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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알자” 타이코의 맞춤경영

캐시 해리건 | 7호 (2008년 4월 Issue 2)
기업 수준 전략(corporate level strategy)은 현재 기업이 보유한 자원으로 어떻게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핵심 주제로 다룬다. 기업이 보유한 자원 가운데 브랜드나 로고처럼 일반적(general)인 성격의 자원은 쉽게 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유 설비 운영 노하우 같은 매우 특수한(specialized) 자원들은 이전이 어렵다.
 
기업이 일반적인 자원을 많이 갖고 있어서 자원 공유에 노력을 특별히 기울이지 않아도 되면 기업 본부(headquarter)의 규모는 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원이 특수하고 이전이 어렵다면 기업 내 여러 부서가 자원 공유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
 
비관련 사업부를 다양하게 보유한 타이코(Tyco)사의 예를 들어보자. 타이코는 스프링클러 같은 방재 장비와 각종 파이프, 전자 부품, 의료용 치료기 등 연관성이 별로 없는 사업부를 다양하게 갖고 있다. 이 사업부는 모두 성숙 산업에 속해있으며 기술 수준이 낮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타이코가 보유한 자산은 특수하지 않다. 낮은 수준의 기술(low-tech)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술 자원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다. 타이코 본부는 재무 실적으로만 개별 사업부를 통제하고 있다. 본부에서 전략적으로 어떤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라고 간섭하지 않는다. 각 사업부가 투자수익률 같은 재무적 목표를 달성했는지만 감시한다. 타이코는 지금까지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낮은 이자로 부채를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원들은 모두 일반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과연 이런 일반적 역량이 지속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온 타이코의 핵심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타이코의 재무적 통제(financial control)를 살펴보자. 타이코 본부는 실제 각 사업부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특히 기업 규모에 비해 본부 인력은 매우 적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차입매수(LBO)한 후 재무적 성과로 경영진을 통제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타이코에는 훈련된 인수합병(M&A) 전문가가 많은데 이들은 성숙 산업 분야에서 싼 값에 매물로 나온 기업을 물색한 뒤 조심스럽게 협상을 진행해 가격이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독특한 M&A 프로세스도 정립했다. 사업부의 추천으로 인수 대상 기업이 제시되면 평가 후 내부 승인 절차를 거친 다음 유통 채널과 영업 조직, 제조 공장 등을 세부적으로 점검한다. 그리고 실사 작업을 벌인 뒤 구조조정 안을 수립한다. 사전에 철저하게 기업을 분석하고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기업을 사들이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타이코의 각 사업부는 연관성이 적기 때문에 시너지가 별로 없다. 타이코 본부가 재무나 예산만 통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타이코의 전체 직원은 4만 명에 이르지만 본부 인력은 이 숫자의 0.1%에 불과하다.
 
만약 기업의 자원이 일반적이라면 재무적 통제가 적절하다. 하지만 특수한 자원이 많은 경우에는 본부에서 기업 운영과 관련한 부분까지 개입하는 게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타이코처럼 적절한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비관련 다각화를 통해서도 상당기간 경쟁 우위를 누릴 수 있다. 타이코가 보유한 자원은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이를 잘 결합해서 다양한 사업부를 운영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부를 독립 회사로 분리했을 때보다 타이코의 울타리 안에 묶어두는 게 성과가 더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리 및 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서 타이코에 위기가 닥쳤다. 2000년대 초 최고경영자의 회사 자금 횡령 사실이 드러나는 등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게다가 타이코 경영진은 경험이나 노하우가 거의 없는 금융 분야에 신규 진출했다. 타이코는 금융 서비스 회사인 CIT그룹을 인수하는 등 잘못된 M&A를 추진하면서 더 큰 위기에 빠졌다. 이런 일이 겹치면서 타이코는 금융 회사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았다. 이후 경영진이 교체됐으며 2007년 이사회는 건강, 전자, 소방안전 등 세 가지 사업부로 회사를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복합기업이 존재한다. 일부 복합기업은 시장 평균보다 낮은 수익을 계속 내고 있다. 항공, 국방, 부동산 분야로 다각화된 기업인 젠콥(Gencorp)은 최근 20년간 지속적으로 시장 평균 이하의 수익을 내고 있다. 이런 기업은 사실 존재 이유가 없다. 철강, 기계, 전자, 에너지, 섬유, 식료품, IT 산업 분야로 다각화된 기업인 미쓰이(Mitsui&Co.)도 거의 지속적으로 시장 평균 이하의 성과를 내다가 최근 들어 다소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산업재, 건강소비재, 안전, 전자, 통신 분야로 다각화된 사업부를 보유하고 있는 3M과 항공, 엔지니어링, 기계 등으로 다각화한 크레인(Crane)은 비교적 시장평균과 비슷하거나 다소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복합기업도 있다. 산업재와 장비, 특수기계 등으로 다각화한 대너허(Danaher)는 지난 20년간 주가가 6000% 이상 상승했고 하드웨어와 골프용품, 가정용품, 식품 등으로 다각화한 포춘 브랜드(Fortune Brands)는 30년간 6000%를 웃도는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제조업과 통신, 건강, 와인, 금융 서비스 사업을 보유한 루카디아 내셔널(Leucadia National)은 최근 20년간 8000% 이상 주가가 올랐다. 한국의 재벌도 월등하게 높은 성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시장 평균 이상의 성과를 냈다.
 
관련 다각화를 추진했는가, 혹은 비관련 다각화를 추진했는가는 기업의 성과를 결정하는 데 중요치 않다. 관련 다각화든 비관련 다각화든 각각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내부 통제 시스템과 자원, 역량을 갖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다각화 기업으로 성과를 냈던 타이코는 어떤 상황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프로세스와 시스템도 잘 구축했으며, 성과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면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하는 등 경영진에 대한 인센티브 시스템도 적절하게 갖췄다. 또 성과만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는 기업 문화를 조성했고, M&A를 할 때에 절대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있었다. 이런 조직의 역량이 비관련 다각화 기업으로 좋은 성과를 올린 원천이었다.
 
편집자주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최고 경영 석학의 강의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세계적 경영 석학 21명이 7월초까지 2주씩 순차적으로 방한해 서울대 MBA스쿨에서 강의합니다. DBR은 그 첫 번째로 기업전략 분야의 최고 석학인 캐시 해리건 컬럼비아대 교수의 강의 내용을 요약합니다. 이와 별도로 진행된 해리건 교수와의 심층 인터뷰는 동아일보 3월 29일자 B7면에 실렸습니다.
 
캐시 해리건 컬럼비아대 교수는 기업 수준 전략(corporate level strategy)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영 전략의 대가 마이클 포터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쟁자 분석, 다각화 전략, 인수합병(M&A), 구조조정 등의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냈으며 경영학자와 기업 실무자들에게 다양한 통찰을 제시했다. 유명 기업들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등 현장 경험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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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시 해리건

    - (현) 컬럼비아대 교수
    - 기업 수준 전략(corporate level strategy) 분야의 전문가
    - 경쟁자 분석, 다각화 전략, 인수합병(M&A), 구조조정 등의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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