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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a & Business

삼성·애플은 스마트폰 생태계 만들고 꼬꼬면은 빨간라면 틀을 못 깼다

한상엽 | 182호 (2015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신제품이 기존 제품을 밀어내고 시장 주도권을 잡는 모습은 자연 생태계에서 외래종 혹은 돌연변이종이 자리 잡는 모습과 흡사하다. 어느 정도 임계치에 이를 때까지는 신규종 간의 경쟁보다 협업이 중요하다. 피처폰에 대항해 스마트폰을 함께 밀었던 삼성과 애플은 성공했고, 자기들끼리 경쟁했던 하얀 라면(꼬꼬면, 나가사끼 짬뽕, 기스면)은 실패했다. 다음의 두 가지생태 함정도 주의해야 한다.

1) 인식 함정

주변 상황의 변화와 신규 진입자의 성장을 인식하지 못하고 예전의 생태환경과 경쟁구도에 집착하는 상황. 북아메리카에서 멸종해버린 초원뇌조, 피처폰에 집착한 노키아 등.

2) 생태 함정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태계에서 초기 성공에 도취된 신규 진입자가 이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 블랙베리의 몰락 등.

  

 

2011 8, 라면시장에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KBS 2TV ‘남자의 자격 - 라면의 달인코너에서 이경규가 개발한 하얀 국물 라면인꼬꼬면이 제품으로 출시된 것이다. 꼬꼬면 이전의 라면시장이 농심의 신라면이 지배하는 준()독점시장이었다면 하얀 국물이라는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를 새롭게 해석한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은 출시 직후 시장에서 품귀현상을 보일 정도로 소비자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냈다.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하얀 국물 라면의 습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AC닐슨 조사에 따르면 하얀 국물 라면의 시장점유율은 2011 12 17.1%로 최대치를 찍은 후 2012 4 7.9%까지 급락했으며 2014년 말에는 거의 2%대로 떨어졌다.

 

신기술 및 신제품의 습격(invasion)과 이에 대한 기존 시장지배기술의 방어기제(defensive articulation mechanism) 작동은 기업경영 환경에서 자주 목격된다. 신생기업이나 후발기업은 새로운 기술이나 신제품 출시를 통해 기존 시장지배를 흔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고, 기존의 시장지배기업들은 이런 시장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어해야 한다. 최근의허니버터칩의 경우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어떤 기업은 기존 기술의 고도화만으로도 시장에서 충분한 성공을 거두는 반면 어떤 기업은 아무리 좋은 신기술과 제품을 내고도 소비자에게 외면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동안 많은 기술경영 학자들이 다양한 이론과 사례들을 분석했으나 실제 기업의 의사결정 패턴을 분석한 과학적 모형의 제시는 부족했다. 살아남는 기술/제품과 도태되는 기술/제품의 차이는 뭘까? 필자들은 진화생태학 및 진화경제학의 관점에서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 모형을 구성해봤다.

 

 

 

 

 

진화생태학의 세 가지 키워드: 돌연변이, 공존, 경쟁

20세기 초, ‘창조적 파괴로 대변되는 슘페터의 저서 <경제발전이론(The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을 보자. 원서 제목은로 영어에서는 development로 번역된 entwicklung은 독일어에서는 이중적인 의미로발전이라는 의미 외에진화(evolution)’의 뜻도 담고 있다. 슘페터는 이 책에서경제의 발전은 이전의 방식보다 더 나은 방식의 새로운 조합의 불연속적인 출현으로 이끌어 진다라고 주장했다. 기업의 기술혁신과정은교접(interbreeding)’을 통한 돌연변이(mutation) 생성’ ‘공존(cooperation)을 통한 생태계의 형성’ ‘경쟁(competition)을 통한 비교우위 확보라는 세 가지 진화과정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59년 출판된 다윈의 <()의 기원>의 핵심은 자연생태계의 한정된 자원 조건에서 특정 종의 생존 및 그 종의 원활한 번식을 위해서는 종들 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은 필연적이고, 이를 통해 좀 더 적응력이 높은 종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즉 기존에 없던 새로운 돌연변이종이 우연히 출현하거나 다른 생태계로부터 외래종이 침입하게 되면 그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돼왔던 기존의 생태계는 극심한 변화압력을 받게 된다. 이런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까지 그 생태계를 지배하던 지배종은 개체 수가 감소하거나 심한 경우 멸종까지 맞게 된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이론을 우리의 관심사인 기업생태계에 적용해 보자. 시장지배기업이 되려면 해당 기업은 동일 산업군 내에서 경쟁기업과 공존하면서 비교우위도 가져야 한다. 또한 생존에 유리한돌연변이를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최적의 기술경영전략이다.

