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A Business Forum 2011 Special Section
기업의 목적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이를 간과한 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려 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업의 목적은 바로 ‘이윤창출’과 ‘지속경영’이다. 물론 이러한 기업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기업의 비윤리적인 경영 행태까지 용인한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윤리경영은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이다.
이윤창출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탐욕’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탐욕은 합리적이지 않다. 탐욕적인 기업은 기업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사회의 이익은 뒷전으로 여긴다. 이런 기업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추구하느라 기업을 경영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사회적 윤리’를 간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현재의 행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에 해(害)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이런 기업은 결국 사회에는 해가 되고 기업에만 득이 되는 경영을 하는 ‘악덕기업’이 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탐욕에 눈이 먼 악덕기업은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활동 논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의 두 가지 목적인 이윤창출과 지속경영 중에서 단기적으로 이윤창출의 목적은 달성할지 모르지만 지속경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보통 계산적이라고 하지만 좋은 의미에서는 합리적인 활동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의 이윤창출을 도모할 뿐 아니라 사회에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기업은 기업과 사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기업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명성, 특히 정직, 공정, 윤리와 관련된 사항에 더욱 신경을 쓴다. 그리고 기업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지출’이 아닌 ‘투자’로서 사회적 책임 활동을 이행한다. 이와 같은 기업 경영이 지속되면 결국 기업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회를 위한 활동을 많이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회와 기업은 윈윈하는 좋은 이웃 관계가 된다.
윤리경영은 당연한 경제원칙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는 오래 전에 이미 경제활동에서 ‘윤리’라는 가치를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경제활동과 관련된 인생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면서 윤리적 가치를 강조했다. 1759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을 살펴보자.
“부(富), 명예, 또는 승격(昇格)을 위한 경주에서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뛸 것이다. 그리고 그의 경쟁자들을 제치기 위해 그의 모든 신경과 근육을 집중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경쟁자 중 한 명이라도 밀치거나 넘어뜨린다면 관중들의 관용은 거기서 완전히 끝날 것이다. 이는 관중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페어플레이의 반칙이다.”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 선수가 아무리 최선을 다했고 그의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하더라도 반칙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인생의 활동을 경주가 아닌 건축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선행(beneficence)을 행한다는 것은 건물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장식으로 추천할 만한 것이지만 강요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정의(justice)는 건물의 전체를 받쳐주는 주요 기둥이라고 표현했고 그와 더불어 이 기둥이 없어지면 인간사회라는 거대한 건축물은 한순간에 산산이 깨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의와 같은 윤리가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것을 더욱 강하게 주장한 것이다.
즉, 애덤 스미스에게 있어서 윤리와 정의라는 개념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조건이었다. 이는 오늘날 기업의 경제활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업이 이윤창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고 할지라도 정도(正道)를 걷지 않거나 비윤리적으로 반칙을 하게 된다면 이는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윤리경영은 개인은 물론 기업으로서 지켜야 할 추가적인 선택이 아닌, 개인이나 기업의 존재를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 덕목이다.
착해지지 않으면 지속성장은 없다
실제로 세계의 많은 기업들 중에서 윤리경영을 실천하지 않아서 위기를 맞거나 망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한때 미국 최고의 철도 부호였으며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밴더빌트(Vanderbilt) 가문은 프랑스의 고성을 뉴욕 맨해튼으로 통째로 옮겨오는 등 상상하기 힘든 소비를 일삼으면서 윤리경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결국 1877년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고 약 200여 명의 노동자가 숨지는 등의 사태가 일어난 후 계급 간 갈등으로 발전했다. 밴더빌트 가문은 전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상속했다. 그 돈으로 후손들은 미국 동부 전역에 수많은 저택과 영지를 사들였다.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에서 플로리다(Florida)까지 밴더빌트 저택이 산재했다. 그러나 부자는 3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처럼 3대가 지나가면서 가세는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밴더빌트가는 이 저택들을 팔아 넘길 수밖에 없었고 이때 처분된 저택들은 정부에 귀속돼 박물관이나 공원으로 바뀌었다. 밴더빌트 가문이 남긴 유일한 사회적 재산은 테네시(Tennessee)주 내슈빌(Nashville)에 있는 밴더빌트대다. 이는 밴더빌트가 사망하기 얼마 전 기부한 100만 달러로 설립됐다. 당시 밴더빌트의 천문학적 재산에 비하면 미미한 액수지만 이 적은 기부금 덕분에 밴더빌트라는 이름은 오늘날까지 남을 수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인 카네기와 록펠러의 인생은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지금은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그들도 기업가 인생의 전반부에서는 ‘윤리경영’이라는 가치를 놓쳤다. 특히 카네기는 임금 협상 문제로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무렵 홈스테드(Homestead Strike) 제강소를 일방적으로 강제 폐쇄하는 조치를 감행했고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제강소를 점거해 사태가 악화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네기 측은 경비 용역업체인 핑커턴(Pinkerton) 회사 소속의 경비원들을 대거 투입했다. 노동자들과 경비원들 간에 큰 충돌이 일어나 7명의 노동자와 3명의 경비원들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치는 ‘홈스테드 파업 사건(Homestead Strike)’이 발생해 주 방위군이 투입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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