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SM연구회

기업쇠망을 부르는 병, 전략 중독

101호 (2012년 3월 Issue 2)









편집자주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주도하는 PRiSM(Practice & Research in Strategic Management) 연구회가 DBR을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략 연구회인 PRiSM은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의 면면을 상세히 분석, 경영진에게 통찰과 혜안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왜 기업은 때때로 실패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 특정 전략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일까? 마치 전략에 중독된 것과 같은 이런 행태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암초로 작용한다. 기업이 전략에 중독됐다는 건 마치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이 습관적으로 음주를 행하듯 특정 전략에 대해 높은 의존성을 보이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전략 중독의 사례가 M&A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M&A 전략에 중독된 모토로라의 몰락

 

지난해 8월 안드로이드 진영의 맹주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계획 발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미디어들은 앞다퉈 소식을 전했고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M&A가 몰고 올 파급 효과에 대한 분석을 내놓느라 분주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에 이어 휴대폰 제조 역량과 통신 관련 특허까지 갖추게 될 구글이 과연 글로벌 스마트폰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것은 바로 모토로라의 몰락이다.

 

모토로라는 1973년 최초로 휴대폰 개발에 성공했으며 1998년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독보적인 세계 최대의 휴대폰 메이커였다. 과거 휴대폰 산업에서 혁신을 논할 때 주인공은 애플이 아니라 모토로라였다. 스타택(STAR-TAC)과 레이저(RAZR)폰은 폴더형 제품에서 모토로라의 입지를 보여줬던 아이콘이었다. 언젠가 노키아에 역전의 드라마를 보여줄 걸로 기대받았던 전통의 강호가 바로 모토로라다. 이런 모토로라가 왜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

 

모토로라 휴대폰 사업부의 쇠퇴가 본격화된 시점은 2000년대 중반이다. 이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모토로라가 역사상 최대의 히트작 RAZR 1으로 1위 회복이라는 달콤한 꿈을 꾼 뒤였다. 모토로라는 당시 시장의 트렌드였던 피처폰에서의 경쟁력 강화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계속된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당시 모토로라는 피처폰의 제조를 위해 자체 제작하는 인하우스(in-house) 단말에는 프리스케일(Freescale) 칩셋을, 대만 ODM 파트너인 Compel-C CMCS의 단말에는 TI(Texas Instruments) 칩셋을, 한국 ODM 파트너인 팬택의 단말에는 ADI(Analog Device Inc) 칩셋을 각각 사용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업체와 칩셋 공급 및 협력 관계를 구축해 놓았던 모토로라는 늘어나는 관리 비용과 떨어지는 연구개발 효율성을 향상시키고자 피처폰의 플랫폼 통합을 추진했고 그 수단으로 M&A를 결정했다. , 2005년에는 영국 휴대폰 업체인 Sendo R&D부서와 IP자산을, 2006 6월에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사 TTP Com을 연이어 인수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플랫폼 통합을 위해 다수의 인수합병을 추진했지만 플랫폼 통합에 실패했을 뿐더러 목적했던 비용 절감효과도 전혀 거두지 못했다. 목 빠지게 기다렸던 M&A의 성과는 마음 떠난 애인처럼 돌아올 줄 몰랐다. 계속된 M&A로 많은 비용을 지출했으며 2004 RAZR 1 이후 제대로 된 히트작을 출시하지도 못해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지도 못했다. 모토로라의 곳간은 비어갔고 적자는 쌓여갔다. 결국 2008 10월 그동안 M&A로 증가된 휴대전화 사업부 소프트웨어 인력 3000명에 대한 감원을 발표하며 4분기 실적개선을 도모했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불과 4개월 뒤인 2009 1 4000명 수준의 추가 감원이 이뤄졌다. 계속된 감원으로 모토로라 휴대폰 사업부의 인력 규모는 종전의 절반 규모로 축소됐고 감원으로 상처 입은 혁신역량은 모토로라를 업계3’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모토로라의 날개가 꺾인 이유를 M&A 실패 한 가지로 단순화시킬 순 없다. 하지만 모토로라는 휴대폰 사업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계속된 M&A 전략을 추진했고 투입된 비용과 노력 대비 M&A의 성과가 크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모토로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적 선택 중 M&A를 과도하게 선호했고 이는 전략, 특히 M&A라는 전략적 선택에 중독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전략 중독의 원인, 조직적 루틴과 확증 편향

 

M&A와 같은 특정 전략에 중독되는 현상은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는조직적 루틴(organizational routine)’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의해서 형성·강화된다. 이 두 가지 원인은 순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먼저 전략의 선택에 있어서 특정 전략에의 선호를 결정하는 조직적 루틴이 작용하고, 이후 선택된 전략이 옳은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주는 확증 편향이 작용하게 된다

 