 

 

위에서 언급된 라면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2011 8, 한국야쿠르트가 기존 라면기술과는 상이한, 돌연변이에 해당하는 기술을 적용한꼬꼬면을 출시하자 삼양에서도 거의 동시에나가사끼짬뽕을 출시했다. 두 업체가 하얀 국물 라면으로 새로운 시장을 빠르게 형성해 나가자 같은 해 11월에 오뚜기의기스면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라면생태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업체들의 행보가 이어졌다.

 

한국야쿠르트, 삼양, 오뚜기의 3개 기업들이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모두 하얀 국물이라는 공통분모를 내세워 공존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제품들이 서로 다른 비교우위의 확보를 고민했다. ‘꼬꼬면은 기존의 쇠고기맛 수프 대신 닭고기 육수맛 수프를 라면에 교접했고, ‘나가사끼짬뽕은 닭과 돼지뼈를 우린 육수를 교접했으며, ‘기스면꼬꼬면과 동일하게 닭육수를 활용했으나꼬꼬면과는 다르게 면발에 중국식 가는 면을 교접했다. 이렇듯 3사는 작지만 분명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얀 국물이라는 공통분모로 공존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생태계 안에서의 비교우위 확보를 위해 철저하게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들 하얀 라면은 빨간 라면을 이기지 못했고 라면 시장의 주류가 되지 못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차근히 살펴보자.

 

 

 

진화함정과 생태함정

생태계에서는, 또 시장에서는 어떤 돌연변이가 살아남을까?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은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생태계를 선택해야 하는 고도의 의사결정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연생태계의 진화양상(樣相)에서 볼 수 있는진화함정(evolutionary trap)’이라는 개념이 이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다.

 

진화함정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생태함정(ecological trap)’인식함정(perceptual trap)’이다. 이 두 가지는 다른 유형들에 비해 자주 발생하며 기업생태계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생태함정은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태환경을 선호하는 현상을 말한다. 등댓불에 민감하게 반응해 자신의 생태계를 등대 주변으로 옮긴 바다거북이가 대표적인 예다. 모래사장에서 갓 부화한 바다거북이들은 빛을 향해 가도록 진화해왔다. 어두운 바닷가에서 보이는 거의 유일한 빛은 해수면에 비친 달빛과 별빛이다. 그래서 새끼 바다거북이들은 바다를 향해 첫걸음을 떼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느린 행렬을 기다리고 있는 천적들이다. 바닷새들의 습격 때문에 이죽음의 행진에서 새끼 바다거북이들의 생존율은 50% 미만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등대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일부 바다거북이들이 해수면에 비친 달빛과 별빛보다 훨씬 강한 등대불빛에 반응하게 됐다. 이들은 바다가 아닌 해변의 등대 쪽으로 이동해 바다에서 날아오는 바닷새들의 습격을 본의 아니게 피하게 됐다. 이런돌연변이에 해당하는 바다거북이의 생존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렇다. 그러나 등대가 생겼다는 얘기는 곧이어 해안가의 개발이 진행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안가로 향하게 된 바다거북이들은 해안가로 진출한 인간들에 의해 불법 포획 및 도살되고, 별미로 알려진 알도 닥치는 대로 습격당한다. 또 해안가가 개발되며 알을 낳을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줄어든다. 등댓불을 향한 바다거북이의 선택은 초반에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만 결과적으로는 개체 수가 감소하고 멸종으로 이어진다.

