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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발상의 기초 작업

모방과 다양성 확보부터 시작 ‘잡종의 힘’을 믿고 융합하라

박종하 | 182호 (2015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모방하라: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는 맥도날드의 표준화 시스템을 모방해 백내장 수술비용을 100분의 1로 절감했다.

조건을 바꿔라:나이팅게일은 부상 때문에 병사들이 죽어간다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많은 병사들을 살려낼 수 있었다.

다양성을 확보하라:갑골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의사들과 교류하며 창의성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연결하라:1865라는 와인은 골프와 연결돼 독특한 이미지를 얻었다.

현실을 파고들어라:자동차 부품으로 만든 인큐베이터처럼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몸을 움직여라:걷기나 달리기, 맥주 한잔 등은 몸을 이완시켜 아이디어 발상에 도움을 준다.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1990년대 케빈 던바(Kevin Dunbar) 맥길대 교수는 분자생물학연구소 4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연구원들을 관찰했다. 분자생물학 같은 첨단과학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혼자 고개를 숙이고 현미경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던바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실제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얻어지는 것은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최신 연구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나왔다. 이를 두고 던바 교수는 탁월한 아이디어는 현미경이 아닌 회의 테이블에서 얻어진다고 표현했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사색에 잠길 때유레카!’ 하며 별안간 얻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비현실적이다. 멋진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과 정보를 나누고 소통하며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연결될 때 가장 폭발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소통이란 반드시 타인과의 직접적이며 물리적인 교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가 속한 세계에만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가능성을 최대한 활짝, 그리고 지속적으로 열어둔다는 의미로 확장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를 정리하면서 공통적으로초기 준비단계를 포함했다. (‘아이디어 창출의 단계참고.) 아무 밑바탕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어떤 일들을 행할 수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모방하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다. 흔히 모방은 나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특히 저작권이나 특허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지식 기반의 사회에서 모방은 표절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모방에서 창조가 시작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처음부터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없다. 다른 누군가의 글을 읽거나 누군가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게 된다. 창조를 위해서는 모방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 한 적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가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생전에 미국 PBS방송 다큐멘터리괴짜들의 승리에 출연해 했던 말이다.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것은 기존 아이디어를 모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을 모방이라고 말하며 실제로 다른 회사의 좋은 것들을 적극 모방하려고 했다.

 

표절과 모방, 그리고 창조 사이에 애매한 영역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모방에 기술이 필요하다. 남의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표절이 아닌 창의적인 모방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아이템 그 자체가 아니라 개념을 모방하는 것이 가장 큰 기술이다.

 

전 세계 시각장애인의 80%에 해당하는 1200만 명이 인도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제때 알맞은 치료만 받아도 앞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질병이 백내장이다. 한 시간 정도의 수술만 받으면 정상인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비싼 수술비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는 미국에서는 1800달러에 이르는 백내장 수술을 18달러에 제공해 많은 인도인이 빛을 잃지 않도록 지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이렇게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맥도날드와 같이 수술 시스템을 표준화, 전문화한 데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술실에는 침대가 하나 놓여 있고 환자가 1명 누워 있다. 하지만 아라빈드 안과에는 여러 대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각 침대에 환자들이 누워 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의사들이 연이어 수술을 한다. 보조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수술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면 의사는 한 명의 수술을 마치는 즉시 곧바로 의자를 돌려서 옆 침대의 환자를 수술한다. 표준화, 분업화된 시스템을 갖춰 고급 인력인 의사가 낭비하는 시간 없이 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통 병원의 의사가 1년에 300∼400명의 환자를 수술한다면 아라빈드의 의사는 1년에 2000명이 넘는 환자를 수술한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환자를 수술하면 수술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수 있지만 오히려 의사의 숙련도를 높여 수술의 실패율이 낮다고 한다. 수술 건수가 많아지면서 백내장 수술을 위한 인공수정체를 개당 150달러에서 10달러에 조달할 수 있었고 수술비용도 1800달러에서 18달러로 낮출 수 있었다. 아라빈드 안과의 아이디어는 맥도날드의 시스템을 개념 모방한 것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을 개념 모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강력한 모방의 기술이다.

 

대단하게 특별한 것을 창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남의 것을 보고 배운다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모방을 해보자. 남의 것을 보고 변형해 자신의 일에 적용하겠다고 생각해보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는 어렵지만 보고 따라하는 모방은 그보다 훨씬 쉬울 수 있다.

