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Report
지금까지 경영학 분야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익을 함께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이 제시돼 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 기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BOP 전략(Bottom of Pyramid),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 등 공학적인 혹은 경영학적인 접근이 시도됐다. 필자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데이비드 오브라이언 센터’ 초청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의 Concordia University의 John Molson School of Business에서 방문 교수로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 중 CSR의 제도적·환경적 요인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폴 슈리바스타바(Paul Shrivastva) 교수와 토론을 했고 그가 말하는 ‘예술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에 큰 흥미를 느껴 별도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슈리바스타바 교수는 예술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문제가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고려된 전체 시스템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특히 나는 그중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균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지구는 태초부터 오랜 기간 자생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패턴과 균형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간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더 이상 이러한 균형이 보존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연생태계에 불균형이 초래됐다는 뜻이다. 지구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일정한 탄소 배출과 날씨의 흐름에서 벗어나 최근 20년간에 이례적인 자연현상들이 발생했다. 인간의 탐욕과 착취가 자연에 끼친 악영향을 명백히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속성장이 가능토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균형 발전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는 물건에 대한 유통, 생산, 소비에 전반에 대해 재고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요소들이 여러 기업들 사이에서 어떠한 상관관계를 형성하는지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야말로 가치와 부를 창조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지난 50년 동안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은 점차 구체화돼 왔다. 95%의 연구가 과학적·경제적·정치적 관점에서 전반적으로 진행됐다. 또 현재도 수많은 대학들과 G20의 국가의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약 1만여 명에 달하는 과학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현안을 다룰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균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단순히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경제적인 분석을 넘어서 예술과 미학적인 관점까지도 포함한 인류의 가치적인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류의 가치와 정서적인 유대가 예술과 미학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오직 새로운 감정의 교류가 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인류와 자연 간에 더 발전적인 균형을 추구하고 정서적 유대를 기반으로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기존의 접근 방식을 개선하는 동시에 새로운 대안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폴 슈리바스타바(Paul Shrivastava) 교수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콩코디아대 존 몰슨 경영대(John Molson School of Business, Concordia University)의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데이비드오브라이언센터(David O’Brien Centre for Sustainable Enterprise) 에서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로 재직하고 있다. 25년간 경영교육과 기업가정신 분야의 연구자로 일해왔으며 다수의 다국적 기업을 컨설팅했다. 지속가능성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그는 특히 ‘지속가능성 예술’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다양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
왜 지속가능성 문제에서 ‘예술’에 초점을 둬야 하는가?
현안을 예술적인 측면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큰 의미가 있다. 예술이야말로 인간 역사와 국가를 넘어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은 엔터테인먼트나 영화 등이 아니라 ‘지식의 한 가지 형태로서의 예술’에 가깝다. Dennis Dutton의 <예술 본능(The Art Instinct)>에 따르면 예술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다. 이 책에서 예술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본능에 관한 기술로서 묘사된다. 예를 들면, 오래 전에는 무서운 호랑이나 당면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위험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노래나 글 혹은 그림이 사용돼 왔다. 이는 결국 지식을 전달하는 메커니즘으로서 예술이 사용돼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나는 예술의 질적인 측면보다는 이러한 메커니즘 측면에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예술의 측면에서 지속성장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지식의 한 형태로서의 예술과 인류의 본능적인 측면에서의 예술의 차이(Distinction)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적 유대가 필수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과학이 있는 것처럼 많은 종류의 예술이 존재한다. 예술은 지속성장에 있어서 과학이 미처 채우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인류와 자연과의 균형을 재건시켜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지구 생태계적 불균형의 원천이 감정적인 불균형(emotional imbalance)에서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거나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스무 살 무렵 내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1) 은 연간 일산화탄소배출량 2톤이었다. 당시 나는 지속성장에 무지했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25년 이상 연구를 하면서 지속성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11배가 넘는 연간 22톤의 일산화탄소를 계속해서 배출했다. 이는 내가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내 행동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지속성장의 문제에 더 깊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아이들을 갖게 되면서 현안에 대한 감정적인 유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로 인해 후세에 물려줄 유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됐다는 말이다. 