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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 Practice

메디치 가문 성장시킨 ‘강건한’ 기회주의

김태영 | 100호 (2012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성균관대 SKK GSB 김태영 교수의 ‘Theory & Practice’ 코너를 연재합니다. 김 교수는등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저명한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학자입니다.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쉽게 풀어내 실생활에 적용한 김 교수의 글은 많은 통찰력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 교수가 학술지 이외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것은 DBR이 처음입니다.



네트워크의 불편한 진실

 

어느 사회에서나 성공에 대한 신화가 존재한다.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이 지적했듯이 성공신화가 팽배한 사회에서 성공한 개인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는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 본인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이러한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의 근저에는 개인이 맺고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연결망)가 존재한다. 수십 년간의 매니지먼트 분야의 연구들은 그런 네트워크의 양과 질이 개인 혹은 기업의 성공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준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MBA Executive MBA 강의를 통해 접한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네트워크는 윤리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지식 혹은 존재를 수단화하는 네트워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물론 지나친 수단화는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적 이해관계 속에서도 진실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다. 둘째, 직장생활을 오래하면 연결망이 좋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오래할수록 연결망의 폭이 좁고 인간관계가 좁은 경향이 있다. 직장동료와 상사와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일도 같이하고 저녁 식사도 같이하고 취미도 공유하는 등 인간관계가 좁아질 수 있다. 좁아진 인간관계는 회사의 임원승진이 있을 때, 혹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연결망은 많은 사람을 만나면 좋아진다는 막연한 인식이 존재한다. 연결망에서는 양보다는 오히려 질적인 측면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을 알아도 비슷한 직업군, 학교, 직장 등에 한정돼 있다면 연결망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중에서도 특히 연결망의 구조적 속성, 즉 개인의 연결망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는가에 대한 인식의 통찰이 절실하다.

 

네트워크와 양다리전술

 

우리말에양다리 걸친다는 말이 있다. 한쪽에만 연결되거나 소속되지 않고 양쪽에 연결되거나 소속된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다. 고약하게도 이 말에는 말하는 순간 어느 정도 부정적인 사회적/문화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에 대해 주로 하는 비판들이 바로충성심이 결여돼 있다’ ‘기회주의적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등 양다리 걸치는 사람 혹은 기업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것을 듣기 힘들다. 자신이 속한 편을 확실히 정하고 우왕좌왕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우리아니면 남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하면 반대쪽에 속한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양다리전술이 지닌 개인적 혹은 사회적 선의(善意)는 정말 없는 것일까? 그런 전술을 구사하는 개인 혹은 기업은 항상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한 것인가? 이념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순혈주의적 사회에 양다리전술이 들어설 자리는 매우 협소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양다리 전술의 이점은 오히려 그런 사회에서 더 크다.

 

양다리전술의 재해석

 

연결망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이다. 얼핏 보면 거창한 개념같지만 사실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이 개념은 서로 연결돼 있지 않는 두 사람 A B를 연결하는 사람 C의 네트워크적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 학술적으로는 C라는 개인이 연결되지 않는 A B 사이의 구조적 공백을 차지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물론 A B가 서로의 존재를 모를수도 있다. 혹은 서로의 존재를 알더라도 특정한 연결망, 즉 누가 프로젝트를 같이 해봤는가 하는 프로젝트 연결망 관점에서 보면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 A B는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았고 A B는 각각 C와 프로젝트를 한 경험이 있다. 프로젝트 연결망 외에도 A B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지리적으로 멀어서,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서, 경쟁자이기 때문에, 성격이 맞지 않아서, 부서에 따른 이해관계가 달라서, 세대차이가 나서, 취미가 달라서, 자라온 집안배경이 달라서 등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매우 많다. 학술적 논문에서구조적 공백이라고 부르는 이 개념은 사실양다리전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다리는 어찌보면 하나의 관계가 아닌 복수적 관계의 최소 단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 다리 혹은 네 다리 걸치는 것도양다리 걸친다로 설명 가능하다.

