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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urrection of Samsung Total: From Restructuring to Success

‘Why Not!’ 혁신 DNA가 잠든 역량을 깨웠다

이방실 | 79호 (2011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이 서울대 경영대학과 함께 서울대의 임원 교육 과정(주임 교수 황이석 경영대학 교수)서울대 CFO 전략과정의 최신 경영 사례들을 연재합니다. 국내외 유명 기업의 임원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서울대 CFO 과정의 교육생들은 총 6개월간의 교육 기간 중 각자의 회사에서 겪은 경험과 강의를 통해 배운 지식들을 접목, 자사의 경영 사례들을 다른 교육생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 발표된 사례 중 특히 한국 기업에 많은 도움을 줄 만한 사례들을 엄선해 DBR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기업 현장에서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 담긴 이 코너를 통해 기업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위치한 삼성토탈 대산공장 직원들은 최근 분주한 일과를 보내고 있다. 2007 4월 이후 4년 만에 실시하는 정기보수(426∼531, 35일간)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정기보수 대상은 100만 평에 달하는 대산공장 내 13개 단위 공장( 10만 개 설비) 중 방향족 공장을 제외한 12개 공장이다. 설비 효율과 안전성 제고가 1차 목적이지만, 정기보수는 규모의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유화업체의 설비 증설을 위해서도 매우 의미가 크다. 기존 설비와 증설된 신설비 간 원활한 연계를 점검하는 마무리 작업이 바로 정기보수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번 정기보수 기간 중 삼성토탈은 에틸렌 13t, 프로필렌 12t, 폴리프로필렌(PP) 10t 등 총 45t의 증설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증설로 에틸렌 기준 연산 100t 생산이 가능하게 돼 더욱 의미가 깊다.

정기보수를 통한 설비 효율화는 1 365일 안정적으로 공장을 돌려야 하는 석유화학 업체들에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삼성토탈은 2007년과 2009, 공장별 운전 성능과 효율을 평가하는 솔로몬(Solomon) 스터디 결과, 전세계 NCC(Naphta Cracking Center·나프타분해공장) 참여공장 100여 개 중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기본에 충실한 회사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이 회사는 갑작스레 공장 가동이 정지되는 횟수가 매년 20차례를 넘었을 정도로 운전 능력이 형편없었다. 기본적인 공장 운영이 이런데 회사 경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1991년 공장 가동 시작과 함께 국내 공급 과잉 및 세계 유화시장의 불황까지 겹쳐 10년간 흑자를 낸 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삼성그룹 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이 회사는, 결국 외환 위기 당시 부채 비율 780%를 기록하며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대상 1순위에 오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삼성그룹 계열사들로부터의 증자, 대규모 외자 유치 등에 힘입어 회생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전사적생산성향상관리)’과 사내 제안활동을 양대 축으로 삼아, 기본에 충실함과 동시에 전사적 혁신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늘날 5조 원대 매출액에 4000억 원대 영업이익을 내는 우량 회사로 거듭났다. DBR이 서울대 CFO 전략과정과 공동으로 지속적 혁신을 통한 삼성토탈의 턴어라운드(turn-around) 과정을 심층 분석했다.

구조조정과 외자유치 통해 부실 기업에서 클린 컴퍼니로 전환

삼성토탈의 전신은 1988년 설립된 삼성종합화학이다. 1980년대 삼성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유화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판단 아래 석유화학종합단지 사업을 준비하게 됐고, 그 결과 태어난 기업이 바로 삼성종합화학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삼성종합화학이 본격적으로 공장 가동을 시작한 1990년대 초, 경쟁업체들의 잇단 공장 신·증설로 공급 과잉 현상이 벌어지면서 제품 가격이 폭락했다. 설상가상 전 세계적으로 유화산업의 불황까지 겹치면서 회사의 경영 사정은 한때 매출액 4000억 원에 적자만 1000억 원을 낼 정도로 악화됐다. 급기야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이자비용 부담만 한 달 300억 원이 넘는 위기에 내몰렸고, 결국 삼성종합화학은 정부 주도 하의 대기업 빅딜 대상으로 지정됐다.

당시 빅딜의 골자는 삼성종합화학과 동일한 대산 석유화학 단지에 위치한 현대석유화학을 하나로 통합한 후 외국 자본(일본 미쓰이물산)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쓰이물산이 한국 정부에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며 소극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빅딜 자체가 흐지부지 됐다. 결국 2000 2월 정부는연말까지 자구노력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끌어내리면 빅딜 대상에서 해제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에 따라 삼성종합화학은 즉각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1900여 명에 달하던 직원 수를 900여 명으로 줄였다. 발전, 수처리 등 유틸리티(utility) 설비도 매각했다(2800만 달러, 3100억 원). 그래도 여의치 않자 삼성그룹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수혈 받아 2045억 원의 증자를 단행했고, 폴리에스터 등 화학섬유 원료를 생산하는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고순도텔레프탈산) 공장까지 매각(삼성그룹 내 또 다른 화학 계열사인 삼성석유화학에 22000만 달러, 3000여 억 원에 매각)했다. 이런 노력들에 힘입어 삼성종합화학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무려 1100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상환, 부채 비율을 198%로 떨어뜨려 빅딜 대상에서 가까스로 제외됐다.
 
