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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의 CB 육성

주민이 지역자원으로 로컬푸드업체 일궈 폐교마을 완주에 온기가 돌아온다

박용 | 94호 (2011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범수(한국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전북 완주군 옛 삼기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선 지역경제순환센터 모습 (사진제공:완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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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한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달인으로 잘 알려진 개그맨 김병만이 다녔던 삼기초등학교다. 이곳도 시골의 여느 학교처럼 학생 수가 줄어 결국 문을 닫은 것이다. 폐교가 하나둘씩 늘면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신음하는 지방의 그늘도 짙어졌다.

 

최근 옛 삼기초교 건물에 사람들의 온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이들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들이 아침마다 이곳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완주군은 2010년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민간 출신 지역 전문가 등 30여 명이 근무하는 지역경제순환센터를 열었다. 이곳은 로컬푸드, 마을회사, 지역공동체 회사 등 지역을 근거로 한 새로운 지역발전 개념을 현장에 접목하는야전사령부.

 

지역경제순환센터 옆 공터에는 완주로컬푸드영농조합법인인건강한 밥상이 운영하는 사업장이 문을 열었다. 건강한 밥상은 2010 6월 농민 100여 명이 출자해 만든 영농조합법인. 지역 주민의 손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커뮤니티비즈니스(CB)’ 회사다. 직원들은 완주군 내의 소규모 계약재배 유기 농가들이 재배한 곡물, 채소, 달걀, 두부 등 농산물을 가져다가 이곳에서 정성스레 포장해 배후도시인 전주나 완주군 내의 회원 소비자들에게 배달한다. 지난해 10월 건강한 밥상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회원은 114가구였지만 지금은 2500여 가구로 늘었다. 생산자인 소규모 농가는 제값을 받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질 좋은 농산물을 싼값에 구매할 수 있다.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됐다.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CB 사업이 완주군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완주군에는 현재 마을 단위의 사업 84, 지역공동체 사업 30개 등 모두 114개의 CB 사업장이 있다. 김창환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사무국장은예전에는 일본을 찾아가 CB 사업을 보고 배웠는데 요즘에는 일본에서 우리를 배우러 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그만큼 한국의 CB 사업이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CB)?

커뮤니티비즈니스(CB)는 지역(Community)을 거점으로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지역 내의 자원을 활용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사업(Business)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등에서 발달한 지역밀착형 사업과 일자리 창출 사업이 1990년대 일본에 CB라는 이름으로 소개됐고 2000년대 들어 한국에도 알려졌다.

 

일본 농촌과 지역공동체는 장기 불황과 인구 고령화로 흔들리고 있다. 고베 대지진 이후에는 연고가 없는 독거노인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집에서 홀로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CB는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해 흔들리는 지역공동체를 유지하는 버팀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본 정부도 국가 차원에서 CB 사업 육성에 나섰다. 지방정부들은 지역 주민들의 CB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창업공모전을 열고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중앙정부는 CB 창업을 위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지역 거점대학을 지정해 CB 인재 육성에 나섰다. 또 경영 지식이 부족한 주민들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사업 기획 및 관리를 지원하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NPO) 형태의 중간지원조직도 육성했다. 이 결과 일본 내에는 다양한 CB가 등장했다. 지역 토산품을 생산 판매하는 사업, 사라져가는 향토 음식을 보전하기 위한 향토음식 식당, 이용자가 줄어 폐지되는 민간 버스를 지켜내기 위한 생활버스 사업, 고령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한 사업, 블록버스터 영화만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려 사라진 소극장 문화를 복원하고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버려진 농가를 고쳐 마을회관이나 대학생의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내에서 CB의 사업성과 지속가능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내는 CB들이 많지 않은데다 마을 단위의 CB나 전문가로 구성된 중간지원조직이 은퇴한 자원봉사자 등 고령자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한국도 최근 지방은 물론 중앙 정부가 CB 육성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CB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 전문가들의 교류도 활기를 띠고 있다.