 

구조적 공백을 차지한, 아니 양다리전술을 구사하는 개인 혹은 기업은 다음의 두가지 이점을 지닌다. 첫째, 정보의 다양성 측면에서 우월성을 보인다. 한사람 혹은 동일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정보의 다양성보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다른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정보의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구조적 공백을 이용한 양다리전술을 잘 구사하는 개인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마케팅부서와 개발부서 양쪽과 모두 소통하고 있는 개인은 각각의 부서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다양성과 각 부서가 놓인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덕분에 오직 한쪽 부서와만 소통하고 있는 개인보다 보다 현실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고안한 시카고 경영대학원의 로버트 버트 교수는 구조적 공백을 차지하고 있는, 즉 양다리전술을 구사하는 개인은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연봉 협상에서 유리하고, 승진을 빨리 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실제로 증명했다. 둘째, 양다리전술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한다. 서로를 모르는 A B를 대상으로 개별 협상을 진행해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물론 A B가 서로 협상의 내용을 알려주고 공조하면 양다리전술에서 오는 이러한 우위는 반감되거나 사라지게 된다).

 

양다리전술의 대가: 메디치 가문

 

이러한 양다리전술의 이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전설적인 가문이 있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에 대한 위대한 후원자이자 피렌체 국가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이 행한 수많은 행적들 중 브르넬리스키를 도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를 건축하고 도나텔로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을 후원했으며 마르실리오 피치오와 함께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를 지원하고 콘스탄티노프 학자들과의 교류를 촉진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피렌체는 1347년에 닥친 흑사병에서 도시인구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보고 다른 도시국가들과 전쟁의 위험에 시달리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매우 높았으나 직물과 금융업이 발전하는 등 급격한 경제성장을 도모하면서 유럽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상횡에서 코시모 메디치가 활동하는 15세기 초반에는 약 4만 명 정도 인구에 200개가 넘는 가문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공존하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을 포함해 당시에 많은 가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부를 기반으로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집(팔라초), 별장, 교회, 무덤 등에 필요한 그림과 조각을 유능한 예술가에게 부탁했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은 그러한 가문들의 요구에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찬란한 예술품을 선사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란 바로 이러한 가문들의 경쟁에서 나온 예술적인 문화적 산물이다.

 

그렇다면 메디치 가문은 수많은 가문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당시 피렌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피렌체 국가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코시모 메디치는 마카아벨리가 효과적인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주장한, 목적이 분명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였을까?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코시모 메디치는 오히려 항상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리며, 자신의 영향력을 숨기고, 필요한 때만 행동하는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임에 분명한 듯하다. 더우기 코시모는 공식적으로 거의 공직을 맡지 않았으며 대중연설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공화국 지배를 설명하는 세가지 널리 알려진 주장들을 잠시 소개한다. 첫째, 복식부기를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금융업을 바탕으로 일군 막대한 재산이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에 도움을 주었다는 주장이다. 코시모는 18만 플로린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교황들과 세력가들이 메디치가문의 주요 고객이었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 이외에도 당시의 구귀족가문들 역시 막대한 재산을 축척하고 있었다. 1  , 경제적 배경이 필요한 것은 것은 사실이지만 메디치가문 혼자 피렌체 전체를 소유했을 것 같은 인식은 사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얘기다. 둘째, 구귀족가문은 주로 전통적인 부를 소유한 가문이고 메디치 계열 가문들은 주로 신흥가문이 많았다는 주장이다. 메디치가문의 영향력은 구귀족가문과 신흥 가문과의 정치적 갈등의 산물로 보는 이런 견해는 구귀족가문 계열과 달리 메디치가문 계열은 구귀족가문과 신흥가문이 상존해 있었다는 점에서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 ,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중립적인 다른 가문들에 비해 메디치 계열가문들이 뚜렷하게 구귀족가문의 비율이 높았다. 셋째, 메디치 계열가문들은 산죠바니 지역(아르노강 위 강북지역), 그리고 그들의 정적은 산타크로체지역(아느로강 아래 강남지역)에 거주했다는 지적이다. 산죠바니지역은 메디치가문 계열과 구귀족가문들이 많이 거주했다. 하지만 양쪽 지역 모두 서로 겹쳐서 존재했다. , 산죠바니와 산타크로체 지역 모두 정치적으로 나눠져 있었다. 따라서 지역적인 요소가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

 

 

존 패젯과 크리스토퍼 안젤 교수는 메디치가문의 성공 요인은 여타 200여 개의 가문들과의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차지하는 메디치가문의 독특한 구조적 위치에 그 열쇠가 있다고 주장했다2  당시 메디치 계열가문 중에는 상당한 부를 소유한 전통적인 귀족가문인 쥐치아르디이와 토르나뷰오니 계열이 있었고 신흥가문인 지노리, 오르랜디니와 코코도나티 계열도 있었다. 또 적당한 부를 소유한 다반자티, 델안뗄라, 디티살티, 발로리 가문까지 모두 세 부류의 가문들이 존재했다. <르네상스 플로렌스>의 저자인 진 브루커에 의하면 당시 결혼은 경제적 부, 정치적 영항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관계이며 의식이었다. 따라서 가문의 성공과 운명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가문에서 결정하는 정략적인 결혼이 많았다.

