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hip Study
이 칼럼에서 인용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인 <스티브 잡스>에서 참조한 것으로 일일이 출처를 붙이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특정 인물의 리더십을 평가한다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특정인의 리더십을 모방하려 하기보다는 리더로서 지녀야 할 리더십의 기본적인 원리 과정과 보편 타당한 역량을 습득하는 게 리더십을 계발하는 데 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문이나 방송에서 “누구 누구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그때마다 한결같이 “누구 누구의 리더십보다는 리더십의 본질과 보편 타당한 법칙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현명합니다”는 재미없는 대답만을 들려줬다.
화제가 되고 있는 특정인의 리더십에 대한 글은 보편 타당한 일반적인 원리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건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높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업적은 대부분 특정한 성격과 경향을 가진 개인이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부하들과 특정한 일을 하면서 좋은 성과를 낸 경우다. 일부러 이렇게 ‘특정한’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나열한 이유는 그들의 성공이 그만큼 많은 경우의 수에서 극히 예외적인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걸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누구의 리더십을 따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수의 ‘누구의 리더십’에 관한 서적을 보면 불안하기만 하다. 마치 예외적 사실을 일반화해 대중들에게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여러 가지 구체적 사례를 분석해서 보편 타당한 법칙을 이끌어낼 수도 있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가운데 그런 통찰력을 보여준 예는 극히 드물다. 그보다는 누구의 리더십을 실천하기만 하면 엄청난 결과를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그런 유행은 마치 안개와 같아서 어느 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리더십에 대한 불신만 낳게 된다. 필자는 ‘히딩크의 리더십’ ‘김성근의 리더십’ ‘박칼린의 리더십’을 통해 출세했다는 사람을 별로 만나본 기억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만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리더십에 대해 많은 칼럼을 써왔지만 특정인의 리더십을 분석한 글은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 달랐다. 필자의 이런 원칙을 주저 없이 포기하게 할 만큼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자극적이며 도전적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해달라는 부담스런 요청을 <DBR>로부터 받고 9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그의 전기를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고작 대여섯 페이지의 칼럼을 쓰기 위해 천 페이지가 넘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정보를 한 달이 넘게 수집하고 읽으면서 어떻게 그가 주위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현실을 왜곡하면서 엄청난 일을 해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결국 나도 쓰레기가 아닌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그의 리더십에 대한 칼럼을 써서 “이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가지게 됐다. 결국 나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의 현실 왜곡 창 속의 포로가 됐고, 그는 이렇게 죽어서도 많은 사람들을 조정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스티브 잡스 리더십의 본질인 듯하다. 그리고 이걸 함부로 어설프게 따라 하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결론도 내리게 됐다. 그만큼 그는 천재와 악마가 공존했던 두 얼굴을 가진 리더였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부하들에게 생의 가장 큰 절망과 모욕, 그리고 기쁨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 속에서 보편 타당한 법칙을 정리해 본다.
잡스의 리더십 1
통찰력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회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강한 리더였다. 이런 자신감은 그의 뛰어난 통찰력으로부터 나왔다. 그와 같이 일을 했거나 가깝게 지냈던 수많은 뛰어난 리더들(앨 고어, 루돌프 머독, 래리 엘리슨, 빌 게이츠, 마이클 아이스너 등)도 그의 시장, 기술, 고객,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 앞에서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일해왔던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쓰레기라고 폄하했던 잡스를 믿고 따랐던 부하들이 많았던 이유는 그들에게 결국 잡스가 옳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이동할 곳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웨인 그레츠키의 격언을 인용하며 잡스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앞서가는 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통찰력은 맥킨토시 컴퓨터로 PC 시장의 새 역사를 쓴 것이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통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고객에게 선물한 위대한 결정, 그리고 새로 개발하는 전문가용 컴퓨터인 파워 맥 G3에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버를 과감하게 뺀 것 같은 제품 디자인에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잡스의 통찰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가 지녔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은 그의 천재성으로부터 나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잡스의 미래에 대한 강박관념이었다. 그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고객과 시장 기술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했으며 이를 통해 미래를 봤다. 2005년 아이팟의 매출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2000만 개 이상 팔렸다. 이는 애플 수익의 45%에 해당하는 놀라운 수치였다. 대부분의 리더라면 이런 성공에 취해 조금은 편안해진다. 하지만 잡스는 휴대전화마다 카메라가 장착돼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점점 작아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휴대전화 제조업자들이 전화기에 뮤직 플레이어를 장착하기 시작한다면 아이팟도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서둘러 아이폰을 개발하게 된다.
