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형 조직과 성공 요건

‘조직 같지 않은’ 방임형 조직이 미래 연다

67호 (2010년 10월 Issue 2)

 
 
 
당신은 이런 조직을 수용하겠는가?
1.조직 같지 않은 조직 셈코
1993년 <매버릭(Maverick)>이란 베스트셀러를 통해 대표적인 회생 사례로 소개된 적이 있는 브라질 기업 셈코(Semco).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카르도 세믈러(Ricardo Semler)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리와 통제’라는 규칙을 포기함으로써 도산 위기에 처한 회사를 극적으로 살려냈다. 그 역시 처음에는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관리와 통제를 보다 강화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방법이 직원 사기를 더 떨어뜨리고 보신주의를 키워 조직 분위기만 나빠지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 그러나 ‘감히 인정하기 싫은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1985년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조직다운 조직’을 포기한 것이다.
 
셈코에는 공식적인 조직도가 없다고 한다. 전략도 없고, 중장기 사업 계획이나 경영 계획도 없다. 회사 설립 목적을 적어놓은 글도 없다. 장기 예산 안도 마련돼 있지 않다. CEO가 확실하게 고정돼 있지도 않다. 부사장도 없다. 정보 기술이나 그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임원도 없다. 정해진 표준이나 관례도 없다. 셈코 사람들은 “우리들에게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지요”라고 이야기한다.
 
2.방임형 조직, SAIC
1969년에 설립된 통신 기술 서비스 기업인 SAIC(Science Application International Corporation)는 ‘관리를 포기한 대신 얻을 수 있었던 성공’이 무엇인지 보여준 또 다른 기업이다. 로버트 베이스터(Robert Beyster)는 과거에 대형 방위 산업체에 다니다가 관료주의적인 조직 문화가 싫어 뛰쳐나온 경험을 가진 CEO였다. 그는 과학자들의 연구 모임 중 열정적이고 도전 정신이 강한 그룹을 찾아내 스카우트한 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뒀다. SAIC는 대부분의 벤처 기업들이 그렇듯 몇 푼 안 되는 자본금과 아이디어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7년 현재 연 매출이 7조 원에 달하고, <포춘>의 500대 기업 순위에도 올라 있는 기업이다.
 
3.중복을 허용하는 조직, 캐논
캐논은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연구개발팀들을 중복 운영했다. 당연히 조직의 중복으로 자원 낭비가 발생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캐논 경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중복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서로의 지식이 공유되면서 창의력이 높아지고, ‘건강한 긴장감’이 형성돼 결국 회사는 최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조직은 항상 환경과 함께 해 왔다
조직은 경영 환경과 함께 해왔다. 그리고 이 환경 하에서 성과 창출을 위한 경영 전략과 철저하게 연계(alignment)돼 있다. 그래서 과거 조직 변천의 역사를 보면, 그리고 미래 환경 특성을 이해하면 미래 조직을 예측할 수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신분 질서와 위계 질서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존재해왔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종교 집단도 위계 구조를 갖고 있다.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산주의도 국가를 형성하면서 위계 구조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마치 인간 사회의 본능인 것처럼.
 
200년 전 가내 수공업을 자본가 주도의 공장 기계 공업, 즉 대량생산 체제로 바꾼 산업혁명은 한 사람이 혼자서 핀(pin)을 만들 때보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작업을 할 때 수십 배의 생산성 효과를 얻는다는 애덤 스미스의 기술적 분업론으로 정리된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분업론은 테일러리즘(Taylorism)과 포디즘(Fordism)으로 발전, ‘현대 경영’의 초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능식 ‘업무 분장’이라는 경영 조직의 기본 형태를 탄생시켰다. 즉, 이전 조직이 위계 질서라는 수직 개념을 펼친 것이라면, 산업혁명 이후 기능별 업무 분장이라는 수평 개념을 완성시켰다고나 할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 경기 침체에 따른 성장 정체에 직면하자 기업들은 안정적인 성장과 위험 분산을 위해 사업 다각화를 시도한다. 그러면서 사업 단위별 책임 경영 체제를 뒷받침하는 조직인 ‘사업부제’가 등장했다. 사업부제는 대체로 사업 전체를 책임지는 상부 임원 단위에서의 조직 분화다. 그 결과, 직원들의 하부 단위 조직은 그대로 기능식 부(部), 과(課) 조직이었다. 영업본부장 밑에 있던 PC영업부가 PC사업본부 영업부가 되는 식으로 명칭만 바뀐 꼴이었다.
 