 이후에도 삼성종합화학은 비용절감을 위해 서울과 대덕의 지원·영업·연구 조직을 대산공장으로 통합시키는 등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경영 정상화에 매진했다. 운좋게 시황까지 호전되면서 삼성종합화학은 2002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때마침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찾고 있던 글로벌 에너지·화학 기업인 프랑스 토탈피나엘프(TFE·TotalFinaElf)그룹의 석유화학 계열사인 아토피나(Atofina)가 투자의사를 밝혀왔고, 2003 8 5 5 합작 법인 삼성아토피나를 설립하게 됐다.(‘외자유치 통한 합작사 설립 과정 및 외자유치 효과참조) 그로부터 약 1년 후, TFE그룹이 정밀화학과 무기화학 등 일부 화학산업을 분리하면서 아토피나 브랜드를 포기함에 따라 회사명을 현재의 삼성토탈(2004 10)로 변경했다.

2001년 초 프랑스 토탈피나엘프그룹 계열사인 아토피나로부터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당시 중국과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필요했던 아토피나가 투자 대상을 물색하다 삼성종합화학에 투자 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삼성종합화학은 2003 8월 프랑스 토탈 측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고홍식 사장(현 삼성토탈 상임 고문)이 토탈 측과의 협상을 위해 다닌 해외 출장 횟수만도 50여 차례가 넘었다고 한다.

합작에 이르는 과정은 치열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삼성종합화학의 기업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느냐였다. 협상 초기, 양측이 생각하는 순자산가치의 차이는 무려 2억 달러에 달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결국 순자산 가치를 155000만 달러로 잠정 합의했다. 합작법인을 구성하는 방식은 삼성종합화학이 자산·부채·설비·인력 등을 출자(현물 출자 방식)해 신설 법인을 설립한 후 신주 발행을 통해 지분 50%를 프랑스 토탈 측에 양도하는 방법이었다.

2002 12월 양사 간 합작법인 설립 관련 MOU(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정밀 실사에만 약 3개월이 소요됐다. 실사 이후에도 토탈 측은 잠정 합의했던 기업가치 금액에서 또 다시 2억 달러 삭감을 주장, 한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부실자산이나 숨겨진 채무가 없고,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자신하던 경영진은 단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2003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양사 간 합작 계약이 체결됐고, 그 해 8월 출범한 신설 합작법인에는 아토피나의 지주회사인 토탈홀딩스UK 77500만 달러( 9300억 원)를 출자했다. 삼성 측의 주장대로 155000만 달러의 기업가치에 대해 양측이 동의한 것이다. 경영진은 사외이사를 포함해 양측 각 3명씩으로 구성하되 삼성 측에서 사장을, 아토피나 측에서 수석 부사장을 각각 맡기로 했다. 신설 합작법인의 공동 최대주주인 삼성종합화학은 홀딩 컴퍼니 형태로 전환했다.

당시 이 외자 유치는 외환위기 이후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투자금은 신설 합작법인의 자본금 확충 및 채무 상환 등에 사용됐다. 그 결과 합작사 삼성아토피나는 자산 18600억 원, 부채비율 100%의 클린 컴퍼니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됐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상당수 기업들은 경영권이나 지분비율에 연연해 외부 자금 유치를 주저하다 회사 발전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그러나 삼성토탈은 지분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경영권은 유지하면서 회사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자금을 확보해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삼성토탈의 전신인 삼성종합화학은 2002년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흑자전환을 했지만 그 이전인 1999∼2001 3년간 설비투자는 거의 하지 못하면서 자산매각을 통해 약 5000억 원대의 운영자금을 조달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는 계속된 적자 상태에서 회사운영이나 부채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자산매각에 상당부분 의존했다는 뜻이다. 그는 “2002년 흑자로 전환됐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며과감히 지분의 50%를 매각함으로써 회사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실제 삼성토탈은 합작사 전환 이후 2004 400억 원, 2005 1000억 원 정도의 자금을 설비투자에 사용했다이는 결과적으로 삼성과 토탈 양측 모두에윈윈이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한 지분 인수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협상 파트너를 끈질기게 설득해 양측 모두윈윈할 수 있음을 납득시킨 점이나,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밈없이 투명한 재무제표를 작성해 협상 상대방의 신뢰를 얻은 것도 다른 기업들이 배워야 할 점으로 꼽았다. 그는대부분 분식회계는 회사가 어려울 때 발생한다삼성토탈은 그런 상황에서도 깨끗한 재무제표를 발표해 평가된 적정가치에서 한 푼의 에누리 없이 협상을 마무리 짓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합작 투자 이후 삼성토탈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합작 1년 뒤인 2004, 500억 원을 들여 파라자일렌(PX) 등 합성수지 원료를 생산하는 방향족 공장을 증설했고, 2006 12월부터 2008 8월까지는 총 5500억 원을 투자, NCC 및 스티렌모노머(SM) 등 기존 공장 증설과 프로필렌 및 PP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일명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결과 합작 직전 연도인 2002 17286억 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56260억 원으로 3배 이상 늘었으며 영업이익 역시 1963억 원에서 4255억 원으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1 삼성토탈 경영실적)

I.생존을 위한 혁신

①LIFT 21(1997∼2000)

- 원가 경쟁력 확보 위한 프로세스 개선 및 조직 활성화 통한 업무 경쟁력 강화

- 기술 및 시장 선도(Leading), 생산 및 개발 혁신(Innovation), 경영자원의 집중(Focus),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Take-off)을 목표로 2000 1000억 원 흑자 달성

②Survival 1000(2002∼2004)

