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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Z Consulting

남극에도 비타민 C가 있다, 버려진 자원에 주목하라

송미정 | 104호 (2012년 5월 Issue 1)



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1800년대 말 많은 서구인들이 남극점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했다. 벨기에 해군 대위인 아드리앙 드 제를라슈가 이끈 벨지카(Belgica)호의 남극 항해(1897∼1899)도 그중 하나다. 당시 벨지카호에는 훗날 세계적인 극지 탐험가로 이름을 떨치는 노르웨이 출신의 로알 아문센, 의사이자 미국의 탐험가인 프레데릭 쿡 등이 승선했다. 1897 8월 벨기에 안트워프(Antwerp)를 출발한 탐험대는 대서양 동부의 포르투갈령 마데이라(Madeira),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우루과이 몬테비데오(Motevideo) 등을 거쳐 남극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남반구의 여름(1898 1, 2)을 틈 타 남극점 가까이까지 항해함으로써 남극 부빙(浮氷) 속에서 겨울을 보낸 최초의 탐험대로 기록된다.

 

하지만 벨지카호는 1898 3월 초 얼음 한가운데 갇혀버린다. 따뜻한 날씨로 빙하가 녹아 뱃길이 열리면서 남극점 가까이에 접근해 겨울을 보낸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너무 깊숙하게 내려갔던 게 화근이었다. 짧은 여름이 끝나고 곧바로 날씨가 추워지면서 해빙으로 열렸던 뱃길이 꽁꽁 얼어붙으며 탐험대는 조난을 당하고 남극의 차디 찬 얼음 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남극의 겨울은 평균 영하 50∼60도 정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매우 춥다. 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보다 벨지카호 대원들에게 닥친 더 시급한 위기는 바로 괴혈병이었다. 비타민C 부족으로 발병하는 괴혈병은 잇몸, 근육, 골막과 피하 점막이 약해지면서 피하 출혈이 발생하고 전신 권태감과 피로가 몰려오는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질병이다. 당시 탐험선에는 1년 정도 버틸 만큼의 식량과 고기, 독주 등은 있었지만 고립된 배라는 특성상 비타민C의 공급원인 신선한 야채를 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괴혈병 예방을 위해 비타민C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벨지카호 탐험 시절인 1890년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물론 경험상 레모네이드와 같은 과일 주스가 괴혈병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거친 선원들 사이에선 레모네이드는 여자들이나 먹는 음료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선원들은 탐험 준비 전 충분한 양의 레몬을 탑재하지 않았다. 긴 남극의 겨울을 지나며 벨지카호 선원들이 창고에 싣고 온 레몬들은 어느덧 다 떨어져 버렸다.

 

괴혈병 증상은 잇몸에서 피가 흐르고 무기력해지는 수준이어서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우내 하루 종일 밤이 이어지는 남극의 혹독한 환경을 버텨내야 하는 선원들에게 무기력은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급기야 원래 지병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던 탐험 대원 한 명이 괴혈병으로 상태가 악화돼 사망했다.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선원도 있었다. 괴혈병으로 인한 무기력이 너무 심해진 나머지 탐험대장과 선장도 유서를 써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문제 상황을 트리즈의 문제모형 표현 공식을 통해 나타내 볼 수 있다. 트리즈에서는 문제 모형을 표현함에 있어서 모순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표현하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바로요소-구동힘 모형(object-driving force model)’이다. 이 모형은 원래 한국에선물질-장 모형이라고 번역되는 ‘substance-field model’이다. 하지만물질이라는 용어는 대개 물리적인 형체를 가진 것에만 한정하는 심리적 관성을 불러일으키며 ‘장’이라는 용어 역시 자연과학, 공학에서 말하는 field와는 다른 개념이므로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필자는 이 모형을요소-구동힘’, 혹은 짧게 줄여요소-모형으로 명명해 활용하고 있다.