 

인식함정은 생태함정과는 반대다. 충분한 적응 능력이 있는 개체가 외부에 좋은 생태환경을 보고도 이를 인식하지 못해 기존 익숙한 생태환경을 선호하는 현상을 말한다. 북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했던 초원뇌조(prairie chicken)가 좋은 예다. 닭과 비슷한 들새인 초원뇌조는 한때 북미에서 가장 흔한 새 중 하나였지만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희귀종이 됐다. 학자들이 4년간 연구한 바에 의하면 초원뇌조는 살고 있는 생태계의 질이 점차 악화되더라도 다른 더 살기 좋은 생태계로 옮겨가지 않고 기존 생태계를 고수한다. 결국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외래종과 신규종(즉 돌연변이)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초원뇌조는 개체 수가 감소하다 멸종하게 될 것이다.1

 

 

기업도 이런 진화함정에 빠지는 경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휴대폰 시장을 보자. 피처폰(일반 휴대폰)들이 경쟁하던 시장이 2008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이라는 돌연변이 기술의 등장으로 급격한 환경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당시 압도적인 세계 1위 휴대폰 업체였던 노키아의 몰락은 이런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해 아무리 강력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도 인식함정에 빠지면 개체 수 감소에 그치지 않고 멸종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2 충분한 생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경쟁 환경에 너무 많은 자원을 사용한 것이다. 초원뇌조의 예를 연상시킨다.

 

반대로 블랙베리의 경우와 같이 초기 신시장에서 급격하게 개체 수가 확보된 경우 그 후의 의사결정에서 생태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등댓불을 따라가서 초기 생존율을 높인 바다거북이처럼 블랙베리 역시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 때문에 이후 발생하는 돌연변이들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다.

 

결국 휴대폰 시장의 승자는 (2015년 초 기준) 스마트폰 생태계를 처음으로 일군 노키아도, 블랙베리도 아닌 애플과 삼성전자다. 이 두 회사는 시장이 완전히 형성되기 직전에 노키아와 블랙베리보다 진화된 기술과 디자인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삼성전자는 제조혁신의 대명사로 스마트폰에 필요한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고, 애플은 하드웨어 제조에 약점이 있지만 디자인적 요소와의 융합을 통해서 새로운 시장 돌연변이를 제시했다.

 

경쟁뿐 아니라 공존도 중요하다

다시 하얀 국물 라면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꼬꼬면을 위시한 하얀 국물 라면기술의 시장 습격은 왜 실패했을까? 첫째로 이들의 습격이 기존 라면시장 생태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농심이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근본적인 환경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다. 농심은후루룩 칼국수를 단기간에 출시하는 등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하얀 국물들 간의 마케팅 전쟁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아직은 작은 규모의 시장인 하얀 국물 라면시장으로 들어가서 싸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소비자심리에 기초한 전략적 의사결정이다. 만약 2011년 후반 농심마저 하얀 국물 라면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해 출혈적 마케팅 및 홍보전 양상으로 번졌다면 소비자는 라면시장이 빨간 국물 시장에서 하얀 국물 시장으로 변했다고 인식하게 되고 하얀 국물 라면은 빨간 국물 라면과 견줄 만한 시장전환 임계치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2009년을 기점으로 삼성과 애플이 진행한 엄청난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스마트폰이 피처폰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개별 개체들의 적자생존(individual survival of the fittest)보다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이 특정 산업군의 적자생존(group survival of the fittest)이다. 종 전체가 살아남지 못하면 개별 개체의 선전은 의미가 없다. 특정 산업군 내 기업들 간의 협업이 시장전환 임계치 확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진화생태학에서는 이를 종()의 개체 수 확보 문제로 생각한다. 생물학자 알리(Allee)는 쥐며느리 관찰을 통해서 개체 수가 너무 적은 생태계는 경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체 수가 증가하지 않는다는알리 효과를 주장했다.
3
이는 특정 생태계에서 어느 정도의 개체 수를 유지할 때까지는 경쟁보다는 협업을 해야 종의 생태계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쟁이 시작되는 임계 개체 수가 따로 존재한다. 임계 개체 수에 도달할 때까지는 경쟁보다는 공존 및 협업을 통한 종의 생존이 먼저다.