- 1000일 동안 지속적인 경영혁신을 통해 최악의 시황이 닥쳐도 10%의 경상이익을 남길 수 있는 원가구조 확립

- 에너지 비용 5%, 부재료 비용 5%, 물류비용 10%, 수지제품 차별화 200억 원 개선, 지급이자 200억 원 절감 등 632억 원의 손익개선 실현을 목표로 하는 5대 핵심전략 Task Force 운영

II.새로운 도약을 위한 혁신

③Upgrade STC 330(2005∼2007)

- 향후 3년간 가공비 30% 절감, 시스템 경영체제 구축, 글로벌 인적 경쟁력 확보 통해 STC(Samsung Total Petrochemicals·삼성토탈)의 전사 경쟁력 30% 업그레이드

- 매년 700억 원의 가공비를 절감해 총 2000억 원 절감 목표

④New Chane 101(2008)

- 새로운 도전(New Challenge)을 통해 새로운 변화(New Change)를 선도하고새로운 기회(New Chance)를 창출

- 1000여 명의 임직원이 10개의 팀이 돼 함께 사고(think together)함으로써 협업을 중시하는 융합혁신 추진

⑤STC Way(2009∼2010)

- 글로벌 케미컬 리더로 도약하기 위한 삼성토탈만의 일하는 방식

- 안전 친환경 경영, 최고운영효율성, 최적화, R&D기술 선도, 마케팅 역량, 의사결정 역량, 파트너십, GWP(Great Work Place) 구현 등 8대 핵심경쟁력 선정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TPM 통해 끊임없는 개선 활동 추진

한때 퇴출 위기에 몰렸던 삼성종합화학이 회생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1차적으로 강력한 구조조정과 그룹 계열사의 지원, 대규모 외자 유치의 덕이 컸다. 하지만 삼성토탈이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데는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혁신활동의 공로도 크다. 회사 출범초기부터 만성적자에 시달려 온 삼성종합화학은 퇴출위기에 몰리기 전부터 생존을 목표로 전사적 경영혁신활동을 추진했고, 합작사로 전환해 경영이 정상화 된 후엔 새로운 도약을 위해 혁신에 매진했다. (‘삼성토탈의 전사적 경영혁신 활동참조)

시기별로 추진해 온 혁신활동의 목표는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세부 실행방안에서 14년째 변함없이 지속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 설비효율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전사적 설비보전 활동인 TPM이다.

TPM은 전 직원이 소그룹으로 나눠서 설비보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협력하는 프로그램이다. TPM 1920년대 미국에서 PM(Productive Maintenance) 개념으로 시작, 일본으로 건너가 TPM으로 확대 발전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PM이 전문적인 점검요원(inspector)들에 의한 설비보전 활동으로 국한됐다면 일본에서 발전한 TPM은 현장에서 설비를 운전하는 운전요원(operator) 전원으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

삼성토탈은 1997 7월 전사적 경영혁신활동인 ‘LIFT 21’의 실천 방안으로 TPM을 도입했다. 계속된 적자와 연이어 발생하는 공장 트러블 등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절박감에서 경영진이 내린 결론이었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공장운영이라는 유화산업의 기본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컸다.

TPM 도입 당시 사내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설비운전이 주 업무인 사람들에게 기계청소를 시키는 것은 물론 설비보전 지식까지 갖추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공장설비의 최적화 운영을 위해서는 현장 운전요원들이 기계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게 TPM의 기본 철학이다. 하지만 운전요원들은설비 운전만 잘하면 됐지 왜 청소와 정비까지 해야 하나?” “공장 바닥 쓸고 기계에 기름칠 한다고 적자 회사가 흑자 되나?” “그렇게 청소를 하고 싶으면 일당을 주고 아줌마들을 불러라.” “초과근무수당을 주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겠다.” 등 불만의 소리를 터뜨리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TPM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지금은 삼성토탈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혁신방법론이자 조직문화로 뿌리내렸다.(‘삼성토탈의 TPM 추진 과정참조) 삼성토탈에 TPM을 전수해 준 일본 이데미쓰가 역()으로 벤치마킹을 하러 올 정도로 TPM의 수준도 높다. 도입 초기 거센 반발에 부딪혔던 TPM 14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다음 네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

TPM 도입 초기 삼성토탈은 부채만 2조 원이 넘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TPM 모범사례 벤치마킹을 위해 1997∼2000년 약 600명 정도를 순차적으로 일본에 파견했다. 당시 국내에선 성공적 TPM 모델 사례를 찾기 힘들어 TPM의 본류인 일본의 석유화학회사 중 TPM을 잘 하기로 소문 난 이데미쓰에 직접 직원들을 보낸 것이다. 벤치마킹 파견단에는 임원들은 물론 당시 대표이사였던 유현식 사장까지 직접 참여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청소하는 걸 귀찮고 필요도 없는 과외 업무로 생각하는 현장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경영진들이 솔선수범했다. 1997년 당시 원료사업부 담당 임원 및 간부들로 구성된악어새 분임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손수 공장 바닥을 닦고 압축기(compressor) 설비라인을 직접 청소하며 점검하는 등 현장 직원들이 설비 청소부터 시작해야 하는 TPM의 조기 정착을 위해 모범을 보였다.

자율적 실행 문화 확립

TPM 활동이 추구하는가시적결과물은 설비 보전을 통해 공장의 트러블과 사고를 줄여 설비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토탈 경영진은 TPM 활동의궁극적목표는 설비 효율 제고가 아닌인간존중사상이라는 점을 도입 초기부터 강조해왔다. 트러블을 줄여 공장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일은 결국 직원들 본인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들어 현장 직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특히 대산공장 임원 및 공장장으로 재직하며 TPM 정착을 위해 힘써 온 손석원 사장은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정년을 무사히 맞아만기제대를 하기 위해서라도 설비에 대한 공부가 필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현장 직원들을 독려했다.

