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네이선 퍼-로베르토 베르간티-김태영 교수 토론

거창한 돈 들인 신중한 혁신보다 작은 실험이라도 제때 해야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네이선 퍼(Nathan Furr),김태영 | 216호 (2017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을 위한 실험의 숫자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두라. 많은 돈을 들여 실험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실험이라도 빨리 제때제때 하는 게 중요하다.
- 급진적이고 급속한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어떤 기업이 얼마나 빨리 학습하고 기회를 포착하느냐가 경쟁 우위를 만든다. 혁신의 시작 단계에서 경쟁 우위를 논하지 말라. 일단 성공하면 그것이 경쟁 우위로 이어진다.
- 한국 기업의 수직적, 하향적 조직문화는 혁신의 걸림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같은 대기업에서도 상사를 설득하는 일은 어렵다. 문제는 혁신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와 겸손한 태도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민혁(연세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073

 

김태영 2016년 동아비즈니스포럼 첫째 날의 마지막 세션이다. 질문을 하나 하자면 오늘 발표 주제인 ‘소비자의 역할’이다. 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네이선 퍼 교수님과 로베르토 베르간티 교수님의 의견이 좀 다른 것 같다. 차이를 설명해주겠는가?

네이선 퍼 베르간티 교수와 내가 말한 것은 상호보완적이다. 내가 첫 번째 쓴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출연한 ‘꿈의 구장’이라는 영화가 있다. 코스트너가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거대한 야구장을 만들고 사람들이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밑도 끝도 없는 꿈인데 결국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옥수수밭에 와서 야구 경기를 본다. 아주 흥미롭다. 베르간티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업가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실패한다. 그중 소수만 성공하는데 어떤 사람이 성공하느냐, 바로 열정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다. 조직 내에서 혁신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혁신을 위한 비전, 둘째,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마이크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드레스 대여 회사 렌트더런어웨이(Rent the Runaway)를 창업한 제니퍼 하이만은 이 둘을 다 갖추고 있다.

로베르토 베르간티 맞다. 혁신을 위해서는 일단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비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다음 정말 비판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자신이 잘 모르는 것, 남이 반대하는 것, 실험과 시도를 통해 배운 것에 대해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수차례 실험을 한다 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결과도 없이 끝이 나고 만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패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죽거나 의기소침하지 마라. 비전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를 비판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전이 있으면 실패해도 또 일어난다. 비전이 있으면 계속 갈 수 있다. 여러분 스스로가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또 다른 실험을 계속해라. 비전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나오니까.

‘소비자’를 말했는데 유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결국 솔루션 레벨로 발전해야 한다. 좋은 비전을 가진 많은 회사들이 솔루션 레벨에서 실패했다. 이런 회사의 공통점은 디테일에 약했다는 것이다. 기존 제품을 향상시키려면 유저의 관점에서 해당 제품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김태영 조직 내에서 비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어떤 때는 조직 내 한 사람이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경우에는 집단적인 노력에 의해 비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둘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베르간티 급진적 모임(radical circle)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불과 4∼5명의 인원이 조직 전체를 바꿔나갈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서클(creative circle)>이라는 책을 보면 예술과학의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변화를 몰고 온 혁명이 소규모 예술가 몇 명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큰 혁명이 작은 집단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상주의 화풍을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이 화풍을 보자. 붓을 가지고 작은 점을 찍는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 처음 이런 기법을 시도한 모네나 르누아르와 같은 화가들이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하려고 하자 기성 화가들이 엄청나게 반발했고 결국 이들은 그림을 내지 못했다. “그게 그림이냐. 실력이 떨어진다”고 비판받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동료 두세 명이 “아니다. 신선한 기법이다. 훌륭하다.” 이러면서 힘을 모았고 서로를 격려하고 경쟁했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끊임없이 세를 키웠고 결과적으로 인상주의 화풍이 전 세계를 점령했다. 사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의 집단 안에서 서로 많이 싸웠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는 가운데 경쟁하고 비판하는 것은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방향을 다르게 잡아서 말하겠다. 혁신은 여러 의미가 있다. 베르간티 교수가 말하고 있는 혁신은 ‘무엇인가 차별되고 급진적인 것’을 만들 때 매우 유용하다. 또 베르간티 교수는 “왜(why)?”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기능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라’고 설명하고 싶다. 즉 단순히 제품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감성적, 사회적 기능까지 더해야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맥박을 재고 혈액 흐름을 측정할 수 있는 많은 의료기기가 있다. 여기에 어떻게 감성적, 사회적 기능을 더할 수 있을까? 많은 영유아들이 집에서 잠을 자다가 돌연사한다. 돌연사증후군(sudden infant death syndrome)이라는 병인데 부모의 마음이 찢어진다. 즉, 이때 부모에게 필요한 기능은 무선으로 영아들의 맥박을 계속 측정하며 동시에 이 과정을 대화하듯 부모에게 상세히 알려주는 기계다. 만약 병원의 의사나 행정가에게 맥박 측정기기를 얘기한다면 그들은 측정이 잘되고 데이터가 잘 쌓이는 제품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원하는 건 완전히 다른 기능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항상 안전하기를 바라고 그 과정을 끊임없이 전달받고 싶어 한다. 그 감성적 측면을 잘 봐야 한다.