사업부제는 다각화한 사업들의 책임을 분산, 내부 경쟁을 통해 성과 달성을 촉진한다는 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나 앞서 기능식 조직의 문제점인 기능 간 이해 갈등은 전사 단위가 아닌, 하나 아래인 사업부 단위에서 벌어지는 것이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팀(Team), 그 탄생과 역수입
이 와중에 미국은 1970년대 말 2차 오일 쇼크를 맞이하면서 일본의 경제 침략을 경험하게 된다.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 워크맨은 경제 대국 미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경영계에서 다양한 원인 분석과 대책 논의가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경영 기법들이 이때 태동했다.
제록스는 자사 복사기와 일본 후지 복사기를 하나씩 뜯어보면서 비교했다. 벤치마킹 기법의 탄생이다. 장기 투자가 가능한 일본의 안정적 소유권(ownership)을 보고, 단기 업적주의에만 매달렸던 미국은 ‘BSC’(Balanced Scorecard: 단기 재무적 실적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경영 체질을 강화하는 활동들도 균형있게 관리하기 위한 성과 지표 체계)를 탄생시켰다. 그것도 단기 재무 업적을 다루는 회계학자인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이 이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또 하나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미국의 ‘일본식 집단주의 배우기’였다. 그 결과가 바로 ‘팀(team)’ 조직이다. 서구 기업들은 개인주의에 근간한 정확한 업무 분장을 강조했다. 어디 소속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스가 누구며 어떤 업무 담당자(manager)이냐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서장’을 매니저라고 하지만, 서구에서는 ‘업무 책임자’를 매너저라고 부른다. 참고로, 이 개념을 최근 도입한 곳이 SK다. 서구에서는 채용 시즌에 채용 담당자는 바빠도 옆 동료인 보상 담당자는 일찍 퇴근한다. ‘도와준다’는 친절은 있을 수 있어도, 우리처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이것이 바로 서구의 개인주의다.
 
 
반면, 섬 나라 특유의 ‘화(和)’를 중시하는 일본식 집단주의는 미국 기업에는 신기함 자체였다. 각자 잘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잘 하니 소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또 다른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원가 차이와 품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 집단주의 체제를 자신들에게 맞게 ‘팀’이라는 조직으로 탄생시켰다.
팀은 자율 경영팀과 임시 태스크포스 팀, 작업 단위(Work Unit) 팀 등 여러 유형이 있다. 그러나 그 정의는 하나다. ‘상호 보완적인 능력을 가진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밀접하게 공동으로 작업하며, 그 결과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는 집단’이 팀이다. 팀은 200년 넘게 뿌리 내려온 ‘각자 잘 하기’의 분업론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각자 잘 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잘 하기’가 새로운 조직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국, 팀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경영 관행은 비슷하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로부터 미국이 수입한 것을 우리가 다시 수입한 조직이다. 그런데 의도가 바뀌었다. 우리가 지금 널리 쓰고 있는 팀은 사실 팀이 아니다. 명칭만 팀이다.
 
성장 정체에 따른 인사 적체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우리 기업들에 미국의 ‘팀’은 희소식이었다. “뭐라? 기존의 직위, 직급과는 관계 없이 팀으로 재편하면 부장, 과장이 맡을 부서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서 그 동안 승진 적체를 해소할 의도로 과분화할 수밖에 없었던 부, 과 조직을 통폐합한다는 미명 아래, 한국 기업들은 팀을 받아들였다. 1990년대 전반기의 일이었다. 당연히 원래 취지에 비춰볼 때 당시 도입한 제도는 왜곡된 팀제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나름 파행 인사의 고민거리를 해결할 묘책임에는 틀림 없었다.
 
