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V Report
CSV 전략,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 사회에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이란 개념이 널리 퍼졌지만 이 말을 사용하는 주체들은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다소 낭만적인 관점, 한국 사회에는 시기상조라는 관망론,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경영담론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부정적 의견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CSV 전략은 한마디로 ‘남을 돕는 과정을 통해서 돈을 번다’는 사고방식이다. 즉,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일반적으로 기업의 평판 및 이미지를 통해) 동시에 증가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창출을 통해서 (through) 경제적 가치를 증가시키는 방식을 의미한다.1 CSV 전략은 바로 그 자체가 비즈니스 전략이라는 말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 기업의 핵심역량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이는 기업의 수익창출로 이어진다. 이 내용에 다소 수긍하더라도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남을 도우려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비용이 수반될텐데 어떻게 기업은 경제적 가치의 크기를 더 키울 수 있을까?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비즈니스 모델에 논리적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아이러니에 바로 CSV 전략의 핵심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남을 돕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즉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CSV 혁신’이다.
CSV 전략의 차별성: CSV 혁신
이제 CSV 전략의 차별성을 알아보기 위해 가상의 기업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기업에서 전기 절약 운동을 펼쳐 효과적인 비용절감을 이뤘다. 전기소비를 줄여 사회적 가치를 증가시키고 비용을 절감해 경제적 이익도 늘었다. 둘째, 인도에서 빈곤한 지역의 거주자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수레에 실어 판매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판매자는 경제적 이익을 누렸다. 셋째, 제약회사에서 사람에게 이로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지속한 결과, 신약개발에 성공했다. 좋은 신약을 공급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료제를 보급했으며 이에 따라 경제적 이익도 증가했다.
이 세 가지 예에 등장하는 기업들이 CSV 전략을 사용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CSV 전략이 기존의 일반적인 전략과 어떻게 다른지, 즉 ‘차별점’부터 논의해봐야 한다. CSV 전략은 기존의 경영전략과는 다르게 사회적 가치 증대를 통한 (through) 경제적 가치 증대를 추구한다. 원론적으로는 수긍이 가더라도 기업의 전략과 경제적 가치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 <그림 1>은 세 가지 다른 전략과 경제적 가치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선, CSR기반의 전략을 실행하는 기업의 예를 살펴보자. 이 기업이 현재의 자원과 인력으로 30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장애인,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신생기업의 경우,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기업들의 평균가치인 시장의 경제적 가치 60보다 낮은 가치를 생산하는 경우가 있다(이 설명에서는 일반 기업이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의 평균을 60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부족한 30의 가치는 정부의 보조금이나 개인의 기부를 통해서 충당한다. 이런 기업의 경우, 경제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가치는 매우 높다. 아직은 자립능력이 없기 때문에 현재 정부의 보조금 및 기부을 받는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이런 기업들은 주로 자체적으로 전략, 기술, 인적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생산성을 높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대기업으로부터 자원과 기술을 전수받아 생산성을 높이거나 니치(틈새)시장을 공략해 차별화전략을 취하는 등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종류의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경제적 가치를 높인다면 일반 기업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CSV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100만 원 이상의 제품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보청기 시장에서 30만 원대의 저렴한 보청기를 개발한 ‘딜라이트’처럼 일부 사회적 기업은 적정기술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기업은 일반적인 기업에 속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기업행위를 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요구하는 60이라는 가치를 창출한다. 환경, 보건, 교육, 종업원 및 중소기업과의 관계 등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으며 법의 규제가 있기 전까지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기업들이다. 공해물질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혁신해 경제적 성과를 거둔 Interface와 같은 기업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이처럼 혁신을 통해 자발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법이 강제할 경우에 비로소 해결책을 찾는 기업들이다. 이런 종류의 기업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업의 핵심역량을 모은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를 풀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를 만드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전략적 방향, 그리고 기업 혁신과 관련해 사회적 가치를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근시안적(short-term oriented) 전략을 추구하는 대다수의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장평균 가치 60 정도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때문에 당분간 경제적 가치생산에는 문제가 없지만 기존 경영방식과 전략에 매몰되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기업은 CSV 전략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보다 나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연결되는 비즈니스 로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통해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논리가 정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CSV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업들이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일정 정도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면 기업을 둘러싼 제반조건에 해를 끼치는 방식들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CSV 전략은 매우 신중하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CSV 혁신이다. 기존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지 않고 큰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CSV 혁신을 일컫는다. CSV 혁신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증대하는 혁신이다. 이러한 CSV 혁신이 없는 일반적인 기업들이 자동적으로 CSV 기업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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