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ic Communication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코감기에 걸리면 이비인후과를, 소화가 안 되면 내과를 간다. 골절상을 입으면 정형외과에 가고, 외모가 마음에 안 들면 성형외과를 찾는다. 그런데 혹시 목감기에 걸렸는데 피부과를 가는 사람이 있을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정신과’나 찾아 가라고 할지 모른다.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대로 된 처방’이 먼저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목감기에 걸렸을 때 피부과가 아닌 이비인후과에 가야 하는 이유는 피부과 의사가 감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 사람들은 이걸 쉽게 놓친다. 대표적인 상황이 ‘갈등’에 처했을 때다. 사람들은 갈등이 닥치면 마음이 급해진다. ‘당장’ 무슨 수를 써서든 해결책을 만들어 내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깔끔한 답을 내기 힘들다. 답을 구하기 전에 나와 상대의 갈등은 ‘왜 생겼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갈등이 생기는 원인을 알아보려 한다. 갈등의 원인은 <그림 1>에서처럼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가로축은 갈등이 나의 내부적인 원인에 인해 발생한 것인지, 외부의 조건 때문에 생긴 일인지로 구분한다. 세로축은 갈등의 원인이 사람 때문인지, 업무(일) 때문인지의 여부로 나눈다.
갈등이 나 자신이 아닌 외부적 요인, 그리고 사람의 특성 때문에 생긴다면 ‘다름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생각과 가치관, 문화 등이 달랐을 때 생기는 갈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문제인데 사람이 아닌 업무 혹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겼다면 ‘구조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갈등이 나의 의지가 많이 개입되는 내부적 요인에 기인하는 동시에 일 때문에 발생했다면 그건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마지막으로 원인이 나에게 있고 사람의 개인적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도 있다. 이를 우리는 ‘해석의 충돌’이라고 부른다. 상대의 어떤 행동에 대해 내가 판단하는 결과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갈등을 생각해 보자. 그 원인이 파악되는가? 처방보다 정확한 진단이 훨씬 더 중요하기에 각각의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1.다름의 충돌
퇴근 준비를 서두르던 당신. 그때 옆 팀의 팀장이 들이닥치더니 “오늘 팀장들 회식이 있어. 오랜만에 한번 뭉치는 거야. 오케이?”라며 술 한 잔 하러 가자고 당신을 잡아 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동료 팀장들끼리 모인다는 소식에 기꺼이 회식에 참석한 당신. 하지만 너나 없이 외쳐대는 “건배” 소리에 당신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당신에겐 소주 한 잔이 다른 이들의 양주 한 병과 다름 없기 때문.
당신에겐 체질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다. 당연히 술이 체질에 전혀 안 맞다. 동료들이 좋아 참여한 회식자리지만 술을 강권하는 회식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일 오전7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며 술을 거절해 보지만 상대는 “나는 오전6시에 미팅이 있다”며 술을 자꾸 권한다. 서로의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갈등, 이런 게 바로 ‘다름의 충돌’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반문할지 모른다. “그래도 그 정도는 맞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누가 누구에게 맞춰주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려고 한다. 필자는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 누군가의 아픈 모습을 보고 그 이면에 있는 슬픈 사연을 듣는 게 힘들다.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왜 이렇게 매정할까?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사람을 보고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는커녕 왜 자꾸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그러다 알게 됐다. MBTI 진단을 하고 난 뒤, 필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은 누군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를 너무 힘들어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걸 알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을 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에게 자꾸 그런 프로그램을 보자고 하는 건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그걸 왜 그렇게 싫어하냐’며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의 차이는 업무 스타일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이에겐 ‘빠른 업무 처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일 처리가 좀 늦어지더라도 ‘정확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긴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다를 뿐이다. 이때 한쪽에만 무조건적인 적응을 요구한다면 그 사람은 나가떨어질지 모른다.
다름의 충돌을 확장하면 가치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많은 가정에서 겪는 갈등이 바로 ‘제사’ 문제다. 유교 문화권에서 지낸 사람들에게 제사는 당연한 행사다. 제사라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돌아가신 선친께 절하는 과정을 통해 예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들에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물’로 음식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고 하나님이 아닌 누군가에게 ‘절’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삿날이 돌아올 때마다 집은 시끄러워진다.
다름의 차이. 여기서 누가 맞고 틀리고는 없다. 자신의 성향이나 가치관, 혹은 믿음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뿐이다. 당신과 자꾸 부딪히는 상대를 떠올려보라. 혹시 그와 당신이 전혀 다른 지도를 보고서 같은 길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2.구조의 충돌
행복하게 결혼 준비를 하던 예비 부부. 하지만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다툼이 점점 잦아진다. 그러다 어느 날, 예비 신부가 잔뜩 화가 난 채 말한다. “결혼하는 걸로 한몫 뽑으려는 거야?” 이 말에 예비 신랑이 발끈한다. “우리 식구들이 우스워?”