 

벨지카호의 괴혈병을 치료하는 레몬이나 신선한 야채가 없는 상황을요소-힘 모형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림1>과 같다. 여기서 O1 요소는 괴혈병에 걸린 환자들이며 이 환자들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X가 필요한 상황이다. X는 원래 레모네이드였지만 현재 선내에는 구할 수가 없다. X는 무엇이 될 수가 있을까? 이것은 마치 ‘2X+3=11’일 때 ‘X는 무엇인가를 푸는 문제와 비슷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X=4’와 같이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정답이 있을 수도, 전혀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재 레모네이드의 원료인 레몬은 없다. 선내에 신선한 야채 역시 전혀 없다. 야채를 기를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무엇이 X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은 기업의 일상 연구개발 활동 시에도 흔히 발견된다. 벨지카호처럼 오지에 남겨진 경우 흔하게 활용하던 아주 작은 것들이 없어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가 개발하는 기술의 성능을 높이거나 오지에서 살아남는 데 관건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체할 다른 것을 발견하기 쉬울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전에 혹은 다른 곳에서 유사한 조건에 놓였던 적이 있는지, 그럴 때 문제가 없었다면 그들의 조건 중 과연 무엇이 문제가 발생하게 하지 않는 조건일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1>에 제시된 것처럼 두 상황의 자원을 비교함으로써 필요한 대체재를 발견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때 만약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유사한 상황이라면 핵심 미지 자원은 두 가지 상황의 공통점이 된다. 반대로 상황은 비슷하지만 한쪽에는 문제가 없고 다른 한쪽에는 문제가 있다면 핵심 미지 자원은 두 가지 상황의 차이점이 된다. 이 자원 비교표를 보면 두 가지가 유사한 상황이긴 하지만 문제가 있는 곳과 문제가 없는 곳의 자원의 차이가날고기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이렇게 해서 발굴한 날고기라는 자원을 위의 불완전한 요소-힘 모형에 대입해 본다.

 

이것이 작동할지, 하지 않을지는 통상 세 가지 방법을 통해 검증한다. 그 첫 번째는 실험을 실제로 해보는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비용과 시간이나 부작용의 우려가 있어서 최후에 활용한다. 두 번째는 이러한 일을 해본 과거의 연구 내용을 찾아보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검색 엔진이 발달하면서 특허나 논문 검색을 통해 내가 제안한 대체재가 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를 비교적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황을 겪어본 경험자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벨지카호는 이 세 번째 검증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벨지카호에서 1등 항해사로 선장과 탐험대장을 대신해 대원들을 지휘했던 아문센과 미국인 의사 쿡은 북극권에서 혹한과 극지의 험한 환경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아문센은 남극에 오기 전 북극권에서 탐험 훈련을 할 때 이누이트인들은 신선한 야채를 전혀 섭취하지 않음에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문센은 그 이유가 날고기에 있음을 간파했다. 그들은 겨울 중간에 레몬주스가 떨어질 것을 예측하고 난파 후 완전히 겨울이 오기 전 주변의 물범과 펭귄들을 잡아뒀다. 남극의 차디찬 날씨만큼 물범이나 펭귄을 보관하는 데 좋은 냉동고는 없었다. 괴혈병이 심해졌을 때 그들은 스스로 날고기를 먹어 괴혈병이 낫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써 날고기 먹기를 꺼리는 선원들에게도 날고기를 공급해 다른 선원들의 괴혈병을 낫게 할 수 있었다.가장 늦게 괴혈병에서 해방된 이들은 끝까지 날고기 먹기를 거부하다가 모든 선원들이 괴혈병에서 다 나았을 때 마지못해 날고기를 맛보았던 탐험대장과 선장이었다.

 

