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Highlights

피케티는 마르크스의 부활 아닌 불평등한 자본에 고민을 요구한 것이다

167호 (2014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자기계발

올봄 미국에서 시작된피케티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했다. 미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 자본>은 매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역본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관련 세미나가 열리고 비판적인 서적이 출간되기도 했다. 방대한 내용들과 거시역사적 통계 분석 때문에 이 책을 꼼꼼하게 읽는 것은 물론 핵심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피케티의 급진적인 정책 제안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평가가 학문적 기준보다는 정치적 성향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즉 우파에게는 증세 논리를 제공하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의 아류로 폄하되는 반면 좌파에게는 평등한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의 복음서로 칭송받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조세제도 개혁을 통한 불평등의 축소다. 피케티의 주장과 논거 모두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피케티가 부각시킨 불평등 문제는 이제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정치적 문제로 부상했다. 따라서 이제는 이 책 자체에 대한 논란을 넘어피케티 열풍에 반영된 규제환경의 정치경제적 변화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올해 초 미국에서 발원한피케티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했다. <21세기 자본>은 국역본 출간 직후부터 각종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책 홍보 차 방한한 저자 토마 피케티는 록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를 실감하고 돌아갔다.

 

물론 모두가피케티 열풍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자본>에 대해서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역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애매한 개념과 부정확한 통계를 얼버무린 칼 마르크스의 <자본>의 아류라는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평가는 피케티가 제시한 정책 제안에 대한 정치적 반응에 의해 증폭됐다고 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되는 글로벌 부유세를 둘러싸고 좌파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지하지만 우파는 당장 실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을 제한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재계의 입장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유례없는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는 피케티의 주장은 산업화의 주역에게는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특히 고액 연봉을 받는 CEO 입장에서 글로벌 부유세를 신설하자는 피케티의 제안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피케티 열풍으로 경제 정책의 초점이 성장에서 분배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도 재계의 우려 대상이다. 이러한 재계의 부정적 인식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세미나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라는 책에 잘 반영돼 있다.

 

우리나라 재계와 달리 미국 재계의 반응은 아주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놀랍게도 세계 최대 IT 기업의 창업자이자 세계 최대 부호인 빌 게이츠가 피케티의 세 가지 핵심적 주장들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공표했다.1

 

● 높은 수준의 불평등은 문제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엉망으로 만들고, 민주주의를 강력한 이익집단 편으로 기울게 만들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이상을 약화시킨다.

 

● 자본주의는 더 평등한 방향으로 자정하지 않는다. 즉 과도한 부의 집중은 견제되지 않을 경우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가 있다.

 

● 정부는 이 같은 눈덩이 효과를 상쇄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게이츠가 피케티의 모든 주장과 논거에 찬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피케티가 경제성장에서 기술의 중요성과 부유세에 내재된 문제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피케티에 공감하는 이유는 불평등이 계속 심화되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토대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더 나아가 게이츠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정부 규제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학술서적이 아니다. 또한피케티 열풍은 어느 한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의 규제·조세정책에 대한 논의에서도 피케티의 주장이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평가에 앞서 이 책의 문제의식과 실천적 함의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 자본>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가?

<21세기 자본>에 대한 재계의 부정적 인식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연상시키는 제목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언뜻 보면, <21세기 자본> <자본> 21세기 최신판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본문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이 책이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선입견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자본>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보느냐는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피케티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참고.)

 

<21세기 자본>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타도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이다.

 

“나는 불평등이나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 관심이 없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자본소유자들과 대비해 노동자들이 처한 처지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가능한 한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다.”(44 & 31)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21세기 자본>이 자본주의에 내재된 경쟁 원리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평등주의를 추구한다는 의혹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소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의 목표는 불평등 철폐를 통한 완벽한 평등 상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불안정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불평등을 축소하는 것이다.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30)

 

이 논리에 따르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정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 정도의 불평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케티는 현재와 같은 속도로 불평등이 계속 심화될 경우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정치사회적 불안정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피케티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

<21세기 자본>이란 제목이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피케티를 21세기 마르크스라고 보기도 한다. <21세기 자본>에는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그는마르크스가 제시한 무한축적의 원리에는 핵심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불평등을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기는 어렵다. 피케티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이 문제는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리카도와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발전시켜온 주제다. 또한 최근에는 불평등에 무관심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경제기구들도 불평등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피케티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는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은 이윤율 저하 문제를 강조하는데, 이 분석에는 흥미로운 통찰이 담겨 있긴 하지만 크게 잘못된 역사적 예측으로 드러났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본주의가 내재된 모순에 의해 붕괴된다는 종말론적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주의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던 현대 경제학의 선구자 조셉 슘페터나 소련의 GDP 1990∼2000년 사이에 미국의 GDP를 능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폴 새뮤엘슨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보다 오히려 더 자본주의의 장래에 낙관적이다.