미래의 환경 키워드, 무답(無答)과 융합(融合)
이처럼 조직은 경영 환경, 경영 전략과 함께 해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조직이 새롭게 적응해야 할 미래 경영 환경은 어떨까?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2가지 공통 키워드가 있다.
첫째, ‘정답이 없는 세상’이다. 원래 경영학은 성공 기업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성공 사례(Best Practice)를 묶어 정리하고, 이를 배우라는 학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의 성공 기업과 성공 사례, 리더십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성공을 보고 따라 한다는 것(벤치마킹)은 한물간 것을 뒤쫓는 꼴이 될 수 있다. 도요타를 보라. 물론 다시 살아나는 듯 하지만, 경영의 바이블(Bible)로 받들었던 그들의 경영 방식은 지금 감사(investigation)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제 우리들이 따라 할 만한 경영의 ‘정답’이 없어지고 있다. 민첩하게, 부단하게, 스스로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그래서 지금 ‘창의 경영’이 뜨고 있다. 정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성실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피 튀기는 ‘레드 오션(Red Ocean)’에서의 소모전이 아닌, ‘블루 오션(Blue Ocean)’으로의 앞서가기다. 즉, 눈에 보이는 고객 니즈에 대응하는 ‘고객 만족 경영’이 아닌, 고객도 모르는 니즈를 새롭게 발굴하는 ‘고객 감동 경영’이다. 블루 오션과 고객 감동, 창의가 왜 이 시대에 어울리는 단어들이 됐는지 그 맥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지식 융합의 세상’이다. 예전처럼 어느 한 분야에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즉, 다양한 지식을 융합해야만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기에 예전처럼 리더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너무나 많은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만 따르라”라는 카리스마가 이제는 잘 안 먹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유 지식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개인 영웅’ 시대가 가고, 구성원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지식들을 융합, 결과를 얻어내는 모두의 ‘집단 영웅’ 시대가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의 조직: T.E.A.M.
정답이 없는 세상, 부단한 지식 융합이 이뤄져야 살아남는 세상이 미래의 세상이다. 벌써 이런 세상의 문은 열려 있다. 그런데 우리의 조직은 과연 이런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뿌리 깊게 이어져온 계층 조직과 분업 조직으로 이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직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미래의 조직에 필요한 역량은 ‘T.E.A.M.’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융합을 촉진시키고(Together), 그에 앞서 각자의 역량 개발을 자극하고(Expert), 가볍고 민첩하며(Agile), 통제 지향이 아니라 자율적이며 사람다운(Manlike) 조직이어야 한다. 이는 <그림1>에서 제시하는 미래 조직의 키워드인 ‘변화, 지식, 조화, 인간’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①Together: 융합의 촉진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미래는 ‘융합’의 시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완전히 새로운 지식이란 없다. 이제는 부단한 지식의 융합을 통해 ‘창의’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회사는 개별적인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여건, 즉 조직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선, 내부 프로세스 조직이 있다. 이 조직에서는 전통적인 기능 분화와는 달리, 업무 진행 프로세스를 묶어 조직을 구성한다. 조직 운영의 초점은 상하 간 지시와 통제가 아닌, 지식 융합을 위한 수평적인 업무 협조와 조정에 맞춰져 있다. 또한 내부 관리보다는 고객 니즈에 초점이 맞춰져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1990년대 포드사의 고객 서비스 부문(FCSD)은 부문 간 협조가 원활하지 못해 고객 니즈 대응이 느린 문제로 애를 먹고 있었다. 또 서비스가 표준화되지 않아 지역에 따라 고객 만족도의 편차도 컸다. 신차 구입 1년 후의 고객 만족도는 벤츠, BMW 등 독일 자동차 회사의 절반도 안 됐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포드는 1995년 ‘Ford 2000’을 선포하면서 고객 가치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4개의 핵심 프로세스를 규명했다. 그리고 기능별로 분화해서 운영했던 고객서비스 부문을 프로세스 단위로 재편했다. 그 결과, FCSD의 고객 만족도와 생산성은 크게 증가했으며 종업원 만족도 역시 다른 부문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또 다른 융합 촉진 조직으로 외부와의 ‘네트워크 조직’을 들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차별적 핵심 역량의 보유는 성공의 필수 요건이다. 네트워크 조직은 핵심 부문에 자원을 집중하고 필요한 다른 역량은 아웃소싱 등을 통해 활용하게끔 하는 조직이다.
 
 
네트워크 조직의 창시라고 할 수 있는 사례는 1995년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와 부품 협력 업체들이 함께 구성한 인터넷 정보망 ANX(Automotive Network Exchange)이다.(그림2) 자동차 회사들은 ANX를 통해 자사에 필요한 역량에 집중하면서도 부품 공급의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제약 회사인 머크는 미국 내 두 곳, 그리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지에 8개 연구소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크는 제네카(Zeneca)라는 제약 회사와 항생제 연구 제휴를 맺은 것을 비롯해 12개의 바이오 벤처 기업 및 2개의 대학교, 1개의 병원 연구소 등과 네트워크 형태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PC 업계의 돌풍을 몰고 왔던 델 컴퓨터의 성공 요인도 네트워크 조직 즉, 칩 생산자와 부품 생산자 등과의 완벽한 정보 네트워크 구축에 있었다. 고객의 주문이 바로 협력 업체로 전달되게 하고 포장과 운송 등 물류 관리는 아웃소싱함으로써 델은 오직 품질과 디자인, 마케팅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다.
 
②Expert: 역량 계발 자극
융합하려는 지식이 없으면 융합도 없다. 허접스러운 지식을 융합해봤자 소용없다. 그래서 지식 창출 역량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즉, 지식의 흡수와 축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이를 조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지식 창출’ 조직을 갖춰야 한다.
 