 

도시와 농촌으로 양극화하는 지역 경제

완주군은 인구 65만 명의 전주시를 둘러쌓고 있는 인구 85000명 규모의 도농복합도시다. 완주군의 인구는 2006년 말 83199명에서 2009년 말 86077명으로 증가했다. 전북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인구가 늘고 있는잘나가는지자체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인구가 줄어 고민인 다른 지자체보다는 형편이 낫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주 인근지역과 삼례와 봉동의 구도심 권역은 첨단과학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되고 있다. 반면, 이 지역을 제외한 10개 농·산촌 지역은 고령화율이 46%에 이를 정도로 활력이 떨어져 있다. 게다가 1ha 미만의 땅을 경작하는 농가가 전체의 64.6%를 차지할 정도로 소농도 많다. 인구 10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군 단위 지역이지만 거주지에 따라 도시와 농·산촌으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완주군은 지역 특성을 볼 때 도시 행정과 농업 행정이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활력을 잃어가는 농촌을 살리려면 만들려면 과거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도시 중심의 정책을 펴면 농·산촌이 소외되고, 농업 중심의 투자만 늘리면 도심의 활력이 떨어질 게 뻔했다.

 

농촌 마을에 산업단지를 짓고 외부투자를 유치하려면 세금 등 다양한 지원을 해야 했다. 타지에서 옮겨올 기업들이 많지 않았다. 대기업 공장이 들어서도 과거처럼 정규직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았다. 공장이 자동화된 설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필요한 인력이 많지 않았다. 지역마다판박이 축제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행사로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케팅 등에 퍼붓는 비용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도 아니다.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영세한 소농과 고령 농가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의 해법 CB

완주군은 농촌 지역 커뮤니티의 붕괴를 막고 지역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사람과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도로나 다리 등의 하드웨어 투자만으로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완주군은 2008년 농업농촌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매년 100억 원씩 5년간 500억 원을 투입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농업 생산과 유통을 혁신하고 농가 부채, 농촌 활력 저하,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지역 주민의 힘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을 올리는 CB 에 주목했다.

 

완주군은 CB가 지역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첫째, 완주군 농가의 상당수는 소농, 가족농, 고령농 등이었다. 대규모 경작지를 확보하고 경작 방식을 기계화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영세한 농가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이나 소농들이 참여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 필요했다. 둘째, CB는 지역 주민을 주축으로 하는 사업이다. 지역 내에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표에 부합했다. 이를 통해 지역 내에서 자본이 순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셋째, 배후도시인 전주나 군내의 도심 지역과 농가가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지역사회 거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임 군수는농촌 문제는 농민보다 비효율적인 정책에 더 큰 책임이 있다주민이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들의 자원과 자산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한다면 더 지속가능하고 경쟁력이 있는 농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 CB를 선택했다.

 

①지역이 보유한 자산 조사 완주군은 2008 8월 지역 내의 자산을 조사하는신택리지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내에 CB에 활용할 만한 어떤 자원이 있는지를 알아야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완주군이 내놓을 만한 지역 브랜드는 딸기, 곶감 등이 고작이었다. 완주군은 2010년 상반기까지 진행된 이 사업을 통해 지원 내에서 추진할 수 있는 66개 사업, 445개 자원을 발굴했다. 하지만 이렇게 파악한 자산을 곧바로 모두 활용할 수는 없었다.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 자본, 인력 등이 필요했다. 완주군은 CB 선진국인 일본과 교류하며 CB 노하우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2008 8월 서울과 완주군에서 한일 CB국제포럼이 처음 열렸다. 이 국제포럼은 올해 11월에 3회 행사가 열렸다.

 

②조직과 제도 정비 국내에 생소한 CB 육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군청에 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조례도 만들었다. 완주군청은 2008년 말 CB 육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커뮤니티비즈니스 전담 조직을 기획관리실 산하에 설치했다. 2009년에는 CB 지원 근거와 커뮤니티비즈니스(CB)지원센터 역할 등을 규정한 조례를 마련했다. 2011 2월에는 이 조례를 개정해 창업보육센터, 중간지원조직 지원 근거도 갖췄다. 사업 경영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주민들이 자원을 실제로 사업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일일이 마을 자원을 파악하고 사업을 지도할 수도 없고 관 주도의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어려웠다. 중간지원조직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③사업 공모제를 통해 주민 참여 유도 완주군은 조직 체계를 정비한 뒤에 2009 7 CB 시범사업 공모에 들어갔다. 공모를 통해 지역 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였다. 이 결과 양식장에 토종 치어를 방류해 낚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업, 무청을 활용한 먹거리 생산사업 등 4개 사업이 시범사업으로 선정됐다. 이 경험을 토대로 2010년부터 본격적인 CB 확대에 나섰다. 이 결과 2010 19, 2011년에는 13개 사업이 선정됐다. 올해 5월에는 주민을 대상으로 CB 아이디어 공모전도 열었다. 모두 40개 팀이 응모했으며 이 중 4개 사업이 사업화단계에 들어갔다.