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렇다. 바로 ‘예단’ 문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수많은 예비 부부들의 사랑에 급브레이크가 걸리곤 한다.
예단으로 인한 갈등에서 신부와 신랑 중 누가 더 잘못이 큰 걸까?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 판단할 수 있겠다고? 신부 측이 준비한 금액이 얼마인지 알아야 누구 잘못인지 알 수 있다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들에게 있는 게 아니다. 바로 그들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신부 측이 신랑 측에 일정 금액의 돈을 보내고 그중 일부를 신부 측에게 다시 돌려주는 ‘독특한’ 예식 문화 덕분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혼수’ ‘예단’ 등의 문제로 행복했던 한 쌍이 갈라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비로 이런 갈등을 ‘구조의 충돌’이라고 말한다. 갈등하고 있는 양 측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이들이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다.
살인 사건으로까지 비화되는 층간 소음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집 안에서 유독 시끄럽게 생활하기 때문에, 혹은 한국인들이 너무 예민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걸까? 아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파트 문화 때문이다. 그리고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 층간 소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소음이 이웃 집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기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층간 소음 문제에 취약하게 지어진 아파트에 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문제다.
이와 같은 구조적 충돌은 많은 조직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가장 자주 벌어지는 것이 팀 간에 상충되는 KPI(핵심성과지표), 즉 전혀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목표를 갖고 있을 때다. 예를 들어보자. 공장을 운영하는 CEO가 생산 1팀 공정을 보더니 팀장을 불러 이렇게 얘기한다. “1팀장, 생산량이 너무 적은 거 아냐? 주문도 밀리는데 생산 속도를 좀 높여!” 그리고 다음날엔 생산 2팀 공정을 보러 간다. 그리고는 불량률 자료를 살펴보고 버럭 화를 낸다. 그러면서 이렇게 지시한다. “2팀장! 이거 불량률이 왜 이렇게 높지? 품질 관리에 신경 좀 써야겠어!”
자, 그럼 이제 어떤 일이 생길까? 1팀의 팀장은 무조건 ‘빨리’ 만들라고 지시한다. 2팀의 팀장은 ‘잘’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1팀과 2팀 간엔 묘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CEO의 상충된 업무 지시로 애꿎은 조직원들만 힘들어지는 것이다.
영업팀에는 매출액을 늘리라는 지시를 하고 재무팀에는 이익률을 높이라고 지시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매출액이라는 영업 실적을 채우기 위해 싼 값으로라도 팔아야 하는 영업팀. 하지만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최대한 비싸게 팔도록 해야 하는 재무팀. 결국 두 팀은 가격 정책 얘기만 나오면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다.이들 중 누구의 잘못이라 탓할 수 있을까? 각자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고 있을 뿐인데.
갈등은 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기 때문에’ 생길 수도 있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갈등 상대도 어쩌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 방향이 당신이 지향하는 것과 정반대일 뿐이다.
3.이해관계의 충돌
회사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맡은 당신. 하지만 일주일째 멤버도 제대로 못 꾸리고 있다. 다른 팀장들이 협조를 해 주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인력 차출 문제에 대한 담판을 짓고자 마케팅팀장을 찾아간다. “팀장님, TFT에 마케팅팀의 유 과장이 꼭 필요합니다. 협조 부탁 드릴께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대답뿐이다. “마케팅팀 일이 많아서 지금 인력으로도 팀 운영 빡빡한 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팀 핵심 인재인 유 과장을 내 놓으라뇨? 절대 안 됩니다. 대신, 최 대리 보내 드릴께요.”
모든 팀이 이런 식이다. TFT에 꼭 필요한 인재는 팀에서도 중요하다는 핑계로 절대 내 놓지 않는다. 핵심 인재를 서로 갖겠다고 벌어진 팀장 간의 갈등. 이런 문제가 조직에서 종종 벌어지는 전형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충돌할 때 이런 유형의 갈등이 생긴다.
사실 이런 유형의 갈등을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님비(NIMBY) 현상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님비란 쓰레기 처리장이나 핵 폐기물 처리장처럼 ‘혐오 시설’이나 ‘위험 시설’이 근처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을 말한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개개인의 가정에서도 이런 유형의 갈등은 자주 일어난다. 용돈을 올려달라는 아이와 안 된다는 부모와의 갈등이 전형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에선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다. 갑자기 떨어진 새로운 업무를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해 팀원들 간, 혹은 팀장과 팀원 사이에 묘한 갈등이 생기곤 한다. 팀장은 본부장의 지시를 받은 중요한 일이라 유능한 A 팀원에게 맡기려 한다. 하지만 A 팀원은 현재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 새로운 일까지 하게 되면 기존의 일도 제대로 못 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생겨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놓고도 상충된 입장이 부딪힐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생기지 않는 관계는 거의 없다. 심지어 ‘무한 사랑’을 베풀어 주는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까지도. 상대에게 ‘이타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새로운 답을 제시하는 것, 이해관계의 충돌에서는 그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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