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체제의 명암
Article at a Glance-전략,재무회계
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와 기업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촉발된 지주회사로의 전환의 필요성은 국내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층 부각됐다. 이론상 지주회사는 상호출자형 지배구조에 비해 단순하고 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운영되는 지주회사 모형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지 않고 자회사가 모회사와 별도로 상장된 경우가 많아 피라미드 방식의 기존 지배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한계를 지닌다. 특히 지주회사 전환 과정이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자본의 형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무조건 바람직하다는 식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주회사 체제가 가진 긍정적인 면을 살리고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
미국을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단일기업(stand-alone) 체제보다는 다수의 기업이 하나의 그룹에 소속되는 기업집단(business group) 체제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를 논할 때는 이사회 등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governance mechanism도 중요하지만 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이 어떤 구조로 연결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국내 지주회사 제도의 도입 취지와 실제 전환 과정을 살펴보고 지주회사 제도를 한국형 지배구조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기대할 수 있을지 평가하고자 한다.
Governance vs. Control
논의에 앞서 우선 지배구조라는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선행돼야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는 기업지배구조를 주로 지분구조 등 출자 및 소유관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 에버랜드에서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물론 소유구조도 지배구조의 중요한 부분이다. 현대 기업 이론의 근간이 되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에 따르면 경영진이 직접 소유한 지분율이 높을수록 대리인 문제가 낮고 따라서 기업가치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대리인 이론에 의한 설명은 주식 소유에 동반되는 배당권 또는 현금흐름권(dividend or cash flow right)의 효과에 기반을 두는 반면 국내에서는 지배구조를 의결권(voting or control right)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corporate control structure를 기업지배구조로 이해할 때가 많다. 이런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영진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바람직한 지배구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안정적 경영권보다는 활발한 M&A를 선호할 수도 있다.
재무금융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corporate governance를 ‘The ways in which suppliers of finance to the corporations assure themselves of setting a return on their investment (Shleifer and Vishny, Journal of Finance, 1997)’로 이해한다. 즉, 주로 주주 및 채권자 등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 투자자 중심으로 governance에 접근한다. 이런 입장에서는 governance를 ‘지배구조’보다는 (경영진에 대한 투자자의) ‘통제수단’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런 의미에서 접근한다면 ‘바람직한’ 지배구조의 정의는 비교적 명확하다. 주주 및 채권자에게 적절한 수익을 제공해 주는 지배구조가 바람직한 지배구조다. 아래에서는 Shleifer and Vishny의 정의에 입각해 지배구조를 이해하고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의 지주회사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집단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소위 소수의 지분으로 순환출자 등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많은 기업군을 거느리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복수의 기업 간 출자 또는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차등의결권 주식(dual class shares)1 을 통해 가능하다. 예컨대 최대주주 X가 기업 A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기업 A가 기업 B의 지분 50%를 보유하면 X는 A를 통해서 B의 의결권을 50% 행사할 수 있지만 B가 배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25%(=50%x50%)2 만 받게 된다. 이러한 다단계 출자(pyramid)를 통해 X는 출자 단계의 하부에 있는 기업에 대해서 의결권은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는 있지만 배당권은 얼마 되지 않는데 이는 다양한 형태의 대리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예컨대 X가 배당권이 5%에 불과한 기업에서 비자금을 형성하면 이 중 95%는 다른 주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주회사에 대한 최근의 논의에 의하면 지주회사 체제는 이 같은 소유지배 괴리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지주회사가 적은 지분율로 많은 지배권을 행사하는 문제를 완화하는 대안적 성격의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정부의 지주회사에 대한 정책 방향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려는 목적에 맞춰 변화를 겪어왔다. 1981년 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은 당초 경제력 집중 억제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1986년 공정거래법 제1차 개정 당시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야기하는 재벌 체제를 규제하기 위해 출자총액 제한제도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정이 도입됐으며 이에 따라 계열회사 지배만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지주회사의 설립이 금지됐다. 그러나 지주회사 설립을 금지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대규모 기업집단에서는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사업지주회사 체제를 운영해 왔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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