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
“(하품) 여보세요?”
“지금 선배님 책상 앞인데요. 국내외 조명산업 제품 동향 조사 자료가 어디에 있죠? 경쟁업체 기술현황 조사한 것을 추가하려고 하는데….”
“지금이 몇 시인데 전화야? 헉!!”
손대수의 전화를 받고 깬 시간은 벌써 8시 40분. 원래대로라면 벌써 사무실에 나가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까지 자고 있었다니!!
어제 김 팀장님과 단 둘이서만 술자리를 가진 후 그 기분에 취해 집에 와서 나 혼자 한잔 더 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번 프리젠테이션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유 상무님의 ‘기습 질문’ 때문에 큰일이 날 뻔했다. 순간 당황해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고, 급기야 상무님의 질문 내용조차 생각나지 않아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다행히 옆에 서 있던 이 과장님이 재치 있게 대답을 대신 해주셔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문제의 메모는 이 과장님의 답변 도중 주머니 속에서 찾아냈다. 잠깐 ‘커닝’을 한 덕분에 프리젠테이션은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보고 후 임원진의 표정을 살피니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아이디어 자체가 신선했으며, 정성스레 열심히 준비한 표가 많이 났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보고를 마친 후 며칠이 지난 바로 어제, 김 팀장님께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말씀을 꺼내셨다. 꽤 비싸 보이는 고깃집에서 1차를 하고, 근사한 바에서 양주로 2차를 했다.
“그 동안 이런 자리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 자네가 참 열심히 일하는 것 같고, 자네 얘기도 좀 듣고 싶어서 말이야.”
순간 그 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강 대리, 자네를 보면 꼭 젊었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참 뿌듯해. 자네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회사가 발전하는 거 아니겠어? 믿고 지켜볼 테니 앞으로도 열심히 해줘.”
드디어 내가 Y전자의 핵심 인재로 인정받은 건가?
벅찬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나 혼자만의 3차를 즐겼을 뿐인데, 아침의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손대수가 ‘외근’으로 적당히 둘러대 주는 바람에 지각 사태는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숨을 돌리자마자 바로 사업계획서 작성에 들어갔다.
임원진은 지난번 보고 후에 특수 조명기기와 식사 친구 로봇의 수익성을 더 자세히 분석해줄 것을 주문했다. 우리 팀에서는 내가 중심이 되어 사업계획서를 만들기로 했다. 우선 ‘타깃 고객 및 소비 트렌드 분석’, ‘1인 가구를 위한 제품 개발 현황’, ‘관련 기술 현황’, ‘시장 현황’, ‘경쟁 업체 동향’, ‘마케팅 및 유통 경로 분석’ 등으로 주제를 나눠 자료를 찾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자료 찾기는 정말 자신이 있는 분야라 신이 났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 중 가장 난이도가 낮다고 할 정도다.
예전에야 자료 하나를 찾기 위해 도서관이며 관련 단체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100메가 광랜 인터넷 시대’가 아닌가. 게다가 여러 가지 검색엔진 사용에 통달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단순한 정보검색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다. 이전 연구소에 있을 때부터 나는 자료 검색은 물론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필요한 자료를 추려내는 솜씨로 유명했다.
성능 좋은 컴퓨터와 빠른 인터넷 덕분에 자료 검색과 정리는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이 과장님께 보고하러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워보기도 처음이다. 이번에는 뭐라고 태클을 걸지 못하시겠지?
신중하게 보고서를 살펴보던 이 과장님이 드디어 고개를 드신다.
“웰빙가전에 대한 연령별 구매율 수치가 너무 차이가 나는데? 위에 있는 표에서는 30대 구매율이 37%나 되는데, 아래의 표에서는13%밖에 안 되잖아. 이건 왜 그런 거지?”
“아, 그게 말입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수치가 다르게 나온 조사 결과가 두 개 있더군요. 그래서 일단 두 가지를 다 집어넣은 겁니다.”
“그런 건 보고서에 설명을 해줘야지. 그리고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뭔가? 조사 기준이 다른 것 아니야? 내 생각에는 하나는 수도권 자료이고, 다른 것은 전국 자료 같은데….”
“저, 그게…. 그 부분은 제가 미처 확인을 못 했네요.”
“다시 확인해봐. 그리고 이건 통계청 자료를 뽑은 건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개인 블로그 아니면 포털 지식검색에서 찾은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