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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Science 2.0

항공사는 봉이 김선달? 미국식 초과예약의 경제학

장영재 | 70호 (2010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경영 현장에 수많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은 전략, 기획, 운영,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첨단 수학·과학 이론을 접목시켜 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경영 과학은 첨단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 기술로 기업의 두뇌 역할을 하면서 경영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고 있습니다. <경영학 콘서트>의 저자인 장영재 박사가 경영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합니다.

미국에서 국내선을 자주 타다 보면 공항 게이트 앞에서 한국 공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을 가끔 목격한다. ‘예약된 승객이 초과돼 승객 몇 분은 이번 비행기를 탈 수 없다. 그러니 다음 비행기를 이용하실 수 있는 분은 직원에게 알려 달라는 안내방송이다. 비행기가 시내버스도 아니고 승객이 초과해 다음 편을 이용해 달라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항공권을 예약하고 운임을 지급하면 좌석을 할당받는데 어떻게 승객이 초과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좌석이 초과된 것을 알고도 돈을 받고 좌석을 팔았다는 말인데, 그럼 이것은 완전 사기가 아닌가?

미국 항공사들은 수요가 많으면초과 예약(overbooking)’이란 방식으로 정해진 좌석보다 조금 더 많은 좌석을 판매한다. 즉 좌석이 만석인데도 돈을 받고있지도 않은 좌석을 판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봉이 김선달 뺨치는 사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제 것인 양 팔았을지언정대동강 물이라는 확실히 존재하는 상품을 팔았다. 그런데 미국 항공사는 이미 다 팔려 없는 좌석을 버젓이 팔아 놓고 탑승 직전에 승객에게 다음 비행기를 타라고 하니, 이건 김선달보다 더한 사기꾼이 아닐까? 하지만 이초과 예약을 엄밀히 살펴보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익경영(revenue management) 방식을 채택한 항공사의 전략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익경영이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느끼는 고객의 가치에 따라 그 가격을 책정하거나 비즈니스 운영을 달리하는 경영 기법을 말한다. 초과 예약이 고객의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가격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고객이 항공권을 예약하고 결재까지 마쳐도 중도에 탑승 날짜를 변경하거나 탑승 당일 출발 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전체 예약의 15%나 된다.1  만약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수요가 많아 예약이 다 차버리면 예약 종료 후 좌석을 예약하려는 승객은 다른 항공편이나 다른 항공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출발 당일 예약한 승객이 나타나지 않거나 출발 직전 예약을 변경한다면 항공사로서는 손해를 본다. 탑승을 하지 않거나 출발 직전에 탑승 날짜를 미룬 손님이 사전에 좀 더 일찍 항공사에 통보를 해줬어도 항공사는 이들이 비운 좌석을 다른 고객으로 채울 수도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예약 변경이나 예약 취소 고객에게 위약금은 꼬박꼬박 챙기지만, 그 위약금은 항공료의 몇 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많은 승객을 싣고 운행을 해야 최대의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항공사로서는 출발 당일 승객의 갑작스러운 예약 변경은 막대한 비용인 셈이다.

바로 이런 손해를 줄이고자 착안한 방안이 정해진 좌석보다 좀 더 많은 좌석을 사전에 판매하는 초과 예약 방식이다. 항공사는 지난 수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출발하는 날짜의 비행편당 수요를 예측한다. 당일 수요가 실제 비행편 좌석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면 예약 부도율이나 출발 당일 취소율을 감안해서 실제 좌석보다 조금 더 많이 예약을 받는다. 즉 일부로 예약을 더 많이 받는 방법을 써서 당일 취소분을 상쇄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 늘 정확하게 맞지는 않는다. 실제로 출발 당일 평균 예약 취소율보다 실제 취소율이 휠씬 낮아서 탑승객이 좌석 수보다 더 많을 때도 있다. 이 때 항공사는 승객들로부터 자리를 양보할 신청자를 받는다. 물론 이에 대한 보상도 따른다. 자리를 양보하는 승객에게 비행기 항공권을 무료로 준다. 심지어 만약 다음 비행기가 이튿날 아침에 출발한다면 공항 근처에 숙박할 수 있는 숙박권도 제공한다. 이렇게 공짜로 제공하는 항공권은 거의 대부분 비수기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항공사는 부담 없이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보상 방식은 항공기 좌석과 같은 소멸성 상품에 더욱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소멸성 상품

