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Minds

파리의 인상파도… 친구 고갱도… 천재 반 고흐를 완성시킨 ‘경쟁자’였다

159호 (2014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혁신

빈센트 반 고흐는 단지 엄청난 노력이나 대단한 천재성만으로 위대한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화풍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걸 깨달은 뒤 곧장 파리로 달려가 인상파 기법을 배우고 그것을 넘어서며 그들과 경쟁했다. 말년에는 고갱과 경쟁하고 협력하며 자신의 업적을 완성했다.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킨 모범 사례인 셈이다.

경쟁은 빠른 발전과 개선을 가능케 하고, 여러 호르몬을 배출해 몸에 쾌락을 주고, 두뇌를 활성화시키며 혁신을 이끈다. 물론 경쟁자 수가 지나치게 많거나 경쟁의 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부작용도 생긴다. 자칫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거나 파괴적 경쟁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기 쉬운 현대의 기업들은 고흐와 고갱의 건설적 경쟁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1888 12월 말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인 아를의 지역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1223일 일요일 밤 1130분경, 네덜란드 출신의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가 윤락가 1번지에 나타나 라셸이라는 여인을 찾아서 그녀의 손에 다음과 같은 쪽지와 함께 그의 귀를 쥐어주었다. ‘이 물건을 소중이 간직하시오.’ 그러고는 사라졌다. ‘불행한 광인의 소행일 수밖에 없는 이 해프닝을 접한 경찰은 이튿날 아침 침대에서 간신히 목숨이 붙어 있던 그를 찾아냈다.”

 

이 사건은 미술사에서 아주 유명하다. 반 고흐가 아를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던 고갱과 다투다가 일어난 일이다. 그날 반 고흐는 자신이 마련한 집에 고갱이 온 지 두 달 된 기념으로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같이하자고 청했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다 보니 의견 차이가 생겼고 그간 쌓였던 감정이 폭발해 커다란 싸움으로 변했다. 사실 고갱은 반 고흐만큼 공동 작업에 열의가 없었다. 순전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미술상인 반 고흐의 동생 테오로부터 고정 수입을 약속 받고 아를에 왔던 것이다. 이성적인 고갱은 감정 기복이 심한 반 고흐와 성격적으로 맞지 않아 힘들었다. 결국 고갱이 떠나겠다고 하자 고갱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더 원했던 반 고흐는 폭발했다. 뛰쳐나가는 고갱을 따라가 자해하겠다고 위협했으나 고갱은 아랑곳하지 않고 반 고흐를 뿌리치고 집을 나갔다. 그 즉시 반 고흐는 집에 들어와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고 고갱을 찾아 나섰다. 아마도 고갱이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귀를 탓한 것 같다.

 

반 고흐에게 고갱은 이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었다. 반 고흐는 고갱을 초대해서 두 달 동안 지내면서 커다란 영감을 받았고 자신의 그림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사실 반 고흐에게 동료는 외로움을 잊거나 교우를 나누는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반 고흐는 친구들과 교류하고 경쟁하며 자신의 화풍을 발전시켰다.

 

고흐에게동료가 갖는 의미

1853년 네덜란드의 시골 마을 준데르트에서 태어난 반 고흐는 목사 아버지 아래 화목하고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20대 후반까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대가족이었는데 삼촌 세 명이 모두 미술상이었다. 16세 때 반 고흐는 한 삼촌의 도움으로 미술품중개회사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하게 됐다. 헤이그와 런던에서 일하며 20세까지 능력을 발휘해 유망한 미술상으로 커나갔다. 하지만 우울증과 고독감으로 종교에 빠지면서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그만뒀다. 여러 곳에서 선교활동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도사도 해봤지만 마음의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미술상을 하고 있던 동생 테오의 권고에 따라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27세의 나이에 그림을 처음 시작한 반 고흐는 들어가는 미술학교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금방 그만두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농부들의 삶을 스케치하며 그림 실력을 키워나갔다. 네덜란드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 네덜란드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주로 농촌의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 이 무렵 반 고흐의 우상은 농부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밀레였다. 1885년 고흐가 그린 초기 대표작감자 먹는 사람들은 그림을 배운 지 4년밖에 안 된 화가가 그렸다고 하기에는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1885)