 

 

“내 결론은 마르크스의 무한 축적과 영속적인 양극화의 법칙이 시사하는 것보다는 덜 종말론적이다.” (40)

 

 

피케티가 제시한 정책 제안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불만족스럽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개인의 부에 누진적 세금을 물리는 것은 사유재산과 경쟁의 힘에 의지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를 재천명하는 것이다.”(641)즉 그의 주장은 국유화와 같이 사유재산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정책 대신 누진세와 같은 조세제도를 통해 자본주의의 개선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21세기 자본>에 제시된 글로벌 부유세와 같은 정책도 사회주의적 성향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다. 피케티에게 조세정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 “세금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 걷느냐와 어디에, 무엇을 위해서 쓰느냐다.” (576)

 

마지막으로 <21세기 자본>이 불평등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자본주의의 단점만을 부각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9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걱정해야 할 것은 내 책이 아니라 불평등의 심화입니다. 이 책이 불평등을 낳은 원인은 아니잖아요.”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21세기 자본>을 흔히 오해하듯 마르크스의 아류나진보의 복음서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자본주의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빌 게이츠가 <21세기 자본>의 핵심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불평등이 문제인가?

<21세기 자본>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는 불평등 그 자체라기보다는 불평등으로 야기되는 정치사회적 불안정이다. 피케티가 여러 번 강조하고 있듯이 불평등은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 필요한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심화됐을 때 비로소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높은 수준의 불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능력주의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침식”(8)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약화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 이유는 능력주의가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주의 쇠퇴는 궁극적으로는 불평등한 분배를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부의 분배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 사이의 갈등이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노동 간의 소득 분배가 그토록 많은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자본의 소유가 지나치게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54)

 

피케티에 따르면 노동소득의 불평등보다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훨씬 더 큰 문제다. 즉 노동소득은 개인의 능력을 상당히 반영하지만 자본소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기인하는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쉽게 용인될 수 있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이 분명 항상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입각한 현대성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른 불평등은 다른 불평등보다 정당하다는 믿음을 토대로 하고 있다.” (291)

 

비슷한 이유에서 피케티는 자본소득도 저축과 상속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의 불평등이 앞선 세대들로부터의 상속재산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저축에서 나온 것인지에 따라 그 중요성이 달라지기 때문”(30)이다. 부의 세습으로부터 나오는 자본소득의 차이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능력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속은 저축보다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적다.

 

얼핏 보면 총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 ∼ 4분의 3을 차지하기 때문에 자본소득 불평등이 노동소득 불평등보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자본과 관련된 불평등이 항상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보다 크다. 자본 소유와 자본소득의 분배는 항상 노동소득의 분배보다 더 집중돼 있다”(294).따라서 자본소득의 차이가 불평등 심화에 미치는 영향이 노동소득의 차이보다 적다고 할 수 없다.

 

불평등은 어떻게 심화되는가?

피케티의 분석에 따르면 불평등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 모두에서 악화되고 있다. 그 원인은 저소득층의 소득보다 고소득층의 소득이 더 빨리 증가하는 데 있다. “극단적인 불평등의 증가가 고액 연봉자들의 노동소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대기업 최고위 경영자들과 나머지 인구의 격차가 참으로 크게 벌어진 사실을 반영한다.” (37)

 

현재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정치문제로 비화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불평등 증가는 주로 전례 없는 임금 불평등의 증가와 특히 임금 계층의 꼭대기층, 그중에서도 대기업 최고위 경영진의 보수가 극도로 높아진 결과다.” (359)그렇다고 해서 자본소득 불평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자본소득 불평등의 상당한 증가가 미국 소득 불평등 증가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이는 결코 무시할 만한 규모가 아니다.” 실제로 자본소득의 비중은 소득계층의 위로 올라갈수록 더 큰 경향이 있다.

