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SM연구회

Leapfrogging:추격에서 벗어나 새 경로를 창조하라 <도약>

119호 (2012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주도하는 PRiSM(Practice & Research in Strategic Management) 연구회가 DBR을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략 연구회인 PRiSM은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의 면면을 상세히 분석, 경영진에게 통찰과 혜안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애플의 아이폰을 모방했다는 애플의 주장으로 제기된 양사 간 특허 소송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다. 법적인 판결을 통해 누가 옳고 그른지를 최종적으로 가리기에 앞서 삼성전자에 아쉬운 점은 <포춘> 글로벌 20위에1 빛나는 전 세계 최고의 전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제품 외관, 패키징, 광고 등 많은 분야의 디테일에서 애플과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 소송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가전 등 전자산업뿐 아니라 조선, 자동차 등 한국 주요 산업의 발달사는 추격(catch-up)의 역사라고 요약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산업들은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발달 과정상 유사한 측면이 많다. , 평균 이상의 품질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본비용, 그리고 정부의 도움을 바탕으로 선도 기업을 추격하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간혹 불황이 찾아와 선도기업이 전략 설정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 한국 기업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선제적인 투자를 집행함으로써 역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선두를 차지한 사업을 계속 수성하는 일이나 어느 정도 선두 궤도에 오른 사업의 발전 방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는 추격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과제다. 한국의 산업과 기업가들에게 요구되는 산업 발전의 새로운 틀과 지평을 제시하라는 최근의 주문은 우리나라가 산업 발전을 막 시작했을 당시에 주어졌던 과업의 부담보다 한층 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추격 전략하에서 유효했던 전통적인 게임의 룰(평균 이상의 품질, 저렴한 자본 비용, 정부 지원)에 의존해 몸집을 키운 기업들이 기존 방식을 탈피하기란 관성(incumbent inertia)에 젖은 기업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약(Leapfrogging)이란?

 

경제학에서 기업 간, 산업 간, 국가 간 추격을 연구할 때 이야기하는 도약(leapfrogging)2 은 선발주자가 현재 지위에 이르기까지 다뤄온 구형의 기술에 투자하는 것을 우회해 후발주자가 단숨에 선발주자를 따라잡는 것을 의미한다.3  DRAM CDMA 휴대폰 관련 기술 등 한국 산업의 발전 역시 기술 세대를 뛰어넘는 투자를 통해 경로를 뛰어넘거나(path-skipping) 경로를 창출(path-creating)했다는 점에서 도약의 형태를 일부 보여주긴 했다.4 하지만 DRAM의 경우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주도권을 뺏어 온 방식을 한국이 답습해 선두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도약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휴대전화 및 관련 기술의 경우에는 한국 기업들이 와이브로(wibro) 등 차세대 통신 기술에 투자를 집중해 선두로 치고 나가려 하는 찰나 스마트폰과 모바일 OS라는 급격한 혁신의 등장으로 사업 성패와 수익창출의 무게중심이 급변했다. 그 결과 휴대전화 사업에 한번도 발 담그지 않았던 애플, 구글 등 새로운 형태의 후발주자들로부터 산업 주도권을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 한국 산업의 발달은 선발 기업들이 제시한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바탕으로 한추격에는 성공적이었으나 기존 경로를 뛰어넘는 도약을 통해 기존 산업의 룰을 탈피하는 진정한 의미의도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본고에서는 현 시점에서 도약이 필요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고찰하고 동시에 도약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이미 충분히 성숙해버린 국내 산업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할 뿐 아니라 국가와 산업을 막론하고 기업가와 경영진이 타 기업과 경쟁을 하는 입장에서 유념해야 하는 바를 집중 조명한다.

 

도약이 필요한 이유

 

도약은 산업에서의 기존 리더십을 유지하려는 기업(first-movers), 선두를 맹렬히 추격하는 기업(followers), 그리고 새로운 산업에 막 진입하려는 기업(new entrants) 모두에 중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기존 파이를 나누는 게 아니라 새로운 파이 창출이 가능하다

 

싸이의강남스타일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100(Hot 100)’ 차트에서 한국 가수 사상 유례없는 7주 연속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고 mp3를 다운로드받는 아이튠즈(iTunes) 차트에서 미국을 포함한 20여 개 국에서 1위를 기록했다. 강남스타일의 음원 매출이 최소 100억 원 이상일거라고 예측되는데5 아이튠즈를 운영하는 애플이 이 경우 약 30억 원 정도의 순이익을 챙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YouTube)에서 8억 건의 조회 수를 돌파하며 역대 최다 조회 수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남겼다. 유투브에서 동영상 재생과 함께 광고 수익을 얻는 구글의 경우 건당 약 50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미 450억 원 정도의 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수많은 동영상과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까지 고려한다면 그 액수는 훨씬 더 커진다.