처음엔 TPM에 극렬하게 반대했던 직원들도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TPM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따로 불이익을 주진 않았지만, 모범적으로 추진하는 분임조에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하나 둘씩 동참하는 직원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TPM=인간존중활동이라는 경영진의 메시지가 직원들에게 스며들어가면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삼성토탈의 문화로 자리잡게 됐다.

대산공장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이동호 공장장(전무) “TPM 도입 후 네 명의 CEO가 거쳐갔지만 TPM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장 직원들의 자율적 주도하에 이뤄지는아래로부터의(bottom-up)’ 혁신활동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TPM의 추진 방향은 생산, 환경안전, 기술, 공무, 인사 부문의 팀장급 간부들로 구성된 TPM 운영위원회(경영혁신 담당 상무 주재로 분기에 1회씩 개최)를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일단 방향성이 설정되면 부문별, 부서별 특성에 맞게 TPM 활동이 벌어진다. 실제 TPM 활동은 총 15명의 TPM 추진자의 지도 하에 공장별(NCC, SM ), 사업부 담당별(원료, 수지, 방향족 등)로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독자적 TPM 모델 구축

원래 TPM은 자주보전, 계획보전, 개별개선, 초기유동관리, 품질보전, 교육훈련, 사무간접, 환경안전 등 8본주(本柱·기둥이 되는 핵심) 활동이 기본이다. 삼성토탈도 TPM 도입 초기엔 이 틀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TPM 매뉴얼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유화산업 특성과 삼성종합화학만의 독특한 상황을 고려해 새롭게 재구성해 나갔다. TPM 업무를 담당하는 김정훈 경영혁신팀 대리는현재 삼성토탈의 TPM 8본주 활동 중 5본주 활동(자주보전, 계획보전, 개별개선, 교육훈련, 환경안전) MP(maintenance prevention·보전예방) 정보공유활동이라는 새로운 활동을 더해 총 6본주의 뼈대를 기본으로 한다 “TPM은 원래 일반 제조업 특성에 적합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이를 유화업종에 최적화된 상태로 만들면서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해 새로운 모델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각 본주 활동의 세부 실천방안에도 삼성토탈의 특성을 반영해 진화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자주보전활동 중 4번째 스텝에 해당하는설비 총점검 활동이다. 원래 TPM에선 6개 계통(윤활/유압/공압/구동전달운동/전자제어/체결부품)별로 설비를 구분해 점검 활동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삼성토탈은 유화산업 특성상 커다란 설비를 세부 기능별로 나누어 점검하기보다 물리적인 기계류를 구분 기준으로 삼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설비를 4개 계통(회전기계/고정기계/전기기계/계기장치기계)으로 재분류했다. 동시에 4개 계통별 설비교육 프로그램인 ‘PE(Production Engineer) 교육과정을 한국표준협회와 공동으로 개발, 현장 운전요원들이 설비에 대한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초급(5년 이하 신입사원 대상)/ 중급(TPM 분임조 서기 및 리더 대상)/ 고급(분임장 대상)/ 전문가(TPM 사내 컨설턴트 양성 과정) 등 직급 및 경력에 따라 수준별로 체계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 중이다. 이 밖에도 자주보전활동의 6번째 스텝은 아예 새로운 스텝으로 대체했다. 원래 TPM 매뉴얼에 따르면자주 품질스텝이지만 이를자주 환경안전활동으로 교체했다. 유화업계에선 제품 간 품질보다 안전과 관련된 이슈가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림1 삼성토탈 TPM ‘자주보전세부 추진 경과)

체계적인 동기 부여

TPM 1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로 동기 부여를 빼놓을 수 없다. 삼성토탈은 TPM 활성화를 위해 조직원들에 대한 외재적·내재적 동기부여 활동을 균형 있게 전개하고 있다. 반기에 한 번씩 TPM 분임조 자랑대회를 개최해 최우수 분임조에는 사장이 직접 꽃다발과 케이크 등을 주며 격려하는 것은 물론 분임조원 전원 부부동반으로 해외 여행을 보내준다. 고급 기술인력을 우대하는 조직문화 역시 삼성토탈의 자랑거리다. 최우수 기술 인력들을 예우하기 위해 공장 초입 약 100m 구간에 조성한기능 마스터의 거리가 대표적 예다. 현재 이 거리에 심어져 있는 팽나무에는 총 23명의 기능마스터(국가공인 기능장 3개 이상 보유자, 혹은 2개 기능장과 1개 이상의 기사자격증 보유자) 이름과 사진이 새겨진 명패가 달려있다. 기능장 취득시 자격증 수당까지 주어져 노력 여하에 따라 금전적 보상은 물론 명예까지 얻을 수 있다. 고급 기술인력을 우대하는 풍토 덕에 삼성토탈에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현장 직원들도 밤을 새워 공부하기 일쑤다. 지난해 기능장 자격증을 딴 사람 중에는 51세 운전요원(이일우 운영팀 조장)도 있었다. 현재 삼성토탈 대산공장 운전원들이 보유한 기능장 개수는 총 130개에 달한다. 최종영 경영혁신팀장은현장 운전요원들의 높은 기술 역량이야말로 삼성토탈만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14년째 TPM을 지속해 오면서 삼성토탈 현장 운전요원들의 기술수준은 날로 높아졌고, 그에 비례해 설비효율성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1990년대엔 통상 2년에 한번씩 정기보수(1993, 1995, 1997)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 주기가 길어져 4년에 한 번씩 정기보수(2000, 2003, 2007, 2011)를 해도 될 정도다. 유화산업은 특성상 경기변동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호황기에 최대한 이익을 올려 불황기를 견뎌낼 실탄을 비축해야 한다. 따라서 한두 달씩 공장가동을 멈춰야 하는 정기보수 실시 주기가 길면 길수록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 호황기에 수익을 끌어올릴 여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설비효율만 좋아진 게 아니다. 일상적인 공장운영의 안정성과 안전측면에서도 괄목할 성과가 나타났다. 1990년대만 해도 공장가동 정지 횟수는 연 평균 20건을 넘었지만 2000년 이후 10건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2009 11월엔 세계 최고 권위인 노르웨이 DNV ISRS(International Safety Rating System·국제안전등급시스템) 심사에서 9등급 인증(전 세계 정유·석유화학 공장 499개 중 상위 1% 5개 업체에 수여)을 받았다. ISRS 9등급을 받은 공장은 우리나라에서 삼성토탈이 유일하다.