 

이러한 소득격차의 급격한 확대는 조세제도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누진세의 선도국가들이었던 영국과 미국에서 나타난 초고소득층의 증가는 아마도 소득세의 누진성이 극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상당 부분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적 조세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많은 정부가 누진적 소득세에서 자본소득을 제외했다.” (594-5)

 

불평등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성장(파이를 키우는 것)이 분배(파이를 공정하게 나누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해왔다. 피케티도 이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파이를 키우면 공정하게 나누지 않더라도 더 많은 파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케티가 공정한 분배를 강조하는 이유는 파이를 더 이상 키우기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에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이 누렸던 수십 년간의 고성장(3∼4% 이상)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파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워진다면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소득 불평등이 축소됐던 20세기 소득분배 통계를 분석했다. 여기에서 그는 소득 불평등의 개선은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아니라 고소득층의 소득 저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세기에 소득 불평등이 상당히 축소된 것은 전적으로 자본소득에서 최상위 소득이 줄어든 데 기인한 것이다.” (328)

 

20세기에 불평등을 감소시킨 요인은 상당 부분 전쟁의 혼란과 그에 뒤따른 경제적, 정치적 충격이었다.… 20세기에 과거를 지우고 사회가 새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조화로운 민주적 혹은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바로 전쟁이었다. 이 충격들은바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한 파괴, 대공황이 불러온 파산,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시행된 모든 새로운 공공정책(임대료 규제정책으로부터 국유화, 국채에 기초해 생활하던 자본소득자 계층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안락사에 이르기까지)이다.” (331/275)

 

세습자본주의는 왜 문제인가?

피케티에 따르면 세습사회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세습사회는) 부의 집중도가 매우 높고 많은 재산이 대대로 꾸준하게 유지되는 사회를 의미한다.”(421)

 

 

세습사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불평등에 함의를 가진다. 첫째, 상속 그 자체가 불평등하다.

 

 

“상속받은 자산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돼 있다는 것이다.”(485)그 이유는 부의 불균등한 배분에서 나온다.

 

 

“알려진 모든 사회에서 어느 시기든 인구의 절반은 거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전체 부의 5%만 소유한다. 명확히 상위 10%의 부유층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의 대다수를 소유한다. 일반적으로는 전체 부의 60%, 때로는 90%까지 소유한다. 그리고 구조상 중간 계층의 40%인 나머지 인구가 전체 부의 5∼35%를 소유한다.”(404)

 

 

두 번째, 세습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침식시킬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차원에서 세습자본주의는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 문제를 야기한다.

 

 

“자본수익률이 현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 (과거에 축적된 자산의) 상속이 (현재 축적된 자산인) 저축을 압도한다.… 거의 필연적으로 이는 과거에 만들어진 불평등, 따라서 상속을 더 지속적이고 과도하게 중요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452)

 

 

또한 세습자본주의는 극소수 부유층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만들고 있다. 즉 부의 집중은 정치권력의 집중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 인하는 고소득자들의 폭발적인 소득 증가로 이어졌고, 그 결과 세제의 변화로부터 혜택을 받는 이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높였다. 이들은 최고 세율을 낮게 유지하고 심지어 더 내리는 데 관심이 있으며, 그렇게 얻은 돈으로 정당들, 압력단체들, 싱크탱크들에 자금을 댈 수 있었다.” (402)

 

기본적으로 피케티는 교육 및 기술이 불평등을 축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소득 불평등-그것도 일부-만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 자본소득의 불평등에는 근본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가 최상위층의 자본소득을 줄이는 데 기여했을까?자본소득과 관련해 그는가장 자연스럽고 중요한 설명은 20세기 정부들이 자본과 자본소득에 상당한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446)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소득의 측면에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프랑스와 미국에서 임금 불평등이 축소된 것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급여 체계에 대한 협상이 이뤄진 결과이며 여기에는 이런 목적을 위해 특별히 설립된 국가전시노동위원회와 같은 구체적인 제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370)

 

또한 그는 미국과 프랑스 모두 최저임금제가 임금 불평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최저임금이 오르면 불평등이 감소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평등이 악화되는 양상이 미국과 프랑스 모두에서 나타났다.