 

시장 지배자인 농심의

하얀 국물 라면시장에 대한

무관심 전략이 나머지 업체들 간의

경쟁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빨간 국물 라면시장을

뺏어오기 위해서는

협업이 절실했다.

 

하얀 라면 시장의 경우, 꼬꼬면이 초기 진입에 성공하자 농심(시장 지배자)이 아닌 2∼3위권 업체들이 거의 유사한 제품들을 동시에 출시하면서 그들 간의 치열한 생태계 확보경쟁이 먼저 전개됐다. 삼양식품의 나가사끼짬뽕, 오뚜기의 기스면 등이다. 물론 시장 지배자인 농심의 하얀 국물 라면시장에 대한 무관심 전략이 나머지 업체들 간의 경쟁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빨간 국물 라면시장을 뺏어오기 위해서는 협업이 절실했다. 전기차 혁신의 주역인 테슬라의 특허 개방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 전기차 생태계는 아직 시장 임계치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테슬라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기차 관련 특허를 경쟁사들이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생태계 진입장벽을 낮췄다. 기존 시장지배적 자동차기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진입자들까지 전기차 생태계로의 동참을 유도하는 것이다. 또 다른 공존임계치 확보의 성공사례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 개방이다. 애플 iOS의 초기 위세를 잠재우기 위해 구글은 과감한 모바일 OS 개방전략을 선택했고 결국 시장임계치 확보에 성공했다.

 

필자들은 자연생태계의생태계 선택모형(habitat choice model)4  ’을 기술경영 관점에서 적용해봤다. 신기술 혹은 신제품이 기존 시장 생태계를 공격할 때, 어느 시점까지 기존 시장 생태계와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으며 어떤 조건에서 사라지게 되는지에 대해 진화경제학에서 연구돼온공간게임이론(spatial game theory)’5 을 활용해 분석했다.

 

 

 

 

 

 

 

 

공간게임이론은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의 전통적 게임이론을 변형해 시장점유율에 대한 전략적 선택의 다양성을 모형화할 수 있는 이론이다. <그림 3>을 보자. 공간게임이론에서는 C(Cooperator·협력자) D(Defector·배신자) 간의 상대적 전략의사결정에 따라 이익(gain)과 손해(loss)가 결정된다. 시장생태계 선택모형에서 C는 기존의 성숙기술 및 제품에 해당한다. D는 신기술 및 신제품에 해당한다. 행렬값(payoff)은 기업 A가 기존 성숙기술로 시장에 진입할지(C), 아니면 신제품으로 들어갈지(D)에 따른 개체의 최대 재생가능 이익을 나타낸다. 즉 기업 A D(신제품) 전략을 택하고 타 기업들이 C(기존제품) 전략을 취한다고 할 때, 기업 A가 얻게 되는 이익을 b로 표현한다. 이때 b가 최소 1 이상의 값을 가져야 개체의 재생산이 보장된다. 1 이하면 개체는 멸종이다. b의 변화를 시뮬레이션하면 시장생태계 공간 내에서의 다양한 진화양상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6

 

자연생태계 선택모형이란7 개체들이 좋은 생태계와 나쁜 생태계를 선택함에 있어서 각 생태계의 매력도(attractiveness)와 생태계의 질(habitat quality)을 변수로 삼아 모형화한 것이다. 3개의 함수, 즉 생태계 분포함수, 생태계 선호함수, 생태계 적합함수로 구성된다. 이 중 생태계 적합함수는 이 모형의 핵심 개념이다. 생태계 적합함수의 결과 값이 개체 수 성장률을 나타내고, 이 성장률에 따라 좋은 생태계인지, 나쁜 생태계인지, 혹은 생태함정-인식함정에 빠졌는지 판단할 수가 있게 된다. 다만 이 모형에서는 적합함수의 결과 값(개체 수 성장률) 0.9에서 1.1 사이(-10%∼10% 성장)로 가정하고 있다. 이 구간 값을 기업시장 생태계에 적용하기 위해 전략적 의사결정문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진화게임이론의 한 종류인 공간게임이론을 적용한다.

