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 세계 곳곳에서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경호원과 경찰에 둘러싸인 성화 봉송자들이 각국의 수도를 지날 때마다 시위대가 끼어들어 이를 저지하는 데모를 벌이고 있다. 이달 초 런던과 파리에서 이런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중국 올림픽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 하지만 코카콜라, 레노보, 삼성전자 등 올림픽 성화 봉송 후원업체들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군중의 시위 장면에 가려 이들 기업의 로고가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가 불과 몇 달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이 행운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재 인권 운동가, 유명인사, 정치 지도자, 일반 시민들은 중국이 티베트의 인권을 탄압하고, 아프리카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자행되는 대량 학살을 지지하며, 중국 내 종교 지도자와 반체제 인사를 박해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상당수는 올림픽 기간 동안 중국에 압박의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티베트 국기를 다는 등 이른바 ‘선동’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는 엄포까지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너럴일렉트릭(GE), 존슨앤존슨(J&J), 비자카드 로고를 배경으로 중국 공안들이 시위자의 머리를 내리치는 끔찍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나올 수 있을까?
스폰서 자격을 얻기 위해 7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올림픽 후원기업 12곳 중 중국 기업은 레노보 하나뿐이다. 와튼스쿨 교수진은 다국적 후원사들이 중국 외의 다른 국가에서 벌인 사회 공헌활동을 인정받으면서도 이번 올림픽 후원사로서의 이익을 얻으려면 까다로운 두 단계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와튼 스포츠 비즈니스 이니셔티브(Wharton Sports Business Initiative)의 케네스 슈롭셔는 “수십 년 전부터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시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중요한 행사를 개최하는 국가라면 이제 유사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없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각 후원사들이 중국 발전에 얼마나 많이 기여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홍보 전략을 짤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까지 일부 후원사들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을 통해 중국과 협력함으로써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코카콜라는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성명서에서 “주권국의 정책 결정에 개입할 처지는 아니지만, 코카콜라는 올림픽을 지속적으로 후원함으로써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간 코카콜라가 다르푸르 난민을 위해 연간 수백만 달러를 기부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카콜라는 티베트에 대해서도 비슷한 성명서를 내고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스포츠, 우정, 공정한 경기를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올림픽 운동의 이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코카콜라 대표단은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와치(Human Rights Watch)’와 만나기도 했다. 코카콜라는 중국 정부에 인권 문제를 직접 제기해달라는 HRW의 요청은 거절했지만, 대신 IOC에 우려를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지난 2월 “아무도 IOC에 국제 문제 해결을 촉구할 수는 없다”며 중국을 압박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성화 봉송 저지 시위와 관련, “올림픽이 위기에 빠졌다”고는 언급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로게 위원장이 IOC와 상관없는 정치적 문제를 언급했다며 비난했다.
정치적 위험 관리를 연구하고 있는 와튼스쿨의 위톤드 헤니츠 교수는 올림픽이 전적으로 스포츠 행사일 뿐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헤니츠 교수는 정치적 위험을 미리 고려하는 후원사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올림픽이 국제적 이슈로 확대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올림픽 후원을 통해 수십억 명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정치 문제는 크지 않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정치는 돈이 아니라 희망, 공동의 목표와 정체성에 관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