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롯데자이언츠 감독이 한국을 떠났다. 부임 후 3년 연속 팀을 4강에 진출시켰지만 포스트시즌에서의 성과 미흡으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롯데는 2008년 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라이온즈에, 지난해와 올해는 두산베어스에 졌다. 특히 올해 2연승에 성공해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고도 내리 3연패해 팬들을 실망시킨 점이 결정적이었다.
구단 측은 3년 연속 4강에 오르긴 했지만 이제는 4강이 아니라 우승을 노릴 때이며 감독의 단기전 운용 능력에 실망했다는 뜻을 밝혔다. 이해가 간다. 프로 팀의 존재 이유는 우승이기 때문이다. 롯데는 1992년 후 무려 18년간 우승을 못했다. 8개 구단 중 최장기간이다. 게다가 팀의 핵심 선수인 이대호는 내년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FA)가 된다. 로이스터 감독을 통해 4강권 전력을 갖췄으니, 다른 팀이나 해외로 떠날 수도 있는 이대호가 있을 때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판단은 전략적 타당성을 지닌다.
문제는 로이스터 감독이 진짜 단기전에 약한지를 검증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느냐다. 그가 오기 전 롯데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8개 구단 중 ‘8-8-8-8-5-7-7’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 4년 연속 꼴찌도 유례가 없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 팀을 맡아 부임 첫해 단숨에 시즌 3위로 올려놨다. 선수도 대거 발굴했다. 과거 롯데는 사실상 손민한과 이대호 둘의 팀이었다. 하지만 이제 강민호, 송승준, 장원준, 조성환, 김주찬, 전준우 등 야구 팬이면 누구나 알 만한 선수가 여럿이다. ‘이대호와 소총 부대’라는 별명이 붙었던 타선도 팀 홈런 1위를 기록한 거포 군단이 됐다.
원래 가을 야구에선 페넌트레이스 하위 팀이 상위 팀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6개월이 넘는 동안 펼쳐지는 정규 시즌의 성적이 더 좋았다는 건 그만큼 상위 팀의 전력이 하위 팀보다 탄탄했다는 뜻이다. 2년 연속 4위 롯데를 이기고 올라간 3위 두산도 지난해와 올해 각각 2위였던 SK와 삼성에 거푸 패했다.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SK감독조차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시즌 1위였던 기아에 졌다. 컨디션을 조절하며 느긋이 기다릴 수 있는 상위 팀과 달리 하위 팀은 피를 말리는 승부를 몇 차례씩 치르고 올라가야 하니 전력 누수가 클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면 그에 대한 평가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로이스터 이전의 롯데가 자주 4강에 올랐다면 그의 가을 야구 성적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롯데는 그런 팀이 아니었다. 3년 연속 4강에 들며 안정적 기반을 갖춘 지금부터야말로 그의 단기전 운용 능력을 평가할 진정한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롯데의 가을 야구 성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2008년에는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작년 1승, 올해는 2승을 일궜다.
새로운 지도자로 바로 우승을 노리겠다는 구단의 결정은 몇 가지 우려를 낳는다. 우선 새 지도자가 ‘No Fear’로 대표되는 로이스터의 선 굵은 야구가 아닌 번트 작전 등 스몰 볼을 추구하는 감독이라면 겨우 로이스터 스타일에 익숙해진 선수단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승계관리 전략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다. 재계약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속내를 품었으면 차기 감독 인선을 훨씬 전부터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타 구단과 계약 기간이 남았거나, 실적 부진으로 물러난 사람들이 주로 거론됐다. 결국 1군 감독 경험이 없는 양승호 전 고려대 감독이 새 수장이 됐다.
경쟁 환경이 급변하면서 비단 스포츠계뿐 아니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임기도 단축되고 있다. 1950년대 10년에 달했던 미국 CE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최근 3년에 불과하다. 단기 성과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독일의 피터 드러커라 불리는 헤르만 지몬 박사에 따르면 강소 기업, 즉 히든 챔피언 기업 CEO들은 평균 재임 기간이 무려 20년에 달한다. CEO에게 결정적 흠결이 있다면 그 즉시 교체하는 게 옳다. 하지만 단기 성과에 대한 집착 때문에 CEO를 교체하는 일은 탁월한 조직으로 도약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거스 히딩크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의 별명은 한때 ‘오대영’이었다. 취임 초 5:0으로 진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실망해 축구협회가 그를 해임했다면 월드컵 4강 신화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본 전국 시대에 천하통일을 이룬 인물은 새가 울지 않을 때 새의 목을 쳤던 오다 노부나가도, 꾀를 써서 새를 울게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아니었다. 새가 울 때까지 미련하게 기다렸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