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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hinking

“디자인 속 아이디어가 기술을 낳는다. CEO의 DNA에 디자인을 넣어라”

최한나 | 103호 (2012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현도(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단순화’는 많은 작업을 필요로 한다. 먼저 핵심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핵심과 비핵심을 구분해야 한다. 그 다음엔 핵심만 남기고 비핵심을 잘라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남은 부분만으로 제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삼성이 작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박람회 CES에서 베젤(bezel) 두께가 5㎜밖에 되지 않는 신제품 TV를 선보였을 때 탄성이 터져 나온 것은 기능과 미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TV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가 얇아지면서 안팎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화면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다. TV가 나오기까지 전사적인 노력이 뒷받침됐다. 의사 결정과 제작 시스템, 생산 라인과 마케팅까지 얇은 베젤의 TV를 완성하기 위해 각 부문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머리를 맞댔다.

 

그 꼭짓점에 강윤제(43) 상무가 있었다. 보르도 TV와 크리스탈 로즈(TOC) TV, 내로(narrow) 베젤 TV 등 히트작을 연속적으로 선보이며 삼성 TV의 디자인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강 상무를 만나 디자인 경영이 가야 할 방향을 들었다.

 

베젤을 5㎜까지 줄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았다. 베젤을 극단까지 줄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기술력이 확보된 덕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얇은 베젤 TV를 디자인적 성과가 아닌 기술적 발전의 결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 사업부장께 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사업부장과 외부 손님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우연히 그 자리에 합석하게 됐다. 그 손님이 이렇게 물었다. “디바이스(device)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그렇게 얇은 TV를 만들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 질문에 사업부장이 이렇게 답했다. “그 아이디어는 여기 있는 강윤제 상무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갖고 온 것입니다. 디바이스가 만들어져서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들고 온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디바이스가 만들어진 것이죠. 그러니까 narrow 베젤 TV는 디바이스가 아니라 디자인입니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우문현답을 들은 기분이랄까. 속으로 열심히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히 형태나 아름다움만 의미하지 않는다. 회사의 사업계획, 장래 포부, 꿈과 이상을 반영하는 총체적인 어떤 것이다. 베젤의 두께를 극한까지 줄여보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디자인을 사업에 반영해달라고 제안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는 스펙의 TV였다. 그런 TV를 가능하게 하는 디스플레이도 없고 모듈도 없었다. 생산한 적도 없고 생산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없는데 디자인이 그쪽으로 가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디자인이 아이디어를 제시했을 때 경영진이 동의하고 추진을 결정하면 모든 엔지니어링이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삼성은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기 때문에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없던 제품을 생산하려면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전부 다시 짜야 하는데 이것은 디자인 부서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바꾸자고, 도전해보자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TV 제작과 관련된 모든 부서의 수장들이 여기에 동의해야 하고 전사적인 차원에서 결단이 내려져야 추진될 수 있는 일이다. 디자인에서 새로운 제안을 많이 하면 할수록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부서가 늘어나는 셈이다.

 

어떤 면에서는 디자인과 디바이스를 나누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삼성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구현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관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TV를 만들 때 안의 프레임은 패널 회사에서 조달받고 밖의 프레임은 제조회사에서 직접 만드는데 베젤을 얇게 할 때는 밖의 프레임을 없애고 안의 프레임을 바깥 경계로 사용했다. 안팎의 프레임을 하나로 합치면서 안의 프레임을 만들 때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흡수한 셈이다. 결국 어디까지가 프레임이고 어디까지가 패널인지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셈인데 경계를 무너뜨리고서야 비로소 그와 같은 모듈이 나올 수 있었다. 서로 협업하고 경계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그것이 디자인과 디바이스의 관계다.



 

오늘날 기업들에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이란 회사가 갖고 있는 종합적인 속성이다. 어떤 디자인이 발현되려면 새로운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보고 읽어낼 수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력도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열린 환경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생각이 수용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또한 디자인은 그 회사의 생각이고 이상이며 가고자 하는 방향이자 고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는 결국 그 회사가 갖고 있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및 아이덴티티(identity)와 맞물린다. 디자이너는 그런 생각을 풀어내는 사람일 뿐이다. 디자이너만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다. 최고경영자부터 말단 사원까지 누구나 디자인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회사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디자인을 담당하는 대리나 책임 디자이너만 아이디어에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한다면 회사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아냈다고 볼 수 없다.

 

원래 디자인은 물건을 고르는 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성능이 좋거나 사용하기 편한 제품이 최고로 인정받던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물건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일 뿐 아니라 나아가 디자인 때문에 선택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자주 쓰는 예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종이에 사각형을 하나 가득 그려놓고 그중에 하나만 오각형으로 그린다. 그리고 여기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도형을 하나 골라달라고 하면 10명 중 7∼8명은 오각형을 고른다. 다른 것과 차별되는 것이 갖고 있는 힘이다. 다른 회사에서 사각형 TV를 고수할 때 오각형 TV를 시도했던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남과 다른 모양은 일단 관심을 끈다. 하지만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써봤더니 금방 고장 나고 화질도 좋지 않다면 아무리 다른 모양이라도 외면당할 것이다. 결국 디자인이 길을 열되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즉 디자인은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이자 목표, 갖고 있는 정체성을 총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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