 

1886년 반 고흐는 동생의 권유로 파리로 옮겨 활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인상주의 화풍을 배우며 후기 인상파 화가들인 베르나르, 로트레크, 쇠라, 시냐크 등과 교류한다. 이때부터 어두웠던 그림이 밝은 색으로 바뀐다. 인상파 동료들의 색감이나 기법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의식이 강했던 반 고흐는 이들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뭔가 찜찜하다고 생각했다. 이러던 차에 고갱의 그림을 접하게 된다. 반 고흐는 고갱의 그림에서 인상파에게서 부족한 요소를 발견했다. 이때부터 고갱과 의식적으로 친하게 지내며 그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1888년 반 고흐는 인상파의 중심지인 파리를 떠나 남쪽의 아를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화가들의 공동체를 꾸리려고 했다. 우선 동생 테오에게 부탁해서 고갱을 아를로 오게 만들었다. 고갱은 반 고흐가 마련한 집에서 기거하며 일체의 비용으로 한 달에 한 점의 그림을 테오에게 보내는 조건이었다. 두 사람은 아를에서 똑같은 대상을 그리며 서로의 화풍을 발전시켰다. 반 고흐는 고갱에게 자극받으며 영감을 얻었다. 고갱은 그에게 꼭 필요한 스승이자 동료이며 경쟁자였다. 고갱과 헤어진 후 독특한 화풍을 완성한 반 고흐는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과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즈우아즈에서 매우 많은 그림을 그렸다. 점점 심해지는 정신병 발작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1890 37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반 고흐는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심하게 탔기에 정에 약했다.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대해주면 여인과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에 빠졌고 남자들과는 친구가 됐다. 런던에서 미술상으로 일할 때 친절한 하숙집 딸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거절당했다. 집에서 그림 공부를 할 때 집에 놀러 온 이종사촌 누나에게는 아들까지 있었지만 그녀를 짝사랑했고 상처받았다. 얼마 후 집을 나와 남자에게 버림받고 몸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을 만나 정을 주게 됐다. 그녀는 딸이 있었고 임신한 몸이었다. 부모의 반대로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반 고흐에게 말을 걸었던 열두 살 많은 옆집 노처녀에게 사랑을 느꼈다. 이 역시 양가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파리에서는 카페를 하던 열 살 많은 여성과 한동안 사랑을 나눴지만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며 결국 상처로 끝났다. 반 고흐는 이토록 외로움을 잘 탔기에 우정을 나눌 화가 동료들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성적이었지만 고집과 자의식이 강했기에 동료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받지는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던 반 고흐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자신의 화풍을 완성했다. 시기별로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던 동료들과의 경쟁과 자극이 그를 그토록 빠르게 발전시켰다. 고흐를 키운 건 팔 할이 경쟁이었다.

 

시기별로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던 동료들과의 경쟁과 자극이 그를 그토록 빠르게 발전시켰다. 고흐를 키운 건 팔 할이 경쟁이었다.

 

경쟁의 효과

반 고흐의 경우처럼 경쟁은 빠른 성과를 가져온다. 경쟁과 협력은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두 축이다. 특히 경쟁은 인간사회뿐 아니라 생태계에서도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물학, 사회학, 경제학 등에서 경쟁이 집단과 사회를 진화하게 하고 발전시킨다는 사실은 하나의 공리가 됐다. 경쟁의 효과를 광범위하게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경쟁이 창조와 혁신으로 이어지는 경우에 한정해서 다뤄본다.