이렇게 날고기로 괴혈병 위기를 넘긴 벨지카호 선원들에게 여름이 찾아왔다. 얼음이 녹기만을 기다리며 집으로 돌아갈 날만 꿈꾸던 선원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서서히 녹으며 뱃길을 내주던 얼음이 배 전방 약 900m 정도 떨어진 곳부터 더 이상 녹지 않는 것이었다. 벨지카호는 원래 포경선을 급히 개조해 만든 남극 탐험선이라 얼음을 깨고 전진하는 쇄빙선의 기능을 어느 정도는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옴짝달싹 못하는 곳에서, 그것도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아직 두께가 2m나 되는 얼음을 다 깨고 전진하기에는 무리였다. 발만 동동 구르다 여름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아문센을 위시한 탐험대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만약 여기에 트리즈 전문가가 나타났다면 어떻게 제안했을까? 필자가 위의 상황에 처한 이에게 초대된다면 우선 요소-힘 모형을 그려볼 것이다. 얼음(object 1)을 기계적 구동힘(driving force)에 의해 배(object 2)로 제거하고 싶지만 부족하다.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되는 건 배로 얼음을 제거하는 걸 가능하게 해주는 X 요소를 찾는 것이다. < 1>의 서식을 약간 바꾸어 원래의 자원 분석표를 다시 작성해 본다면 <2>와 같다. 이때에는 벨지카호의 여러 자원들 중 문제 해결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조사해 자원 분석표에 포함시킨다. 특히 인지 자원이 갖고 있는 숨겨진 특성인 석탄이나 증기와 같은 것들도 함께 포함시킨다.

 



X로서 가능한 것들은 내부의인지자원에서 우선적으로 찾되 만약 없다면 내부의미지자원으로 관심을 옮겨 간다. 미지 자원이나 인지 자원 한 가지로 어렵다면 두 가지 이상을 결합한 자원을 X로 대입해 가능성을 검토한다. 미지 자원 발굴 시의 주요 원칙은버리는 자원을 아이디어 발상 시 최우선적으로 활용한다이다. 버리는 자원으로는 증기(폐증기)나 석탄재가 가능하며 이 두 가지 자원들끼리, 혹은 다른 자원들과 2개씩 혹은 3개씩 조합한 유도자원을 새롭게 만들어서 X의 자리에 대입해 본다면 충분히 가망성 있는 자원을 빠른 시간 안에 살펴볼 수가 있다.예를 들어석탄재에 태양의 빛이 결합되면 어떻게 될까?’ ‘증기선인 벨지카호에서 발생하는 폐증기를 얼음에다 우회해 작용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등과 같은 아이디어들이다. 이런 생각들은 초등학교 4, 5 학년 수준이라도 충분히 자신들의 과학지식을 이용해 제대로 된 생각의 경로를 따르기만 한다면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다.

 

아문센이 남극탐험을 하던 당시에는 트리즈가 발명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아문센은 트리즈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연이 이런 역할을 했고 아문센은 그 우연의 도움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뱃전에서 얼음이 녹아 있는 부분을 선원들이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이 사실을 아문센은 놓치지 않고 탐구했다. 왜 다른 곳은 얼음이 녹지 않았는데 특정한 부분만 녹았을까를 조사하던 탐험가의 눈에 그 근처에 잔뜩 있는 석탄재의 존재가 포착됐다. 남극의 여름은 거의 하루 종일 해가 떠 있다. 희디 흰 남극에서 약간의 석탄재만으로도 햇빛을 받아 얼음을 녹이는 데 충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석탄재는 어디서 왔을까? 올 만한 곳은 단 하나, 벨지카호였다. 벨지카호가 얼음을 깨보려고 증기를 가동할 때 나왔던 석탄재가 바람을 타고 특정한 곳에 쌓여 빛을 받아 얼음이 녹았다.

 

트리즈에서는 통상 버리는 자원이나 폐기물, 폐열과 같은 것들을 가장 이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원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인 문제 해결 전략이라면 자원을 조합하라고 할 경우, 있는 자원들을 매트릭스로 만들어 조합해 살핀다. 하지만 트리즈에서는 가장 먼저 무상으로 쓸 수 있는 자원인 폐기물 자원부터 주목해 자원을 찾고 재조합한다. 이게 바로 트리즈를 이용해 빠른 시간 안에 색다른, 그러나 충분히 유용한 아이디어들을 도출할 수 있는 이유다.

 

 

 

송미정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triz_institute@hanmail.net

필자는 KAIST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 전문가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200건 이상의 연구 개발 과제 컨설팅을 수행했다. 저서로 <회사를 살리는 아이디어 42가지(공저)>가 있다.

  • 송미정 | - (현)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 삼성종합기술원 연구혁신센터 차장
    -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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