 

④통합 행정조직 구축 완주군은 지역 주민의 힘으로 경제를 순환시키는 지역 활성화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2010 6월 폐교된 삼기초등학교 터에 지역경제순환센터를 열었다. 지역경제순환센터는 행정과 주민을 연계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한다. 일본은 비영리법인(NPO)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이 CB 자원을 발굴하고 필요한 전략, 회계, 정보기술(IT), 마케팅 등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순환센터 내에는 CB를 육성하는 CB지원센터 외에도 마을회사육성센터(마을회사 육성), 로컬푸드센터(로컬푸드 사업 총괄), 도농순환센터(도시 커뮤니티 마을 연계, 귀농귀촌 사업), 공감문화센터(문화공간 관리 등) 등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근무하는 20여 명의 직원들은 민간 출신 계약직 공무원이거나 재단법인 소속 민간인이다.

 

[표1]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 구성

완주군은 이어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군청 내에 지역경제순환센터의 5가지 센터의 업무와 연계한 행정 지원조직인 농촌활력과를 신설했다. 지역경제순환센터에서 추진하는 CB 육성 사업 등의 5가지 지역활성화 사업을 군의 정식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군청의 농촌활력과가 5가지 업무에 대한 정책 수립 및 예산을 지원하는 행정 지원을 맡고 지역경제순환센터는 관련 연구, 교육, 사업, 홍보 등의 현장 업무를 추진한다. 김 사무국장은한국 중간지원조직의 강점은 젊은 상근직원들이 많다는 점이라며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하는 일본 NPO의 경우 자원봉사자나 은퇴자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표2] 완주군 농촌활력과 구성 및 역할


완주형 CB 모델 구축

완주군은 국내 지자체 중 가장 발 빠르게 CB 육성에 나서 조직과 제도적 기반을 다졌다. 이를 토대로 완주군의 특성을 반영한완주형 CB모델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완주군은 CB마을 단위의 마을회사지역주민이 공동의 목표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지역공동체회사로 나눴다. 마을회사는 마을 주민이 공동 생산과 경영에 참여해 소득과 일자리를 늘리는 마을 단위의 CB. 지역공동체회사는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사회의 공공서비스를 보완하고 일자리를 확충하기 위한 사업 모델이다. 마을회사와 지역공동체회사의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도시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도농순환과 지역의 농업적 특성을 반영하는 로컬푸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읍·면별로 10년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 읍·면의 상황을 전략에 반영하는 것도 완주군 모델의 특징이다. 과거에는 정책이나 예산이 지자체의 개별 부서 단위로 추진됐다. 이 때문에 지역의 실질적인 행정 단위인 읍과 면 지역의 소득, 서비스 전달 체계, 일자리 등이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완주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 9월부터 읍·면 단위로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 이를 사업에 반영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지원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도로 건설 등 특정 사업용도로 예산이 배정됐다. 하지만 지금은 지자체의 상황에 맞게 예산을 짜서 지출할 수 있는 포괄보조금이 도입됐다. 사업 수립과 실행의 자율성이 커졌다.

 

①마을회사 모델 완주군은 마을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와 소득 창출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주민들이 직접 경영하는 마을회사 육성에 들어갔다. 마을회사를 설립하려면 마을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영농법인 형태의 회사를 설립하고 주주로 참여해야 한다. 주로 농산물의 가공, 유통, 판매나 체험 관광과 같은 사업을 추진한다. 순수익의 20% 이상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완주군은 마을회사 육성을 위해 5단계 전략을 세웠다. 인적 자원이나 경험이 부족한 시골 마을 주민들이 단기간에 마을회사를 세워 성공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주군 내에는 현재 84개의 마을사업이 진행 중이다.

완주군은 마을회사 육성의 첫 단계로 맛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마을마다 고유의 먹을거리 등을 발굴해 소득 상품으로 키우면 군에서 매년 30개 마을을 선정해 100만 원씩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현재 맛있는 마을은 10곳이 지정됐다.

 

6개월 정도 맛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면 다음은 2단계인 참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에 들어간다. 마을 상품을 소득사업으로 연계하고 주민들이 공동 사업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쌓도록 지원하는 단계다. 완주군은 매년 20개 마을을 선정해 마을당 3000만 원씩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38곳이 참살기 좋은 마을로 지정됐다.