 

첫째, 경쟁은 빠른 발전과 개선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경쟁은 모호함을 없애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신생기업이 선진기업을 경쟁상대로 삼아 모방하는 이유는 발전 방향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고흐 역시 필요할 때마다 동료 화가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좀 더 빨리 정립할 수 있었다. 아마 고흐가 동료들과 교류하지 않고 끝까지 혼자서 그림을 그렸더라도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는 표현주의 회화 스타일을 결국에는 완성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상당히 오래 걸렸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경쟁은 몰입을 도와준다. 기록 경기인 달리기나 빙상에서 두 사람 이상을 같이 달리게 하는 이유가 경쟁 상대를 보며 기록을 단축시키라는 취지다. 즉 경쟁은 쉽게 몰입하게 해 빠른 발전을 가져온다.

 

둘째, 경쟁은 여러 호르몬을 배출하게 해 몸에 쾌락을 주고 두뇌를 활성화시킨다.

이런 상태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이 가능해진다. 운동선수들이 극심한 경쟁 상태에 놓이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분출돼 사람을 흥분시키고 힘이 나도록 만든다. 경쟁할 때 사람들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런 호르몬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초콜릿을 먹거나 연인의 손을 잡을 때 나오는 호르몬 역시 도파민이다. 핵심은 이것이 경주에서 1등을 하고 임무를 성공리에 마무리했을 때 나오는 보상이 아니라 결과를 얻으려고 경쟁할 때 얻는 보상이란 사실이다. 이처럼 경쟁은 그 자체로 쾌락이나 행복감을 주기 때문에 돈이 필요 없는 부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두뇌가 활성화돼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나와 새로운 혁신을 낳게 된다.

 

스포츠에서 어떤 종목의 최고로 뛰어난 운동선수들은 같은 지역 출신일 경우가 많은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장거리 달리기는 대부분 케냐 선수들이 잘하고, 단거리는 자메이카가 잘한다. 비즈니스에서도 한 산업에서 글로벌 1위 기업은 대개 비슷한 지역에 몰려 있다.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산업, 한국의 전자산업,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등이 그렇다. 이들은 모두 대기업이 경쟁한 결과이면서 거대 규모 경쟁의 결과지만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월소(Warsaw)는 기껏해야 주민이 13000명을 조금 넘는다. 그런데 이 작은 도시에 정형외과 의료제품 분야에서 세계 1, 2, 3위 기업들이 다 모여 있다. 정형외과 분야에 있어서 세계의 수도인 것이다. 침머, 드 퓌, 바이오멧이 여기에 있는데 이 회사들에서는 엉덩이, 무릎, 다른 관절을 대체할 수 있는 정형외과용 의료보조기구를 생산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분야 세계 4위 기업인 스트라이커 역시 이곳에서 멀지 않은 미시간 주의 남서부에 위치한 캘러머주(Kalamazoo)에 있다는 것이다. 이웃하고 있는 이 기업들은 생겨날 때부터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 때로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고 때로는 적대적으로 경쟁하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 간의 경쟁이 각자의 경쟁력을 향상시켰다.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혁신을 가져왔고 이윽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 경쟁이 빠른 발전을 가져왔고 어느 순간 혁신으로 도약하게 만든 것이다.

 

경쟁의 부작용

경쟁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부작용도 있다.

 

