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Minds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LA 다저스가 류현진 선수로 재미를 쏠쏠히 보고 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입성 첫해에 두 자리 승수를 챙기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맹활약하고 있다. 다저스는 류현진을 영입하기 위해 2573만 달러의 포스팅(비공개입찰) 금액을 한화에 지급했고, 류현진과 6년간 연봉 3600만 달러에 계약했다. 6년에 6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이다. 올 초만 해도 미국 언론은 과다 지출이라고 비판했지만 류현진이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자 태도가 바뀌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다저스가 류현진을 헐값에 잡았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다저스는 류현진 영입으로 팀 성적에 대한 기여 외에 사업 측면에서도 여러 효과를 보고 있다. LA 인근에 사는 한인 관중 수가 늘어나 입장료 수익이 증가했고 한국에 방송되는 중계권료 수익도 나누고 있다. 향후 중계권료가 인상될 것으로 보여 더 큰 이득을 볼 것이다. 거기에다 야구장 곳곳에 한국 기업들의 광고를 유치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류현진에 대한 투자 성공에 때 맞춰 현재 다저스는 홈 관중 동원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8월 말에 이미 300만 관중을 넘어섰고 이 추세라면 370만 관중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전체 관중의 절반을 넘는 엄청난 수치다. 비단 올해만 아니라 매년 관중 동원에서 다저스는 뉴욕 양키스와 더불어 최상위권에 들어왔다. 이런 인기를 발판으로 2014년부터 25년간 타임워너와 최대 80억 달러에 이르는 중계권 계약을 체결, 미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고 중계권료를 기록했다.
다저스의 이런 인기는 저절로 얻어진 게 아니다. 그동안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의 어떤 구단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왔다. 통념을 뒤집고 관행에 도전해온 다저스는 오래 전부터 혁신가였다.
최초, 최초, 최초…
다저스는 최초로 흑인을 기용한 구단이다. 1947년 4월15일 브루클린의 야구장, 등 번호 42번을 단 재키 로빈슨(Jakie Robinson)이 1회 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의 초구를 받아친 공이 3루 쪽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발이 빠른 로빈슨은 송구와 거의 동시에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아웃이 선언됐다. 1루에서 접전일 때 세이프를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로빈슨은 심판에게 달려들려고 하다가 그냥 되돌아서서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는 메이저리그의 첫 흑인이었기에 수많은 불이익을 받았다. 이날 절반이 넘는 흑인 관중들은 환호했지만 나머지 백인 관중은 꺼지라고 야유했다.
1919년생인 로빈슨은 UCLA에서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수영, 풋볼, 농구 등 다양한 종목에서 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졸업 후 야구를 선택해 흑인들로 구성된 니그로리그에서 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홈런 타자는 아니었으나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자 상대 팀은 그를 더욱 미워했다.
신시내티 원정에서 백인 관중들은 ‘검둥이’를 합창하며 로빈슨을 향해 증오를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기세였다. 이때 브루클린 다저스의 유격수 피 위 리즈(Pee Wee Reese)가 1루수인 로빈슨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신시내티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남부 출신 리즈의 돌발 행동에 놀란 관중은 야유를 멈췄고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이 같은 차별 속에서도 로빈슨은 열심히 뛰었고 팀 동료들도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로빈슨은 첫해 신인왕에 선정됐다. 10년간 통산 3할1푼1리에 6번 올스타에 뽑혔으며 1949년에는 리그 MVP에 올랐다.
흑인인 로빈슨을 스카우트한 사람은 브루클린 다저스의 전설적인 단장인 브랜치 리키(Branch Rickey)였다. 로빈슨이 성공하자 리키 단장은 기량이 탁월한 흑인 선수들을 더 데려왔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했던 시절에 전국의 흑인들을 몽땅 다저스의 팬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자 다른 팀에서도 흑인 선수들을 조금씩 영입했다. 모든 면에서 뉴욕 양키스에 밀리던 다저스는 이때부터 명문 구단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로빈슨은 야구계를 넘어 미국 사회 전반에 흑인 권익 향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같은 공로로 1997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재키 로빈슨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전 구단에서 그의 등 번호인 42번을 영구결번으로 제정했다. 2007년부터는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날인 4월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정해 모든 구단의 선수들이 등 번호 42번을 달고 야구를 했다.
최초의 흑인을 데뷔시켰던 다저스의 전통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다저스는 남미 리그를 주시하면서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는 데 가장 앞서나갔다. 또 아시아 시장에도 제일 먼저 눈을 떴다. 1995년에는 사실상 미국에서 성공한 첫 일본 선수인 노모 히데오를 데뷔시켜 일본에 메이저리그 붐을 일으켰고 비슷한 시기에 박찬호를 데려가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만들어 우리나라에도 메이저리그 팬을 양산했다. 1998년에는 최초 대만 출신 메이저리그 선수 첸진펑과 계약했다. 이로 인해 다저스는 전 세계 곳곳에 팬을 가장 많이 거느린 팀이 됐다.
인종의 벽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듯이 다저스는 최초로 서부로 옮겨간 구단이기도 하다. 로빈슨과 함께 뛰어난 흑인 선수들을 받아들인 다저스는 2년에 한 번꼴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구장이 좁고 낡아 관중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당시 구단주였던 월터 오말리(Walter O’Malley)는 구장을 신축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서부의 대도시에서도 야구단을 유치하려고 했다. 이에 오말리는 오랜 라이벌이었던 뉴욕 자이언츠와 함께 서부로 연고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다저스는 LA로, 자이언츠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대부분의 야구단이 동부지역에 몰려 있던 상황에서 서부로 옮기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58년 4월18일 LA 콜리세움에서 다저스는 자이언츠와 서부에서 첫 경기를 가졌다. 7만8000명이 넘게 운집한 홈 관중 앞에서 다저스가 승리했다. 이후 자이언츠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서부에서 야구의 흥행을 불러일으켰다. LA로 옮겨간 이후 다저스의 관중은 급격히 늘어났다.
