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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 퍼 교수 강연

완벽한 솔루션은 한 번에 안 나와. 일단 만들고 실험하고 부딪쳐라

네이선 퍼(Nathan Furr),하정민 | 216호 (2017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크고 변화 속도도 빠른 시대에는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는 스타트업 마인드로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
- 완벽한 해답을 추구하지 말고 실험을 지속하라. 프로토타입(prototype) 생산에 주력하라.
- 단 한 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 고객에게 감정적,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라.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진세현(경희대 컨벤션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내가 너무 젊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스타그램 창업자들이 바로 내 제자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었다(웃음).

많은 대기업 경영자들이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 회사는 기성 대기업인데 스타트업처럼 운영하고 싶어요. 업무 추진 속도도 확 높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방금 말씀하신 그 아이디어를 직원들과 공유하셨나요? 과연 직원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이때 임원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직원들이 ‘회사에 제가 원하는 대로 옷을 마음대로 입고 와도 될까요? 재택근무를 해도 되나요? 스타트업처럼 저에게도 회사 지분을 주실 건가요?’라는 말부터 하더라는 것이다. 직원들과 자신들의 생각 차이가 현저하게 크다는 것이다.

이 간단한 대화에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모든 얘기가 들어 있다. 진짜 스타트업이 무엇인지, 스타트업처럼 행동하고, 사고하고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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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 퍼(Nathan Furr) 교수는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교수다. <이노베이터 메소드(Innovator Method)>의 저자로 혁신 및 기술 전략, 특히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들이 기술적 변화와 혁신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드레스 대여업 창업 사례

제니퍼 하이만은 경영대학원(MBA) 재학생이었다. 어느 날 그가 집에 갔는데 제니퍼의 막내 여동생이 지인의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니퍼가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왜 매번 남의 결혼식을 위해서 비싼 드레스를 사야만 할까? 한 번만 입고 말 건데 말이지. 차라리 드레스를 빌려 입고 결혼식에 가자!”

제니퍼는 고급 디자이너의 옷을 온라인으로 구매해 하루 입고 다시 우편으로 반납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아이디어에 ‘렌트더런어웨이(rent the runaway)’라는 이름도 붙였다

제니퍼는 당장 아이디어를 실험했다. 친구들로부터 옷을 잔뜩 빌린 후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큰 댄스 파티가 열렸을 때 여자들에게 ‘이 옷을 한 번 빌려서 입어보세요’라고 광고를 한 것이다. 광고를 본 사람 중 35%가 옷을 빌렸고 옷을 빌린 사람 중 96%가 옷을 좋은 상태로 반납했다.

이런 일을 일주일 정도 되풀이하면 실제 비즈니스를 진행할 만한 데이터가 쌓인다.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벌써 창업 자금을 마련하고 팀을 꾸렸겠지만 제니퍼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실험을 했다. 왜냐면 처음에는 옷을 빌린 여성들이 직접 옷을 입어봤지만 두 번째 실험에서는 옷을 입어보지 않고서도 빌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제니퍼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 예일대로 가서 실험을 진행했다. 처음 실험 때보다 2배 정도 많은 옷을 빌렸다. 이번에는 광고를 본 사람들의 55%가 옷을 빌렸고 100%가 좋은 상태로 반납했다.

제니퍼는 세 번째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아예 뉴욕시로 가서 옷을 빌려준다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광고를 본 사람들의 5%가 옷을 빌렸고 그 중 98%가 좋은 상태로 옷을 반납했다. 제니퍼는 비슷한 실험을 계속하다가 이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제니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신속하게 실험을 했고 이를 창업으로 연결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처럼 고도의 불확실성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세스이고 테크닉이다. 만일 제니퍼가 처음 ‘렌트더런어웨이(rent the runaway)’ 아이디어를 자신의 MBA 동료나 교수에게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절대 이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니퍼의 실험은 단순한 창업 테크닉이 아니다.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제니퍼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문제가 뭔지, 이를 통해 어떤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지,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등등에 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실험부터 한 것이다. 이게 바로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한 최고의 기술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외적 불확실성도 너무 크고 규제와 경쟁도 심하다. 기술의 변화 속도, 사회 전반의 전환 규모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빠르다. 이런 시대에서는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는 스타트업 마인드로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



