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Z Consulting

밥솥 & 면도날, 통찰의 노하우는 비슷하다

79호 (2011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 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사례 1  밥솥 온도의 딜레마
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있다. 밥이 푸슬푸슬 퍼석하다. 밥을 빨리 맛있게 지으려면 고온으로 가열해야 한다. 그런데 고온으로 가열하면 물이 밖으로 빠르게 증발해버려 밥이 퍼석하게 된다. 그렇다고 저온에서 가열하면 밥알이 잘 익지 않거나 익히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온도를 올려야 할까? 내려야 할까?
 
 사례 2  면도날의 힘에 관한 딜레마
안전 면도기의 창시자 질레트는 면도를 할 때 면도날에서 자꾸만 수염이 빠져 나와 삐뚤삐뚤하게 깎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시간 고민했다. 털을 깎자면 면도날로 털에 어느 정도 힘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털은 부드럽고 가는 섬유질이기 때문에 면도날로 털에 힘을 가하면 털이 눌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털을 잘 깎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털은 잘 깎이고, 어떤 털은 면도날에 눌려 잘 깎이지 않게 된다. 털에 힘을 강하게 가해야 할까? 약하게 가해야 할까?
 
 사례 3  태양전지 광(光)효율의 딜레마
빛을 전기로 바꾸는 시스템인 태양전지는 여러 소재로 만들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소재가 실리콘으로 반도체 성질을 가진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대역이 좁아 이론적 변환 효율이 30% 미만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매우 넓은 파장대를 가진 태양 에너지 중 실리콘 태양전지는 극히 일부 파장대에만 반응해 태양광 가운데 고작 30%만 전기로 바뀐다는 소리다. 이 점에 주목해 엔지니어들은 변환 효율을 높일 목적으로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파장대의 태양광까지 발전에 활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방법 중 하나가 흡수 대역이 넓어지도록 반도체 조성을 아예 바꾸는 일이다. 하지만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인 반도체 물질의 조성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좀 더 빠른 방법으로 흡수 대역이 각각 다른 물질을 겹겹이 배치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여러 층을 쌓는 이 공정은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겹겹이 쌓은 층에 태양광이 흡수돼 전기로 변환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여러 층을 쌓아야 할까? 쌓지 말아야 할까?
 
문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밥솥에도 면도기에도 태양전지에도 있다. 각 분야의 어려운 문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전문가에게도 똑같이 어렵다. 어려운 문제를 대하는 전형적 태도 중 하나는 자신에게만 그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려운 문제들은 문제의 본질과 해결안이 서로 닮아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위 세 가지 사례에서 문제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면, 해결안의 기본 원리 역시 한 가지란 것을 통찰할 수 있다.
 
 사례 1 해결안  밥솥 온도의 딜레마
밥솥에 존재하는 문제의 본질을 기술적 모순의 서식, 즉 ‘어떠한 접근(app-roach)을 하거나 특정 조건(condition) 하에서는 시스템에 유익한 효과(good)가 나타나지만 동시에 다른 유해한 효과(bad)도 발생한다’는 형태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밥솥의 온도를 높이면(approach or condition), 쌀이 잘 호화돼 밥맛이 좋아지나(시스템의 본질적 기능 수행 원활, good), 쌀을 호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인 물이 제거돼 호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밥이 퍼석해진다(역기능 발생, 시스템의 본질적 기능 수행 원활하지 않음, bad).” 이 문제의 해결안은 온도를 ‘적당하게’ 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밥맛을 좋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도는 100도 이상으로 가열을 하면서도 물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압력(반작용)을 걸어주는 해결책은 어떨까? 이런 고압을 걸어주는 장치를 우리는 압력솥이라고 부른다. 압력솥이 없던 시절엔 허황된 소리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상식이다.
 