다저스는 최초의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것을 비롯, 기술혁신으로 야구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로빈슨 영입을 계기로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야구 스타일을 선보였다. 주루 플레이가 빠른 로빈슨을 활용해 다양한 작전을 시도했다. 이전까지는 홈런이나 장타에 의한 야구 위주였지만 홈런을 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이때부터 비로소 현대 야구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브랜치 리키 단장은 이런 다양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시즌이 시작되기 전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 있는 낡은 군사시설을 사들여 ‘다저타운’이라 이름 붙이고 스프링캠프 장소로 활용했다. 여기에서 다저스 선수들은 체력 훈련과 새로운 기술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작전을 몸소 익혔다. 지금은 타격 연습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배팅 케이지(batting cage)와 투구기(pitching machine)도 이때 최초로 개발해 사용했다. 타석에서 쓰는 헬멧도 다저스가 최초로 사용했다.
다저스의 선도자 전략
다저스의 혁신은 남들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과감하게 시도해 성공했다는 점이다. 경영학자들이 말하는 ‘선도자 이득(first mover advantage)’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리버만(Marvin Lieberman)과 몽고메리(David Montgomery) 교수는 선도자 전략이 이득도 있지만 위험도 크다고 지적했다.
선도자 이득은 세 가지 영역에서 나온다. 첫째, 기술을 리드해 이득을 본다. 선도자는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기술을 먼저 개발해 앞서나가는 경우가 많다.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기도 하지만 일단 핵심기술을 개발한 후에는 개선이 뒤따르게 마련이라 기술 선도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생산성 향상과 노하우 축적으로 기술은 점점 더 정교화돼 후발기업이 따라와도 앞지르기가 쉽지 않다. 기술 발전이 더뎌지고 시장이 성숙해져야 비로소 후발기업이 역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선도자 이득도 사라진 때다. 아이폰이 처음 나와 스마트폰 분야를 선도했을 때 경쟁사들은 애플을 추월하기가 어려웠다. 아이폰과 비슷한 스마트폰을 내놔도 애플은 한 단계 더 혁신한 제품으로 앞서나갔다. 스마트폰 기술이 범용화되고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들자 애플을 추월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둘째, 희소한 자원을 선점해 이득을 얻는다. 천연자원이나 흔하지 않은 원자재를 선점해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유통업체는 소비자들의 왕래가 잦은 입지를 선점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선도자로 앞서나가면 해당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채용할 수 있다. 그리 되면 후발자와의 간격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셋째, 전환비용과 보유 고객으로 인해 이득이 발생한다. 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다른 쪽으로 바꾸는 것을 꺼린다. 새로운 사용법을 배우고 서비스에 익숙해지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심리적으로 발생하는 전환비용이 매우 커서 웬만한 혜택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으면 기존에 쓰던 제품과 서비스를 교체하지 않는다. 이렇게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선도자가 확보한 고객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익의 발판이 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의 휴대폰 부문을 인수했는데 전망이 비관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마트폰 기술은 거의 따라왔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으로 할 게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애플은 85만 개, 안드로이드는 70만 개의 앱을 제공하지만 윈도폰 앱은 고작 16만 개에 불과하다. 앱 개발자 입장에서는 보유 고객이 많은 쪽에서 수익도 많이 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진영을 택할 이유가 별로 없다.
선도자 전략에는 이득뿐만 아니라 위험도 따르기 마련이다. 첫째, 무임승차로 인해 손해를 본다. 후발기업은 선도자의 전략과 기술에 대해 학습할 수 있다. 선도자가 겪은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고 안전한 지름길을 선택할 수 있다. 많은 분야에서 혁신 비용보다 모방 비용이 훨씬 싼 법이라서 선도자가 개척으로 가져가야 할 이득이 손쉽게 무임승차한 후발기업에 돌아간다. 둘째, 기술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선도자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신기술과 시장 지배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선도자의 3분의 2가 완전히 실패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기술을 개발해 성공할 가능성은 10%도 안 된다. 선도자 전략은 위험한 게임이다. 셋째, 기술과 소비자 니즈의 변화에 따른 위험이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신제품으로 시장을 창출해도 후발기업에 의해 시장을 지배하는 기술이 갑자기 바뀌거나 소비자들의 선호가 달라질 수 있다. 사실 노키아가 갑자기 몰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휴대폰 분야에서 부동의 1위였던 노키아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스마트폰을 준비했다. 아이폰 개발이 시작되기도 전인 2004년 11월 최초의 터치스크린 폰을 출시했다. 이 제품을 통해 터치스크린 방식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면밀히 관찰했다. 소비자들은 터치스크린 방식을 불편해했고 노키아는 키패드를 활용한 스마트폰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키아처럼 스타일러스 펜이 아니라 손가락을 활용한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아이폰이 히트하자 노키아의 전략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어찌 보면 스마트폰 개척에서는 후발주자였던 애플에 의해 시장의 기술이 급격히 변화한 것이다.
선도자 이득을 한마디로 말하면 선점으로부터 오는 이득이다. 기술, 자원, 인재, 브랜드, 고객을 선점하는 것이다. 선점이란 발전 방향이 정해져 있음 전제한다. 그래서 선도자 위험은 방향이 달라지는 데서 오는 불확실성이다. 미개척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도자 전략은 이득도 크지만 불확실성으로 인해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다저스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해 모험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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