와 슬로 푸드는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로컬 푸드와 슬로 푸드에 관심을 가질수록 인터스텔라의 재앙,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재앙을 떨쳐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음식과 관련해 함께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인지도 모르겠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경영과학과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식품기업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식품산업 기업전략, 식품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물류 전략 등이다.
  • 문정훈 문정훈 | - (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
    - (현) Food Biz Lab 연구소장
    -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mo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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