경쟁이 혁신에 미치는 효과를 다룬 연구는 대부분 경쟁과 혁신 사이에 거꾸로 된 U자형 관계가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가령 유럽의 경제학자들(Carlin, Schaffer, Seabright, 2004)은 동구권 등 사회주의 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기업 간 경쟁이 성장과 혁신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다. 예상할 수 있듯이 독점기업이 지배하는 산업은 혁신이 저조해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경쟁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혁신이 증가했으나 경쟁하는 기업의 수가 3개를 넘어서면 다시 혁신이 줄어드는 결과를 보였다. 경쟁은 기업에 혁신을 가져와 시장의 크기를 키우지만 지나친 경쟁이 일어나면 혁신으로 시장의 파이를 키워 이익을 얻는 것보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게 더 쉽기 때문에 파괴적인 경쟁으로 돌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쟁과 집단 창의성을 연구(Baer, Leenders, Oldham, Vandera, 2010)한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경쟁이 어느 수준까지 증가하면 창의성은 올라가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서 극한 경쟁으로 치달으면 창의성이 오히려 급격히 떨어진다. 어느 정도의 경쟁은 개선과 혁신을 가능하게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행위자들이 경쟁에 너무 집착하게 돼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는 위기 이론으로도 설명되는데 극심한 경쟁은 위기 상황을 만들어 정보처리가 경직화되고 의사결정의 중앙집중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요컨대 경쟁을 통해 상호 발전하면서 시장의 크기를 늘려가지 않고 남의 것을 가져오는 제로섬 게임이 되면 경쟁은 제살 깎아먹기식으로 변질된다. 그러면 유연성은 줄어들고 경직돼 혁신이 싹틀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성숙기에 처한 비즈니스에서 극심한 가격경쟁이나 점유율 빼앗기가 나타나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이런 현상은 비단 기업계나 인간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최근 공룡 연구자들이 주장한 새로운 학설이 이와 관련된다.

 

초기 귀여운 도마뱀이었던 공룡은 멸종하기 전 대부분 무섭고 화려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기존 학설은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초식 공룡인 트리케라톱스가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무시무시한 육식 공룡과 싸워 이기자니 몸집도 커지고, 적에게 위협적인 모습으로 변했으며, 강력한 무기가 되는 뿔이 공격적인 모습으로 진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른 학설이 제기됐다.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런 뼈가 공격용으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네 발로 활동하는 트리케라톱스가 몸집이 큰 두 발 공룡을 뿔로 공격해 쓰러뜨린다 하더라도 거대한 공룡에게 깔릴 수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등부터 꼬리까지 몸 전체를 삐죽삐죽한 골판으로 무장한 스테고사우루스 같은 공룡도 마찬가지다. 등에 난 골판이 실제로는 너무 얇아 공격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포식자에게는 이 골판이 무기가 아니라 과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새로운 학설은 포식자와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과장되게 진화됐다고 설명한다. 공작의 꼬리 날개나 사슴의 무성한 뿔처럼 공격보다는 과시용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할 확률로 보면 이성에게 잘 보이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집단 생활을 하는 거대한 몸집의 공룡에게는 포식자를 만나서 싸울 경우보다 동료 수컷과 짝을 놓고 경쟁할 때가 훨씬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오히려 싸움에는 불필요한 과장된 장식이 달리게 된 이유가 성 선택(Sexual Selection) 학설로 설명됐다. 이런 근시안적 내부 경쟁으로 공룡은 거추장스러운 골판이나 거대한 목주름, 무거운 뿔이 생겨났고, 오히려 생존에 지장을 받게 됐다.

 

그림 1 경쟁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법

 

 

경쟁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법

그러면 경쟁의 이점을 잘 활용해 창조와 혁신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 고흐에게서 구체적인 방법을 배워본다.

 

첫째,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혁신기업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높은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역량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초기에는 성공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작은 성공을 이룬 뒤에 목표를 높이는 게 바람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높은 목표를 추구해야 최고의 역량을 축적할 수 있다.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높은 목표를 추구하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반 고흐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농촌의 힘들고 가난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는 게 목표였다. 아마도 반 고흐가 살던 곳이 농촌이었고 목회자가 되려다가 화가로 전환했기 때문에 그림을 하나의 구원으로 생각했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농부들의 고된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소명의식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미술상을 하던 시절에 봤던 밀레의 전시회가 특히 기억에 남았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테오가 지금 파리는 인상파가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편지로 알려줬지만 반 고흐는 그런 말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반 고흐가 그리려던 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반 고흐는 완성된 그림을 동생 테오에게 보냈지만 팔리기는커녕 사람들이 조그마한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가 동생에게 자신의 작품 판매에 소홀하다고 불평했을 때, 테오는 그의 작품이 너무 어둡고 유행하는 인상주의 그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결국 반 고흐는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서 인상주의 그림을 접하고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그의 그림은 180도 달라졌다. 그림에 쓰는 색이 밝아졌고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 고흐가 네덜란드를 벗어나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 오지 않았다면 그의 개성은 그토록 빨리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1850)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1889)

 

둘째, 경쟁자를 넘어서야 한다.

