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CSR 전략 포럼
편집자주
DBR은 지식경제부가 기업가정신주간의 일환으로 2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개최하는 ‘국제 CSR 전략포럼’을 주관합니다. 행사에 앞서 이번 포럼의 키노트 스피커로 초청받아 한국에 오는 제이슨 사울 켈로그 스쿨 교수의 CSR에 대한 접근법을 소개합니다. CSR 전략의 혁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되는 이번 포럼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국내에서 기업사회공헌이나 사회책임경영과 동의어로 쓰이곤 한다. 특히 정부나 비영리 업계에서는 CSR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는 명분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들 역시 CSR을 회사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비용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당연히 CSR을 자사의 핵심 역량과 연계시킨 전략적 수단으로 바라보는 데에도 익숙하지 않다.
사회가치영향평가 전략컨설팅사인 미션매저먼트(Mission Measurement LLC)의 설립자이자 미국 노스웨스턴 켈로그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제이슨 사울(Jason Saul)은 그의 저서 원제: Social Innovation Inc.)>을 통해 앞으로의 CSR은 기업사회혁신(CSI·Corporate Social Innovation)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SI는 기업, 정부, 비영리 각각의 분야에서, 혹은 공동으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사회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개념이다. 특히 기업에는 사회나 환경적인 이슈를 문제가 아닌 비즈니스 기회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기업이 사회혁신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적극 활용해야 하며 그에 따른 성과는 그 가치를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사회적 가치제안(Social Value Proposition)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가치제안이 잘돼 있어야 기업이 CSR을 통해 가용자원의 성과 가치와 영향을 배로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질문을 하라 -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어떻게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 것인가?”
제이슨 사울은 그와 일했던 기업 및 그가 강의했던 수백 개의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많은 기업들이 애당초 사회적 가치 성과가 나오기 힘든 CSR 프로그램을 가지고 온갖 SROI(Social Return on Investment) 기법을 동원해 가치를 측정하려는 실책을 범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앞서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도 60%가 전통적인 기부나 자선, 규율 준수 수준에 그치는 ‘CSR 1.0’에 머무르고 있으며, 35%의 기업들이 전략적 자선활동에 해당하는 ‘CSR 2.0’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고, CSI에 해당하는 ‘CSR 3.0’에 속하는 일을 하는 기업은 불과 5%에도 못 미친다. (그림 1)
그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사회경제적 성과를 동시에 낼 수 있는 CSR 전략을 만들 수 있는가? 제이슨 사울은 4단계의 법칙을 제시한다. 우선 기업이 원하는 비즈니스 성과를 생각한다. 그 다음,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를 파악하고 사회변화 가능성에 대해 조사한다. 이어 기업의 해당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기업의 자원 및 핵심 역량을 파악하고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즈니스 해결책을 만들어 낸다. 위의 4단계를 거친 CSR 3.0을 위한 기업사회혁신 전략은 기업의 매출, 수익, 고객 확보나 유지 등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 성과 측정 결과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게 제이슨 사울의 주장이다.
새로운 전략을 세워라 - “기존의 전통적 CSR 사고에서 벗어나 기업 경쟁력에 집중하라.”
CSI는 기존의 전통적인 CSR 사고에서부터 발상의 전환과 변화를 요구한다. 즉, 사회변화 목표를 전통적 자선에서 비즈니스 전략으로 세우는 변화, CSR과 주력 비즈니스가 분절된 상태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 기업 역량을 활용해야 하는 변화, CSR을 비용으로만 보던 사고에서 매출 증대 혹은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보는 변화, 비영리기관에 기부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인다는 수동적 사고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능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제이슨 사울이 요구하는 이러한 사고의 변화가 시작되면 그가 제시하는 5가지 CSI 전략을 실행할 준비가 됐다. 이 전략들은 그가 16년 동안 기업, 비영리기관, 정부 등의 CSR 전략, 프로그램, 정책의 성과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면서 정립한 것으로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비즈니스 성장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첫째, 서브마켓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매출 올리기, 둘째, 백도어(backdoor) 채널을 통해 신규시장 진입하기, 셋째, 고객들과 정서적 유대감 만들기, 넷째, 인재채용을 위한 파이프라인 만들기, 다섯째, 역(逆)로비(reverse lobbying)를 통해 정책에 영향 미치기다.2
첫째, 서브마켓 제품과 서비스는 미개척 시장과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전략이다. GE는 헬시매지네이션(Healthymagination)의 일환으로 최신 기술을 적용한 6파운드 반의 무게를 가진 소형 심전도 기계 MAC800을 동일 기능을 가진 다른 제품보다 80%나 저렴한 2500달러에 내놓았다. 이 제품은 1차 진료 병원, 시골병원, 방문 간호사 등 운반하기 쉬운 기계가 필요하지만 비싼 심전도 기계를 살 돈이 없는 신규 고객층에게 딱 들어맞는 제품이었다. GE는 “혁신이란 필수 요소인 가격을 절감하면서도 제품이나 서비스의 핵심 가치나 기능은 그대로 두고 신규 시장에 어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둘째, 백도어 채널 진입은 새로운 잠재력을 가진 시장을 사회적 요소를 가진 채널을 통해 찾아내는 전략이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영국 유통 기업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 세계 3위의 유통기업인 영국 테스코(Tesco)는 이른바 정크푸드만 파는 소매점으로 가득한 도시 내 저소득층 주택가에 프레시&이지(fresh & easy)라는 소형 유통매장을 여는 전략을 통해 철옹성 같던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테스코가 공략한 시장은 도시 외곽이나 교외에 거대 매장을 짓는 월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즉, 경쟁이 치열하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 장벽(social barriers)이 존재하는 시장이었다. 테스코는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신선한 음식을 판매함으로써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시장 진입 3년 만인 2009년 말 미국 서부 지역에 129개 매장을 열었고 미국 내 매출은 115% 상승했다.