그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장 조사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제품을 개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고객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고객의 숨겨진 니즈와 기술적 트렌드를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대한 제품을 만들면 고객의 수요는 언제나 따라 온다고 굳게 믿었다. 다른 CEO처럼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지만 잡스가 지닌 통찰력의 대부분은 고객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이 잡스의 아이러니 중 하나다. 그는 고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강박관념 수준의 집착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바라봤다. 애플 스토어를 탄생시키기 위해 타깃이란 리테일 회사에서 스카우트한 론 존슨은 잡스와 6개월 동안 애플의 실험 스토어를 오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어느 날 존슨은 매장을 네 개의 컴퓨터 제품을 중심으로 구성할 게 아니라 고객이 하고 싶어하는 행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는 이제까지 실험 스토어를 준비하기 위해 공들인 6개월이란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고객 경험에 대한 집착은 이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을 기꺼이, 그리고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애플스토어는 예정 오픈 날짜보다 3∼4개월 지연된 2001년 5월19일 마침내 문을 열었고 그해 연 매출 12억 달러를 달성하며 소매업계 사상 첫 10억 달러를 돌파하는 이정표를 세운다. 2011년 현재, 애플스토어의 수는 총 317개로 늘었고 순 매출 총액은 100억 달러를 넘고 있다. 컴퓨터 업계의 리테일 스토어는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스티브 잡스는 고객 경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극복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다.
통찰력이 있는 리더는 이렇게 천재적인 직관력과 강박관념을 가지고 시장, 고객, 기술에 일어나는 변화와 트렌드를 파악해 “이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단순한 수동적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 관찰자가 돼 끊임없이 시장과 고객에 산재돼 있는 단편적인 정보를 통합하고 큰 그림과 현상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어느덧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이는 리더로서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잡스의 리더십 2
완벽한 제품에 대한 예술가적 열정을 지녀라
스티브 잡스를 잘 아는 많은 리더들에게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열정’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냥 삶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위대하고 완벽한 제품과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창의적인 회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열정이다. 그의 위대한 제품에 대한 열정은 제품 그 자체에만 해당됐던 게 아니라 제품을 싸고 있는 포장에 대한 집착으로까지 이어진다. 제품 출시일자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제품의 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수십 번 디자인과 색깔을 변경하게 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부하들이 “제품이 중요하지 한 번 개봉하면 쓰레기통에 들어가버릴 포장에 왜 그렇게까지 집착을 합니까”라고 항변하자 “고객들은 구매 후 제품을 먼저 보는 게 아니라 박스를 먼저 보고 회사의 이미지와 품질을 결정한다”며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은 일화에서도 잡스의 완벽한 품질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제품 그 자체에만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픽사를 차린 후 디즈니와 협력하면서 애니메이션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도 애플에서 나올 때 현금화했던 자산의 절반이 넘는 돈인 5000만 달러를 픽사에 쏟아부은 상태에서 일을 책임지고 있던 존 레시터에게 “오직 위대한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하며 완벽한 일에 대한 도전을 준다. 심지어는 만들고 있는 제품에 대한 본인의 열정을 광고 전문가와 함께 나눔으로써 애플 광고에도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한평생 열정의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이에 대한 배고픔을 바탕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잡스가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는 그의 천재적인 창의성이 아니라 삶에 대한 처절한 고민과 위대한 제품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열정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명확한 목적의식과 일에 대한 의미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까지 완벽하게 통합돼 사용자에게 최고의 제품을 쓰게 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많은 기업들과의 갈등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러한 목적의식이 결국 그로 하여금 마지막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게 했다. 그의 완벽주의는 다른 기업과 기술에 대한 불신으로 변해 쓰레기 같은 기술이 애플의 제품에 결합되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엔드투엔드’ 전략을 낳았다. 그리고 전문가가 애플의 제품을 변경하거나 열어보는 것조차도 달가워하지 않아 케이스를 이어주는 나사의 모양을 변형시키기까지 했다. 잡스는 이를 자신이 ‘통제광(control freak)’이어서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통제광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만큼 완벽한 제품과 기술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있는 리더가 있다면 때로는 통제광의 울타리 안에서 다음엔 어떤 제품으로 나를 감동시킬 것인가라는 설렘으로 수동적인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많은 고객을 애플의 마니아로 만든 근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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