현재 삼성토탈 내 TPM 분임조는 총 68개로 공장 당 4개 분임조가 TPM 공장별로 배속된 TPM 추진자의 지도를 받아 활동한다. 각 분임조는 현장 운전요원 경력 최소 20년 이상의 조장(foreman)이 분임장을 맡아 6∼7명의 조원들과 팀을 이뤄 움직인다.

삼성토탈은 TPM 활동이 공장의 안정적 가동 수준을 넘어 에너지·원가 절감 및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 현장 운전요원들의 역량 배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봤다. , 단순히 설비만 운전하는 게 아니라 해박한 설비보전 지식으로 무장하고 전체 설비 프로세스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멀티플레이어형 엔지니어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운전요원들의 역량 배양을 위해 단계적으로 TPM을 추진해나갔다. (그림2 삼성토탈 TPM 마스터플랜)

1단계: LIFT 21(1997∼2002) 설비별 문제점 개선에 중점을 두고 운전요원들의 설비에 대한 능력 배양에 초점을 뒀다. 이를 위해 공무팀 요원의 15% 정도를 생산팀으로 발령냈다. 공무팀과 생산팀 직원들이 한데 어울려 근무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원료/ 화성/ 방향족/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 5개 사업부에 3 1(기계·계장·배관)로 공무팀 요원들이 파견됐다. 이들은 소속된 사업부 공장에서 설비 보전 활동을 하면서 공장별로 교안을 따로 작성해 틈날 때마다 기술 전수 교육을 실시했다.

2단계: GPS-520(2003∼2007) 엔지니어로서의 역량 강화에 더욱 중점을 두면서 전체 공정을 중심으로 개선 활동을 전개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운전요원들에 대해 좀더 체계적인 설비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 ‘PE(Production Engineer) 교육과정을 개발했다. PE 교육과정은 말 그대로 생산 설비에 관한 전문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과정으로, 대개 공업고등학교나 전문대를 나온 현장 운전요원들을 4년제 공과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에 비견할 수 있는 전문가로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경력 10년차 이상 운전요원들을 대상으로 4개 부문으로 커리큘럼을 구성, 과목당 4일씩 집합 교육을 시켰다. 설비관리에 필요한 기초이론부터 실제 공장 트러블 케이스 스터디를 다루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론과 실습 교육을 겸했다.

3단계: ACT-100(2008∼2011)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예방하는 계획보전을 공고히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기존 PE 2급 프로그램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PE 1급 교육과정(회전기계, 전기·계장, 고정기계·검사 등 총 3과목 각 26일씩 교육)을 개설, TPM에 대해 사내 컨설팅까지 담당할 수 있는 수준의 설비 전문가 양성과정을 둠으로써 직원들의 역량 업그레이드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의와 도전정신 북돋는 제안제도 통해 혁신 지속

보통 유화산업은 변화와 창조에 둔감하고 보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삼성토탈은 공장을 처음 가동할 때부터 직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북돋우기 위해 힘써 왔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해 온 사내 제안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최종영 팀장은경력과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전 사원이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제안하는 문화가 생활화된 게 삼성토탈의 경쟁력이라며기존 관행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제안하도록 독려하는 제안제도는 TPM과 함께 삼성토탈의 지속적 혁신을 이뤄 온 양대 산맥이라고 강조한다.

삼성토탈의 제안제도는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주로 생산 현장에서 분임조 형태나 각 부서 단위로 이뤄져 왔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사내 인트라넷에 별도 시스템을 구축, 아이디어의 공유와 관리가 손쉬워지면서 전사 차원으로 확대 발전됐고, 2009년부터 현재의왓 이프? 와이 낫!(What if? Why not!)’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삼성토탈의 사내 제안제도 What if? Why not!’ 참조)

삼성토탈은 지난 20여 년간 지속해 온 사내 제안제도를 통해 상당한 비용절감 및 생산성 제고 효과를 거둬왔다. 대표적인 예가 방향족 공정에서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에너지 절감효과를 거둔핀치 프로젝트(pinch project)’.