 
 사례 2 해결안  면도날의 힘에 관한 딜레마
이번엔 털과 면도날 사이에 일어나는 기술적 모순을 정의해 보자. 털을 깎기 위해서는 면도날로 털에 힘을 가해야 한다. 그런데 털은 힘이 없어서 잘 눌린다. 털을 잘 깎기 위해 힘을 가하면 가할수록 털이 더 눌린다. 그렇다고 약한 힘을 가하면 털은 잘 깎이지 않는다. 기술적 모순으로 통찰해 보면 이렇게 쓸 수 있다. “털에 힘을 강하게 가하면(approach or condition), 털은 잘 깎이나(good), 털이 눌리기 쉽다(bad).” 이런 문제를 만나면 ‘적당히’ 힘을 가한다는 해결안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린다. 그러나 질레트의 성공 사례가 말해주듯이 더 적절한 해결안은 털이 면도날에 눌리지 않도록 반작용 역할을 해 주는 가로대(전기면도기에서 털을 잡아주는 철망 형태의 구조물)를 설치하는 방법이었다. 질레트 이전에는 털이 눌리지 않는 면도기란 웃기는 소리였지만 질레트 이후에는 상식이다.
 
사례 1과 사례 2를 비교해 보면, 반작용의 구체적인 종류는 다르지만 역기능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능의 ‘대상물(사례 1은 물, 사례 2는 털)’에 ‘미리 반작용을 가해둔다(사례 1은 가압, 사례 2는 눕지 않도록 하는 가로대)’는 해결안의 본질은 동일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문제의 본질도 두 사례 모두 같다는 점이다. 두 사례 모두 문제는 다르지만 시스템의 기능 수행을 위해 가하는 작용이 오히려 시스템의 본질적 기본 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갈등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문제의 본질이 같다면 분야는 다르더라도 해결안의 본질은 같을 가능성이 크다. 관건은 문제와 해결안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다.
 
 사례 3 해결안  태양전지 광(光)효율의 딜레마
 
이제 태양전지 광효율의 딜레마를 살펴보자. 이 문제에 존재하는 기술적 모순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각각의 파장에 대응하는 태양전지를 만들어 층층으로 부착시키면(approach or condition), 여러 파장의 빛을 발전에 활용해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으나(good), 여러 층이 빛을 흡수해 중간에 광(光)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에 전기 생산 효율이 감소할 수 있다(bad).” (악영향은 생산 효율 저하 외에도 제조 공정이 매우 까다롭다거나 제조 비용이 높아진다는 점도 있지만, 기술적 모순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한 가지나 주요하게 다루는 이슈에 집중해 하나만을 선정한다.) 사례 3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면, 비록 사례 1, 2와 다른 분야의 기술이지만, 기술적인 해결안이 기능성과 효율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악영향도 함께 발생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광이 전기로 변환될 때의 변환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연구 개발 방향은 태양광에 대한 변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개 반도체의 기본 물질(여기서는 실리콘)은 고정시켜 두고 그 기본 물질에 추가할 물질의 종류를 주기율표에서 찾아 하나씩 넣어 보면서 전기 변환 효율이 높아지는지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방법을 쓴다. 만약 추가할 물질이 한 가지만으로 부족하다면 두 가지 물질을 골라 물질의 조성과 추가되는 공정, 혹은 이전과 이후 공정을 미세 조정한다. 태양광이 전기로 변환하는 효율을 향상시키는 또 다른 연구개발 방향은 기존에는 매우 좁은 파장대의 태양광만을 전기로 변환시켰다면, 넓은 파장의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빛의 여러 파장 대역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소자 혹은 조성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연구개발에 너무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방향이 아닌, 빨리 시도해볼 수 있는 다른 대안으로 텐덤형 태양전지(tandem cell)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정(A) 파장 대역을 전기로 변환하는 데 좋은 성능을 보이는 물질로 태양전지를 만들고 다른(B) 파장 대역에 적합한 물질로 또 다른 태양전지를 만들어 몇 층씩 쌓는 방식이다. 하지만 텐덤형 태양전지는 태양광이 여러 층을 통과하는 동안 상당량이 전기 생산을 못한 채 유실된다.
 