 

이런 맥락에서 피케티는 시장 메커니즘이나 교육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소득 불평등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낙관론에 부정적이다.

 

“민주주의와 능력주의를 바라는 희망은 경제성장으로 충족시킬 수 없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특별한 제도를 고안해내야 하고 시장의 힘이나 기술 진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121)

 

즉 정치사회적 제도 변화 없이는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피케티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 대안은 조세제도의 개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세습자본주의의 영속화를 막기 위해 자본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도입된 누진세가 1980년대 이후 많이 약화돼 왔다.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를 막기 위해 피케티는 누진세율의 과감한 인상을 촉구했다. 그가 추정한 최적 최고세율은 2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 사이의 소득에 대해서는 50∼60%, 50만 달러 내지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80% 이상이다.

 

슈퍼 경영자의 천문학적 보수가 왜 문제인가?

피케티는 자본소득(세습)이 아닌 노동소득(능력)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슈퍼 경영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첫 번째 이유는 최고경영자들이 받는 천문학적 보수가 노동소득의 분배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세습자본주의는 왜 문제인가참고.)

 

“최고세율이 가장 크게 인하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최고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 특히 대기업 최고위 경영진의 급여가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다. 반면 최고세율이 그리 많이 인하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국민소득에서 최고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더 완만하게 증가했다.” (612)

 

두 번째 이유는 천문학적 보수를 정당화 또는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우월한 교육과 기술을 가진 최고경영자들은 극단적인 능력주의로 예외적으로 높은 보수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경영자의 급여가 기업 성과와 연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받는 높은 급여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개인적인생산성에서 찾는 것은 다소 순진한 생각” (396)이라고 주장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천문학적 보수는 슈퍼 경영자가 초능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주주와 이사회의 경영자 감독 실패라는 기업지배구조의 결함에서 기인한다.

 

“기업의 생산량에 대한 각 관리자의 기여도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층 구조상의 관계와 관련자들의 상대적인 협상력에 좌우된 매우 자의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급여를 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에게 관대하거나 적어도 자신의 한계생산성을 다소 낙관적으로 평가할 유인을 지닌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런 고위경영진에게기업의 돈을 훔친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비난일 수 있지만 아마도 애덤 스미스가 말한 시장의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보다는 더 적절할 것이다.” (398)

 

또한행운의 급여(pay for luck)’라는 개념이 시사하듯이 경영자의 보수는 기업 성과 같은 내부적 요인보다는 제도적 변화를 포함하는 외부적 요인에 더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1980년대 이후 영미권 국가들의 소득세 최고한계세율 인하는 최고위 경영진이 급여 인상을 추구할 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최고한계세율이 높을 때는 급여 인상분의 대부분이 세금으로 나간다. 즉 급여가 인상되더라도 세후 수입에는 큰 차이가 없어 임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반면 최고한계세율이 낮다면 급여 인상분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지 않게 된다. 이럴 경우에 최고경영진이 임금 인상을 더 강력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천문학적 보수를 막기 위기 위한 방법으로 피케티는 기업 회계의 투명성 강화를 제안했다.

 

“다양한 형태의 민주적 자본통제는 각각의 관련 당사자에 대한 경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경제 및 금융의 투명성은 세금을 확실히 부과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또한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반적인 이유가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민주적 통치와 참여에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투명성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며, 그 자체(정치인의 경우와 달리 신뢰를 구축할 방법이 없는 상황은 제외하고)로 흥미롭지 않다. 집단행동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회계장부를 상세히 공개하는 것이다.”(689)

 

피케티는 자본소득(세습)이 아닌 노동소득(능력)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슈퍼 경영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피케티는 현재 주주 중심 기업지배구조에서는 이사회가 경영자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자를 이사회에 참가시키는 이해관계자 중심 기업지배구조로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이 사회적 공동소유 모델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적어도 영미 방식의 시장자본주의 혹은주주모델만큼 효율적일 수 있음을 주목한다. 특히 이해관계자 모델이 필연적으로 낮은 시장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낮은 사회적 가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177)

 

누진세와 글로벌 부유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가?