슬론 vs. 듀랜트

우리가 잘 아는 대기업들의 생애주기를 보자. 1937년에 미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회사의 생애 주기는 무려 75년이었다. 1937년은 대공황 직후여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는 데도 기업의 생애주기가 무려 75년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18년에 불과하다. 대기업의 흥망성쇠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창업자라 해도 그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해당 기업을 운영하면 다른 스타트업에 먹히는 시대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와 이야기를 나눴더니 그가 대뜸 “당신이 경영대학원 교수인 것을 알지만 나는 MBA 졸업자 채용을 꺼린다. MBA 교육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창업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내가 존경하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스캇 쿡도 비슷한 말을 했다. “MBA 졸업생이 우리 회사에 왔을 때 감명받았던 기억이 없다. 회사에서 그들을 완전히 새롭게 재교육을 시켜야만 했다.”

훌륭한 CEO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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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을 보면 두 명의 훌륭한 남성이 있다. 혹시 왼쪽의 이 사람을 아는가? 그렇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을 만든 알프레드 슬론(Alfred P. Sloan)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현대 경영의 아버지로 칭송한다. 실제 그는 ‘큰 조직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경영할 것인가’를 가르친 사람이다. 슬론재단도 있고 모든 사람이 슬론을 안다.

하지만 오른쪽 사람은 어떤가? 잘 모르겠는가? 제너럴모터스(GM)의 공동 창업자 윌리엄 듀랜트(William C. Durant)이다. 듀랜트는 훌륭한 기업가이고 굉장히 많은 돈을 벌었다. 사람들이 자동차라는 개념도 잘 이해하지 못할 때 자동차라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것을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좋은 경영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GM 이사회가 그를 축출했다. 쫓겨난 듀랜트는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 즉 쉐보레를 만들어 또 성공시켰다. 이를 통해 번 돈으로 GM의 경영권을 다시 사들이고 복귀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사회에 의해 또 축출되고 말았다.

듀랜트가 두 번째 축출된 후 GM을 경영한 사람이 바로 알프레드 슬론이다. 많은 현대인이 슬론을 알지만 듀랜트는 모른다. 왜 그럴까?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어떤 경영자는 이를 해결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경영자와 아닌 사람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전에 경영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든 기업은 소기업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술이 소기업의 세계를 대기업의 세계로 바꿔버렸다. 거대한 생산라인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사람, 즉 경영자가 필요했다. 이게 오늘날 경영의 시초다.

알프레드 슬론과 제니퍼 하이만은 불확실성을 관리한 경영자다. 슬론은 창업자가 두 번이나 쫓겨난 조직을 훌륭하게 관리해서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로 탄생할 기반을 마련했고 제니퍼 하이만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거듭된 실험으로 창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통적 경영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리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는 설사 과거 큰 칭송을 받았던 슬론과 같은 경영자라 해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푸른색 기업 vs. 붉은색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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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를 보면 두 종류의 기업이 있다. 푸른색 기업은 흠 없이 완벽하고, 꽉 짜여져 있고, 실패를 피하는 실행 중심 기업이다. 경제주기에 따라 계획을 하고 파워포인트로 회사를 설명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적을 때 적합하다. 반면 붉은색 기업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많이 한다. 또 행동 중심이고 몰입력이 대단하지만 결코 연속적이거나 체계적이지는 않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붉은색 기업은 불확실성이 높을 때 적합하다.

푸른색 기업과 붉은 색 기업에 해당하는 두 유명인을 살펴보자. 여기 미국 물리학자 겸 발명가 새뮤얼 피어폰트 랭리(Samuel Pierpont Langley·1834∼1906)와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의 사진이 있다. 랭리는 당대의 유명 학자였고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친구였다. 미국 정부가 그에게 비행기를 만들라며 어마어마한 돈도 후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곧 비행기를 날릴 것으로 믿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녔다.