 

 

Mini Box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그레이엄 월러스(Graham Wallas)는 창의적 사고의 4단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준비 단계(preparation stage):문제를 자유롭게 생각해보는 단계다. 자료를 수집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한다.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면서 해결을 위한 자료들을 제한 없이 모은다.

 

부화 단계(incubation stage):해결책이 즉각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시간을 갖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를 안고 잠을 자도 좋다. 생각을 숙성시키는 단계다.

 

발현 단계(illumination stage):추구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단계다. 부화 단계를 거쳐 갑자기 나타난 직관이나 통찰의 형태를 띤다. 알이 깨지면서 병아리가 나오듯 무의식적 정신 작용이 충분히 이뤄지면 감춰져 있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검증 단계(verification stage):발현 단계에서 얻은 해결책이 검증 단계를 거쳐 확정된다. 만들어진 아이디어가 적절한 것인지 확인한다. 충분히 적절하더라도 적용하는 과정에서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좋다.

 

 

브레인스토밍의 창시자 알렉스 오스번(Alex F. Osborn)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7단계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해결 방침을 결정하는 단계: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잠정적으로 결정한다.

 

준비 단계:문제 해결을 위해 요구되는 적절한 자료를 수집 및 준비한다.

 

분석 단계:관련 자료를 분석한다.

 

관념 형성 단계:아이디어를 기초로 대안을 탐색한다.

 

숙고 단계: 설정된 대안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조용히 생각한다.

 

종합 단계:문제를 부분별로 떼어내 고려했던 해결책을 전체적인 틀 속에 짜 맞춘다.

 

평가 단계:최종적으로 얻은 아이디어를 판단한다.

 

 

 

조건을 바꿔라

 

일을 추진할 때 존재하지도 않는 가정을 미리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선입견이나 편견이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가정에 매여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은 간호사의 대명사다.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고통 받는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천사 같은 간호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 그녀는 크림전쟁 당시 스쿠타리의 야전병원에서 고통 받는 부상병들을 돌보며 헌신했다. 그러나 육체적인 봉사보다 더 큰 기여는 선입견 없는 그녀의 생각에서 나왔다. 1850년대 전쟁터에서 죽는 병사들은 부상 때문이라고만 여겨졌다. 그런데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에서 직접 부상병들을 보살피며 그들이 부상 아닌 질병으로 죽어간다는 점을 발견한다. 부상 때문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병사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결과다. 그녀는 전쟁터 병영 내 하수구들을 대거 청소하며 위생상태 개선에 나섰다.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영양상태도 챙겼다. 그 결과 병사들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가정을 많이 한다.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부상 때문이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모두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에서만 벗어나도 새로운 아이디어에 눈을 뜰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안 된다. 휴브리스(hubris)라는 단어는 자만, 오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는데 과거에 성공했던 방법을 고집하다가 실패하는 속성을 일컫는다.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인용하며 유명해진 단어다. 그는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과신해서 변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3억 년 전에는 날개의 길이가 1m, 몸통이 30㎝가 넘는 거대한 잠자리가 존재했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3억 년 전에는 지구의 공기 중에 산소 비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덕분에 잠자리는 물론 지네나 전갈 등 길이가 1m를 훌쩍 넘는 곤충이 생존할 수 있었다. 이처럼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유연하게 생각하며 사안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건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어제의 지식은 오늘의 쓰레기. 상한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지식을 잘못 적용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중요했고 꼭 그렇게 해야만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든다.

 

다양성을 확보하라

 

<그림 2>를 보자. 비슷한 초콜릿이지만 포장과 모양새가 전혀 다르다. 하나는 제주도의 감귤 초콜릿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생산되는 오렌지 초콜릿이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감귤 초콜릿은 겉에서 봤을 땐 보통의 초콜릿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영국의 감귤 초콜릿은 상자를 열면 오렌지처럼 둥근 초콜릿이 나오고, 오렌지 껍질을 까듯 포장지를 벗기면 오렌지 속을 하나하나 떼어먹는 것처럼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 맛은 비교할 수 없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분명 제주도의 감귤 초콜릿보다 매력적이다.

