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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K9

잃어버린 개성, 어중간한 포지셔닝 성급히 내놓은 최고급 모델의 실패

이진석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너무 짧은 시간

 

“우리의 경쟁 상대는 다이아몬드나 밍크코트다.”

 

1930년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산하 고급 브랜드캐딜락총책임자였던 니컬러스 드라이슈타트의 취임사다. 일반 승용차보다 2∼3배 비싼 고급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행동은 이성적인 판단 대상이 아니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기능적 운송수단이 아닌 개성과 부(), 사회적 지위를 투영하는 장치다. 드라이슈타트는 이러한 점을 꿰뚫어봤다. 캐딜락에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를 부여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당시 캐딜락의 광고는 가격표나 새로운 기능을 늘어놓는 대신 밍크코트나 드레스를 입은 여성과 연미복 차림의 신사를 등장시켰다. ‘자동차가 아닌 사회적 지위를 판다는 드라이슈타트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1932년 재정난을 겪던 캐딜락은 1934년에 전년 대비 70%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이 대공황으로 얼어붙은 시기에 이룬 성과였다.

 

기아자동차도 이런 기적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5월 출시한 대형 세단 ‘K9’의 판매목표는 2012년 국내 시장에서 18000, 2013년은 수출을 포함해 25000대였다. 결과는? 3000여 대의 사전계약이 이뤄졌지만 출시 첫 달 실제 판매대수는 절반인 1500대에 그쳤다. 이후 K9의 판매 추이는 줄곧 내리막길을 탔다. 출시 전 K9의 성공신화를 예감했던 이들의 시각도 비관적으로 바뀌었다. 언론은 연일 K9의 실패 요인을 앞 다투어 분석하기 시작했다. 결국 연간 판매량은 목표의 절반이 채 안 됐다. 2012 7599대가 팔리는 데 그쳤다. 2013년은 상황이 더욱 안 좋다. 11월 말까지 불과 4807대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도 31.5%가 줄어들었다. 11월 한 달 동안에는 월별 최저치인 310대가 팔리는 데 그쳤다. ( 1)

 

자동차회사가 사활을 걸고 개발한 신차가 이 정도 실패를 겪는 일은 흔치 않다. 후속모델로 교체되기 전까지 신차의 생명력은 보통 5∼6. 기아차는 K9의 출시 16개월 만에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K9의 출시 당시 국내 자동차시장의 상황이 1930년대 캐딜락이 처했던 대공황보다 나빴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기회복에 전문직·고소득층의 증가가 맞물려 고급차 수요는 늘고 있었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독일산 고급 세단의 판매대수는 매달 역대 최고기록을 갈아 치웠다.

 

그렇다면 기아차와 캐딜락은 무엇이 달랐을까.

 

 

제품 내놓기에 급급

 

먼저 지나치게 급진적인 제품 개발전략을 지목할 수 있다. 기아차는 2002엔터프라이즈를 끝으로 10년간 자체적인 대형 세단을 만들지 않았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2003년 출시된오피러스는 엔터프라이즈보다 한 등급 낮은 앞바퀴굴림(전륜구동) 방식의 준대형급 모델이었다.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로는 대중적인 승용차에 주력했고 자체 신차 개발에는 소극적이었다.

 

기아차의 본격적인 변화는디자인 경영을 선포한 2000년대 중반 들어서야 시작됐다. 2006년 아우디·폴크스바겐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던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피터 슈라이어 현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 사장을 영입했다. 이후 제품 라인업의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2009년 내놓은 준대형급 세단 ‘K7’은 기존 기아차에서 찾아볼 수 없던 진일보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듬해인 2010년 내놓은 중형 세단 ‘K5’는 기아차 창사 이래 가장 성공적인 제품이었다. 현대자동차를 대표하는 동급 차량쏘나타의 판매량을 일시적으로 앞지르기까지 했다.

 

기아차는 K9을 통해 2등 이미지에서 확실히 벗어나고자 했다. 현대차에 비해 평균 판매단가(ASP)가 낮을 수밖에 없는 저평가된 브랜드 가치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나아가 지난해 국내 승용차 시장점유율 10%를 돌파한 수입자동차의 공세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K7이 시장에 안착하고 K5가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자 회사 내부에서는 후속 제품을 빨리 내놓고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해졌다.

