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마케팅, 인문학
매일 뉴스에 ‘여풍(女風)’이라는 말이 나오고 ‘여성상위시대’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여권이 신장된 나라’일까? 여성이 소비의 중심에 있고 문화를 리드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여권향상사회’는 아니다. 역으로 남성 다수가 대부분의 시간을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보내고 여성은 가정을 주로 돌보는, 얼핏 보면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가 사실은 소비패턴에서 ‘여성중심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족 간의 ‘돈 관계’는 ‘경제문제’가 아니라 ‘문화’다. 따라서 기업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마다 다르게 형성돼 있는 ‘소비의 중심(여성인지, 남성인지)’을 먼저 포착하고 시장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
편집자주
‘문화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그동안 연재해 온 ‘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연재를 이번 회를 끝으로 마칩니다. 조만간 문화전략과 관련한 새로운 연재로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욕망의 전략(Strategy of Desire)>의 저자인 에네스트 디히터는 ‘광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프로이드가 발명한 정신분석학을 기업이 고객 심리 이해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고객의 구매 의도를 분석하는 동기조사(Motivational Research) 테크닉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의 저서인 <욕망의 전략>을 읽어보면 에네스트 디히터가 성공한 요인은 고객 분석 테크닉에만 있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의 통찰력 중 가장 획기적이었던 것은 남자가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는 사회도 소비는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이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디히터는 콤튼광고사로부터 아이보리 비누 브랜드의 광고에 대한 자문을 요청받았다. 콤튼광고사는 비누 소비자들의 구매 의도를 사전에 분석하기 위해 ‘왜 경쟁사 제품을 사지 않고 아이보리 비누를 샀습니까’ 같은 식상한 질문으로 고객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디히터는 그런 논리적인 질문으로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봤다. 대부분의 비누 구매자들이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 여성들의 어떤 숨겨진 감정적 욕망이 구매 의욕을 일으키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누를 구매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행동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여성 소비자들 대부분이 비누를 구매하려고 매장에 들어오면 비누를 쓰다듬고 눈을 감고 향기를 맡아본다는 점을 알게 됐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디히터는 여러 예비 고객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통해 남성들에게 비누란 단순히 몸을 씻는 도구일 뿐이지만 여성들에게 비누는 좀 다른 의미라는 걸 알게 됐다. 비누와 여성 사이에는 깊은 정신적 관계가 있었다. 디히터가 활동하던 1930년대의 미국 여성들은 성적 욕구를 드러내 이성에게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가거나 혼자 있는 곳에서도 자기 몸을 노출하는 것이 엄격한 금기 사항이었다. 홀로 있는 욕조에서조차 나체로 자기 몸을 비누로 문지르는 행동은 아주 비밀스럽고, 여성스럽고, 감각적인 은밀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무의식중에 목욕을 빙자해 자기 맨살을 부드럽게 문지를 수 있는, 즉 ‘자기 몸을 만질 권리와 자유를 주는 비누’의 질감이 매우 중요했다. 여성들이 비누를 구매하기 전에 미리 만져보고 질감이 좋으면 구매를 결정한다는 점을 발견한 디히터는 아이보리 비누의 광고를 획기적으로 구성했다. 행복한 표정으로 욕조에서 비누칠을 하고 자기 몸을 문지르고 있는 여성 모델을 기용하고 비누 모양도 딱딱한 사각형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둥글고 매끈한 모양으로 바꾸도록 했다.이 광고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이후로 아이보리 비누는 수십 년간 미국 여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비누 브랜드가 됐다.1 디히터는 자기 시대의 미국은 가계와 가사를 책임지던 어머니들이 소비의 주체인 Matrifocal Society라는 점을 제대로 깨달아 광고계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주어진 역할은 서로 다르며 그런 역할은 그 사람이 자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유럽의 북방 민족인 바이킹족은 전쟁이 발발하면 남녀가 나란히 무기를 들고 나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여자는 주로 방패를 들고 자기 옆에서 싸우는 남자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고, 상대편을 창과 칼로 치며 공격하는 역할은 남자들이 맡았다. 남자는 일정 나이가 되면 사회적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입신양명’해야 하고 여자는 ‘마님’으로서 ‘곳간 열쇠’를 책임지던 우리나라의 오래된 남녀 역할 분담도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은 여 궁수들이 군사와 정치를 담당하고 남자들이 가사 노동을 전담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분담은 문화에 따라 달랐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남자와 여자의 교육이 분리돼 있었고 남녀는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두 개의 다른 문화권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그로 인해 한 사회에서 남자 또는 여자가 소비 주체가 돼서 소비와 자녀교육을 주도할 때 그 문화의 주류 소비 문화 패턴은 매우 다르게 발달하면서 남성위주 vs. 여성위주 사회의 문화 DNA 차이를 만들어 냈다.
여성 중심 사회의 3가지 유형
문화인류학에서는 여성 위주 사회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아들이 어머니의 이름을 이어받고 아버지는 가족의 중심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계(Matrilineal)사회다. 중국 모이족이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처럼 여자가 시집을 가서 시댁으로 이주하지 않고 오히려 남자가 장가 들어 처가로 이주하는 처가거주(Matrilocal) 사회다. 오늘날의 산업화·정보화 사회에서 이 두 가지 유형은 매우 드물어서 가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접할 수 있다. 한편 많은 사회는 사실 내면적으로는 어머니가 가사와 자녀교육의 주체가 된 여성중심 (Matrifocal)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아버지의 직장 근로시간 과다, 군 장기 복무, 전쟁 참전 등으로 ‘아버지가 가정을 이끌 수 있는 물리적 시간’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사회가 여성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인류학적 교훈이 있다. 처음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이로코이 원주민 부족을 접한 유럽의 학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로코이족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들이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아주 어릴 때부터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시켜 고통에 둔감해지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보는 데서 전쟁터에서 잡아 온 적군의 손톱을 뽑고 사지를 잘라 동네 한가운데에서 구운 다음 식인종 파티를 열었다. 이처럼 시체와 인간 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의례를 치르고서야 남자로 인정해줬다. 남성성이 강한 이로코이족이지만 주로 남자들이 처가에 얹혀 살고, 아들도 어머니의 이름을 따르는 모계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남자가 살림살이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이로코이족은 남자가 사회를 주도하면 강한 전사 사회를 이루고 여자들이 사회를 주도하면 섬세한 사회가 된다는 유럽인들의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이후로 수많은 유럽 사회학자들이 이로코이족을 찾아가 그들 사회를 연구하고 여러 논문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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