삼성토탈은 유화사로는 드물게 NCC와 방향족 공장을 모두 갖고 있다.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고온 가열해 PX나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방향족 제품을 생산하는 방향족 공장은 대개 석유화학회사가 아닌 정유회사에서 많이 운영한다. 하지만 삼성토탈은 회사 설립 초기 유화업계 후발 주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방향족 공장을 설립했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플랜트의 증류탑(distillation column) 중 하나에 ‘HC타워라는 글자가 써 있다. 바로 김현철 방향족 공장장의 이니셜을 딴 증류탑이다. 공장에 개별 직원의 이름이 붙은 설비가 들어선 이유는 바로 김 공장장이 탁월한 에너지 절감을 가능케 한 증류탑 및 초고효율 공정시스템의 개발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토탈 내 방향족 공장은 반응기(reactor), 증류탑, 압축기, 열교환기(heat exchanger) 450개에 달하는 화학장치가 약 500km에 달하는 파이프로 연결돼 있었다. 공장 내 증류탑은 두 개로서 첫 번째 증류탑(1)에서 혼합된 원료(벤젠+톨루엔+자일렌)를 고온 가열해 벤젠(B)을 우선적으로 분리해낸 후 나머지(톨루엔·자일렌 혼합물)를 두 번째 증류탑(2)으로 넘겨 톨루엔(T)과 자일렌(X)을 재분리해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첫 번째 증류탑 하부에서 톨루엔과 자일렌이 분리되다가 다시 혼합된 후 두 번째 증류탑에서 분리를 반복하는 비효율적 구조로 돼 있어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문제가 있었다.

2000 11, 당시 원료기술팀 차장이었던 김 공장장은 에너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개선책이 없는지 고민하며 정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른 방안을 검토하던 중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증류탑을 추가 증설하되 공정순서를 바꾸는 방법이었다. , 증류탑 1(3)를 기존 증류탑 앞에 추가 설치하고 새 증류탑에서 혼합물을 전처리해 기존 1번과 2번 증류탑에 동시에 공급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하면 증류탑 간 분리 공정(3→1, 3→2)은 기존처럼 두 단계(1→2)로 유지되면서도 혼합과 분리가 반복되던 기존 공정의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어 획기적으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와 함께 김 공장장은 -20℃에서 900℃ 사이를 오가며 냉각과 가열을 반복하는 열교환망 재배열을 통해서도 에너지 절감효과를 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공정 내의 뜨거운 유체와 차가운 유체 간 열교환을 시키는 순서와 방식을 전반적으로 재배치하고 최적화함으로써 외부에서 투입해야 하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발상이었다.

삼성토탈의왓 이프? 와이 낫!(What if? Why not!)’은 삼성토탈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내 제안제도다. 이름 그 자체가 역발상(What if?)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도출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구체화(Why not!)하자는 삼성토탈 제안제도의 철학을 반영한다. 1991년부터 실시해왔던 제안제도를 2009 8월 한층 업그레이드하면서 현재의 ‘What if? Why no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스템인 ‘What if? Why not?’에선 아이디어의 실행관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고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 아이디어 제안을 시스템에 등록하면 메일을 통해 심사요청, 결과통보, 업무협조, 내용보완, 개선안 검토, 댓글 알림 등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업무 포털 안에서도 제안 현황을 직접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또 기존에는 제안을 입력할 때 현상/ 문제점/ 개선안/ 개선효과 등 4가지 항목으로 구분해서 적도록 했지만, 새로 바뀐 시스템에서는 단순하게 제안 내용 하나만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들을 손쉽게 비교 검토할 수 있도록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댓글도 활성화해 아이디어 제안과정이 일방 소통이 아니라 다자간 쌍방향의 공개된 소통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제안은 크게 실시제안(제안자 본인이 어떤 개선 활동을 실제로 실시한 후 올리는 제안)과 아이디어(어떠한 업무를 개선했으면 하는 아이디어. 추후 개선 활동은 제안자 본인이 할 수도 있고 타인이 할 수도 있음)로 나누어 평가한다. 실시제안의 경우 창의성/ 노력도/ 재무성과/ 체질개선/ 지속성 등 5가지 기준에 따라, 아이디어는 창의성/ 실시가능성/ 재무성과/ 체질개선 등 4가지 기준에 따라 각각 배점을 매겨 상금을 수여한다. 실시제안의 경우 1등급에서 7등급(7등급 상금 2000∼1등급 상금 100만원)으로 나눠 시상을 하며, 특히 경영 기여 효과가 큰 1등급 제안은 따로 전사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평가한 후 최대 2000만 원의 상금(S등급)을 수여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훌륭했지만 경영진들은 공정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김 공장장의 제안을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특히 증류탑 관련 이론은 조사 결과 1950년대에 학계에 발표된 사례이긴 했지만 실제 현장에 적용한 사례가 없어서 섣불리 도입을 결정하지 못했다. 증류탑 증설에만도 40억 원이 드는데다 실패 시 방향족 공장 전체는 물론 SM 공장, PTA 공장(2000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삼성종합화학이 삼성석유화학에 매각) 등 벤젠이나 자일렌을 원료로 받아 운영되는 단지 내 타 공장들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어 경영진의 우려가 컸다. 나중에 증류탑 상세 설계를 맡았던 삼성엔지니어링 측도 처음엔 절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정도였다. 열교환 망을 재배치한다는 것도 열교환기만 120여 개에 달하므로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 공장장은 자기 키만큼 서류가 쌓일 정도로 문헌을 찾아가며 관련 이론을 독파했다. 그리고 무려 6개월 동안 열교환기의 추가·폐쇄 및 배치변경, 에너지 유입량 및 투입 순서 변화, 최적 가열·냉각온도 조합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를 고려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시, 잠재적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며 경영진을 설득했다. 결국 2001년 하반기부터 증류탑 상세 설계에 들어가 2002 4월 제작을 마치고 2002년 정기보수 기간 중 증설공사를 마무리했으며 그 해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삼성토탈은 증류탑 추가 건설과 열교환망 재배치를 통해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에너지를 20% 절감함으로써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기존 증류탑 2기의 부하를 50% 낮춤으로써 추가 증산도 가능해졌다. 김 공장장은 초고효율 공정시스템 구축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5자랑스런 삼성인상까지 받았다.
 