이런 무선기기를 작동하는 애플리케이션에 ‘모든 게 다 괜찮아(It’s all right)’라는 작은 심벌을 붙여놓으면 어떨까? 아무 것도 아닌 이 한마디에 부모가 얼마나 안도하는지 아는가? 부모는 아이의 맥박 숫자가 얼마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를 원한다. 이 심벌은 부모에게 기능이나 데이터를 주지 않는다. 줄 필요도 없다. 부모가 원하는 건 ‘데이터’가 아니라 자식의 안전을 끊임없이 확인받으려는 ‘감성적’ 욕구니까.



김태영 훌륭한 비전을 가진 많은 기업이 있는데 다른 기업이 이를 어떻게 따라할 수 있을까?

베르간티 비전이 강한 회사는 회사 고유의 정체성(identity)도 강하다. 대표적으로 애플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애플의 휴대폰 종류는 불과 4개다. 반면 노키아는 무려 72개가 있다. 제품 라인업이 72개나 되면 모든 것이 굉장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회사의 정체성이 뚜렷하지도 않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를 모방하고 싶으면 일단 실험을 해보라. 모든 실험을 다 해볼 수는 없지만 첫 번째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서 결코 멈추면 안 된다.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비전과 실험이다. 어떻게 실험하고, 그 실험의 과정에서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전략 전공 교수이니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월마트와 마이크로소프트(MS)를 보자. 월마트는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독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MS도 마찬가지다. MS의 네트워크 효과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나는 어떤 기업의 혁신이 막 시작 단계일 때는 경쟁 우위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혁신을 원하는 기업이 동시에 경쟁 우위까지 추구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시작 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굉장히 급진적이기 때문에 자사의 경쟁 우위가 무엇인지 그 기업조차 잘 모른다.

샘 월튼이 월마트를 창업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떤 경쟁 우위를 가질지 몰랐다. ‘어떤 물품을 굉장히 싼 가격에 많이 판매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즉 월마트는 자사에 경쟁 우위를 가져다 줄 시스템을 만든 게 아니라 돈을 벌다 보니까 그 결과물로 ‘경쟁 우위’가 나타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빌 게이츠가 MS를 창업했을 때 운영체제(OS)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프로그램을 위한 툴을 만들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엄청난 경쟁우위를 가져왔을 뿐이다. 애플과 사우스웨스트항공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비전을 가지고 자신들의 경쟁 우위를 만든 게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

급진적이고 급속한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어떤 기업이 얼마나 빨리 학습하고 기회를 포착하느냐가 경쟁 우위를 만든다. 남들보다 빨리 불확실성이라는 안개를 날려버리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앞서 강연에서 푸른색 기업과 붉은색 기업의 차이에 대해 말했다. 평상시에는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어떻게 그 목표에 닿을 것인가를 열심히 준비하는 푸른색 기업처럼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어떻게 도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서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가 중요하지 않다. 일단 빨리 도달하는 게 중요하다.

김태영 베르간티 교수에게 질문하겠다. 교수님의 말을 듣고 보니 ‘비전을 세우는 일’이 ‘실험을 많이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교수님은 비전을 세우고 이를 조직 내에 전파할 통역사를 잘 골라야 조직의 전체 비전을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이 통역사를 어떻게 하면 잘 고를 수 있을까?

