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의 CB 육성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범수(한국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8년 전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한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달인’으로 잘 알려진 개그맨 김병만이 다녔던 삼기초등학교다. 이곳도 시골의 여느 학교처럼 학생 수가 줄어 결국 문을 닫은 것이다. 폐교가 하나둘씩 늘면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신음하는 지방의 그늘도 짙어졌다.
전북 완주군 옛 삼기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선 지역경제순환센터 모습 (사진제공:완주군)
최근 옛 삼기초교 건물에 사람들의 온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이들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들이 아침마다 이곳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완주군은 2010년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민간 출신 지역 전문가 등 30여 명이 근무하는 지역경제순환센터를 열었다. 이곳은 로컬푸드, 마을회사, 지역공동체 회사 등 지역을 근거로 한 새로운 지역발전 개념을 현장에 접목하는 ‘야전사령부’다.
지역경제순환센터 옆 공터에는 완주로컬푸드영농조합법인인 ‘건강한 밥상’이 운영하는 사업장이 문을 열었다. 건강한 밥상은 2010년 6월 농민 100여 명이 출자해 만든 영농조합법인. 지역 주민의 손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커뮤니티비즈니스(CB)’ 회사다. 직원들은 완주군 내의 소규모 계약재배 유기 농가들이 재배한 곡물, 채소, 달걀, 두부 등 농산물을 가져다가 이곳에서 정성스레 포장해 배후도시인 전주나 완주군 내의 회원 소비자들에게 배달한다. 지난해 10월 건강한 밥상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회원은 114가구였지만 지금은 2500여 가구로 늘었다. 생산자인 소규모 농가는 제값을 받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질 좋은 농산물을 싼값에 구매할 수 있다.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됐다.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CB 사업이 완주군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완주군에는 현재 마을 단위의 사업 84개, 지역공동체 사업 30개 등 모두 114개의 CB 사업장이 있다. 김창환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일본을 찾아가 CB 사업을 보고 배웠는데 요즘에는 일본에서 우리를 배우러 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그만큼 한국의 CB 사업이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CB)란? 커뮤니티비즈니스(CB)는 지역(Community)을 거점으로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지역 내의 자원을 활용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사업(Business)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등에서 발달한 지역밀착형 사업과 일자리 창출 사업이 1990년대 일본에 CB라는 이름으로 소개됐고 2000년대 들어 한국에도 알려졌다. 일본 농촌과 지역공동체는 장기 불황과 인구 고령화로 흔들리고 있다. 고베 대지진 이후에는 연고가 없는 독거노인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집에서 홀로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CB는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해 흔들리는 지역공동체를 유지하는 버팀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본 정부도 국가 차원에서 CB 사업 육성에 나섰다. 지방정부들은 지역 주민들의 CB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창업공모전을 열고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중앙정부는 CB 창업을 위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지역 거점대학을 지정해 CB 인재 육성에 나섰다. 또 경영 지식이 부족한 주민들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사업 기획 및 관리를 지원하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NPO) 형태의 중간지원조직도 육성했다. 이 결과 일본 내에는 다양한 CB가 등장했다. 지역 토산품을 생산 판매하는 사업, 사라져가는 향토 음식을 보전하기 위한 향토음식 식당, 이용자가 줄어 폐지되는 민간 버스를 지켜내기 위한 생활버스 사업, 고령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한 사업, 블록버스터 영화만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려 사라진 소극장 문화를 복원하고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버려진 농가를 고쳐 마을회관이나 대학생의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내에서 CB의 사업성과 지속가능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내는 CB들이 많지 않은데다 마을 단위의 CB나 전문가로 구성된 중간지원조직이 은퇴한 자원봉사자 등 고령자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한국도 최근 지방은 물론 중앙 정부가 CB 육성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CB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 전문가들의 교류도 활기를 띠고 있다.
도시와 농촌으로 양극화하는 지역 경제
완주군은 인구 65만 명의 전주시를 둘러쌓고 있는 인구 8만5000명 규모의 도농복합도시다. 완주군의 인구는 2006년 말 8만3199명에서 2009년 말 8만6077명으로 증가했다. 전북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인구가 늘고 있는 ‘잘나가는’ 지자체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인구가 줄어 고민인 다른 지자체보다는 형편이 낫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주 인근지역과 삼례와 봉동의 구도심 권역은 첨단과학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되고 있다. 반면, 이 지역을 제외한 10개 농·산촌 지역은 고령화율이 46%에 이를 정도로 활력이 떨어져 있다. 게다가 1ha 미만의 땅을 경작하는 농가가 전체의 64.6%를 차지할 정도로 소농도 많다. 인구 10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군 단위 지역이지만 거주지에 따라 도시와 농·산촌으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완주군은 지역 특성을 볼 때 도시 행정과 농업 행정이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활력을 잃어가는 농촌을 살리려면 만들려면 과거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도시 중심의 정책을 펴면 농·산촌이 소외되고, 농업 중심의 투자만 늘리면 도심의 활력이 떨어질 게 뻔했다.
