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글로벌마켓 ASEAN
인구 6억 명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현재 중국을 대체할 차세대 글로벌 생산기지이자 거대 소비시장으로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섬유,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는 이미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보다도 가격 경쟁력이 높다. 중산층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소비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연 소득 5000달러 이상인 중산층 인구가 6000여만 명에 달하며 이른바 ‘Y 세대(15∼29세)’ 인구는 1억6000만 명에 달한다.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AEC)가 출범하게 되면 동남아시아 시장은 ‘국경을 초월한 거대 소비시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견된다.
현재 베트남에는 3200여 개, 인도네시아에는 1700여 개 등 아세안을 통틀어 총 9100여 개 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연간 교역 규모도 1300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느껴지는 대한민국은 일본, 중국, 미국 등은 물론, 호주, 인도 같은 이웃나라에 비해서도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대다수 우리 국민과 기업들은 아세안을 ‘노동집약적 생산기지’ ‘발리와 푸껫 같은 원초적 자연미가 넘치는 쉼터’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에 그쳐 있다. 이에 필자는 동남아 시장에서의 경험과 사례, 현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아세안 진출기업이 명심해야 할 ‘A.S.E.A.N. WAY’를 제시하고자 한다.
1. A - Accompany
아세안 국가의 성장단계/발전전략을 고려해 특화된 투자 및 진출 전략을 펼쳐라
1967년 역내 갈등 해소와 사회·경제 분야 협력을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5개국으로 창설된 아세안은 이후 5개국이 추가 가입, 10개국으로 확대·발전돼 내년 AEC 출범을 앞두고 있다. 아세안은 회원국 간 경제규모, 소득수준, 대외개방도 등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 (표 1) 이에 따라 각 국가별 성장단계 및 개발격차 등을 고려한 차별화된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태국 등 선발 신흥국은 ‘단순 조립 및 우회 수출기지’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잠재력이 큰 거대 내수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으로 진출할 때에는 주축 소비층인 Y세대의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집중한 시장 접근이 필요하다.예를 들어, 선발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신세대 남성들의 소비 패턴 변화에 주목해볼 만하다. 요즘 인도네시아 중산층 남성들 사이에선 임금이 오르면서 소득이 증가하자 저축보다 삶을 즐기려는 경향이 확산돼 가고 있다. 이른바 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꾸미는 ‘그루밍(grooming)족’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전통 정장인 바틱(Batik)과 신발 정도에 머물렀던 신사용 제품이 향수, 클렌징, 헤어왁스 등 이전의 보수적인 무슬림 문화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화장품 업체라면 남성용 제품군을 다양화하는 등 여성 고객들에게만 집중하던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반면 경제개방을 시작한 미얀마와 라오스 등 후발 신흥국은 통신, 전력, 상하수도 등 국가 기간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이 지역에 진출할 때에는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공적개발원조)1 지원을 통한 ‘투자’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현재 2조3000억 원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ODA 자금의 약 40%는 아시아 지역에서 집행되고 있다. (표 2, 3) 특히 최대 수원국인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등 4개국은 ODA 중점협력대상국이다.
ODA 규모가 늘어나고 ASEAN 권역에 대한 지원이 증가함에 따라 이와 연계한 우리 기업의 ASEAN 시장 진출 및 수주 프로젝트의 수익성 제고를 위한 효과적인 사업수행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저개발국으로 꼽히는 CLMV(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권역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통, 통신, 에너지, 수처리 등 생활 인프라 구축과 숙련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및 ICT 기술인력 육성, 한국 개발경험 전수 같은 지식공유사업 등에 ODA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이들 분야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 비교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관련 기업의 진출 가능성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토목 설계 및 감리회사인 K사는 국내외에서의 풍부한 설계경험을 토대로 베트남 푸리 신도시 개발, 하노이 2번 순환도로,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우회고속도, 교량, 캄보디아 씨엠립 폐수처리 시설, 베트남 동수아이 상수도의 설계, 감리 등 ODA 사업을 수주했다. K사는 특히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 국내 기관에서 발주하는 ODA 공사는 물론 다자개발은행(MDB)2 ,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 해외 지원국 ODA 사업도 수주해 시공하고 있다. K사는 2007년부터 ODA 사업 초기 국내 기관 발주사업의 수행을 통해 사업 실적과 현장경험을 쌓으면서 입찰참가 요령, 현지 네트워크 구축 등의 노하우를 축적한 이후 2012년부터 WB, ADB 등의 MDB와 JICA 등의 발주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상당량의 수주계약을 따냈다. 특히 해외 발주사업의 경우 시공역량이 세계적으로 검증된 건설사와 동반해 참여함으로써 수주확률을 높이는 한편 사업수익률도 제고하는 진화된 ODA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도 기준 우리나라의 대(對)ASEAN ODA 절대 규모는 3억2500달러로 일본(34억 달러)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자국의 ODA 지원사업을 자국기업이 수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OECD의 비구속성(Untied) 사업 기준(즉, 우리나라 정부가 캄보디아에 사회 기간망 확충을 위한 ODA 사업 예산을 지원해 줄 때 우리나라 기업이 해당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우리 기업이 ODA를 실제 사업 기회로 활용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다. 그러나 ODA 운용 경험이 오래 된 미국 등 선진국들은 ODA 프로젝트 계획 단계에서부터 배타적인 자국 기술을 반드시 써야만 프로젝트가 진척될 수 있도록 설계함으로써 실제 자국 기업들이 해당 프로젝트를 수주하도록 만드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아예 ‘미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해외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자국의 ODA 사업에 미국 기업들이 다수 참여하고 수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한 기관(무역개발청, USTDA)까지 있을 정도다. 미국은 이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비구속성 사업 기준에 따르는 ODA 사업이 실질적으로는 구속력(Tied)을 발휘해 자국 기업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아세안 국가들의 개발 격차에 부합하고 한국이 비교 우위에 있는 ODA 사업을 개발해 실제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ODA 사업을 통한 기회 포착과 함께 주목해야 할 사업 기회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BoP(Bottom of Pyramid)’ 비즈니스다. BoP 비즈니스는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수익 추구(실익)와 빈곤 삭감(명분) 모두를 추구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새로운 사업 모델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개도국의 낮은 문맹률 개선, 취학률 제고, 기아 문제 해결 등의 기본적인 생활환경 개선과 함께 일본 기업이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는 환경, 에너지, 산업 설비 제공 등을 목표로 하는 10대 BoP 비즈니스 분야를 정해 집중 진출하고 있다. (표 4) 또한 지리적 근접성과 비즈니스로 발전성 등을 감안해 BOP 인구의 70%가 집중돼 있는 아시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본의 활발한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BoP 시장에 대한 전략적 대처는 고사하고 개념조차 생소한 상황이다. BoP 비즈니스는 단기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 BoP 시장의 특성 및 경쟁현황 등에 대한 분석을 강화해 현지 밀착성 제품기획과 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현지 언어는 물론 현지의 문화, 풍습에 익숙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BoP 계층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그들의 니즈에 맞게 적합하게 변형시킬 수 있는 기술 등을 하루 속히 개발하고 진출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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