우선 기업이 M&A와 같은 특정 전략을 선택하는 양상은 습관적,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 과거에 M&A를 사용했던 기업은 이후 여러 가지 전략적 선택지 중에서 M&A를 다시 선택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존 하게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교수와 거트 듀이스터 아인트호벤공대 교수는 2002년 공동 연구를 발표하며 기업은 M&A나 제휴 전략을 선택할 때 이전에 선택했던 경험이 있는 전략적 선택지를 다시금 채택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이 같은 특성은 특정한 행동 패턴이 정해지면 관성에 의해 미래에도 유사한 행동을 하게 되는조직적 루틴의 특성과 동일하다. 이는 곧 전략을 선택할 때 반복적 선택의 형태가 나타난다면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조직적 루틴이 작용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진화경제학의 거두인 리처드 넬슨과 시드니 윈터는 1982년 기념비적인 저서 <경제 변화의 진화적 이론(An Evolutionary Theory of Economic Change)>에서 조직적 루틴을 가리켜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DNA라고 표현했다. 조직적 루틴은 조직의 습관과 같은 것이기에 특정 업무 및 의사결정을 행할 때 빠른 처리를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단 발현된 후에는 해당 경로가비효율적임을 알게 돼도 습관을 유지하게 된다. 어릴 시절 형성된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로 인해 조직적 루틴은 전략의 선택과 실행에 있어서 의사결정의 프로세스상에 과거의 행동을 반복, 답습하게끔 유혹함으로써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곤 한다.

 

전략의 선택에 있어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인인확증편향은 일단 어떤 결론을 내리면 결정을 확증해줄 정보만 찾고 그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다른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확증 편향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가 봐도 잘못된 선택을 해놓고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불어 실패로 판명됐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확증 편향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소니 USA의 전 CEO 믹키 슐로프의 일화가 있다. 1989년 소니는 코카콜라 소유의 영화제작사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했다. 당시 소니는 가전 하드웨어 업체의 제왕이었다. 소니는 자사의 강력한 하드웨어 경쟁력을 이용하고 지속 성장을 위해 소프트웨어와의 시너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소니는 이때 소프트웨어를 소니의 하드웨어 기기에서 구동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봤다. 그러나 소니의 의사결정자들이 바랐던 시너지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계속된 흥행실패로 1994년 말 인수금액과 맞먹는 32억 달러의 대손상각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점은 슐로프의 반응이다. 당시 대손상각 압력을 받던 슐로프는 이미 32억 달러라는 금전적 손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왜 사람들이 소니의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가 실수라고 생각하는가라며 반문했다고 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슐로프의 태도야 말로 확증 편향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전략 중독을 예방하려면

 

전략에 취한 상태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선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직적 루틴의 부정적 작용을 배제하고 경영진의 확증 편향 오류를 막아줄 다음의 장치들을 활용해야 한다.

 

① 외부 전문가 또는 조직의 조언을 활용 과거 다수의 M&A 과정을 경험한 조직이라면 해당 의사결정을 수행한 경영진 및 조직원들은 M&A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왔을 것이다. 해당 역량은 이후 M&A 전략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게끔 돕는 순기능이 있지만 M&A 전략을 선택하게끔 유도하는 부정적인 습관이 형성돼 있을 위험이 상존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순기능을 살리고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루틴의 형성에 영향을 받지 않은 외부 전문가 또는 조직을 자문 및 컨설팅 계약의 형태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합리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②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악마의 옹호자제도 도입 만약 경영자가 M&A 전략을 고려하고 있을 때 이를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경영자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M&A 전략이 적절하다는 정보만을 제공한다면? 경영자는 자신의 생각을 강화해주는 정보에 둘러싸여 확증편향의 영향은 강화되고 결과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비합리성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 조직 내악마의 옹호자(Devil’s Advocate)’ 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악마의 옹호자 제도는 가톨릭 교회가 수세기 동안 반대 의견을 장려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 중 하나로 비즈니스 용어로 풀어 쓰자면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 의견의 중요성을 인식한 IBM은 반대 의견 개진을 제도화한 논쟁 경영(Contention Management)을 도입했으며 GE의 경우에도 M&A 관련 의사결정에 비판자의 참여를 명문화하고 있다. 반대 의견은 의사결정자에게 다양한 이해관계와 선입견에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며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③ 전략의 실행이 아니라 전략의 효과에 집중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모토로라의 지휘봉을 잡은 에드워드 잰더 전 CEO는 취임 직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거둔 성과는 메시테크놀로지와 크리스넷 등을 인수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혹시 에드워드 잰더는 전략의 실행 자체를 성과로 여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미국의 심리학자 올포트는기능적 자율성(Functional Autonomy)’이라는 개념을 만들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던 게 나중에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와 시너지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하이닉스 인수전의 참여를 고려했던 STX그룹의 경우성장이라는 목적과 ‘M&A’라는 수단이 뒤바뀌었던 게 아닐까? 전략 중독의 질병은 수단이 목적으로 전이됐을 때 더욱 강하게 발현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단이 되는 전략의 실행이 아니라 목적인 전략의 효과를 판단하는 데에 중점을 둬야 한다.

 

박군호 PRiSM연구회 연구원 ghpark@temep.snu.ac.kr

 

필자는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기술 제휴, JV, M&A 등 기업 간 협력 전략과 혁신 성과 향상 방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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