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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확실히 달라야 살아남는다” 기아 ‘씨드’, 유럽에 뿌리내리다

이종호,김유영 | 76호 (2011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DBR은 현대·기아자동차 마케팅 아카데미와 함께 최신 글로벌 마케팅 사례를 연재합니다. 현대·기아차의 판매, 마케팅, 상품 관련 지식을 보유한 마케팅 아카데미는 주요 대학 경영학 교수들과 함께 내부 임직원 교육을 위해 글로벌 경영 사례를 개발했습니다. DBR은 이 가운데 독자 여러분들께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엄선해 시리즈로 전합니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도전과 응전의 스토리를 통해 글로벌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연간 생산 규모 30만 대의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유럽 시장을 공략할 전략 차종을 여기서 생산할 것이다. 이 차량의 유럽 시장 출시를 책임지고 성공시켜라.”

2005 3월 기아자동차 동남아 지역 법인에 근무했던 이순남 부장1 은 본사의 호출을 받고 이 같은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는 곧 유럽으로 갔다. 기아차 유럽총괄법인(Kia Motor Europe)의 마케팅 디렉터가 그의 직함이었다. 기아차 유럽총괄법인이 위치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무실에 마케팅 담당 직원은 고작 2명이었다. PR을 담당하는 독일인과 일본 미쓰비시 출신의 상품 담당자가 전부였다. 한숨이 나왔다.

더욱이 당시 시내에서는 한인타운이 아닌 곳에서 현대차나 기아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럽 시장에서 기아차의 인지도는 8∼9%에 그쳤다. 그나마 쏘렌토나 카니발 등 유럽 시장에서 비주류인 차종(RV)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지도였다. 유럽 승용차 시장에서 기아차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슬로바키아 공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파일럿 생산을 준비 중인 라인을 보니 다행히 자동차 품질은 폭스바겐이나 포드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남아 있었다. 판매 목표량이 굉장히 높게 설정돼 있었다. 당시 이 차량과 동급(준중형 차량)인 쎄라토는 유럽 시장에서 연간 2만여 대 정도 팔리고 있었다. 판매 순위는 20위 밖이었다. 그런데 이 유럽 전략 차량의 연간 목표 판매 대수는 12만 대. 무려 600% 높은 목표가 설정됐다. 반면 마케팅 예산은 턱없이 적게 책정돼 있었다.

50만 평의 광활한 공장 부지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10억 유로가 투입된 이 공장의 명운을 가를 마케팅 책임자로서 자칫 잘못하면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극복하고 아시아 자동차에 대한 보수적인 현지인들의 선입견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는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인 유럽에서 승승장구하는 기아차의 유럽전략 차종 씨드(Cee’d)에 얽힌 사연이다. 씨드는 유럽 시장을 겨냥해 출시된 전략형 모델로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2006년 말 출시된 씨드는올해의 차(Car of the Year)’ 평가에서 준중형급 최고의 차로 선정됐다. 현재 푸조 308, 아우디 A3, BMW 1시리즈, 메르세데스 벤츠 A클래스 등 쟁쟁한 차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010년 유럽의 경기 침체로 유럽 자동차 시장이 위축됐지만 동급에서 씨드의 판매 순위는 9위로 전년(11)보다 두 계단이나 올라섰다. 슬로바키아 공장에서는 주문량이 늘어나면서 미리 주문 받은 물량만 생산하고 있다. 씨드는 유럽 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수확을 안겨줄 씨앗(Seed), 앞으로 전진(Proceed)하고 경쟁차를 압도하는(Exceed) 모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DBR은 기아차가 한정된 마케팅 자원과 취약한 브랜드 인지도를 어떻게 극복하고 씨드를 성공적으로 출시했는지 현대·기아자동차 마케팅아카데미와 함께 기아차 마케팅 현지화 전략을 분석했다.

1.밸류 체인 전반을 현지에서

당시 서유럽 자동차 시장은 성숙 단계였다.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자동차 시장이 급팽창했다. 기아차는 2001년부터 유럽 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력 차종이 카니발과 쏘렌토로 이들 차량이 속한 시장은 세그먼트 규모가 작은 틈새 시장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기아차는 유럽에서 가장 경쟁이 심하지만 시장 규모가 큰 준중형차 시장(C1 세그먼트로 명명)에 뛰어들기로 했다. 30(부모 나이 기준)의 소규모 가족으로 도심에 거주하며 사무직인 세그먼트를 타깃으로 했다. 이들 타깃 고객들은 품질과 신뢰성, 가치 극대화와 관련한 니즈가 컸다. 이들의 성향은 매우 합리적이며 가격, 품질, 소유 비용, 브랜드를 중시한다.

당시 유럽 시장에서 준중형차의 연간 수요는 400만 대. 25개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각 브랜드별로 모델 5가지를 판매한다면 125가지 모델이 400만 대 규모의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단순 계산하면, 각 브랜드별로 연간 3만 대씩 판매되는 셈. 연간 40만 대 이상 판매되는 모델은 포드 포커스, 폭스바겐 골프, 푸조 307 3종 정도였다. 이어 도요타의 코롤라와 벤츠 A class가 각각 20만 대, 18만 대 팔렸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기아차는 씨드를 출시하기 위한 준비를 차량 양산 2년여 전부터 일찌감치 시작했다. 2004 4월 본사는 씨드의 판매 전략을 설정한 뒤 유럽 전략을 실행할 태스크포스팀(TFT)을 발족했다. 본사가 전략을 수립하는 동시에 유럽총괄법인을 지원했다. 유럽총괄법인은 유럽 각국의 법인/대리점의 마케팅 전문가로 이뤄진 출시위원회(Launching Committee)를 운영해 자문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2004 4월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연간 3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착공했다. 유럽에서 직접 전략 모델을 개발하고 생산해 현지화된 마케팅을 펼치기로 했다. 현지 투자로 유로화 강세에도 대응할 수 있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현지화했다. 유럽 소비자들이 유럽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 유럽 소비자들은 같은 포드 자동차라도 미국의 포드, 영국의 포드, 독일의 포드를 구분할 만큼 유럽 현지에서 제조한 차량을 선호한다. 기아차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에서 명성을 날리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수석 부사장(CDO)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유럽 본사 사옥의 기아디자인센터에서 현지인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총 인원은 70여 명으로, 이들의 출신지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슬로베니아, 미국 등 다양했다. 이들은 환경 안전성, 공간 편의성, 주행성능, 유지관리 비용 등의 측면에서 1, 2위를 다투는 폭스바겐 골프보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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