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A Business Forum 2011
세계적인 경영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와 마크 크레이머 FSG 대표가 최근 제시한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개념이 자본주의 위기의 돌파구를 열어줄 ‘빅 아이디어(big idea)’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세계 각국에서 ‘반(反)기업 정서’가 고조되면서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인 기업과 기업인들이 심판대에 섰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 월가에서 분노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고 양극화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돌리는 비판 여론도 유례없이 커졌다.
포터 교수는 “기업은 수십 년간 단기 재무성과를 올리는 데 급급하다가 고객의 요구를 외면했고 정부와 시민사회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에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이 사회의 요구를 귀담아 듣고 문제를 해결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편익을 동시에 창출하는 공유가치의 새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포터 교수는 12월6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동아비즈니스포럼 2011’에서 CSV의 개념과 실천방안을 한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직접 소개하고 토론도 벌인다. CSV는 올 한해 대-중소기업 상생 논의로 진통을 겪었던 한국 경영계가 안고 있는 난제를 풀 유용한 해법이 될 것이다.
왜 CSV인가
10월9일 미국 시카고. 글로벌 경제위기로 촉발된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뉴욕을 넘어 시카고에 상륙했다. 시위대는 ‘금융 자본과 금융자본주의 개혁’을 주장하며 12개의 요구사항까지 내걸었다. 월가 금융인들의 부패와 탐욕에 화가 난 시위대의 화살이 이제 금융가를 넘어 기업과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향하고 있다.
시카고 시위대는 9번째 요구사항으로 ‘기업을 사람처럼 대하지 말라(Eliminate corporate person-hood)’고 주장했다. ‘기업에 부여한 법인격(法人格)을 없애라’는 것이다. 사람처럼 헌법적 권리와 책임을 갖게 된 기업이 선거자금 지원 등을 통해 정치권력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정경유착을 통해 권력화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기업의 힘을 축소하는 게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믿고, 기업을 계약의 당사자이자 권리와 책임을 가진 법인(法人)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자본주의 질서에 반기를 든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기업과 시민사회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해서 고용과 임금을 제공하고 구매, 투자, 세금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인식은 약해졌다. 대신 기업과 금융자본의 어두운 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그동안 더 많은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데 집중했다.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단기성과에 집착했다. 인력 감축과 생산시설 이전을 통해 재무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 결과 기업과 투자자는 이득을 얻어도 공동체와 사회에 돌아오는 이득은 없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민의 세금으로 은행과 기업들이 되살아났지만 정작 국민들의 삶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이 퍼진 것이다. 이와 잇몸처럼 상호의존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기업과 사회의 관계는 더 적대적인 관계로 전환됐다. ‘기업의 성장을 억제해야 사회가 얻는 편익이 커진다’는 식의 제로섬 논리도 강해졌다.
포터 교수 등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과 시장의 역할을 재정의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돌파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기업에도 ‘개혁당하기 전에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는 이유다.
포터 교수는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자본주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How to Fix Capitalism)’란 주제로 발표한 논문에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CSV’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DBR 86호 ‘이익+사회공헌’ 공유가치를 창출하라 참조) 한때 국내외 경영계를 사로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개념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포터 교수는 현대 기업 자본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기업의 공유가치 창조 노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 시스템이 가진 효율성을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의 경제적 가치도 동시에 창출하려는 혁신 노력이 기업과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다는 논리다.
“공유가치는 이익재분배가 아니다”
CSV는 기업이 창출한 이익을 재분배를 통해 함께 ‘나누자’거나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식의 소극적 의미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부나 시민사회가 기업의 이익을 강제로 분배하는 이익공유의 개념이나 기업이 사회에 수익의 일부를 주는 생색내기 사회적 공헌으로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포터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 강조하다 보면 새로운 가치 창출 없이 기존에 생산된 몫의 분배에만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CSR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활용하기 때문에 활동폭이 제한적이고 지속가능성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CSV는 기업이 혁신을 통해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경제, 사회적 가치의 총량을 확대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말한다.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갖느냐보다 기업과 사회가 나눌 수 있는 파이를 키우는 방법론이다. 기업들이 발상을 바꾸고 자체 혁신을 이루면 사회적 이익과 기업 이익이 공유되는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공동체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포터 교수의 논지다.
CSR과 CSV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공정무역이다. 가난한 농부가 재배한 농작물에 제값을 쳐주는 공정무역은 양극화의 해법으로 자주 거론된다. CSR 관점에서 보면 공정무역은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기업들의 선행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확보된 파이를 재분배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반면 CSV은 농작법을 개선하고 농부를 위한 지역 협력과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농부들이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작물을 재배해 수확량과 품질을 개선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수입 및 수익 증가로 이어져 농부와 농작물을 구매하는 기업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부에 대한 연구결과 공정무역은 농부들의 수입을 10∼20% 증가시켰지만 공유가치에 입각한 투자는 이들의 수입을 300% 늘려줬다. 새로운 구매방식을 시행하고 지원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데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를 감내하고 지원을 계속한다면 모든 참가자에게 보다 큰 경제적 가치와 전략적 혜택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게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부들의 사례를 통해 확인됐다.
선진기업 공유가치 혁신으로 눈 돌려
포터 교수는 CSV를 통해 기업이 돈을 벌면서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려면 △상품과 시장의 재구성 △가치사슬 생산성의 재정의 △산업 클러스터 구축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선진기업 몇몇 곳은 CSV를 통한 혁신을 실행에 옮기고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기업이 상품과 시장을 재구성하려면 사회가 원하는 보건, 주택, 영양개선, 노인주거, 환경오염 방지 등의 사회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은 기업이 아닌 정치인의 몫이라는 과거의 시각으로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할 수 없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파악하고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기업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편익과 기업의 경제적 가치가 동시에 증가하는 공유가치가 창출된다. 예를 들어, 과거 식품회사들은 맛과 열량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하지만 건강과 참살이의 가치를 중시하는 선진국 시장에서는 이런 회사들이 발붙일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건강과 영양 관리에 초점을 맞춘 제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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