 

시장생태계 선택모형에서 b(개체재생률)을 통해 신제품 및 신기술의 확산원리를 설명해보자.

<그림 4>의 가장 왼쪽 그림부터 신제품 출시 상황을 가정해 보자. 빨간색으로 표시된 작은 상자가 신제품을 의미한다. 이 신제품은 자신을 둘러싼 8개의 파란색 주변개체(기존 제품들)와 경쟁을 하게 된다. (박스 안의 숫자는 자신을 둘러싼 기존 제품들의 수를 의미한다) 이때 b값이 1보다 크게 되면(8b>8) 두 번째 그림의 시장상태로 전이하게 돼 신제품은 초기 시장성을 확보하게 된다. 즉 신제품이 기존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붉은 색의 영토가 늘어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두 번째 그림에서는 4가지의 상태전이 가능성이 존재한다.

 

1) 5b>8

(신제품이 가장 강력한 지배력(8)을 갖고 있는 기존 제품보다 강력해서 더욱 확장하는 시장으로 진화하는 경우파괴적 시장혁신제품의 등장)

 

2) 8>5b>7

(신제품이 기존 제품 중 1등에는 못 미치지만 2등보다는 강력해 경쟁이 가능한 경우)

 

3) 7>5b>6

(신제품이 기존 제품 중 꼴찌보다는 우수해서 임계(臨界) 개체 수 확보가 가능한, 즉 생존은 가능한 경우)

 

4) 6>5b

(신제품이 기존 제품 중 꼴찌보다도 열등해 도태되는 경우)

 

이런 4가지의 동적 상태전이 가능성을 놓고 b값을 다르게 하면서 신기술 혹은 신제품의 생존 가능성과 확산 정도를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필자들은 b를 매출 성장률로 놓고 하얀 국물 라면 시장과 스마트폰 시장을 예로 분석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기술혁신 초기 단계에서 기존 시장에 대한 신제품의 습격이 성공하려면 b값이 1.6 이상이어야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단위 기간 내 매출이 60% 이상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 이는 신기술에 대한 기술력만 믿고 무조건 60%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진격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임계 개체 수를 확보할 때까지 강력한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한 상태에서 시장지배기술로 성장해야 진화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시장 상황은 어땠을까? 시장조사기관인 AC닐슨의 자료에 따르면 2011 8월 하얀 국물 라면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2011 9월에는 하얀 국물 라면 생태계 성장률(b) 1.88(88% 성장)이었으나 이후 10월에는 1.4(40% 성장), 11 1.36(36% 성장)으로 매월 감소해 결국 시장변환 임계치를 돌파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하얀 국물 라면의 진화는 실패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경우, 2009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아직 시장변환 임계치 이하였지만 기존 선도업체인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성장률은 각각 1.16(16% 성장), 1.38(38% 성장)로 하향세였던 데 반해 아이폰을 내세운 애플은 2.27(127% 성장)로 시장을 성공적으로 변환시켰다. 이듬해인 2010년 애플의 성장률은 b=1.88(88% 성장), 삼성의 성장률은 b=4.17(317% 성장)로 두 업체 모두 새로운 혁신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장생태계 선택모형에서는 1) 신제품 시장이 임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별 신제품들의 성장률이 60%를 유지해야 하며 2) 이 과정에서 개별 기업들의 성장률 역시 시장변환 임계치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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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이상을 유지해야 이후에 전개되는 기업 간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모형은 신제품 출시가 기존 시장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장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반복적으로 검증해 볼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화게임이론을 이용한 시장생태계 선택모형에서 삼성과 애플은 모두 성공적 혁신기업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기업이 왜 이렇게 동시에 경쟁적으로 떠올랐을까? 삼성전자는 제조혁신의 대명사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필요한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들(메모리, 디스플레이, 시스템 칩 등)을 보유한 기업으로 임계치에 다다를 수 있는 b값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애플은 하드웨어기술의 단점을 디자인적인 요소와 교접(interbreeding)시킴으로써 단기간에 새로운 돌연변이 개체를 생성할 수 있었다. 이 두 기업의 진화와 혁신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교접을 통한 돌연변이 생성’ ‘공존을 통한 시장생태계의 임계치 확보’ ‘경쟁을 통한 차별화된 비교우위 확보라는 진화론이 제시하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들이 모두 들어 있다. 기존 성숙기술인 피처폰과는 차원이 다른 터치기술에 기반한 UI(User Interface) 혁신, 앱스토어와의 교접을 통한 아이폰이라는 돌연변이 스마트폰의 생성, 기존의 음반유통업계를 순식간에 진화함정에 빠뜨렸던 아이팟의 비즈니스모델을 그대로 차용해 음원사업자와의 공존을 통한 새로운 생태계의 형성, 이런 애플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구글 간 공존을 통한 새로운 생태계 진입, 애플의 폐쇄적 iOS 전략과 구글의 개방적 안드로이드 전략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비교우위 확보는 자연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진화과정이 실제 기업들의 전략적 의사결정과정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6번째 창조적 혁신: 디자인-기술융합을 통한 새로운 돌연변이 영역 제안