랭리는 전형적인 푸른색 기업처럼 일했다.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준비를 하고, 자신의 네트워크와 많은 제자들을 동원해 집채 만한 거대한 비행기를 날리려고 실험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의 비행기는 너무 무거웠고 하늘로 올라가기도 전에 추락했다. 랭리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실험을 또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결과는 같았다. 당시 는 이런 기사를 썼다. “우리는 최소 100년이 지나야 비행기라는 물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랭리의 실험이 실패한 후 불과 90일 만에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날렸다. 그들은 어땠을까? 라이트 형제는 가난했고, 지인도 없었으며, 랭리 교수처럼 정규 공학지식이 대단했던 것도 아니다. 어떤 언론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한적한 바닷가인 키티호크에서 하루에 다섯 번씩 작은 비행기를 날리는 실험을 했다. 랭리 교수는 불과 두 번만 큰 비행기를 날리는 실험을 했지만 라이트 형제는 작은 비행기를 수천 번, 수만 번 날리는 실험을 했다.

즉 라이트 형제는 전형적인 붉은색 기업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일단 작은 시제품(prototype)을 만들고 이것이 시장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끊임없이 실험한 끝에 성공을 이뤄낸 것이다. 이게 바로 혁신의 비결이다.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하라

이렇듯 기업에서 혁신이 가능하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 바로 사람, 프로세스, 철학이다. 이 3가지를 어떻게 구비할 수 있을까? 바로 린스타트업(lean startup) 개념이 필요하다.

린스타트업은 짧은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본 다음 제품에 반영하는 것을 반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론을 말한다. 일본 도요타의 ‘린 제조방식’을 벤처 경영에 접목한 용어로 미국 벤처기업가 에릭 리스(Eric Ries)가 처음 사용했다.

리스는 시장에서 제품이 성공할 가능성을 점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최소 요건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내놓고 고객에게 빠른 피드백을 받아 이를 발전시키라고 제안한다. 고객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제품 개발 단계에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 자원, 역량이 낭비되는 것을 막으라는 취지다. 나도 비슷한 말을 하고 싶다. 지금 대기업 역시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혁신과 신사업 창출이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린스타트업이라는 빠른 대응으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혁신을 이루려면 빠른 실패(fail fast)가 불가피하다. 추상적인 추측보다는 실제 고객 사용 사례를 토대로 제품을 결정해야 하고,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남들보다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물론 빠른 실패는 위험을 꺼리고 위계질서가 강한 대기업에는 큰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피할 방법은 없다. 이제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코닝웨어의 세라믹 글라스가 어떻게 발명됐는지 아는가? 세라믹 글라스는 아주 단단해서 요리 그릇을 만드는 재료뿐만 아니라 미사일에도 쓰인다. 이를 발명한 사람은 컴퓨터회사 델에서 일하던 직원이다. 어느 날 오후에 그는 간식을 먹으려고 음식이 담긴 유리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하지만 실수로 오븐 온도를 원래 맞춰야 할 온도보다 무려 2배나 높여버렸다. 그는 생각했다. ‘아, 유리 조각을 어떻게 다 치우지? 내 오후 시간은 다 망가졌어.’

그는 당연히 전자레인지 안에서 유리 그릇이 산산조각 났을 것으로 예상하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전자레인지를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리가 얇은 종이 같은 새로운 형태로 변형돼 있었던 것이다. 집게를 집어서 들어야 할 정도로 얇은 유리가 전자레인지 안에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얇은 유리막을 바닥에 떨어뜨렸는 데도 깨지지 않았다. 그는 ‘왜 유리가 안 깨졌지?’를 고민하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세라믹 글라스를 만들었다.

이 일화는 창의성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준다. 많은 이들이 창의성을 일종의 DNA로 여긴다. 하지만 창의성은 ‘유전적 형질’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찰하고, 실험하고, 이를 모아 연상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혁신가의 자질이고 혁신의 비결이다.