 

현재국민 게임으로 여겨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팡은 하루 매출이 2∼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6 매출이 3억 원이라고 가정할 때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애플 혹은 구글은앱 내 결제(IAP·In App Purchase)’라는 명목으로 매출의 30% 9000만 원을, 플랫폼을 제공하는 카카오톡은 매출의 20% 6000만 원을 각각 매일 가져가게 된다.

 

위 사례에서 예시로 든 애플, 구글, 카카오톡의 공통점은 각 분야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업이지만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소개하며 등장해 이를 독과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 새로운 파이 위에서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간의 치열한 경쟁과 무관하게 독점적인 수익을 음미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일찍이 마케팅과 혁신을 통해 고객을 창조하는 것(creation of customers)이 기업의 본질적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내는 도약은 경영학에서 회자되는 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 전략적 틈새(strategic niche), 블루오션(blue ocean) 등과 맥을 같이하지만 기업 간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본다는 특징이 있다. 독점적 이익 창출을 가능케 하는 도약은 기업이 초경쟁(hyper-competition)하에서 혁신을 통해 영속하기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업이다.

 

②선발 주자가 제시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추격하는 단편적인 전략을 통해서는 절대 선발 주자를 따라 잡을 수 없다. 불황기나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틈타 열린 기회의 창7 을 통해 선발 주자를 추월한다 하더라도 단편적인 추격 전략에만 의지한다면 선발 주자가 정해놓은 게임의 법칙에 따라 제한적인 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또 다른 후발 주자에게 추월 당할 여지를 남긴다.

 

인터넷 경매를 필두로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된 이베이(e-bay), 온라인 서적 판매를 통해 등장한 아마존(Amazon), 온라인 직접 판매를 시행한 델(Dell) 등 수많은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발 주자가 제시했던 전통적 게임의 룰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③목표를 달리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신입사원이 승진을 목표로 열심히 일한다면 어지간한 중간관리자 자리까지 오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단순히 자신이 맡은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역량만을 길러왔던 사람은 중간관리자로서 자신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역할에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관리자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동료 및 부하 직원들의 성과 관리는 물론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발주자를 추격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던 기업은 정작 산업의 리더 자리에 오르게 되면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경쟁자를 추격하는 데 익숙했을 뿐 정작 어떠한 가치를 시장과 고객에 제안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추격이 아닌 도약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구체적인 미션을 통해 목표화한다면 경쟁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게 되고 결국 새로운 시각에서 사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도약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도약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우선 기술의 가치 속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고객 통찰의 관점에서 산업의 발전 방향을 예측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하려는 노력 역시 뒤따라야 한다. 이 모든 노력은 도약을 향한 명확한 비전이 확립돼 있을 때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1. 기술 가치 속성에 대한 분석 및 대응

 

미국 뉴욕대(NYU) 스턴(Stern) 비즈니스 스쿨의 멜리사 실링(Melissa A. Schilling) 교수에 따르면 기술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의 속성(components of value)은 기술적 성능(technological functionality)과 기술의 설치 기반(installed base), 보완적 제품의 유용성(complementary goods availability)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8

 

 

①다양한 가치 속성을 뛰어넘는 기술적 성능을 고객에게 제공하라 기업이 경쟁에 대응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경쟁자에 비해 더 나은 기술적 성능을 가진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기업이 제공하는 기술의 가치 속성은 <그림1>의 패널 A처럼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설치 기반과 보완적 제품의 유용성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기술을 선보일 후발 기업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림1>의 패널 B와 같이 기존 기술이 가진 설치 기반과 보완적 제품의 유용성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약간의 기술적 개량을 하는 경우다. 이는 기존 기술이 가진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함으로써 효율적인 추격을 하기에는 분명히 유리한 전략이다. 반면 브랜드 충성도, 고객들의 심리적 관성 등 기존 기업을 뛰어넘기가 반드시 용이하지는 않다. 향후 동일한 인프라 위에서 선발 기업, 후발 기업, 그리고 추가적인 잠재 진입자들과 함께 진흙탕 싸움을 벌일 위험도 존재한다. 두 번째 전략은 <그림 1>의 패널 C처럼 설치 기반, 보완적 제품의 유용성 등 기존 기술의 인프라와 관련 없는 신기술을 출시하되 기술의 성능을 월등하게 높임으로써 기존 기술이 제공하는 총가치를 압도하는 방법이다. 이는 진정한 도약을 꿈꾸는 기업이 유념해야 할 전략이다. 기존 인프라가 주는 가치를 충분히 인지하고 고객들이 이를 포기하는 데서 발생하는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을 감내할 정도로 신기술의 성능 우위가 확실해야 한다.