셋째, 고객과 정서적 유대감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고객을 사회문제 해결사로 만들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기업의 홍보대사로 만드는 미래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다. 미국의 문구용품 기업 오피스맥스(OfficeMax)는 선생님들이 수업에 필요한 문구를 자기 경비로 사서 수업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교실 입양하기(Adopt-a-Classroom)’라는 NGO와 함께 오피스맥스 임직원 및 협력업체를 비롯한 기부자와 교실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회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교육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문제는 사무용품을 주로 구매하는 30∼40대 여성고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기부 물품 패키지의 일부분으로 제공된 브로셔에 있는 쿠폰 교환권은 매출로 연결됐다. 입소문은 학교 공공입찰 계약들이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넷째, 인재채용을 위한 파이프라인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기업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즉 기업이 나서서 공교육 문제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미래 경력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IBM은 핵심 비즈니스 전략의 일환으로 서비스과학경영 엔지니어링(SSME·Service Science, Management and Engineering)이라는 학교 교육 과정을 만들어 냈다. 즉, 다수의 대학교와 파트너십을 통해 기존 교육 과정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컴퓨터 과학, 경영과학, 비즈니스 전략을 교육해 IBM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취업시키고 있다. 시스코도 인터넷에 대한 수요가 IT 지원 전문가 공급을 추월하자 네트워킹 아카데미를 통해서 소외계층 청소년과 여성들에게 IT와 네트워킹을 가르쳐서 시스코가 인증한 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다. 졸업생 중 91%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29%는 IT 분야 기업을 창업했다. 이들은 각계각층에서 시스코의 제품 판매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다섯째, 역로비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업만을 위해 하는 정부대상 로비가 아닌 ‘공익을 위한 로비’이며 다양한 민관협력을 끌어내는 전략이다. 전통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규제하는 자와 규제받는 자, 즉, ‘갑’과 ‘을’의 관계였다. 하지만 기업은 공익과 비즈니스 이익이 결합된 정부의 특정한 우선순위정책을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기업사회혁신을 실행할 수 있다. 영국 테스코의 프래시&이지가 대표 사례다. 영국의 테스코는 ‘빈곤에 찌든 갱단의 도시’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가진 캘리포니아 콤프톤시에는 도시 재개발을 위한 강력한 핵심 파트너였다. 시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43개나 되는 프레시&이지 매장을 연 테스코는 지역 주민에게 건강에 좋은 음식과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도시 재생의 필수적인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통합적인 시각을 가져라 - “기업사회혁신은 개인기가 아니라 단체게임이다.”
기업사회혁신과 사회적 가치 제안, 그리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비즈니스 성장을 견인하는 5가지 기업사회전략은 한국 기업들에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가?
첫째, 기업의 여러 부서가 힘을 합쳐야 한다. 5가지 전략은 기업의 CSR 부서 혼자만으로는 수행할 수 없다. CSR, 전략기획, 연구개발, 영업, 해외사업, 비즈니스 개발, 마케팅, CRM, 조사, 인사, 대관 부서 등 모든 부서에서 전향적인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문제 해결이 자선이나 사회공헌을 통한 CSR 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해당 기업 전체의 성장을 위한 비즈니스 기회 확대라는 것을 모든 기업 부서가 인식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비영리기관을 가치창조적인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을’의 입장에서 ‘갑’인 정부를 상대하는 수동적인 마인드나 ‘갑’의 입장에서 비영리기관인 ‘을’의 펀드레이징 제안을 받아들이는 피동적인 마인드로 기업사회혁신은 불가능하다. 정부나 비영리기관들도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기업이 가지고 있지 않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인권, 노동, 환경 등의 NGO 역시 기업들이 잘 모르는 사회나 환경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성을 자랑한다. 이들은 기업이 기업사회혁신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셋째,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문제를 사업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개인전에서 이기려면 혼자서 만능기술사가 돼야 한다. 하지만 단체게임에서는 선수 개개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기능에 집중할 때 이길 수 있다.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면서도 거기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려면 기업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경쟁기업도 따라올 수 없도록 해당 사회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업종별 CSR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개도국 공교육 환경에서 각 기업이 원하는 비즈니스 성과는 B2B기업, B2C기업, B2G기업이 다르고 IT, 전기전자, 자동차, 채굴, 에너지, 건설, 제약 업종 기업이 다를 것이다. 원하는 비즈니스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를 파악하고 사회변화 가능성에 대해 조사할 때 같은 업종이라도 경쟁기업보다 월등히 뛰어날 수 있는 기업사회혁신 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해당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해당 기업의 차별화된 자원 및 핵심 역량을 파악하고 끄집어 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해당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사회문제와 비즈니스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차별화와 세분화, 전문화가 되지 않으면 해당 기업에 최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성공을 이뤄낼 수 없다.
안젤라 강주현 ㈔글로벌경쟁력강화포럼(GCEF) 대표angela514k@g-cef.org
필자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Mid-Career MPA)를 받았다. 국가브랜드위원회 민간자문위원, 미국 하버드케네디스쿨 아시아 프로그램 객원연구원 및 보스턴칼리지 기업시민센터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위촉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평가위원, 지식경제부 규제심사위원회 위원이며 제이슨사울의 저서 원제 Social Innovation Inc.)>의 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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