 

사업관계를 포함해 이 세 부류의 가문들 간의 관계에서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귀족 계열 가문들과는 다르게 메디치 계열 가문 간에는 서로 결혼하는 빈도가 낮았다. 그 이유는 메디치 계열 가문들 간의 사회적 지위 차이 때문이었다. 낮은 지위의 가문과 혼인한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의 하락을 초래하는 당시의 관례상으로는 보기 힘든 사회적 관계였다. 따라서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구귀족 계열 가문 사이에서의 혼인보다 상대적으로 결혼 빈도가 낮았다. 둘째, 메디치가문은 메디치 계열 가문 중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전통적인 귀족가문인 쥐치아르디이와 토르나뷰오니 가문과는 결혼 관계를 맺었지만 다른 부류의 가문과는 결혼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가문들과의 혼사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셋째, 메디치가문은 자신의 정적인 구귀족가문과도 혼인관계를 유지했다. , 구아스코니 가문과 알비찌 가문과도 혼인관계를 맺었다. 넷째, 사업관계는 주로 메디치 계열 가문인 신흥계급과 유지했으며 때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경제적 이익 측면에서 득이 되는 신흥계급은 메디치와 사회적 지위에서 매우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빈번한 사업관계의 호환성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렇듯 메디치가문은 결혼과 사업을 분리했다. 결혼한 가문과는 사업을 하지 않았으며 사업 관계가 있는 집안과는 결혼 인맥을 유지하지 않았다. 메디치가문은 통제하기 위해 분할하는 방식을 고수했으며 같은 가문과는 결혼 및 사업관계의 중첩성을 되도록 피했다.

 

이러한 연결망에서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결혼과 사업관계를 통해서, 메디치 계열 가문은 메디치가문만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자전거 바퀴 창살 모양의 방사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 서로 연결되지 않는 가문들은 메디치가문을 중심으로 뭉치게 했다. 둘째, 메디치가문은 자신의 정적인 구귀족가문과들도 결혼관계를 맺었다. 이로 인해 메디치가문은 모든 피렌체 전체 가문들의 연결망 중심에 서게 됐으며 결과적으로 다른 메디치 계열 가문들 역시 메디치가문을 통해서만 구귀족 계열 가문으로 연결됐다. 셋째, 구귀족가문들은 서로 결혼관계를 통해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지만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내적인 단결력이 없었다. 예를 들면 1433 926일 오랫동안 피렌체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알비찌 가문이 시청과 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했을 때 구심적이 없는 구귀족 계열 가문들의 소집에 응한 알비찌의 지지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반면에 코시모와 그의 손자 로렌초는 베니스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라초 페치오에 신속하게 자신의 지지자들을 규합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코시모는 베니스로부터 금의환향했고 그의 정적들은 추방됐다. 이렇듯 메디치 가문은 당시 피렌체 공화국에서 파편화된 계급이익을 대편하는 많은 가문들을 연결하면서, 나아가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연결망의 중심에 스스로를 위치하면서 영항력을 행사했다.

 

양다리전술 네트워크의 특징

 

앞서 언급했듯이 양다리전술은 이해관계가 서로 대립돼 연결이 매우 힘든 개인들 혹은 집단들을 연결할 때 효과적으로 발휘된다. 무조건 이리저리 많이 걸친다고 이익이 비례적으로 증가되지 않는다. 이러한 양다리전술을 확대하면 사회 여러 현상에서 많은 예들을 접할 수 있다. 한 예를 들면 최근 삼성전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과 MS윈도폰(망고)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양다리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미래에 어느 쪽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재편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 속에서 한쪽의 모바일 운영체계만을 고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일지 모른다. 혹자는 왜 한쪽에만 전념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다리전술이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의 기본적인 원칙을 훼손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양다리전술은 시장에 대응하는 유연한 어부지리적 이점을 누리면서 동시에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어하는 헤지전략이기도 하다.

