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음식 문화가 발달하기로 유명한 나라들은 대부분 가톨릭 국가들이다. 그러나 가톨릭 국가 중 아일랜드는 유일하게 음식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이유는 1845년부터 5년간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 때문이다. 당시 아일랜드는 한 가지 품종의 감자를 집중 재배하고 있었는데 이 품종이 감자 역병에 취약하다 보니 주식인 감자가 부족해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은 것. 이는 최근 효율성을 앞세워 품종 다양화를 등한시하는 국내 농가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사건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다녀봤던 곳들 중에서 식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스페인이라고 답을 한다. 현란한 조리 기술로 따지자면 물론 프랑스가 우위겠지만 동쪽엔 지중해, 북서쪽엔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반도국가인 스페인은 언제나 신선한 해산물과 건강한 농작물이 넘쳐난다. 이 다양한 식재료가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조리법을 만나 스페인을 말 그대로 ‘음식의 천국’으로 만든다.
음식의 천국 스페인은 예로부터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Desayuno)을 일단 7시쯤 가볍게 먹고, 11시쯤 ‘아점(Almuerzo)’을 먹는다. 점심(Comida)은 보통 오후 두 시쯤 먹는다. 점심은 보통 전채, 메인, 그리고 디저트와 커피까지 주로 3품 코스 요리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후 6∼7시에는 ‘점저(Merienda)’를 먹는데 간단한 음료와 타파스(Tapas) 요리를 먹으며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점저를 끝내면 저녁 9시에 이제 본격적으로 저녁(Cena) 식사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보통 11시나 자정이 되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2차로 술을 마시러 간다. 매일이 불금이고,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끝없이 음식과 술을 즐기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날씬한 몸매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먹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은 토마토 요리만 하더라도 아주 다양하고, 또 각 요리에 따라서 적합한 품종의 토마토를 먹는다. 예컨대 샐러드엔 토마테 엔살라다, 차가운 토마토 수프인 가스파쵸엔 토마테 페라, 빵에 토마토를 발라 먹는 판 콘 토마테엔 토마테 라마를 고르는 식이다. 이렇게 다양한 토마토가 없다면? 화려한 스페인 식문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이라고 모두 식문화가 화려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가장 균형 잡힌 식단으로 유명하다. 이 결과로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먹는 나라로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식탁은 대체로 단출하고 검소하다. 같은 유럽인데도 왜 이리 큰 차이가 날까? 물론 농업 생산성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한몫을 한다. 16세기를 기점으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은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들(로만 가톨릭, 그리스정교, 이슬람 등의 영향권)보다 단출한 식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당시 프로테스탄티즘은 검소와 금욕이 중요한 가치였으므로 음식은 배고픔을 해결하고, 영양을 공급해 일을 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것은 지양했다. 반면에 가톨릭 영향권에 있었던 지역은 지금까지도 화려한 식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같은 가톨릭 문화권 지역의 경우는 다양한 식재료와 함께 화려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딱 한 곳이 예외인데 아일랜드다.
깜짝 놀란 아일랜드의 식탁출장으로 아일랜드에서 머물렀던 일주일은 음식의 관점에서 충격과 공포의 나날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영국보다 심하다. 이보다 심한 말이 있을까! 주식은 감자튀김이고 먹는 생선은 대부분 두 종류로 요약된다. 대구와 연어. 그래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영국과 마찬가지로 ‘피시 앤드 칩스’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이 대표 음식인 나라들에서는 미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일단 ‘밑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감칠맛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간은 소금과 식초로 조절한다. 양념과 소스는 그레이비와 마요네즈를 빼면 뭐가 더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10년 묵은 겹간장 맛을 이들에게 보여주면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일랜드의 주요 산업은 농업, 특히 목축업이다. 전체 면적의 80%가 농지와 목축지이며 육류 수출대국이다. 축산업이 국민소득의 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많은 방문객들은 아일랜드의 고기 요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는데 불행히도 아일랜드의 고기 요리는 육류 근섬유에 대한 인간의 저작력(咀嚼力)의 한계치를 테스트하는 용으로 매우 적합했다. 기대했던 아일랜드 전통의 콘드 비프(Corned Beef)를 비롯한 양고기 요리 등도 단지 삶거나, 끓이거나, 오븐에서 로스트해서 꺼낸 다음 나이프로 잘라먹는 것 이상의 조리법은 없었다. 곁들어 먹는 야채도 그냥 익혀서 내놓는 수준이었다. 그 어떤 식당에 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재료도 다양하지 못했고, 조리법도 단순하고, 양념도 단순하며, 발효의 개념은 찾기조차 힘들었다. 아일랜드의 식문화는 왜 이리 뒤처져 있을까?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아일랜드는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했던 아일랜드 섬의 거주민들은 바이킹족들과 섬에서 공존했으나 1172년에 영국에 지배당한다.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 국민들은 수차례 봉기했으나 독립하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 1912년에 이르러 독립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커다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1845년부터 5년간 일어났던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건이다. 이 감자 대기근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당시 850만 명의 인구 중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신대륙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아일랜드의 인구는 600만 명대로 줄어들게 된다. 이때 이후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고 이후 북아일랜드를 영국에 빼앗기면서 현재 아일랜드 인구는 감자 대기근 이전의 절반 정도인 490만 명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