소멸성 상품은 매출의 기회가 시간에 구속된 상품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2010 12 1일 인천에서 미국 워싱턴 DC로 가는 비행기는 이 12 1일 이전 좌석을 승객으로 채우지 못하면 남은 좌석의 상품 가치는 사라지고 만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더 이상 좌석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소멸성은 영화 티켓, 렌터카, 호텔 등 서비스 산업의 상품 특성이기도 하다. 객석이 텅 빈 채 영화가 상영되거나 렌터카가 고객 없이 하루 종일 주차장에 대기해 있거나, 손님이 들지 않아 호텔 방을 텅텅 비우고 하룻밤을 보내면 그 가치는 영원히 사라진다. 이와 같은 소멸성 상품의 특성상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빈자리가 있으면 반값에라도 승객을 채우는 게 빈자리로 뜨는 것보다 낫다. 영화관도 영화 시작 직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헐값에 파는 게 더 유리하다. 렌터카나 호텔도 마찬가지다. 물론 비행기에 승객을 한 명 더 태우면 승객 일인당 소요되는 비용, 즉 일인당 유류 비용 및 서비스 비용이 더 들겠지만 전체 비용을 감안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승객 99명을 태우고 운항하나 100명을 태우나 그 전체 비용엔 차이가 거의 없다. 호텔 객실 20개를 모두 채우나 19개 밖에 못 채우나 운영상 비용은 그리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객석을 다 채우고 영화를 상영하나 관객 한 명을 위해 영화를 상영하나 운영비용은 차이가 없다. 어차피 운영비용의 상당 부분은 고객이 있으나 없으나 관계없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고정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소멸성 상품의 특성으로 초과 예약이 발생할 때 좌석을 양보하는 고객에게 비수기에 사용할 수 있는 공짜 항공권을 제공하는 방식은 매우 유용한 보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비수기에 남은 좌석에 승객 하나 더 태운다고 해서 비용이 더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익경영

그렇다면, 초과 좌석 예약이 수익경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다시 언급하자면 수익경영은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라도 소비자가 느끼기는 가치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비즈니스 운영에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다음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A항공사는 서울-제주 구간의 노선을 오전 8시와 오후 1시 매일 2회 운행한다. 오전 8시 출발하는 노선은 당일 업무 출장으로 이용하는 승객이 많아서 수요가 늘 많다. 하지만 오후 1시 출발하는 노선은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편이다. 오전 8시 비행기를 예약한 승객들 중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반드시 이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승객이 있는 반면, 당일 아무 때나 도착해도 괜찮은데 시간대를 보니 8시가 더 나을 것 같아서 큰 의미 없이 이 비행기를 선택한 승객도 있을 것이다. 오전 8시 비행기의 총 좌석은 100석이다. 출발 하루 전 반드시 오전 8시 비행기를 이용해야 할 승객 50명이 좌석을 예약했고 당일 아무 때나 상관없는 승객 50명이 나머지 좌석을 예약했다고 가정하자. 항공사가 초과 예약을 하지 않는다면 오전 8시 비행기는 예약이 만료된 상황이다. 이때 만약 꼭 오전 8시 비행기를 이용해야 할 승객 10명이 추가로 이 항공편을 예약하려는데, 예약이 만료된 사실을 알았다면, 이들은 모두 다른 항공사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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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영재

    장영재

    - (현)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기획실 프로젝트 매니저
    - 매사추세츠 공대 생산성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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