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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혼다-로버-BMW 딜 사례

‘사회적 딜’ 없이 ‘경제적 딜’ 없다

박헌준 | 12호 (2008년 7월 Issue 1)

Case
혼다 “기술제휴 해온 로버 살리며 부분 인수” 영국측 “BMW가 더 많이 돈내고 몽땅 사겠다네…”
영국 자동차 산업은 19501960년대에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75년까지만 해도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015%, 영국 근로자의 5%가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독일과 일본 자동차 회사가 급부상하면서 경쟁이 심화돼 영국 자동차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일본 혼다(Honda)는 1978년 8월 영국 브리티시 를랜드(BL, British Leland)사 소속의 로버(Rover) 자동차와 전략적 제휴를 위한 딜을 시작했다. 로버는 품질 및 공정 개선, 단기간 내 중형차 생산, 자본과 최신기술 확보, 유럽 내 혼다 모델의 생산 및 판매, 정치적 고려 등의 이유로 혼다와 협력을 원했다. 혼다는 국제화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하고 자사의 엔진과 변속기에 대한 안정적 구매자를 확보하기 위해 딜에 나섰다.
 

 
혼다와 로버의 제휴
1978년 9월 BL의 프레드 워너(Fred Warner)와 혼다의 가와시마 기요시(Kawashima Kiyoshi) 회장의 첫 만남이 있었다. 그러나 혼다는 BL의 제휴 제안을 받은 후 6일이 지나서야 대답했고, BL은 혼다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1979년 BL팀이 도쿄에서 제휴 타당성을 검증한 후 34주에 한번씩 미팅을 지속했지만 1979년 4월 계약 연기를 발 표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같은 해 10월 BL은 전략적 제휴에 대한 계획을 승인했으며, 12월 영국 정부의 승인 후 드디어 혼다와 로버는 전략적 제휴 계약을 맺었다.
 
혼다와 로버의 계약 원안은 ‘유럽시장 내에서 혼다 차 생산 및 판매를 위한 기술제휴협정(TLA, Technical Licensing Agreement)’이었다. BL은 혼다로부터 필요한 기술지원을 받고 유럽경제공동체(EEC) 국가에서 혼다 차를 독점적으로 판매하며, 혼다는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제공하고 유럽 이외 지역에서 동일한 모델을 판매하는 계약으로 목표생산량을 연 8만5000대로 정했다.
 
이 제휴는 적지 않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선 양사의 경영 방식과 노사문화가 상당히 달랐다. 또 유럽 시장에서 혼다의 영향력 강화에 대한 로버의 우려가 컸다. 로버는 빠르게 의사결정을 했지만 혼다는 느린 편이었다. 이 밖에 로버는 이번 제휴를 개별 기업간 계약이라고 보는데 반해 혼다는 ‘아마에’, 즉 상호의존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실제 협력 초기에 혼다는 로버의 큰 차체에 맞는 큰 엔진을 만든 반면에 로버는 혼다의 엔진에 맞는 작은 차체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진적으로 양사 협력 관계는 발전해 갔다. 1979년 12월 기술라이선스 협정으로 시작한 제휴 관계는 엔진과 트랜스미션 공급 딜, 신차 공동 개발, 상호 지분 교환, 이사진 상호 교환으로 점차 확대됐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로버 대주주인 영국 정부는 BL과 로버에 300만 파운드를 쏟아 부었지만 경영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여러 기업에 로버 매각을 시도했다. 영국 정부는 1988년 7월 정치적 고려를 통해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 British Aerospace)에 로버를 매각했다. 앞으로 5년간, 즉 1993년까지 로버라는 고유 브랜드를 지켜야 하며 자동차 산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1989년부터 BAe는 로버를 독립 사업부서로 운영하면서 경영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을 위임했다. 로버는 1990년대 초 원가절감 및 품질향상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혼다가 급성장하면서 양사 관계의 균형은 깨지기 시작했다.
 
혼다의 로버 인수 협상 시작
5년간 매각금지 조건이 해지되는 시점인 1993년 말이 다가오자 BAe는 로버 매각 협상을 시작했다. BAe는 혼다가 로버와 지속적으로 제휴관계를 유지했다는 점 및 일본과의 정치적 관계 등을 고려해 협상 초기 혼다에 로버 지분 전체 매각을 제안했다. 그러나 혼다는 로버 경영권 인수보다 로버의 회생에 더 관심이 높았다. 혼다는 BAe의 로버 지분 전체 인수 제안에 대해 47.5%의 지분만 인수하고 나머지 47.5%는 BAe가 유지하라는 역제안을 했다. 나머지 5%는 로버 임직원에게 배분하자는 것이었다. 사실상 혼다는 로버의 회생에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당시 로버 회생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혼다가 전적으로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면 로버를 배제하고 직접 BAe와 비공개 비밀협상을 진행한 BMW는 혼다에 비해 67%나 높은 인수 가격을 제시했다. 이에 더해 80% 주식에 대해 13억2000만 파운드의 현금을 지급하고, 2억 파운드의 부채를 승계하며, 영국의 고질적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 시설의 독일 이전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제안도 했다. 또 로버가 혼다와 제휴관계를 유지할 경우 2000만 파운드를 추가로 지불하는 옵션 계약까지 제시했다.
 
로버 인수 의지가 강한 BMW
BMW가 이처럼 로버 인수에 강한 열망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BMW는 우선 로버를 인수하면 유럽 시장 점유율을 약 두 배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생산, 부품 구매, 물류, 영업력 등을 공유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다. 세 번째 BMW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해치지 않고 추가 투자 없이도 새로운 제품 라인을 갖출 수 있었다. BMW의 경쟁사인 벤츠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곧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에서 로버의 SUV 라인을 시장에 바로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네 번째 로버는 수많은 영국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를 이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 로버와 BMW 제휴로 인해 유통 부문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었다. BMW는 미국과 독일, 로버는 영국에 각각 강한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서로 보완효과가 날 수 있다. 여섯 번째 로버가 혼다로부터 터득한 노하우와 연구개발(R&D) 기술, 효율적인 일본식 경영을 전수받을 수 있다. 일곱 번째 독일과 비교해 값싼 영국의 노동력을 레버리지로 활용, 향후 독일 근로자와의 노사협상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 여덟 번째 로버의 경영 손실로 인한 법인세 감면을 활용해 재무 활동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BMW는 로버와 BAe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다보다 더 깊숙이 파악해 그들이 원하는 제안을 내놓고 있었다.
 
BAe는 로버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고 싶어 했으나 혼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식 일부 인수에만 동의한 반면에 BMW는 BAe 보유 주식 전량 인수를 제안했다. 그리고 BMW는 협상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BAe를 설득하며 점차 인수 가격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1월 31일까지 유효한 시한부 최종 제안을 던졌다. 1994년 1월 27 로버 매각 협상을 담당한 BAe의 심슨 회장은 도쿄로 날아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혼다와 최종 담판을 하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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