농촌 마을에 산업단지를 짓고 외부투자를 유치하려면 세금 등 다양한 지원을 해야 했다. 타지에서 옮겨올 기업들이 많지 않았다. 대기업 공장이 들어서도 과거처럼 정규직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았다. 공장이 자동화된 설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필요한 인력이 많지 않았다. 지역마다 ‘판박이 축제’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행사로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케팅 등에 퍼붓는 비용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도 아니다.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영세한 소농과 고령 농가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의 해법 CB
완주군은 농촌 지역 커뮤니티의 붕괴를 막고 지역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사람과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도로나 다리 등의 하드웨어 투자만으로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완주군은 2008년 농업농촌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매년 100억 원씩 5년간 500억 원을 투입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농업 생산과 유통을 혁신하고 농가 부채, 농촌 활력 저하,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지역 주민의 힘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을 올리는 CB 에 주목했다.
완주군은 CB가 지역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첫째, 완주군 농가의 상당수는 소농, 가족농, 고령농 등이었다. 대규모 경작지를 확보하고 경작 방식을 기계화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영세한 농가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이나 소농들이 참여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 필요했다. 둘째, CB는 지역 주민을 주축으로 하는 사업이다. 지역 내에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표에 부합했다. 이를 통해 지역 내에서 자본이 순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셋째, 배후도시인 전주나 군내의 도심 지역과 농가가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지역사회 거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임 군수는 “농촌 문제는 농민보다 비효율적인 정책에 더 큰 책임이 있다”며 “주민이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들의 자원과 자산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한다면 더 지속가능하고 경쟁력이 있는 농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 CB를 선택했다.
①지역이 보유한 자산 조사 완주군은 2008년 8월 지역 내의 자산을 조사하는 ‘신택리지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내에 CB에 활용할 만한 어떤 자원이 있는지를 알아야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완주군이 내놓을 만한 지역 브랜드는 딸기, 곶감 등이 고작이었다. 완주군은 2010년 상반기까지 진행된 이 사업을 통해 지원 내에서 추진할 수 있는 66개 사업, 445개 자원을 발굴했다. 하지만 이렇게 파악한 자산을 곧바로 모두 활용할 수는 없었다.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 자본, 인력 등이 필요했다. 완주군은 CB 선진국인 일본과 교류하며 CB 노하우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2008년 8월 서울과 완주군에서 한일 CB국제포럼이 처음 열렸다. 이 국제포럼은 올해 11월에 3회 행사가 열렸다.
②조직과 제도 정비 국내에 생소한 CB 육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군청에 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조례도 만들었다. 완주군청은 2008년 말 CB 육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커뮤니티비즈니스 전담 조직을 기획관리실 산하에 설치했다. 2009년에는 CB 지원 근거와 커뮤니티비즈니스(CB)지원센터 역할 등을 규정한 조례를 마련했다. 2011년 2월에는 이 조례를 개정해 창업보육센터, 중간지원조직 지원 근거도 갖췄다. 사업 경영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주민들이 자원을 실제로 사업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일일이 마을 자원을 파악하고 사업을 지도할 수도 없고 관 주도의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어려웠다. 중간지원조직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③사업 공모제를 통해 주민 참여 유도 완주군은 조직 체계를 정비한 뒤에 2009년 7월 CB 시범사업 공모에 들어갔다. 공모를 통해 지역 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였다. 이 결과 양식장에 토종 치어를 방류해 낚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업, 무청을 활용한 먹거리 생산사업 등 4개 사업이 시범사업으로 선정됐다. 이 경험을 토대로 2010년부터 본격적인 CB 확대에 나섰다. 이 결과 2010년 19개, 2011년에는 13개 사업이 선정됐다. 올해 5월에는 주민을 대상으로 CB 아이디어 공모전도 열었다. 모두 40개 팀이 응모했으며 이 중 4개 사업이 사업화단계에 들어갔다.
④통합 행정조직 구축 완주군은 지역 주민의 힘으로 경제를 순환시키는 지역 활성화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2010년 6월 폐교된 삼기초등학교 터에 지역경제순환센터를 열었다. 지역경제순환센터는 행정과 주민을 연계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한다. 일본은 비영리법인(NPO)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이 CB 자원을 발굴하고 필요한 전략, 회계, 정보기술(IT), 마케팅 등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순환센터 내에는 CB를 육성하는 CB지원센터 외에도 마을회사육성센터(마을회사 육성), 로컬푸드센터(로컬푸드 사업 총괄), 도농순환센터(도시 커뮤니티 마을 연계, 귀농귀촌 사업), 공감문화센터(문화공간 관리 등) 등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근무하는 20여 명의 직원들은 민간 출신 계약직 공무원이거나 재단법인 소속 민간인이다.
[표1]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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