얼핏 보기에 최적최고세율을 80%까지 올리자는 피케티의 제안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수준까지 세율을 올린 경험이 없지는 않다. 1919∼1922년 사이 미국 정부는 소득세에 대한 최고한계세율을 70% 이상까지 인상했으며 1937∼1939년 사이에는 상속세에도 이 세율을 적용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승리세법은 최고세율을 88%까지 올려놓았다. 1940년대 영국의 최대소득세율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인 98%까지 치솟았다.

 

자유시장경제를 대표하는 미국과 영국이 이렇게 강력한 누진율을 적용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산층이 상류층보다 더 많은 조세부담을 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상위 계층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든 중산층의 지지가 감소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할 것이다. 조세제도가 전체적으로 불공정한데, 왜 다른 사람을 위해 계속 세금을 내야 하는가? 따라서 현대적인 사회적 국가가 계속 유지되려면 기초가 되는 조세제도가 최소한의 누진성을 지니거나 적어도 명백히 상류층에게 역진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596)

 

누진세는 국유화나 보수 상한제(salary cap)와 달리 자본주의적 경쟁을 제한하거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한 미국과 영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더 누진적인 세제를 도입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에 유럽 대륙의 국가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업의 공적 소유와 경영진 보수의 직접적 제한 같은 다른 길들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러한 수단들은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결정됐는데 어떤 점에서는 누진세를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607)

 

글로벌 자본세 역시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피케티는 이 해법이 다른 대안들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세율이 극히 낮다. “0.1%의 자본세는 실제 세금이라기보다는 의무신고제도에 더 가깝다.” (625) 이렇게 낮은 이유는 글로벌 자본세의 목적이 세수 확충이나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금융 및 은행 제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과 은행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623)를 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제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부과될 때 더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금융세계화가 본격화된 이후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가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조세피난처가 은행 비밀을 지키려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이 재정적인 의무를 피할 수 있도록 해줘 조세피난처가 그 이익을 공유하는 데 있다. 분명히 이는 시장경제 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도 자신의 세율을 정할 권리는 없다. 또한 개개인이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으로 부유해지고 단지 이웃을 희생시킨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도둑질이다.” (627-8)

 

글로벌 자본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IMF OECD G-20에 세계적 차원의 조세개혁안을 제안했다. 동시에 여러 국가들이 조세회피처를 규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해외금계좌신고법(FATCA)을 통해 조세피난처를 활용해온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미국인들의 해외 탈세를 도와준 스위스 은행들도 철저하게 조사해 관련자를 기소했다.

 

피케티 주장에 대한 평가(Critical Review): 정치경제학계의 논의를 중심으로

<21세기 자본>에 대한 평가는다 틀렸다는 극단적인 부정에서대부분 다 맞는 얘기라는 매우 우호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반응은 정치성향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전 미국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가 지적한 것처럼 진보적 성향을 가진 학자나 전문가들은 대부분 우호적인 반면 보수적인 성향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매우 비판적이다. 물론 우호적인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피케티의 주장과 이론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비판자들이라고 해서 피케티가 공을 들여 작업한 통계분석을 폄하하지는 않는다.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21세기 자본>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앞으로도 자본수익률(3∼4%)이 경제성장률(1.2%)보다 계속 높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가정은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피케티의 거시 통계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술발전이나 정책변화를 통해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보다 더 높아진다면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는 그의 가정이 흔들리게 된다. 국내 보수적 경제학계에서 쏟아지는 많은 비판이 이 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설득력이 있는 비판 지점이다.

 

둘째,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가정(즉 노동과 자본이 서로 대체가 용이하다는 가정)이 비현실적이라는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대다수 실증분석에서 대체탄력성은 1보다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케티가 이 같은 가정을 내세우는 건 자본수익률의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오류가 있는 부분이다.

 

세 번째로 중요한 문제점은 피케티가세습자본주의의 존재와 그 문제를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피케티가 활용한 <포브스> 400대 부호 통계만으로 상위 1%가 세습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주장을 증명할 수 없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같이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이 계속 출현하는 한 피케티의세습자본주의 비판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왕휘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leew@ajou.ac.kr

이왕휘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런던 정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아주대 정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국제금융통화체제, 기업지배구조 등이며등 국내외 정치경제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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