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기업, 개인, 국가를 막론하고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는 오래 생존하는 것, 즉 장수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기업이 오랜 기간 생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자료 출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부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특히 80%에 가까운 기업들이 창업 후 30년 이내에 사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지 않고 오랜 기간 생존하는 100년 기업, 200년 기업이 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대답은 높은 성과를 창출하면 될 것이라는 답변이다. 이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논란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과와 생존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래 생존하는 장수 기업은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우량 기업일까? 반대로 묻는다면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은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개인 수준에 적용한다면 높은 성과를 창출해서 좋은 인사고과점수를 받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높은 직위로 승진하는 것일까? 높은 성과는 항상 높은 생존 확률로 연결될까? 엄밀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혀 예상 밖으로 성과와 생존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
거시 조직이론(Organization Theory) 연구에서 1970년대 후반 마이클 해넌(Michael Hannan) 교수 등에 의해 조직생태학(Organizational Ecology)이 등장한 이래 대부분의 실증 연구들이 예측하고자 한 결과 변수는 성과가 아닌 생존이었다. 조직의 생존 여부는 매우 객관적으로 정확한 지표인 반면, 성과는 매우 복잡하고 불분명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의사결정과 행동, 그리고 형태 등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 측면에서도, 성과 추구 동기보다 생존 추구 동기가 훨씬 크다는 증거들이 속출한 것도 한 이유였다.
조직 성과의 모호성
조직의 성과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한 개념이다. 예를 들면, 가장 대표적 기업 성과 지표인 수익성(profitability)만 보더라도 ROA(자산이익률), ROS(매출액이익률), ROI(투자수익률), ROE(자기자본이익률) 등 그 종류가 엄청나다. 이외에도 기업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성장성, 효율성, 효과성, 품질신뢰성, 혁신성 등 무수한 지표들이 있다. 이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주주, 경영자, 종업원, 채권자, 소비자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들은 자신들의 관점과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성과를 중요시한다. 이런 이유에서 예일 대학의 거시 조직이론의 거장 찰스 퍼로(Charles Perrow) 교수는 “단순히 높은 성과를 창출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반드시 ‘누구 입장에서의(for whom)’ 성과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성과들은 심지어 서로 충돌할 때도 많다. 거시 조직이론의 거장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 교수의 ‘탐색과 활용(exploration and exploitation)’은 바로 장기 성과와 단기 성과 간의 충돌을 의미한다. 즉 단기 성과를 올리려면 불확실성과 실패 위험이 높은 장기 투자를 피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기존 역량과 사업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장기 성과가 필연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반대로 장기 성과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사업이나 역량을 미래지향적으로 탐색하게 되면 불확실성과 리스크 때문에 단기 성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기업의 성과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리인이론(Agency Theory)에 따르면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 성과는 경영진에 의해 상당 부분 조정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엔론 사태와 같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기업윤리 문제를 야기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만일 보상이 보너스 등 단기 성과에 의해 결정된다면, CEO는 기업의 단기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장기 투자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스톡옵션 등과 같이 장기 성과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장기 투자를 할 것이다. 즉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 지표만으로 그 기업의 성과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매우 어렵다.
여기에 비해 기업의 생사 여부를 뜻하는 사멸(mortality)은 매우 명확하고 객관적이다. 현대 거시 조직이론에서 모호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성과보다는 생존 여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이미 1930년대와 1940년에 체스터 바나드(Chester I. Barnard)와 필립 셀즈닉(Philip Selznick) 등 초기 거시 조직이론가들은 조직들이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성과보다는 생존(survival)이라고 주장했다.
성과와 생존의 모호한 관계
그렇다면 기업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수익성 등의 성과가 높을수록 생존 가능성도 높아지는 게 아닐까? 고도로 발전된 통계적 방법론을 사용해 분석한 수많은 거시 조직이론 연구들에 따르면, 전혀 예상 밖으로 성과와 생존 사이에는 그렇게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성과와 생존이 통계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밖의 놀라운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왔다.
이는 비단 기업 조직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좀더 미시적 수준에서 각 개인이 조직 내에서 장기간 생존하며 높은 직위로 승진하느냐의 여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의 패턴이 나타난다. ‘거의 무작위적 경력발전(Almost Random Career)’이라는 제목의 거시 조직이론 논문에서 제임스 마치 교수는 30여 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미국 위스콘신주 교육조직 종사자들의 경력을 실증 연구했다. 그 결과 최고위직으로의 궁극적인 승진여부는 그 이전까지의 성과, 즉 인사고과에서의 평가결과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경력발전이 ‘거의 무작위적’으로 전개된 셈이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