 

구글이 등장하기 전 야후는 검색엔진의 최전방에 위치한 기업이었지만 검색 시장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포털 서비스 및 미디어 분야에 투자를 집중했다. 반면 구글은 검색어가 웹페이지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페이지를 우선시해주는 검색 방식이 아닌 웹사이트에 링크가 많이 달릴수록 그 중요도를 높게 하는 새로운 검색방식을 도입했다. 이처럼인용의 원리를 도입한 덕택에 사용자가 느끼는 실질적인 검색의 성능은 구글이 절대적으로 우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글은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큰 성능의 격차를 보이는 검색 기술을 앞세워 야후의 기술적 성능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관련 서비스를 통해 구축한 인프라를 포함한 가치를 압도할 수 있었다.

 

②기술 격차가 크지 않으면 설치 기반과 보완적 상품을 함께 공략하라 하지만 구글의 검색엔진과 같이 두드러지는 기술적 성능의 우위를 보이는 제품을 선보이고 이를 시장에 안착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발 주자가 제공하는 총가치를 넘어설 정도로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신기술과 설치 기반 혹은 보완적 상품을 함께 공략하는 방법이 있다.

 

페이스북(Facebook) 성공의 이면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인 설치 기반을 활용한 독특한 특징이 있다. 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 미국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시초 격인 마이스페이스(My Space)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2007년 마이스페이스의 순방문자 수는 미국에서 7000만 명 이상으로 페이스북의 두 배에 달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2006년부터 이미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한국어 등 17개 국어 서비스를 선보이며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순방문자 수에서는 총 15000만 명으로 마이스페이스를 압도했다. 어느 새 더 커져버린 페이스북의 설치 기반을 이용해 페이스북은 기존 마이스페이스의 사용자들을 페이스북으로 지속적으로 유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계 면도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질레트(Gillette)의 주 수익원은 면도기가 아닌 면도날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질레트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신제품의 기존 제품 잠식(cannibalization)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면도기를 소비자에게 무료로 공급한다. 고객들은 스스로 더 좋은 제품이라고 인지하는 최신의 면도기를 손쉽게 획득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기존의 면도날이 아닌 신형의 면도날을 구매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질레트는 신형 면도날과 독점적으로 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최신 면도기를 고객에게 공짜로 뿌린 덕택에 신형 면도날을 끊임없이 팔며 이미 시장에서 주요하게 자리잡은 자신의 기존 제품을 넘어설 수 있었다.

 

③시그널링(signaling)을 통해 고객의 인지와 기대를 컨트롤하라 시그널링을 활용해 제품을 출시하기 전부터 고객이 기술의 가치 속성에 대해 인지하고 기대하는 정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가 손쉽게 시장에 안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베이퍼웨어(Vaporware)란 아직 출시되지도 않았고 실제 출시되기도 힘든 소프트웨어가 곧 출시된다는 소문을 시장에 흘리는 것을 의미한다. 베이퍼웨어를 통해 고객은 특정 기업 제품의 설치기반이 이미 매우 크거나 커질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후발 기업은 신제품을 실제로 시장에 출시하기까지 시간을 벌며 경쟁자를 방어할 수가 있다.베이퍼웨어뿐만 아니라 기업이 기존에 잘해왔던 영역의 명성을 새로운 영역에서 출시할 신제품에 활용하거나 혹은 신제품에 전념해서 굉장한 기술적 성능을 가진 역작이 탄생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시장에 흘릴 수 있다.

 

신형 아이폰이 출시될 날짜를 계속 언론에 흘림으로써 경쟁 제품의 구매를 방지하는 애플, PC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상황을 새로 진출하는 게임 시장에서도 구축하겠다는 선언을 통해 경쟁자를 위축시키고 고객과 개발자들을 유혹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X-BOX), 4년간 5000억 원을 들여 개발했다는 현대의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 등의 사례는 모두 시그널링의 좋은 예이다. 기업은 이를 통해 잠재 고객이 가지는 인지와 기대를 컨트롤해 더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라고 인식시키기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설치 기반을 장악하거나 보완적 제품을 그들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2. 고객 관점에서 산업의 발전 방향 예측

 