후공정이나 고객이 바라는 기능은 ‘빛을 가능한 많이 전기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여러 장 쌓을수록 태양광 유실률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단 한 층만 쌓는다면 태양광 유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파장을 전기로 변환할 수 있는 반도체가 없는 기존의 상황에서 단 한 층으로는 다양한 파장대의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시킬 수 없다.
 
사례 3이 사례 1, 2와 거의 동일한 문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만큼 사례 1, 2의 해결책 도출을 위해 적용한 방법을 사례 3에도 생각해 보자. 태양전지 기능의 본질은 무엇인가? 태양광을 전기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태양전지가 기능을 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바로 빛(전문적으로는 광량자)이다. 사례 1, 2 해결안의 구조를 심층적으로 살펴보자면, 밥솥에서는 기능의 대상인 물/수증기에 반작용을 가했고, 면도기에서는 기능의 대상인 털에 반작용을 가했다. 사례 3에서도 태양전지가 기능을 가하는 대상인 빛에 밥솥이나 면도기처럼 반작용을 가할 수는 없을까? 빛은 다양한 파장대역을 가지고 있다. 현재 방식인 서로 다른 파장대역에 대응하는 대신 빛에 반작용을 가해 하나의 파장을 가진 빛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러 층을 쌓지 않고도 여러 파장의 빛을 전기로 바꾸는 게 가능하게 돼 발전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 방법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빛의 파장을 바꿔 전기 생산 효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 최적의 파장대역보다 긴 파장의 빛은 파장을 줄여주는 상향변환(up-conversion) 형광체를, 최적의 파장대역보다 짧은 파장의 빛은 파장을 길게 바꿔주는 하향변환(down-conversion) 형광체를 도입한다면, 여러 파장에 대응하는 여러 층의 텐덤 구조가 아니더라도 동일한 태양광이 가해졌을 때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여러 가지 태양전지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기술로 최근 특허 등에서 많이 보고되고 있다.
 
위에서 든 사례처럼 서로 다른 분야의 어려운 문제는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해결안의 심층 구조 역시 그렇다. 다른 분야의 상식적인 해결안을 통해 분야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유사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다면 그것이야말로 신뢰성 높은 해결안의 후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통찰의 과정 및 형식화가 한 번에 끝나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다른 분야의 상식적인 해결안을 통해 실질적인 해결안을 제시해 준다는 측면에서 수고를 감내할 가치가 있다.
 
가끔 질문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통찰력은 선천적 능력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김연아 선수가 얼음판에서 하는 점프가 재능 때문이 아니냐는 말과 같다. 김연아 선수는 수천 번, 수만 번의 연습과 실패를 통해 자신의 점프를 만들었다. 본질의 통찰이라는 사고의 점프 역시 김연아 선수처럼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진다. 이미 아는 문제라 하더라도 각도를 달리 해 볼 수 있는 통찰력은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다. 절대로 선천적인 능력도, 신비로운 능력도 아니다. 문제의 본질, 기술적 모순을 형식화, 추상화하려는 노력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후천적인 것이다. 트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적용에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본질의 통찰이라는 점프 과정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찰은 극히 실용적인 스킬이다. 통찰해낸 문제의 본질들을 서로 비교해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른 분야 문제들의 해결안을 적극적으로 발굴함으로써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활동이 트리즈의 핵심이다. 이런 활동을 ‘재발명’이라고 부른다. 재발명의 전제 조건은 서로 다른 분야에 서로 다른 기술 용어로 기술된 문제들의 유사성을 통찰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문제의 본질 혹은 시스템의 본질을 통찰해 모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기술적 모순 정의, 혹은 기능 정의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통찰은 노력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송미정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triz_institute@hanmail.net
 
필자는 KAIST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 전문가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200건 이상의 연구 개발 과제 컨설팅을 수행했다. 저서로 <회사를 살리는 아이디어 42가지(공저)>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