지금까지 진화경제학 관점에서 기술경영 혁신전략에 대해 살펴봤다. 요약해 보면, 첫째, 안정적인 시장상황에서 신기술 및 신제품의 등장에 따른 급격한 환경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기존의 시장지배기업이나 초기 시장진입기업 모두 자연생태계에서 목격되는 진화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기존의 시장지배기업 입장에서 이 진화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신기술 및 신제품의 진화 성장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존 제품의 성공에 도취되면 새로운 시장변화 초기 대응에 실패하기 쉽다. 신기술 제품의 시장점유율 상승 추세에 대한 정밀한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기존 시장에서의 성공경험으로 축적된 기업의 핵심역량은 조직 내 전반적으로 퍼져 있어 기존 역량 기반의 역량제고(competence leveraging)는 쉬울 수 있으나 신기술에 기반한 파괴적 혁신에 적합한 새로운 역량확보(competence building)는 어려울 수 있다. 새로운 시장생태계의 태동시점부터 시장변화에 대한 세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역량함정(competence trap)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9

 

반대로 기존 시장에 대한 습격을 진행 중인 신기술 업체의 경우 일정치 이상의 진화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있는 시장변환 임계치 확보를 위한 협업전략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라면시장에서의 하얀 국물 라면이나 스마트폰시장에서의 노키아나 블랙베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시장임계치 확보를 위한 신생기업들 간의 공존전략이 필수적이다. 또 임계치 통과 이후의 본격적인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에 기반한 블루오션전략 혹은 화이트 스페이스(white space) 전략 마련이 필수적이다.10

 

신기술 및 신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임계치를 넘어 성공을 가름할 만한 수준이 된 이후에는 새로운 시장성장세의 관성에 따라 경쟁업체 수도 증가하게 되고 상당 기간 동안은 안정적인 성장세가 유지된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환경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게 되는데 시장성장곡선상의 모든 단계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 혁신이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으로의 돌연변이가 그래서 늘 필요하다. 최근 제6의 혁신영역11 으로디자인과 기술의 교접(interbreeding)’을 통한 돌연변이 발굴이 눈에 띈다. 신제품 및 기술 발굴을 통해 기존 기업들이 간과한 새로운 디자인-기술 융합 시장생태계를 만들고, 디자인적 사고12 를 통해 기존의 기술중심적 사고 체계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진화성장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추세는 미국 유수의 디자인 컨설팅회사들이 다양한 스타트업기업들을 인수합병해 의도적인 기술-디자인 교접을 통한 돌연변이 조직문화를 확보하는 움직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이 성숙하면 반드시 또 다른 변화의 동력이 생기게 된다. 이런 시점에 또 다른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그 기업은 도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머지 생태계에서 아직 남아 있는 과실을 따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한상엽·김용문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연구원,김지은·류호경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필자 한상엽 연구원, 김용문 연구원, 김지은 교수, 류호경 교수는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MOT)의 이매진연구팀 소속이다. 이매진연구팀은 정통 기술경영에 기술과 디자인을 융합한 독자적인 기술디자인 교육트랙을 확립하고, 차세대 신제품-서비스 발전방향 분석 및 선행기술디자이너를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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