 

3단계에는 마을회사의 기반을 구축하는파워빌리지사업 단계다. 체험, 휴양, 축제, 생태 자원 등을 활용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마을 공동체 사업을 육성한다. 매년 약 10여 개 마을을 발굴해 마을 컨설팅과 교육 훈련 중심의 소득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19곳의 파워빌리지가 있다. 구이면 안덕리 4개 마을로 구성된 안덕파워빌리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2008년 주민 50여 명이 13000만 원을 출자해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건강과 치유를 테마로 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달에 50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며 지역 주민을 위한 일자리도 만들었다.

 

전북 구이면 안덕파워빌리지 사례

전북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는 약 120여 명이 4개 자연부락에 나뉘어 살고 있는 모악산 기슭의 작은 산골마을이다. 이곳은 최근안덕파워빌리지라는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완주군은 물론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이 주주가 돼 마을 자원을 활용한 마을회사를 세우고 일자리와 수익을 올리는 CB 의 성공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안덕파워빌리지 입구에 들어서자 한옥 스타일로 지은 작은 민박집 4채가 눈에 띄었다. 건물마다 안덕리 4개 부락의 이름이 붙어 있다. 감나무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고 있었다. 산골마을의 가을이 다홍빛 감나무와 함께 무르익고 있었다. 유영배(45) 안덕파워영농조합 촌장은감을 따서 팔면 고작 몇 백만 원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버려두면 마을을 알리는 훌륭한 마케팅 자산이 된다산골 가을 정취를 내려고 감을 붙인다고 생각해보라. 엄청난 돈이 들 것이다고 말했다.

 

안덕리에서 마을사업을 이끄는 유 씨는촌장이라는 직책으로 불린다. 촌장은 마을회사의 최고경영자다. 그는 안덕리에서 태어나 중고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갔다. 도시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유 촌장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 안덕리는 전기도,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였다. 요즘은 주차장에 외지에서 방문한 사람들의 자동차로 붐빌 정도로 지역 명소가 됐다. 유 촌장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건강과 힐링이라는 테마의 체험 관광사업을 시작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유 촌장은 2006년 완주군의 지원으로 일본 연수를 다녀왔다. 일본 마을회사 등을 돌아보며 고향에서도 주민들과 회사를 만들고 마을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후 각종 교육에 찾아다니며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유 촌장은 2009년 주민 53명이 주주로 참여한 안덕파워영농조합을 설립했다. 120여 명 주민 중 절반 가까운 주민이 주주로 참여해 13500만 원의 출자금을 모았다. 1인당 최하 10만 원부터 최대 1000만 원까지 출자금을 냈다. 마을에 소득이 거의 없는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엄청난돈이다.

 

안덕파워영농조합은 이 종잣돈으로 3300(1000)의 땅을 사고 사업에 필요한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서당으로 쓰이던 오래된 한옥을 세미나나 체험 교육장으로 쓰기 위해 옮겨왔다. 온돌과 부뚜막이 있는 민박집도 지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민들이 목재 등 건축 자재를 마련해 직접 공사를 했다. 최근에는 마을 내의 한증막과 식당 건물까지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조합은 민박 시설과 한증막 등을 이용해 건강·휴양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시큰둥했습니다. ‘유영배가 우릴 들러리로 세우려고 한다며 역정을 내는 어르신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2006년부터 3년간이나 준비를 했습니다. 주민들이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2009년 조합 설립 첫해에 결산을 했더니 적자가 났다. 2007년부터 해온 사업은 시범사업이었기 때문에 수입과 지출을 명확하게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합이 설립된 뒤부터는 달랐다. 주주들인 주민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돌려줘야 했다. 2010년에는 매출이 48000만 원 정도로 늘었다. 순이익도 20%나 됐다. 순이익의 10%를 주민 주주 53명에게 배당하고 나머지 10%는 새로운 시설에 투자했다. 한증막 등에서는 주민들이 생산한 농작물도 판매한다. 올해는 10월까지의 매출이 지난해 연매출을 넘어섰다. 사업이 커지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유 촌장은전문지식이 필요한 회계와 세금 등의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사업 규모가 제법 커져 이제는 세무사에게 일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참여와 열정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사업 초기에는 유 촌장이 설명을 하면 주민들은 대부분 고개만 끄덕이다가 말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낸다. 마을에는 한때 금광이 있었다. 이 굴을 이용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된장 등의 상품을 숙성시켜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도 주민들에게서 나왔다.