 

 

 

창의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는 르네상스다. 르네상스 시대에 창의성이 꽃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역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문화와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섞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종보다 잡종이 강한 법이다. 하나의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보다는 다양한 영역에서 더 좋은 것을 취사선택해 결합하는 편이 더 생명력이 강하다. 중세의 문화가 순혈주의였다면 르네상스는 잡종의 문화다. 순수한 혈통으로 만들어진 문화보다는 서로 다른 것의 이종결합이 더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를 낳는다.

 

많은 사람들이 발견한 사실 중 하나는 탁월한 아이디어가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접목이나 융합에서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 분야에서 특정 기술을 갈고 닦아온 장인보다는 오히려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창의성이 더 많이 발현된다. 가령 갑골문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의사들과 공동연구를 많이 한다. 갑골문자 연구자들은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고대 문명의 비밀을 파헤치는 연구를 진척시켜 가는데 그들이 갑골문자를 해석하며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기록이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문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갑골문자를 해석하면 예컨대 중국 은나라 사람들이 어떤 병을 앓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병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갑골문자에 남은 기록들을 더 정확히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고대 중국인들이 앓았던 병을 중심으로 그들의 생활을 파악하고 고대인과 현대인의 병을 비교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갈래로 뻗어가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고고학자들과 의사들이 공동으로 연구에 나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질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과 색다른 영역에서 창의성의 실마리를 찾는 통찰력이야말로 무한경쟁 시대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창의성의 비결은 다양성과 경계 넘나들기에 있다. 경험의 다양성, 사상의 다양성, 방법의 다양성은 창의성의 밑거름이고 서로 다른 사고, 개념, 아이디어, 기법, 철학, 사상의 융합은 창의성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창의적인 사회는 이질적인 사상과 개념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서로 다른 영역들이 소통하고 만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연결하라

 

아이디어를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A+B’. 특히 전혀 상관없는 A B를 단순하게 연결해 보는 방법은 쉬우면서도 파워풀하다. 신발에 바퀴를 붙여본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인라인 스케이트다. 자동차에 집을 붙여봤다. 그랬더니 캠핑카가 됐다. 개인용 컴퓨터에 국가전산망을 붙이면 인터넷이 된다. 전혀 상관없는 것을 그저 연결했을 뿐인데 새로운 것이 생겼다. 다음의 광고를 보자.

 

 

 

이 광고는 층간소음을 주제로 한 공익광고다. “아름다운 선율도 아래층 이웃에게는 큰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카피에 마네의 그림피리 부는 소년과 뭉크의절규를 배치했다. 유머 넘치는 카피와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림들은 서로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그림을 연결했더니 주장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광고가 만들어졌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전혀 상관없는 A B를 연결해보자.

 

아이디어를 고민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상적인 이야기,

추상적인 이야기만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현실과 유리된 아이디어는 쓸모가 없다.

 

1865와인은 산 페드로(San Pedro)라는 칠레 와인회사의 대표 제품이다. 1865는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이 최대 소비국이다. 국내 업계에선 통상 연간 1만 박스 이상 팔리면 성공한 와인으로 꼽히는데 1865는 연간 24000박스 이상 팔려나간다. 750mL 와인 12병이 1박스에 들어가므로 연간 29만 병가량 팔리는 셈이다. 와인 이름이 1865인 것은 이 회사가 만들어진 1865년에서 유래했다. 이름에 빗대 ‘1865=18세부터 65세까지 마시는 와인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골프와 연결돼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865=18홀을 65타에 칠 수 있게 해주는 와인이라는 식이다. 골프 선수가 아닌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65타는 꿈의 타수다. 그 꿈을 1865를 마시며 같이 꾸는 것이다. 골프와 와인은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골프를 치거나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여유가 있고 성공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을 잇다보면 새로운 무엇인가 탄생할 수 있다.

 

2006년 삼성전자는 보르도TV를 출시하며 TV시장의 선두를 달렸다.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와인산업의 중심지다. 보르도TV TV의 외관을 와인 잔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디자인됐다. TV와 전혀 상관없는 와인이 만난 것이다. 보르도TV는 단순히 방송을 재생하는 도구로서의 TV가 아니라 와인과 같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것들을 연결할 때 기대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온다.