 

기아차는 대중적인 제품의 잇단 판매 호조가 회사를 대표하는 플래그십(기함·브랜드를 상징하는 최고급 모델이라는 뜻으로 쓰임)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2012년 선보인 대형 세단 K9의 숫자 ‘9’ K7, K5에 이은 ‘K시리즈의 완성이라는 뜻을 담았다. K9 2008년 개발에 착수해 45개월간 5200억 원을 투입해 완성됐다. 기아차가 단일 모델에 들인 가장 큰 투자였다.

 

이 모든 일이 불과 6년 만에 이뤄졌다. 자동차회사가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중형-준대형-대형 라인업을 이처럼 짧은 기간에 바꾼 것은 국내는 물론 130년의 세계 자동차역사를 뒤져봐도 드문 일이다. 자동차 소비자는 고급 차일수록 보수적인 판단 기준을 갖는다. 세계 고급 차 시장을 선도하는 메이커일수록 오랜 기간 고급 차를 만들어 본 역사를 갖고 있다. 현대차도 포드 유럽법인과 합작해 1978년 출시한그라나다를 시작으로 꾸준히 고급 차를 만들어왔다. 기아차가 K시리즈를 앞세워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정립하고 고급 차 메이커로 도약하기에 6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초창기 K9 구입을 검토했던 소비자들의 출시 후 반응은 실망감으로 요약된다. 인터넷 자동차 동호회에는차의 부가적인 기능만을 앞세우고 정작 고급 차의 필수요건인 고급감(prestigiousness)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다른 국산 대형 세단을 뛰어넘는 차별성이 없다. 가격도 결코 싸다고 볼 수 없다같은 의견이 대다수였다. 소비자들에게 굳이 이 차를 선택해야 할 당위성을 심어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어긋난 포지셔닝

 

기아차는 K9최첨단 럭셔리 대형 세단으로 정의했다. 고급 차에 주로 쓰이는 뒷바퀴굴림(후륜구동) 방식을 적용했다. 전문평가단의 시승 평가도 후했다. 승차감과 주행성능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적어도 제품의 기능적 측면이 이 차의 저조한 판매 배경은 아니었다.

 

K9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편의장치를 적용했다. 앞 차와의 거리를 센서로 가늠해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해 주는 스마트 액티브 크루즈컨트롤, 앞 유리창에 주행속도와 내비게이션 진행방향을 표시해 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타이어에 구멍이 나도 곧바로 이를 메워주는 셀프실링 타이어, 사각지대에서 다른 차가 접근하면 경보를 울려주는 후측방 경보시스템 등을 달았다. 기아차는 이런 편의장치를국내 최초 적용이라고 소개했다.

 

문제는 이들 기능이 K9의 경쟁상대인 고급 수입자동차를 접해 온 소비자들에게는 그리 새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벤츠, BMW, 아우디 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러한 기능을 자사 차량에 적용하고 있었다. ‘최첨단 세단이라는 기아차의 광고문구는 큰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이는 개발진의 의도라기보다는 기아차의 그룹 내 입지 같은 구조적인 문제의 영향이 컸다. 기아차의 모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는 그룹을 대표하는 회사다. 기아차가 제품 경쟁력 측면에서 현대차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장애물들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현대차보다 앞서 기아차의 신차에 적용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그중 하나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연구조직을 공유한다. 제품개발 프로세스의 상당 부분이 겹친다. 한 회사라고 봐도 큰 문제가 없다. 새로운 주요 기술을 개발하면 현대차에 먼저 적용하는 게 다반사다.

 

실제로 기아차는 K9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서 다양한 신기술 적용을 검토했다. 어두운 밤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물을 야간투시경으로 파악해 운전자에게 비춰주는나이트비전은 기술 개발을 상용화 단계까지 마쳤지만 결국 최종 출시된 모델에서는 누락됐다. K9은 현대차에쿠스와 같은 플랫폼(차체 뼈대)을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길이는 5090㎜로 에쿠스(5160)보다 짧다. 엔진도 6기통 3.3L 3.8L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을 뿐 에쿠스에 적용되는 8기통 5.0L 엔진은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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