발상의 전환 통한 동반성장 전략 추구

삼성토탈은 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종산업 간, 경쟁업체 간 동반성장 전략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정유회사인 현대오일뱅크와의 수소 협력 사례나 경쟁사인 롯데대산유화와의 프로필렌 전용 생산공장 일원화 작업 등이 대표적 예다.

2002년 말, 비용 절감과 단지 최적화를 위해 고심하던 이재학 기술기획담당 상무(당시 기술기획팀장)는 이웃 회사인 현대오일뱅크와 삼성종합화학이 같은 원료(나프타)를 다른 목적으로 분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현대오일뱅크 같은 정유회사에선 원유를 정제할 때 탈황(脫黃)을 위해 정제된 수소를 집어넣어야 한다. 투입해야 하는 수소의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대개 나프타를 깨서 수소를 분리해내는 수소 제조공장을 따로 두고 있다. 당시 현대오일뱅크는 2개의 수소 제조공장을 갖고 있었다. 반면 석유화학공장은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등 기초 유분을 얻기 위해 나프타를 분해한다.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질이 낮은 수소가 발생한다. 당시 삼성종합화학은 방향족 공정 과정 중 발생하는 수소를처리하기 위해 발전설비에 투입하는 원료로 쓰고 있었다.

업종은 다르지만 이웃한 두 회사 간 협력가능성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이재학 상무는만약 이 두 회사가 같은 회사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정제 설비를 통해 삼성종합화학이 고순도의 수소를 생산해낸다면 저부가 연료로 수소를 허비하는 게 아니라 정유회사에 판매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현대오일뱅크로선 나프타를 직접 분해해 수소를 얻는 것에 비해 삼성종합화학으로부터 수소를 공급받는 게 훨씬 저렴했고, 삼성종합화학도 부산물 가스로부터 새로운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두 회사 모두 이익이 되는 윈윈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종합화학은 수소 제조 및 정제에 들어가는 원가구조를 현대오일뱅크에 전격 공개하며 협력을 제안했다. 원유 정제에 꼭 필요한 핵심원료를 외부회사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엔 머뭇거리던 현대오일뱅크도 비용절감효과가 훨씬 큰 것을 보고 적극 동참했다. 두 회사는 발전기 연료로 사용하던 수소를 삼성종합화학이 정제해 현대오일뱅크에 팔되 이로 인해 생기는 비용절감에 따른 이익은 양사가 반반씩 나누기로 하고 수소 협력 프로젝트에 최종 합의했다. 그 결과 2003년 삼성종합화학이 합작사로 변신한 후 이뤄진 첫 투자가 바로 방향족 공장 내 수소 정제설비 설치(135억 원)였다. 이재학 상무는원래 합작사 투자 규정상 100억 원 이상의 투자는 프랑스 토탈 본사에 보고한 후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프랑스 측에서 한국 합작사로 부임한 부사장이 이 이야기를 듣더니본사에 사후에 승인을 받을 테니 바로 진행하라고 했다그만큼 리스크가 없고 기대수익률은 높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2004년 연 1.5t 규모로 시작(현대오일뱅크 필요량 4t)한 양사간 수소협력은 이제 평균 3t 규모로 늘어났다. 현대오일뱅크는 현재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2개의 수소공장 중 1개의 운영을 중단했을 정도다.

삼성토탈의 프로필렌 전용 생산공장인 OCU(olefin conversion unit)도 동반성장의 결정체다. 650억 원이 투입된 OCU는 에틸렌과 부탄가스 등을 혼합해 프로필렌을 만드는 설비다. 연간 생산량은 20t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특이한 점은 공장은 삼성토탈 소유지만 여기서 나오는 프로필렌을 호남석유화학과 LG화학이 함께 나눠 쓰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토탈은 2006년 초 10t 규모의 OCU 공장을 짓기로 하고 공장 설립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때마침 대산유화단지 내 경쟁업체인 롯데대산유화(현 호남석유화학)도 비슷한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계획대로라면 같은 단지에 있는 이웃 회사의 부지에 10t 짜리 OCU 공장 2개가 각각 세워질 판이었다. 이재학 상무는 이때도 현대오일뱅크와의 수소 협력사례에서와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만약 우리가 한 회사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해답은 간단했다. 10t 짜리 공장을 따로따로 지을 게 아니라 두 회사가 합쳐서 20t짜리 공장 하나를 지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재학 상무는 곧바로 롯데대산유화 실무 담당자와 협의를 시작했다. “반경 1km안에 10t짜리 공장 2개를 따로 짓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두 회사가 각각 설비를 지으면 총 900억 원의 공사비가 필요하지만 20t 규모로 단일 공장을 세우면 650억 원이면 충분하다등의 사유를 들어가며 협력을 적극 추진했다. 우선이미 각 사 모두 투자승인까지 난 마당에 무작정 기다릴 수 없으니 3개월 안에 의사결정을 하자며 신속한 결정을 하기로 양사가 합의했다. 그 후 협상과정 중 몇 가지 이견이 있었지만 두 회사가 힘을 합치면 250억 원을 절감하고 최적운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이 같은 결실의 배경에는 손석원 사장(당시 대산공장 공장장)의 뚝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손 사장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대산유화단지 전체 최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인근 유화사의 공장장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등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결국 2006 5, 공장은 삼성토탈 땅에 짓되 롯데대산유화는 OCU 공장에서 프로필렌 생산시 파생되는 부산물인 이소부텐(롯데대산유화에서 생산하는 고가 건축자재 소재 MMA의 원료) 전량을 넘겨받는 식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두 회사의 동반성장 협력에 LG화학도 추후 가세했다. 이에 따라 LG화학은 롯데대산유화처럼 C4 유분을 삼성토탈에 주고 이에 상응하는 프로필렌을 받고 있다. 이로써 2008년 완공된 OCU 설비에서 나오는 연간 20t에 달하는 프로필렌은 삼성토탈이 10t, 롯데대산유화가 8t, LG화학이 2t씩 각각 할당받고 있다.