 

현실을 파고들어라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해도 현실에 적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문제에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다. 예컨대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인큐베이터가 필요하다. 저개발국가에는 우리 돈으로 5000만 원쯤 하는 표준 인큐베이터가 많지 않으므로 건강하지 않게 태어난 아이들이 쉽게 죽고 만다. ‘디자인댓매터스’라는 회사의 티모시 프레스테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사실 표준 인큐베이터는 가격이 비싼 것도 문제였지만 가령 5000만 원짜리 인큐베이터를 사서 저개발국에 보내더라도 1∼2년 정도 쓰다가 아주 사소한 고장이라도 나면 필요한 부품들을 구할 수 없고 기술자도 없어서 고장 난 채로 방치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프레스테로는 고민하다가 새로운 인큐베이터를 만들었다. 그것은 자동차 부품으로 만든 인큐베이터였다. 저개발국에도 자동차는 굴러다녔고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한 부품도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다. 오랜 연구 끝에 프레스테로는 자동차 부품만으로 인큐베이터를 만들어냈다. 자동차 배터리로 작동하는 이 인큐베이터는 팬도 있고 전조등도 있다.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큐베이터가 고장 나도 쉽게 고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실을 고려한 아이디어이고,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를 고민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상적인 이야기, 추상적인 이야기만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현실과 유리된 아이디어는 쓸모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라

 

아이디어를 고민한다고 사무실에 처박혀 시간만 보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 가서 걷거나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이디어 창출에 도움이 된다. 걷거나 달리면 혈액순환이 활발해지고 뇌에 산소가 공급되기 때문에 뇌신경 세포들에 더 많은 자극이 간다. 뇌 세포 간 주고받는 정보들이 늘어나면 새로운 생각,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좋다. 중국 이태백은 술 한 말에 시 100편을 지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며 취기가 오르면 시를 짓기도 하고, 이전에 없던 영감이 떠올라 핵심 아이디어를 찾기도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광고회사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제니퍼 와일리(Jennifer Wiley) 교수는문제해결사(Problem Solver)’라는 맥주를 개발했다. 호주의 언론매체 테클리는 이 맥주를창의력을 키워주는 맥주라고 소개했다. 맥주병 겉면에는 성별과 몸무게가 표시돼 있다.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사람은 자기 성별과 몸무게에 맞춰 정해진 양의 맥주를 마시면 된다. 이 맥주의 도수는 약 7.1%로 맥주로는 도수가 꽤 높은 편이다. 맥주는 제니퍼 와일리 교수의 2012년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당시 연구는 맥주를 마신 그룹과 마시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진행됐는데, 실험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7%일 때 창의적인 문제를 푸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광고 전문가들이 또 다른 실험을 했다. 사람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광고를 기획하도록 하고 그중 5개의 창의적인 광고를 선정했다. 그런데 5개 중 4개가 맥주를 마신 그룹에서 만든 것이었다. 실험 후 덴마크의 광고회사는 이 맥주의 제작에 동참했다.

 

맥주를 마시는 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맥주가 우리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듯 우리 뇌의 집중을 느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어진 문제를 집중해서 푸는 것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창의적인 능력은 반대되는 성향을 필요로 한다. 집중보다는 산만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의 뇌는 감각 게이팅(sensory gating)을 통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정보가 유입되는 것을 자동으로 차단한다. 그래서 집중력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문제 이외의 정보가 들어오면 그것을 차단하고 집중한다. 반면 산만하고 감각 게이팅이 느슨해서 대부분의 정보를 차단 없이 받아들이며 경험하는 사람들은 관계가 먼 정보를 하나로 연결해 창의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낸다.

 

아이디어는 사무실의 책상 앞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야외를 걸으며, 때로는 맥주를 마시며 만들어진다. 다만 제니퍼 와일리 교수가 창의적인 문제를 푸는 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제시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7%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보다 더 많은 알코올을 마신다면 분명 아이디어가 급속히 도망갈 것이다.

 

 

박종하 창의력연구소 대표 mathian@hanmail.net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에 <수학, 생각의 기술> <틀을 깨라> <생각이 나를 바꾼다> <아이디어 충전소> 등이 있으며 SERI CEO에서틀을 깨라를 강의하는 등 창의성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 박종하 | - 창의력 컨설턴트 : 문제 해결과 리더십 및 자기계발 분야
    - (현) 더 브레인즈 (www.thebrains.co.kr) 대표
    - 클릭컨설팅 컨설턴트
    - 삼성전자 중앙연구소, PSI컨설팅, 이언그룹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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