베르간티 첫째,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고객이나 제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동아비즈니스포럼을 예로 삼아볼까? 단순히 포럼에 참석한 참가자들로부터만 이야기를 듣지 말고 강연장 밖에서 음식을 준비하시는 분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서 이 포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포럼이 어땠는지 의견을 들어라. 동아비즈니스포럼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여러 각도로 고객에게 접근해야 한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이번 포럼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똑같은 주제를 논하지만 그 주제를 보는 각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도전하고 비판하는 사람을 골라라. 언제나 “네”만 되풀이하는 예스맨은 필요 없다. “항상 당신의 아이디어가 옳다. 당신 말이 맞다”는 사람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완전히 반대로 당신에게 끔찍한 비판을 하는 사람, 즉 “너 완전히 바보 멍청이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개인적으로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창의적으로 행동하라고 가르치면서 왜 비판적으로 행동하라고 가르치지 않는지 궁금하다. 나는 늘 ‘어떻게 하면 기업가들에게 좀 더 비판적인 조언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비판적 피드백을 주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제자들과 이런 경험을 자주 하는데 A학생에게 프로젝트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라고 한 후 B학생에게 이 프로젝트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해보라고 한다. 100%가 “좋다” 혹은 “나쁘다”는 식의 단순한 대답만 한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깊게 들어가서 심오하게 문제를 훑고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김태영 실험과 실패의 중요성을 말했는데, 이에 따르는 비용은 어떻게 감수해야 할까. 기업이 무한대로 실험을 거듭하고 실패 비용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이다. 많은 임원들이 “어떻게 하면 사내 실험의 비용을 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많은 기업의 임원들은 실험을 무조건 돈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실험의 의미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내가 만약 제니퍼 하이만의 사업모델로 창업을 했다면 나는 제니퍼보다 돈을 더 많이 썼을 것이다. 드레스를 직접 사고 웹사이트를 구축하느라 돈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퍼는 옷을 사지 않고 빌렸고,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대신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돈이 많이 들지 않았다. 즉 많은 돈을 쓰지 않고 실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제프 베저스 아마존 창업자와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우리는 실험 비용을 낮추고 실험 숫자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실험 숫자를 1000개까지 늘릴 거다”라고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일반 대기업에서는 실험 횟수를 0에서 2로 늘리는 것도 엄청 어려운데 실험 숫자를 1000개로 늘린다니? 그게 말이 돼? 가능해?’ 그런데 가능하다. 제니퍼 하이만처럼 하면 된다.

어떤 대기업에서 젊고 의욕적인 직원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실험을 시도하려고 한다. 임원에게 이 아이디어를 보고하면 임원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1000만 유로를 할당해야겠네.” 이건 완전히 잘못된 접근법이다. 1000만 유로(약 125억 원)를 지출하는 것은 실험이 아니라 피를 흘리기 위한 급진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사고방식을 바꾸어라. 아무도 그런 큰돈을 들여서 실험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실험이 될 리가 없다. 일반 대기업에서 말단 직원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실험을 하려면 못해도 최소 15단계의 결재를 맡아야 한다. 그럼 결국 실험을 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된다. 겨우 500달러를 얻으려고 결재를 15번 받아야 한다면 누가 실험을 하겠는가.

그러면 안 된다. 회사의 기존 인프라 안에서 큰돈을 들이지 않고 실험을 할 만한 여건을 만들어라. ‘우리 회사가 보유한 자원과 인프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말단 직원이 빠른 속도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을 도와줘야 할까?’를 고민해라. 실험을 할 만한 기존의 플랫폼을 잘 활용하는 것이 우선이다.

김태영 한국의 대기업은 하향식, 관료주의적, 수직적 조직문화가 강하다. 중간관리자의 재량권이 거의 없다. 이런 환경에서 혁신이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베르간티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비디오게임 X박스 스토리에 대해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MS 또한 매우 수직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조직이다. 거대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10대들을 위한 게임기기 하드웨어를 만들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 아이디어를 누가 만들었을까? 빌 게이츠 창업자가 만든 게 아니다. 불과 4명의 급진적인 MS 직원들이 만든 제품이다. 그 4명이 원래부터 친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4명 중 한 명은 X박스 실험 한 달 전에 고용됐다고 한다.

그 4명이 처음 이 아이디어를 스티브 발머 당시 최고경영자(CEO)에게 말했을 때 발머 CEO는 그냥 웃었다고 한다. “이게 말이 돼? 윈도에서 호환이 안 될 텐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4명은 이에 굴하지 않고 6개월간 작업을 계속했고 훌륭한 제품을 내놨다. 많은 실험을 했을 것이고 시제품도 여러 개 내놨을 것이다. 결국 성공했다.

나는 조직의 크기나 조직 문화가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조직에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있다. 과정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다. 언제나 길은 있다.

동감한다. X박스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임원들은 원래 “할 수 없어”라는 말부터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혁신을 얘기하면 “나는 혁신을 하고 싶은데 내 상사가 못하게 해. 우리 회사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안 돼.”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이 가능하려면 중간관리자 혹은 조직에 있는 누군가가 “내가 할 거야. 내 위에 있는 사람들 중 이 아이디어를 실험할 사람을 찾을 수 없으니 내가 직접 하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못한다. 실패할까봐 두렵고, 윗사람이 야단칠까봐 두렵고, 내 커리어가 망할까봐 두려워서다. 이 정도의 예측 가능한 장애물을 돌파하지 못하면 안 된다. 여러분이 원하는 커리어가 무엇인가? 뻔한 직장에서 뻔한 일만 계속하는 그런 커리어를 원하는가? 아닐 것이다. 베르간티 교수의 말처럼 모든 것을 다 바꿔버리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럼 경계선을 넘어서 돌진해야 한다.