로열더치셸을 자문할 때 새로운 채굴법을 발명한 엔지니어를 만났다. 알다시피 채굴이 가능한 원유 지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굉장히 깊은 땅 속에 조금 들어 있는 원유를 파내려면 그 주변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야 한다. 지질학적으로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다. 이 엔지니어는 어느 날 집에서 자신의 아들이 빨대를 빨아들이며 노는 모습을 보고 이를 원유 채굴에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폐기물이 훨씬 적으면서도 더 많은 원유를 빨리 채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냈다. 혁신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사랑으로 바라봤을 뿐인데도 원유 채굴에 빨대를 연결했으니 말이다.
 


완벽한 해답은 없다

통찰력을 얻으려면 끊임없이 어떤 사안을 주의 깊게, 정말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뒤이어 무조건 해답(solution)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너무나 많은 사람이, 너무나 많은 기업이 단 한 번에 완벽한 솔루션을 얻으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 고객은 완벽한 솔루션이 아니면 원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시제품(prototype)부터 만들어라. 시제품을 만드는 데 많은 돈과 오랜 기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일단 만들어라. 불완전한 상태라 해도 상관없다.

벽에 그림을 걸고 싶어 하는 고객이 있다고 하자. 이들이 원하는 것은 벽에 구멍을 뚫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거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은 이 고객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올바른 드릴을 살 수 있을까요? 이를 알려드리죠’라면서 그 고객이 하루 종일 드릴 가게에서 시간을 낭비하도록 만든다. 그건 문제 진단도 잘못됐고 해결책도 잘못된 것이다. 벽에 구멍을 뚫는 법을 꼭 드릴회사가 알려줄 필요는 없다. 신용카드회사가 알려줄 수도 있다. 어차피 그 고객이 원하는 건 5분 안에 벽에 그림을 거는 것이다. 즉 드릴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요구하는 기능적, 사회적, 감정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깊이 관찰하고, 이를 통해 얻은 통찰을 실험하라.

여기 두 대의 오토바이가 있다. 혼다와 할리데이비슨 제품이다. 두 제품의 차이가 보이는가? 혼다가 1950년대 할리데이비슨이 있는 하이엔드 시장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시장점유율이 작았지만 소비자들이 저렴하고 소음이 적고 가벼운 혼다 오토바이에 호감을 보이면서 할리데이비슨은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다. 할리 오토바이는 비싸고, 소음도 크고, 기름 낭비도 심했으니까 말이다.

이때 할리데이비슨 임원들은 생각했다. “우리 제품은 휴가 때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기능적 역할에 불과하다. 반면 아름다운 여성을 유혹할 수 있고 부자들의 클럽에 초대받을 수 있는 도구, 즉 ‘신분 상승을 가능케 해주는 오토바이’라는 콘셉트는 남성 고객에게 사회적, 감성적 의미를 제공한다.” 할리가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이 사회적, 감성적 역할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감성적 역할을 강화하려면 지금 많은 기업들이 하는 것처럼 분석하고 자료를 만들면 될까? 아니다. 문제를 깊게 이해하고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고,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고민하라. 고객이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완벽한 솔루션을 원할 것이라고 가정하지 마라. 덫에 빠지지 마라.

안경에 가상현실(VR)을 접목한 구글글라스를 보자. 구글글라스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을 것 같으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6개월” “2년”을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구글글라스 개발 팀은 단 하루 만에 이를 완성했다. 안경, 작은 프로젝터, 컴퓨터를 연결한 게 전부였다. 엉성하고 어설펐지만 단 하루 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혁신은 어떤 마법이 아니다. 대기업에는 없는 것도 아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같은 대기업 안에서도 얼마든지 혁신이 가능하다. 유연한 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끊임없는 실험, 빠른 피드백을 중시하라.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요구하는 기능적, 사회적, 감정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깊이 관찰하고, 이를 통해 얻은 통찰을 실험하라. 혁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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