또한 장소(place), 특히 사회·문화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 위치 또한 내게 영향을 미친 요소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내 감정적인 변화를 유발시킴으로 인해 마침내 생태 발자국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지속성장에 대한 수많은 연구보고서와 책을 쓰고 지적인 도전을 즐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삶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변화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봐도 지속성장에 대한 실질적인 ‘감정적 변화’가 없다면 실제 행동이 변화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다양한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실제 행동에 아무런 변화를 유발시킬 수 없다면 현실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지켜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즉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기를 원한다면 당면한 문제를 감정의 교류를 통해 깊이 느끼고, 이를 통해 행동의 변화가 유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술이 이를 위한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실천으로 이어진 계기에 대해 말씀했는데 그보다 앞서 지속가능성 개념 자체에 대한 관심을 수십 년 전부터 갖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1984년에 발생한 보팔 참사(Bhopal disaster)2) 는 기술(Technology)에 대한 내 시각을 변화시킨 하나의 계기가 됐다. 나는 당시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였는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당시 인도에서 ‘기술’은 발전을 위해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단지 기술의 밝은 측면만을 바라보며 기술로서 발전을 추구했고, 그렇게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보팔 사고는 내게 기술발전의 반대급부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줬다. 기술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사회에 엄청나게 큰 부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 특히 그 도시는 내가 20여 년간 살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학교가 있는 곳이었고 내 친척들은 그 공장의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사고의 의미가 내게 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내 가치관은 변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장점만을 고려하던 내가 기술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살펴보게 된 것이다. 마치 양날의 검과 같이 조심해서 다뤄져야 하는 대상으로 기술을 인식하게 됐다는 말이다. 따라서 내 관심이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사실, 그 당시에는 위기관리에 대한 시각 자체가 상당히 안이했다. 회사 내에서 매니저들은 기술이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거의 없다고 믿으면서 위기관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졌고 기업들에서도 더 이상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못하게 됐다. 이때 내 관심사는 산업에 대한 위기 관리에서 환경에 대한 위기 관리로, 그리고 지속성장으로 계속해서 변해왔다. 이는 보팔의 사고가 내가 살아온 장소에 대한 애착을 기반으로 감정적인 요소에 변화를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때로 감정으로 인한 행동의 변화를 경험한다. 굳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더라도 감정의 변화로 행동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감정의 변화가 없다면 이성적으로 옳다고 할지라도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이 같은 원리를 사소한 문제가 아닌 조직, 기업, 혹은 정부 간의 이슈들에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감정이 만들어내는 행동의 변화’에 대해 알 것 같다.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지속가능성 예술(Sustainable Art)’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제 무엇이 환경친화적인 예술이고 지속성장(sustainable)을 위한 예술인지에 대해 얘기해보자. 환경과 예술은 항상 연결돼 있다. 모든 나라의 전통적인 예술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 조각이나 그림의 원료들 역시 전부 다 자연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따라서 환경과 예술 사이에는 역사적인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지속가능 예술(Sustainable Art)로 진화할 수 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독일의 한 예술가를 예로 들어 보겠다. 독일에는 세계 이산화탄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가 있었다. 사실 그는 원래 탄소 거래시스템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그는 10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이산화탄소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의 60%는 문서로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럽에서 탄소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탄소감축실적(credit) 또한 실질적으로 증명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즉 아프리카에 있는 한 플랜트가 탄소를 적게 배출해 감축실적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를 실제 판단하고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독일 예술가는 대체탄소거래시스템을 만들었다. 필리핀에서 약간의 토지를 구입한 뒤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나무가 자라는 과정을 매일매일 사진을 찍어서 문서로 남겼다. 365일 매일 기록한 사진과 문서를 바탕으로 웹사이트에 이를 거래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해당 나무를 원하는 사람들이 후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로 인해 나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10달러 혹은 10유로 등 일정액을 기증한 스폰서들과 신뢰관계를 형성했다. 또 기존 탄소거래시스템에서 드러난 ‘투명성 문제’도 해결했다. 사진이라는 예술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시도인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 예술’의 예를 들어볼 수도 있겠다. IBRD는 그동안 많은 국가에서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의 하나인 가정폭력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통상 개발도상국일수록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클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낮고 그들의 권한이나 보호를 취할 수 있는 인프라가 취약하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놀랍게도 ‘춤을 통한 소통’으로 이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1년 전 IBRD에서 지원을 받은 인도의 유명 댄스그룹이 800개의 마을을 방문하면서 ‘인간,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권리’라는 메시지를 춤을 통해 문맹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계몽시켰다. 또 그 여성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가정폭력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 등을 교육하고 있다. 하나 더. 지난 1년 반 동안 환경적·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예술프로젝트 사례를 모아오면서 큰 흥미를 느꼈던 프로젝트를 소개해볼까 한다. 아프리카의 무차별적인 삼림파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였다. 한 예술가가 심각한 벌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해당 부족들이 섬기는 신들을 나무에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점차 많은 예술가들이 이에 동참해 점점 더 많은 나무에 신들을 그려 넣었다. 자연스레 마을 사람들은 해당 지역을 나무와 숲을 신성한 성역으로서 고려하게 됐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수많은 나무를 보존함으로써 예술을 적용해 환경,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한 성공적인 사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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