물론 많은 조직이 하향식, 수직적 위계질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한 엄청난 불확실성은 기존 질서 자체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달라져야 한다. 과거 대기업들은 최적화라는 프레임워크 속에서 안전하게 생존했다. 과거에는 “고객들이 차를 원한다. 어떤 제품을 만들까?” “그래. 어떤 색의 차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뭐 이런 뻔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고객이 차가 아니라 다른 것을 시시각각 원하는 환경이다. 거기에 맞서 싸우려면 획일화되고 기존의 것을 답습한 사고를 버려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스스로 탐색하고 조직 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라. 많은 대기업, 많은 임원들은 선택을 안 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선택하고 실험하면 여러분 스스로가 챔피언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이 회사를 끌고 가는 것이다.



베르간티 혁신적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려면 겸손함이 필요하다. 제가 만난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내 상사가 이를 믿어주지 않아요. 내 상사는 멍청이에요. 완전히 눈이 먼 바보예요.”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상사=나쁜 사람’이라는 프레이밍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혁신을 하고자 하면 겸손해야 한다. 여러분이 어떤 아이디어를 상사에게 처음 말했다고 하자. 99%의 확률로 상사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을 하자마자 상사가 흔쾌히 ‘오케이(OK)’했다면 여러분이 그 아이디어를 말하기도 전에 누군가 이미 이를 실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상사를 끊임없이 설득시키고, 그의 비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지속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여러분의 상사가 여러분의 아이디어에 ‘아니다’라고 하는 이유는 그가 바보여서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의 콘셉트가 그만큼 명확하지 않아서다. 겸손은 좋은 비전의 씨앗이다.

어떤 대기업을 컨설팅하면서 겪은 일이다. 그 회사는 업무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회의에 가서 “디지털 전환은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낙담하지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내가 그때 얼굴을 붉히고 화를 냈다면 어떻게 될까? 그랬더니 얼마 후 한 분이 나를 찾아와 “당신과 일하고 싶다.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팀과 6개월간 그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해당 대기업에서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상대방은 바보가 아니다. 내가 겸손해야 내 아이디어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

맞다. G메일의 예를 볼까? G메일을 처음 생각했던 사람이 구글의 본인 상사에게 가서 “e메일에 검색 기능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상사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거절했다. 다만 그 상사는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를 무조건 없애는 대신에 “구글 안에서 너의 아이디어에 동의하는 좋은 사람을 10명 찾아오라”고 주문했다. 이 개발자는 10명을 모아서 상사에게 다시 갔다. 이번에는 그 아이디어가 통과됐다. 하지만 G메일 실험을 처음 시작했을 때 구글 안에서도 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에 개발자의 상사는 개발자에게 “이 아이디어에 동의하는 사람을 100명 찾아오라”고 주문했고 개발자는 이를 완수했다. 이런 지속적 과정을 거쳐서 G메일이 탄생한 것이다.

김태영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아보겠다. 첫 번째 질문자는 ‘한국 제조기업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를 물었다.

나는 조언보다는 방향(direction)을 알려준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떤 기업에게 A라는 조언을 해 준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애플이 될 수는 없다. ‘애플이 되어라, 필립스처럼 해라.’ 이건 비전이 아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어떤 단체나 조직이건 해당 기업의 문제와 해결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 기업의 직원들이다. 여러분의 비전은 여러분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방향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소규모의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태영 두 번째 질문은 “한국 기업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혁신에 장애가 될까요?”라는 물음이다.

베르간티 앞서 말했듯이 조직 위계질서 그 자체가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X박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가장 보수적인 기업에서도 내부에 저항 세력이 있으면 해당 기업의 전략에 반하는 방법으로 멋진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다. 설득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설득이 없다면 조그마한 배를 지을 수 있지만 설득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면 커다란 군함을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성공할 가능성은 커진다.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 | -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혁신 경영 전공 교수
    - 기업의 전략적 혁신을 돕는 컨설팅회사 프로젝트 사이언스(PROJECTSCIENCE 설립자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네이선 퍼(Nathan Furr) 네이선 퍼(Nathan Furr) |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교수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 김태영 김태영 | -(현)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교수
    -(전) 홍콩과기대(HKUST) 경영학과 경영전략 담당 교수
    mnkim@skku.edu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