 

안덕파워영농조합은 촌장을 포함한 주민 10명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매년 3, 9월에는 주민총회를 연다. 3월에는 사업 결산을, 9월에는 새로운 사업 계획을 발표한다. 이날은 주민잔치가 벌어진다. 조합원은 물론 조합원이 아닌 주민들도 초대된다. 주민들의 참여가 없으면 사업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 촌장은수익보다 더 중요한 게 마을의 일자리라며상근직원만 9명이 일하고 있고 일손이 부족할 때는 주민들이 일당을 받고 일한다고 말했다. 주민 주주들은 배당도 받고 이곳에서 일자리도 얻는다. 사업 경비 중 가장 큰 지출이 인건비인데 이 인건비는 지역 주민의 소득이 돼 지역 내에서 순환하게 된다.

 

마을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무너져가던 마을 공동체도 복원되고 있다. 주민이 없어 사라질 뻔했던 산골마을에 이제는 도시에서 빈집을 수리해 귀농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줄을 잇는다. 현재 10가구가 마을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유 촌장은무조건 건물만 짓는다고 마을사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무엇보다 주민들 사이의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보조금으로 번듯한 건물이나 시설만 짓는다고 될 게 아니다. 안덕리도 시범사업 등을 통해 주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2년이 걸렸다. 이 결과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민의 출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을회사는 도시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 농촌 특유의 정취와 환경, 주민들이 핵심적인 자원이다.

 

유 촌장은마을회사를 세우려면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하고 주민들이 해온 일을 사업화해야 성공 확률이 커진다우린 아직도 마을의 자원 중 10%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덕리는 얼마 전 한옥마을로 지정됐다. 마을사업이 발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를 얻게 됐다.

4단계는 마을회사 단계다. 마을 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며 중간지원조직이 나서 마을 통합마케팅, 현장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5단계는 대규모 국비사업과 연계해농촌형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내는 단계다. 취약계층을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완주군은 2009년부터 귀촌한 농가와 고령 농민이 공동으로 농작물을 경작하는 두레농장 사업도 시작했다. 한 곳당 2억 원을 지원하며 경작은 지역 농민들이 공동으로 한다. 고령 농민의 일자리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실버복지형 사업의 일환이다. 1호 두레농장으로 지정된 인덕 두레농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레농장은 현재 5곳이 있으며 참나물, 상추, 부추, 유정란 등을 경작해 지역 내의 로컬푸드 사업에 농작물을 공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고용노동부 일자리브랜드 부문대상을 받았다

[표3] 완주형 마을회사 모델

 

[그림1] 완주군의 마을회사 육성 전략

②지역공동체 회사 모델 완주군은 지역 주민의 힘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CB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30개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완주군은 CB 확대를 위해 공모전을 통해 예비CB창업공동체를 발굴하고 한 곳당 1000만 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이 본격화된 CB창업공동체에는 한 곳당 4000만 원을 지원한다. 예비CB창업공동체와 CB창업공동체의 경우 정부 지원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은 참여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창업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주민 대상 공모전을 열고 사업기획, 경영, 회계, 마케팅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을 진행하는 창업공동체 아카데미도 한 달에 1차례 연다. 또 올해 5월부터는 CB창업공동체 분야별로 전문 멘토를 지정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여성 농민과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수제쿠키 CB쌀나라 마법쿠키 마더쿠키는 현재 월 5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다문화 가족들이 운영하는 북 카페인다문화가족과 함께하는 보물섬카페도 완주군의 대표적인 CB.

 

완주군은 2012 2월부터 고산면의 예수병원 부설 고산의원 자리에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창업보육센터는 기존 CB창업업체를 대상으로 조직진단, 취약점 분석 등의 경영 컨설팅을 해준다. 또 창업 예정업체를 대상으로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시장 조사와 회사를 설립하는 창업 준비 작업도 도와준다.

 

[표4] 완주군 CB 모델

[그림2] 완주군의 CB 육성 단계


③로컬푸드 사업
완주군은 규모가 큰 상업 농가와 소규모 가족농이나 고령농을 대상으로 각각시장지향형 상업농정책과로컬푸드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규모가 큰 시장지향형 상업농은 규모화, 규격화, 브랜드화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높인다. 소농이나 고령농은 계약재배를 통해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정착시키고 직거래를 통해 인근 대도시인 전주 등으로 공급하는 로컬푸드 사업을 통해 농가의 소득 기반을 확보할 계획이다.

