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스웨덴 2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꼽히는 한델스방켄(Handelsbanken)은 경쟁은행들로부터 ‘탈레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의 시골마을들에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게릴라 군사조직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다른 은행들이 수익성 때문에 가지 않는 작은 마을에까지 지점을 낸다는 의미다. 또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은행업의 ‘근본’인 직원과 고객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마지막으로 탈레반이란 별명에는 비대칭적인 경쟁우위로 시장을 잠식해 다른 ‘일반’ 은행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델스방켄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과 직원, 지역사회, 협력회사와 함께 커가는 경제민주화 경영모델을 40여 년째 실천해오고 있으며 특히 2008∼2009년의 금융위기 이후 영국 소매은행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871년 설립된 한델스방켄의 자산은 2012년 6월 기준 416조 원으로 한국 최대인 우리은행(243조 원)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스웨덴 은행 고객만족도 평가에서도 1989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1위를 독차지해왔다. 금융위기 동안에는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없었고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은행’ 랭킹에서 2011년 2위, 2012년 10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언론과 은행 산업 종사자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델스방켄의 성공비결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점 위주, 고객 위주의 경영을 표방한다. 고객 가까이에 가기 위해 어느 정도 수익성의 하락은 감내한다. 스웨덴 내 400여 개 지점 중에 다른 은행은 수익성이 떨어져 들어오지 않은 작은 마을에 있는 지점이 50여 개나 된다. 또, 전 세계 모든 지점 직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고객들이 언제든지 담당직원과 통화할 수 있다. 상당수 지점은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마치 탈레반 점조직처럼 모든 예산과 운영에 대한 권한은 상부의 간섭 없이 각 지점장이 갖고 있다.
지점별 영업과 분권화를 중요시하는 한델스방켄의 문화를 두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교회 종탑 원칙(church-tower princip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2 각 지점의 영업 범위는 마을의 교회 종탑을 볼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각 지점에는 직원이 고객을 1대1로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응대하게 한다.
둘째, CEO부터 창구직원까지 모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가 하는 일에 큰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대출 승인은 본사에서 만든 컴퓨터 알고리즘이 아니라 고객을 제일 잘 아는 직원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또한 1만1000여 명의 직원들은 회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매년 초과 성과분(업계 평균보다 많이 번 돈)을 전 직원에게 직급에 관계없이 동일한 액수로 나눠주는 ‘옥토고넨(Oktogonen)’ 펀드는 1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신 다른 은행들처럼 개인별 실적에 따라 배분하는 성과급은 없다. 단기수익이 아닌 장기적 건전성과 성장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 분기, 혹은 한 해 단위의 수익이나 손해는 경영상 노이즈에 불과하다고 보고 연간 수익목표나 본사차원의 예산계획은 세우지 않는다.3 ‘은행의 단기 수익성은 외부 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전 CEO 얀 발란더(Jan Vallander)의 철학 때문이다. 성과급을 모아두는 옥토고넨 펀드 역시 60세가 돼야 찾을 수 있어 직원들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회사를 위해 일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주주들에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약속한다. 이 은행은 다른 은행들처럼 ‘1등을 하자’, 혹은 ‘주주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돌려주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단지 주주에게 ‘업계 평균보다 많은 투자수익(to have a higher return on equity than the average of peer banks)’만을 주는 것이 이 은행의 웹사이트와 연간보고서에 명시된 공식 경영목표다.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이 장점이다. 실제로 1970년 이래 업계 평균수익률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08년과 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정부의 정책지원을 받지 않고 배당금까지 지급해 다른 은행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사기도 했다. 주주들에게 단기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수익만을 약속하는 대신 장기적인 안정성과 건전성을 최고의 가치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의 대형 연금펀드와 뮤추얼펀드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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