TPM의 성공적인 추진에서부터 시작된 삼성토탈의 직원존중과 협력문화는 현재에도 계속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토탈의 직원들은 대부분 대산공장 인근에 위치한 사원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한다. 삼성토탈은 이곳에 학생 자녀들이 방과 후에 모여 공부할 수 있는 최신 설비의 도서관을 개관한 것은 물론 운영 경비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 해당 분야를 전공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밤마다 도서관에 나와 교대로 상주하면서 자녀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등 선생님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한 대산에 거주해야 하는 직원 가족들을 위한 작은 배려인 셈이다. 자녀들이 함께 서울대를 견학하고 서울대 교수나 서울대 재학생들의 강의를 듣는 시간도 갖고 있다. 변형섭 삼성토탈 총무팀장은이런 작은 배려들이 모여 애사심과 회사발전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시사점 및 도전과제

출범 초기부터 위기에 봉착했던 삼성토탈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구조조정에 매진했고 피나는 노력 끝에 대규모 해외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합작사로 전환된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신규 투자를 전개, 규모의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유화업계에서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공장 바닥을 쓸고 기계를 닦는 게 회사 경영실적 개선에 당장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직하게 TPM을 지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최고 경영진들이 솔선수범해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원들의 역량을 배가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왔고, 기술인력을 우대하는 풍토를 조성, 조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자칫 한물간 경영기법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는 사내 제안제도 역시 꾸준히 실행,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신기술은 물론 고부가가치 신제품을 개발해낼 수 있는 기본 토양을 만들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TPM은 기존 설비의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장치산업에서 매우 효과적인 혁신 활동이라며삼성토탈은 TPM이라는 경영 혁신활동의 큰 틀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생산성의 향상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그는특히 작업자들이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설비를 보존하고 트러블을 줄여 재해를 예방하도록 한 점, 사내에 있는 운전원들의 교육과 동기부여 활동을 통해 기술수준을 향상시킨 점이 돋보인다삼성토탈이 경영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TPM 활동의 성과가 당장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데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회사 내 인간존중사상을 정립하고 작업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삼성토탈은 현재 석유화학회사로서는 드물게 NCC와 방향족 공장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을 십분 발휘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삼성토탈은 과거 방향족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반제품들을 단순 난방용 연료나 페인트·세정제용 용제 등으로 판매해 왔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와의 수소 협력사례에서도 보이듯,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속적인 공정개선 등을 통해 각종 부산물을 부가가치가 높은 에너지 제품으로 변환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기존 공정원료, 보일러유 등으로 사용되던 부생연료를 고부가가치 제품인 등유, 항공유, 선박유, 휘발유 등으로 전환시키는 설비투자( 450억 원)를 완료해 석유제품시장에도 진출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툭하면 공장가동에 문제가 생기기 일쑤였던 삼성토탈은 안전하고 운영 효율성이 높은 화학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으며, R&D 기술을 선도하는 우량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면서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구축, 혁신의실행력을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토탈은 오는 2015년까지 매출액 10조 원, 영업이익 1조 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삼성토탈은 항공유, LPG 등 에너지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화학공정에서 생산되는 부산물을 가공해 항공유와 고옥탄가 프리미엄 휘발유를 생산, 전량 싱가포르와 호주 등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석유화학제품 위주인 사업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인 셈이다. 본격적인 정유업 진출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 수출물량이 늘어난다면 국내 정유사들과의 경쟁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에너지 중 석유분야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대체에너지 분야의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삼성토탈이 이런 변화추세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도 주목해야 한다.

삼성토탈은 삼성과 토탈의 합작사다. 따라서 토탈의 풍부한 사업경험을 배울 수 있었고,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누리거나 마케팅 활동 등의 공조가 가능했다. 또한 토탈 측은 삼성토탈을 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라 생각하고 합작 이후 지금까지 총 12000억 원에 이르는 투자를 지속, 오늘날 삼성토탈을 연 매출 5조 원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합작사로서 중요한 의사결정에 양측이 모두 동의를 해야 하므로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점이나 해외시장 진출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은 비단 삼성토탈만이 아니라 모든 합작사들에 공통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경쟁업체인 호남석유화학은 카타르와의 합작법인 설립추진(2006),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인수(2010) 등 해외 진출에 매우 적극적이지만, 삼성토탈은 2009년 중국 동관에 진출한 것 이외에는 더 이상의 해외진출을 하지 않고 있다.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는 게 반드시 최선은 아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동아시아 시장을 넘어서는 국제무대로 수출시장 확대 또는 직접 진출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윤지온(23,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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