 

완주군로컬푸드영농법인 건강한 밥상이 로컬푸드 사업을 맡고 있다. 건강한 밥상은 1년을 48주로 나눠 완주군 내에서 재배된 달걀, 콩나물, 두부 등 기본 먹거리와 신선채소, 곡류, 과일 등 모두 11가지 품목의 식재료를꾸러미라는 이름으로 소비자 가정에 직접 배달해주는 사업이다. 2010 10월 지역 공무원 등 14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처음 시작했으며 현재 회원이 2500여 명으로 늘었다. 5000꾸러미를 배달해 한 달에 약 13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6개의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완주군은 농산물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촌디자인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④도농순환 활성화 완주군은 도시민의 귀농귀촌을 유도하고 도시 커뮤니티와 농촌을 연계하는 도농순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농촌 공동체와 도시 공동체의 연계를 통해 농촌에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고 도시 소비자에게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귀농귀촌을 통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프로그램이다.

 

시사점 및 과제

완주군의 지역발전 전략은 과거의 지자체의 전략과 다른 특징이 있다. 첫째, 도로와 교량 등 하드웨어 인프라 중심의 투자 대신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주민의 힘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소프트웨어, 휴먼웨어 중심의 지역발전 전략을 도입했다. 둘째,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세제 혜택을 줘 대기업을 유치하는 외생적 발전 모델에서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CB를 창업하고 이를 일자리와 소득으로 연계하는 내생적 발전으로 전환했다. 셋째, 공무원이 중심이 된 관 주도의 발전 전략에서 주민, 행정, 민간 전문가 네트워크가 협업하는 통합적 발전 모델을 구축했다.

 

완주군은 이 같은 지역발전 패러다임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조례와 행정 조직을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했다. 2011년에도 지역공동체, 로컬푸드, 도농순환, CB 활성화 등의 사업에 약 100억 원을 투입했다. 완주군은 주민들과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주민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창업공모전을 통해 주민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를 영입해 주민들의 창업 역량을 지원하는 상시적인 컨설팅 시스템도 구축했다.

 

하지만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과 시행착오도 있었다. 사업 초기에는 주민들의 힘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제안에우리가 뭘 할 수 있느냐는 고령 농민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또 마을 자원을 발굴해 사업화를 추진했다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콩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콩을 가공한 식품을 파는 사업을 추진했는데 주민들만의 힘으로는 벅찬 사업이었다. 결국 사업이 실패했다.

 

임 군수는사람이 하는 일이니 부실이나 실패가 없을 수는 없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빨리 실패하고 많이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완주군이 주민과 아이들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중시하는 이유다. 임 군수는사업 초기에는 전문가 특강을 연다고 하면 마을 주민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최근에 로컬푸드 사업 관련 전문가 특강을 했는데 참석한 300여 명의 대부분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고 주민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완주군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완주군은 지역공동체, 마을회사 등을 100개 육성하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CB, 마을회사, 사회적 기업, 두레농장, 로컬푸드 사업을 통해 4년간 약 2872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주민, 민간 전문가, 행정이 협업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목표를 단기간에 이루기는 쉽지 않다. 완주군에는 480여 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100개의 마을회사나 지역공동체 회사를 만들려면 4∼5개 부락마다 1곳의 회사가 만들어져야 한다. 장기적인 투자와 주민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100개 설립 목표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또 회사를 세웠더라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주민의 고령화로 창업한 마을회사나 CB가 지속적으로 운영되지 않거나 수익이 나지 않아 도태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완주군이 추진하는 로컬푸드 사업의 경우도 사업성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회원이 늘고 있긴 하지만입맛에 맞게 먹을거리를 주문할 수 있게 해달라거나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소비자들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회원 규모를 더 늘리고 서비스 전달체계를 효율적으로 바꿔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완주군의 도전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젊은 인재의 발굴과 주민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고령농가만으로는 CB 창업이나 기존 CB의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건강한 밥상 사업이나 농산물 직거래 사업처럼 인근 대도시로 시장을 확대하는 유통과 판로 확대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사업기획, 재무, 회계, 마케팅이나 사업 관련 전문성을 갖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재능 기부나 도시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통한 사회적 자본도 확충해야 한다. 무엇보다 CB의 수익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투자가 중요하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CB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거나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사업을 철수하는 진입, 육성, 퇴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CB가 성장하면서 CB를 지원하는 다른 일자리가 창출되고 새로운 CB가 만들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연구개발, 생산, 물류, 협력업체 등이 집적되는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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