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A Business Forum 2011 Special Section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외치며 출범한 현 정부가 상생, 동반성장, 초과이익 공유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공존 생태계 조성, 이익추구에 대한 다양한 규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 등 언뜻 생각할 때는 좌파 성향으로 보일 수 있는 정책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친기업적 우파정부라고 믿었던 기업들은 당혹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날로 격화되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이런 반(反)기업적이고 반시장적인 정책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경고까지 내놓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일까?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즉, 21세기 접어 들어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윤리성(business ethics)을 중시하고 중소기업이나 소비자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역할 확대 등을 강조하는 추세가 날로 강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창간 이래 기업의 효율적 영리추구를 위한 전략 제시에만 몰두했던 대표적 경영잡지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Harvard Buiness Review)>가 최근 몇 년간 지면의 절반 가까이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 가능한 성장, 공유가치, 친환경 경영, 기업윤리 등에 할애하고 있다. 또 핵심역량 이론의 제시로 잘 알려진 전략경영 분야의 대가인 미시간 경영대학원의 프라할라드(C. K. Prahalad) 교수가 작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저술한 책은 소득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최하층을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70%의 인구 (bottom of the pyramid)의 삶을 기업들이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보다 더 의외의 학자는 평생 경쟁 전략과 성장 전략의 제시에만 몰두해왔던 전략경영 분야의 최고 거장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포터(M. Porter) 교수다. 그는 최근 이런 움직임에 가세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포터는 일반적으로 쓰이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개념을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규정해야 한다고 최근 주장했다. 즉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은 결코 단순히 주주이익 극대화에 한정되지 않으며 직원과 관련 협력업체들은 물론 지역공동체와 국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s)들의 복지까지도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포터 교수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결코 기업이 외부 압력 때문에 마지못해 지출하는 비용으로 인식해서는 안 되며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기업이 빈부격차 심화, 자원고갈, 공해, 노동의 질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경쟁력 강화방안 도출에만 몰두해왔던 10년 전까지의 주장들을 생각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관점의 전환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례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다. 21세기 첫 10년간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애플일 것이다. 그리고 활동 분야를 막론하고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사람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잡스와 그가 이끌었던 애플은 단순히 기업가와 기업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계인들로부터 열렬히 사랑을 받는 문화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이미 언론에서 여러 차례 소개됐듯이 잡스의 성격을 보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잡스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기부천사’도 아니다. 세계적 거부인 잡스나 미국 정부보다 많은 현금보유량을 자랑하는 애플이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대규모의 기부를 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바가 없다. 최근에야 잡스의 후임인 팀 쿡이 외압에 못 이겨 애플도 앞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세계인들은 왜 잡스와 애플에 열광할까?
전 세계적으로 CSR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려면, 잡스와 애플이 사회공헌 활동을 하지 않고도 여전히 존경을 받는 이유를 납득하려면, 먼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심층적이고 체계적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기업의 사회공헌과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 정립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려면 그 밑에서 작동하고 있는 기반 메커니즘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학 거시 조직이론의 핵심 이론 중 하나인 신제도이론(Neo-Institutional Theory)에서 강조하는 ‘정당성(legitimacy)’ 개념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
각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기본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영리 추구의 가장 대표적 주자인 기업이 비영리 사회공헌 활동에 투자하는 현상은 사회과학계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명시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어떤 기업들은 사회공헌을 백안시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많은 액수의 자원을 비영리 사회공헌 활동에 투자한다. 이렇게 형성된 비영리 부문은 미국의 경우 통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체 경제의 약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일반적 인식과 달리 상당한 액수를 매년 비영리 사회공헌 활동에 투자하고 있다. 대기업은 매년 수천억 원대의 예산을 비영리 사회공헌 활동에 배정하고 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런 기업의 행동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1980년대 후반에 세계 최초의 비영리조직 연구소이자 필자가 한때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던 미국 예일대의 ‘Yale Program On Non-Profit Organization (PONPO)’에서는 이 분야 연구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비영리 부문(The Non-Profit Sector)>이라는 명저를 내놨다. 디마지오(P. DiMaggio), 헨스먼(H. Hensman) 등 거장 사회과학자들이 총망라된 필진과 조직이론가 파월(W. W. Powell)이 편집인으로 참여한 이 책은 기업 비영리 사회공헌 활동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이 책에서는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에 투자하는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기업들은 사회공헌 활동도 다른 영리추구 행위처럼 일종의 홍보나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투자를 한다는, 가장 전통적인 경제학적 관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대중들에 대한 노출도와 가시성이 매출이나 수익에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큰 소비재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더 많이 투자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이와 정반대로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기여하는 것은 기업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한 순수한 신념을 갖고 헌신을 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기업의 사회공헌은 개인이나 다른 유형의 조직들의 이타적 자선이나 봉사 활동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진정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치나 문화, 윤리를 중시하는 학자들의 견해이다. 셋째,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이 사회에 지고 있는 빚을 갚는 당연히 행동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거장 조직이론가인 퍼로(C. Perrow)는 특히 거대 기업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자원들과 공공 인프라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회에 빚을 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업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최대한 이 빚을 사회에 되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등 금융자본에 대한 세계적 저항운동의 구호에는 이런 관점이 반영돼 있다. 넷째,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할 때 어떤 이익을 의도적으로 추구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기업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데 기여해 결과적으로는 다양한 혜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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