고객 관점에 의거한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시장 조사를 통해 고객의 수요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통찰력을 가지고 과거에 없던 새로운 니즈를 발굴해 시장을 창출하는 활동을 말한다. 기업은 단순히 현재 기술의 다음 세대를 예측해 전략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가려워하는 어떠한 부분을 긁어주기 위해 시장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산업의 발전 방향을 예측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유니클로, H&M, ZARA 등을 필두로 한 SPA 패션 브랜드들의 약진은 변화하는 패션 산업을 정확히 읽은 데서 기인한다. 기존의 패션 브랜드들은 단순히 더 나은 광고와 디자인을 시장에 선보이며 그들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마진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반면 SPA 브랜드들은 빠른 유행 변화에 민감해진 소비자, 비싸게 주고 오랫동안 아껴 입는 옷의 구매가 아닌 식품처럼 일상적인 의류 구매, 중저가인 경우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덜 분명해지는 소비자 성향, 글로벌 경기 불황을 통해 양극화되는 계층 등의 시장 변화에 주목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SPA 브랜드들은 밸류체인(value chain)을 통합해 규모 및 범위의 경제를 실현했다. 결과적으로 최신 디자인의 빠른 도입, 소품종 대량 생산, 질 대비 낮은 가격을 통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됐다. 패션업에서의 도약을 실현한 유니클로의 모회사,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의 회장 야나이 다다시가 2012년 현재 일본의 전자, 유통 등 기존 주력 산업 수장들을 제치고 포브스가 발표한 일본 갑부 1위에 올라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3.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결합

 

선도 기업과 후발 주자 간 경쟁의 축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하는 서비사이징(servicizing)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애플은 이미 포화됐다고 여겨진 mp3플레이어 산업의 신규 진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팟과 함께 아이튠즈를 동시에 운영함으로써 단숨에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 음원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서비스(아이튠즈)’제품(아이팟)’에 결합함으로써 mp3플레이어 산업을 새로운 형태로 재편한 덕택이다.

 

GE는 탈()범용상품화(de-commoditizing)를 통해 일본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던 기존의 소형 가전, 에어컨, 냉장고 등의 비즈니스에서 탈피했다. 더 큰 가치를 주는 기술이 담긴 상품, 그리고 물건이 아닌 서비스를 파는 방향으로 전략적 방향을 선회해 GE캐피털을 비롯해 전력, 의료, 항공기 엔진, 전동차 등의 첨단기술에 투자를 집중했다. 특히 캐피털 사업부를 활용해 단순히 고가의 첨단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사용량에 비례해 빌려준다는 개념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4. 도약을 위한 명확한 비전 수립

 

조직 내에서 미션을 수립하고 이를 전파하는 단계에서도 추격이 아닌 도약을 위한 목표 수립이 필요하다. 특히 조직 전체의 전략적 의지는 원하는 바에 따라 갑자기 선회되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기업의 DNA로 축적된다는 점에서 조직이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 기업들의 비전이나 미션 선언문을 살펴보면선도 기업’ ‘2020 TOP 3’ 등 단순히 해당 산업 내에서 어떠한 포지션에 서겠다는 것을 추상적인 단어들과 함께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추격의 틀에 갇혀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반면 구글의 미션은세상의 모든 정보를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애플의 경우 명백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창립자인 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애플을 창업하던 1975년부터 한결같이 언급했던 그의 비전은 모든 사람의 손에 개인용 컴퓨터를 쥐어주어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애플이 만든 최초의 PC,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차용한 최초의 컴퓨터, 아이폰, 아이패드 등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출시된 제품들 대부분이 이 범주 안에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해커 웨이(Hacker Way)’를 표방하며 해커처럼 빠르게 새 제품을 출시하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감으로써일단 내놓는 게 완벽한 것보다 낫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모두 기업 간 추격의 범주에 갇히지 않고 산업 내에서 그들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결론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가 추격을 하려 했던 선진 기업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를 선보이며 경쟁의 축을 전환시키고 있다. BRICS와 같은 후발 국가의 기업들은 저렴한 인적 자원 등 더 나은 생산효율을 바탕으로 우리가 해 왔던 방식 그대로 우리를 추격해오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산업, 서비스업, 소프트 파워 등 사업의 성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선발 기업들이 제안한 형태를 답습하는 추격에 머무를 게 아니라 새로운 지향점을 설정하고 도약에 힘써야 한다.

 

 

김진환 PRiSM연구회 연구원jinhkim@temep.snu.ac.kr

 

필자는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크리베이트 파트너스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현재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기업 간 협력, 기업의 네트워크 전략과 추격(catch-up) 전략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