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사용자 경험 혁신
Article at a Glance
19세기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백화점은 전 세계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백화점 업체들이 위기 타개책을 찾고 있지만 성공을 거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지난 8월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판다’는 콘셉트로 유통업계 전반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고객들에게 ‘강렬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2) 남성을 ‘쇼핑의 걸림돌’에서 ‘적극적 주체’로 바꿨다. 3) ‘백화점에 대한 충성도’를 만들어 고가 제품에 대한 저항을 없앴다. 향후 판교 백화점이 지금의 초기 성공 국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경쟁자 수를 줄여 충성도를 유지시켜야 한다.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원철(건국대 기술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승연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광고와 프로모션 분야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했으며 VIP 마케팅, 한식세계화 마케팅 등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백화점 사업은 19세기에 개발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20세기 여러 나라의 폭발적 경제성장과 중산층 급증 속에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21세기에 사회 계층구조와 소비패턴이 바뀌면서, 또 IT·모바일 혁명이 확산되면서 ‘낡은 비즈니스 모델, 20세기형 유통채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각국에서 ‘백화점의 위기’는 새로운 현상이 아닐 정도가 됐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주요 백화점 3사의 영업이익은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그림 1), 평균 구매단가 역시 2011년 이후 급락하고 있다. (그림 2)
‘백화점, 사실상 365일 세일 체제’라는 내용의 기사가 주기적으로 경제·산업뉴스를 장식하고 있고, 백화점을 ‘쇼룸’으로 활용하고 실제 구매는 인터넷을 비롯한 다른 유통채널에서 하는 ‘쇼루밍 현상’도 고착화됐다.1 이처럼 수치와 구체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위기는 ‘백화점’이 갖는 상징성과 브랜드의 약화다. 단군 이래 가장 중산층이 두터웠던 시기로 불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백화점은 ‘세련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현재 백화점은 다소 ‘올드한 채널’이라는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세계백화점을 필두로 많은 백화점들이 지하 매장을 대폭 개편해 젊은 취향의 식료품과 음식 매장을 만들고 유명 브랜드를 유치했지만 의도했던 만큼의 ‘분수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의문이다. 주로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는 20대 연인들과 30대 젊은 부부들이 넘쳐났지만 2층 이상 올라갈수록 ‘딸이나 (예비) 며느리와 우아하게 쇼핑을 즐기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주로 눈에 띌 뿐이었다.
전체적인 구매단가와 수익의 하락, ‘백화점’이 주는 기존 ‘고급’과 ‘세련됨’의 이미지 약화 등으로 굳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지 않더라도 한국의 백화점 업계는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돌파구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5년 8월 말 경기도 판교에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오픈한 지 넉 달 만에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단순히 매출이 급신장한 것이 핵심이 아니다. ‘백화점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구매고객 수 기준으로 일반적인 백화점의 평균 연령대별 비중을 살펴보면 20∼40대가 40% 내외다. 그런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같은 연령대의 비중이 70%가 넘는다. ‘젊은 백화점’이고 2040세대의 명실상부한 ‘핫 플레이스’다. 이는 단순히 판교 지역에 강남에 직장을 두거나, 판교테크노밸리 등에서 일하는 고소득 2040세대가 많고, 이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2040세대는 수많은 인터넷과 모바일 유통채널은 물론, 교외지역의 아웃렛을 마치 나들이하듯 찾는 세대로, 백화점 하나 들어섰다고 곧바로 그곳을 찾을 유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방문객 추이를 살펴보면 판교 지역 사람들만 찾는 것도 아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100일간 판교점을 방문한 고객 수는 약 1000만 명, 구매 고객 수는 400만 명인데 이 중 절반은 10㎞ 이외의 지역에서 ‘핫 플레이스로의 나들이’ 개념에서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찾은 사람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DBR이 오픈 넉 달 만에 유통업계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백화점, 상품이 아니라 경험을 팔다
1. 노골적인 쇼룸이자 ‘체험공간’으로서의 백화점
예전부터 유통 전문가들은 백화점을 ‘물건을 사는 공간’, 코엑스몰과 같은 복합 쇼핑몰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즐겁게 놀고 체험하는 공간’의 개념을 도입했다. 백화점이 ‘쇼룸’처럼 활용되는 걸 억지로 막을 방법을 고민한 게 아니었다. 이 모든 건 앞서도 설명한 바 있는 ‘엄청난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19세기에 개발된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에 봉착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모험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판교점은 현대백화점 그룹에게는 거대한 실험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실험을 결정하면서 현대백화점그룹 임직원들이 공유한 명제는 다음과 같다.
“백화점이 고객을 변화시킬 수 없다. 쇼루밍은 고객변화 현상이고 백화점은 단지 그 변화에 맞춰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다. 현상의 원인을 해석하고 대응해야지 고객을 변화시키려 해선 안 된다.”
이 명제를 공유하면서 전략을 다시 짰다. 쇼룸이든, 뭐든 일단 고객이 와야 비즈니스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부지도 그 어느 곳보다 넓었다. 무엇을 어떻게 채우든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다양한 의견이 도출됐다. 아예 거대한 복합 쇼핑몰로 만들자는 얘기도 있었고, 하이엔드 프리미엄 백화점으로 가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다른 백화점에서 이미 모두 시도해 본 것들이었다. 위기의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도 판명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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