경쟁은 속도 대결이 기본이다. 빠른 행동과 과감한 실행으로 앞서가는 경쟁자를 이기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경쟁자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몰입하고 개선해서 발전하게 된다. 반 고흐는 파리에서 인상파 화풍을 빠르게 익혀나갔다. 그는 파리에서 200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인상파 화가가 운영하는 교습소에서 어린 친구들과 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매일 화방에 들러 유행하는 그림을 구경하고 그것을 그린 화가들과 교류했다. 시냐크와 쇠라 같은 점묘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기법을 흡수했다. 수많은 점을 찍어 표현한 점묘파 그림처럼 쇠붙이들처럼 짧은 선으로 붓질을 해서 이어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 고흐는 인상파 화가처럼 그릴 수 있게 되자 자신과 인상주의는 뭔가 어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에게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했다. 인상파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1890)

 

셋째, 경쟁자와 다르게 해야 한다.

경쟁자와 비슷해졌으면 그와 똑같은 것을 하지 말고 색다른 것을 추구해야 창조와 혁신으로 이어진다. 사실 1등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만 1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현재 한국 기업이 당면한 현실이 이와 같다. 경쟁자와 다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뭘 원하고 뭘 잘하는지 알아야 한다. 반 고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상파 그림에서 부족한 점을 간파했다. 인상파 화풍은 감각적이긴 했지만 화가의 감정이나 사상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반 고흐는 사람 눈에 비치는 모양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그림에 그대로 담기를 원했다. 그가 남긴 40점의 자화상이 모두 다른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것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런 시점에 고갱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고갱은 인상주의 화풍과 다르게 추상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는 풍경이나 사물을 본 후 그것을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해서 그렸다. 고갱과 교류하면서 반 고흐도 대상의 윤곽선을 굵게 그리는 등 고갱의 기법을 차용했고 상상력에 의해 대상을 변형시켜 그릴 수 있게 됐다. 자신의 화풍을 완성한 후에 반 고흐는 자신에게 영감을 줬던 화가 밀레의씨 뿌리는 사람을 자신의 스타일로 여러 번 그리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반 고흐의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그의 말기 그림은 사진으로 봐서는 직접 보는 감동을 느낄 수 없다. ‘모나리자’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똑같지만 반 고흐의 그림은 실제로 봐야 인상적이다. 그림의 붓 터치가 이글거리며 찐득찐득한 게 마치 그림이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그는 동료들을 넘어서 미술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화가가 됐다.

 

건설적 경쟁을 해야

반 고흐에게는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작업했던 시기가 예술적으로 성취감이 가장 큰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똑같은 대상을 그리며 서로의 화풍을 발전시켰다. 카페 여주인인 지누 부인의 초상, 아를의 여인들, 유적지나 거리의 모습, 숲의 풍경 등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시기를 지나며 반 고흐도 고갱처럼 추상적인 요소를 가미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별이 빛나는 밤이나까마귀 나는 밀밭같은 말년의 대표작들은 고갱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성격 차이로 비극적으로 끝나긴 했지만 두 사람의 작업은 건설적인 경쟁이었다.

 

기업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자칫 제로섬 게임을 하거나 극심한 경쟁에 매몰되기 쉽다. 그리 되면 자연스레 혁신은 줄어들게 될 것이고 파괴적인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럴수록 여유를 갖고 건설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즉 남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경쟁이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자에게서 눈을 돌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열정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거기서부터 차별화와 혁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 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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