 

패젯과 안젤 교수는 코시모 메디치의 이러한 비공식적인 통치스타일을강건한 행위(Robust action)’ 3 라고 칭했다. 이는 사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 같은 양면성을 지닌 통치스타일을 의미한다. 하나의 행동이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고 개인의 사적인 이익의 추구와 전체를 위한 공적인 이익 추구의 구분이 어렵다. 이러한 스타일은 예측이 어려운 환경에서 robust action으로부터 오는 선택적 자유의 폭을 줄이려는 외압에 맞서 굳건히 유지되는유연한 기회주의. 당시 코시모의 정치적 숙적인 펠리포는 그의 한 편지에서 그의 언어 스타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짧고 간혹 애매했다. 그래서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것 같았다.” 이러한 코시모의 태도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추종자들로 모인 메디치 쪽 가문들의 집합체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정치적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집합행동의 장으로서의 정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것 같은, 이해관계와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구귀족 계열 가문에서 오히려 행동에서의 신속성과 일관성은 보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메디치 계열 가문의 이질성과 독특한 연결망 구조가 한 분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정당성을 메디치 가문에서 선사했으며 이를 통해 메디치의 영향력은 어느 가문보다 울림이 컸다.

 

뚜렷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예측가능한 전략적 게임에 의해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다른 사람들을 가두는 것, 이것이 바로 피렌체 공화국에서 메디치 가문의 장기적인 성공의 비결이다. 구조적 공백에서 오는 전략적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양다리전술을 구사하지 않고 선명성을 주장하면서 한쪽에 모든 것을 거는 전술은 자신의 행동반경과 선택의 폭을 좁히게 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며 양다리전술의 이점인 정보와 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손에 넣는 메디치가문의 robust action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계급적 이해관계로 인해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가문들을 연결하는 노련한 적응능력으로 한층 빛을 발하게 됐다.

 

사후 피렌체의 국부로 추앙받은 코시모가 원래부터 피렌체 공화국의 지배를 위해 이러한 가문 간의 연결망 시스템을 계획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는 철저한 계획자가 아니고 노련한 적응자였다. 아이러니하게, 코시모의 무계획성, 적응능력, 그리고 약간의 의도성이 결합해 이러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구귀족 계열 가문이 코시모를 압박하기 위해 산죠바니 지역의 구귀족들과 결혼관계를 맺자 코시모는 다른 지역의 가문들과 혼인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귀족 계열 가문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살았던 지역의 신흥가문들과는 사업을 했으며 사업에 필요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메디치가문은 위기를 기회로, 그리고 기회를 자신의 전체 시스템에 적절하게 이용하는 노련함을 겸비했다. 메디치가문의 이러한 유연한 기회주의는 메디치 계열 가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조정했지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지위의 차이 및 거주하는 지리적 차이로 인해 그들 가문이 서로 연합해 메디치가문을 위협할 염려 역시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메디치가문은 산죠바니에 거주하는 일부 귀족가문들과 자신의 사업파트너인 신흥계급과의 혼인을 주선하는 등 전체 시스템에 자신의 의도를 불어넣었다.

 

양다리전술은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흐르게 하고 혁신을 가능케 하고 통제를 효율적으로 만든다. 다른 행위자들은 이념적 순수성에 바탕을 둔 순혈주의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속박되지만 양다리전술자는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는다. 양다리전술을애매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나아가 이 글을 당시 15세기 피렌체에 만연했던 가문들의 정략결혼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더 안 된다!) 이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전체의 이해관계와 부합시키는 능력에서 오는 결과이며 이를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진정한다중적 의미의 행동이다. 모든 사람이 코시모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모순적이고 상충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분출하는 르네상스라는 문화사조가 피렌체에 존재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김태영 성균관대 SKK GSB 교수 mnkim@skku.edu

 

필자는 현재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SKK GSB에서 매니지먼트 교수로 활동하며 경영전략, 조직설계, 네트워크 분야의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조직 사회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인 스탠퍼드 경영학과 교수 마이클 해난(Michael Hannan) MIT 경영대학인 Sloan School의 에즈라 쥬커만(Ezra Zuckerman)의 학문적 영향을 받아 주로 기업성과와 조직분석에 대한 생태학적/네트워크적 연구를 진행했다. 홍콩과학기술대(HKUST) 경영학과에서 경영전략 담당 교수로 근무한 바 있다.

 

  • 김태영 김태영 | -(현)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교수
    -(전) 홍콩과기대(HKUST) 경영학과 경영전략 담당 교수
    mnkim@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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