 
그 대표적인 조직 형태가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조직이다. 일본 샤프의 예를 살펴보자.(그림3) 조직의 중심은 일상적인 업무가 이뤄지는 사업 단위 조직으로 기능 중심의 계층 구조로 돼 있다. 최상층은 프로젝트 팀으로 여러 부서에서 모인 인원이 프로젝트 조직을 이루어 신제품 개발과 같은 지식 창조 활동에 집중한다. 맨 아래 계층이 바로 하이퍼텍스트 조직인 지식 기반층인데, 위의 두 계층에서 생성된 지식을 재분류, 재구성한다. 지식 기반층은 조직적인 실체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기업의 비전, 문화, 기술 등에 구현돼 나타나는 계층이다.
 
③Agile: 가볍고 민첩함
급변하는 미래 경영 환경에서 생존의 제1법칙은 민첩성이다. 민첩함은 우리가 대응해야 할 시장과 고객 니즈 변화에 대한 대응의 민첩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객 니즈의 변덕스러움과 까다로움은 종종 도를 지나친다. 하지만 그들을 만족시켜야 살아남기에, 그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을 갖춰야 한다. 개개인의 민첩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체계적으로 민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민첩함이 묻히기 때문이다.
 
민첩함의 첫 번째는 변화 감지(sen-sing)다. 조직의 주파수를 고객에 맞춰야 한다. 제이 갤브레이스(Jay R. Galbraith) 교수는 이를 위해 제품중심 조직에서 고객중심 조직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며, 제품과 고객을 두 축으로 하는 ‘하이브리드형(hybrid)’ 조직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에는 제품 자체보다 제품을 둘러싼 고객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키아는 고객 니즈를 재빨리 파악하고 반영하기 위해 전후방 하이브리드형 조직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그림4) 즉, 전방에는 고객중심 조직을, 후방에는 제품중심 조직을 동시에 운영한다. 2006년 미국 내 전기전자 업종 1위에 오른 에머슨일렉트릭(Emerson Electric)은 후방에 둔 4개의 기술 센터가 전방 사업 조직과 플랫폼을 공유함으로써 환경 변화가 기술 연구에 민감하게 반영되는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다.
변화를 감지했다면 대응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변화 대응력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능력으로 체질화해야 한다. 이는 평소 고객 접점에서 적절한 의사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때 가능하다.
 
일본 기업 교세라는 ‘아메바’라는 소규모 자율경영 조직으로 주목받고 있다.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창업 당시부터 경영 여건이 여의치 않아 한정된 인재와 설비로 시장 동향에 따라 최적의 임기응변을 발휘해야만 했었다. 따라서 현장 관리자의 판단에 따라 수시로 팀을 이합집산할 수 있는 체제가 불가피했다. 그 결과 시장 상황이나 내부 전략 또는 성과 달성 정도에 따라 사업부 등 큰 규모뿐만 아니라, 단위 조직까지도 통합과 분할이 빈번한 조직을 만들었다. 그것이 아메바다. 교세라는 지금도 조직도가 매달 새로 작성돼 배포된다고 한다.
 
④Manlike: 사람다움
마지막으로 미래 조직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인간 가치’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수만트라 고샬(Sumantra Ghoshal) 교수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크리스토퍼 바틀렛(Christopher Bartlett) 석좌교수는 <개인화 기업(The Individualized Corporation)>에서 “미래 조직은 제도적 체계보다는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향후에는 부의 축적이 경영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자아 실현’ 그 자체가 조직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즉,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의 욕구 5단계설에서 마지막 단계 그 자체가 기업 목적이 된다는 주장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조직 성과와 소속 개인의 자아 실현은 함께 가는 게 바람직하다. 사실 지금까지는 “조직 성과를 위해 자아 실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명제를 따랐다면, 앞으로는 “자아 실현이 먼저이고, 조직 성과는 당연히 좋아질 것”이라는 명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미래 조직 모델로 ‘민주 조직’을 들 수 있다. 구성원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조직 내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느끼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조직이다. 투습·방수 섬유인 고어텍스로 잘 알려진 회사 고어는 민주적 조직 운영의 대표 사례다. 이 회사에서는 사장과 비서 외에 모든 구성원에게 공식 직함이 없다. 관리자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기보다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동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공식 연구개발(R&D) 부서가 없는데도 일반 직원들의 신선한 아이디어 덕분에 매년 혁신적인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 스스로 신바람 나게 일하는 조직이다. 이 회사 직원 중 무려 97%가 근무 조건에 만족한다고 한다.
 
민주 조직의 또 다른 사례로 인터넷 경매 회사인 이베이가 있다. 온라인 상에서 구매자와 매매자 간 의견이 활발하게 교류되는데, 이는 회사의 중요한 지식 자산이 된다. 또 구매자와 매매자 모두 마치 웹 사이트 운영자처럼 회사 경영에 관여한다. 웹 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십 개의 토론장을 갖춰 중요한 결정은 온라인 토론을 통해 사용자들의 동의를 얻어 진행한다. 이런 운영 시스템 덕분에 이베이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 됐다. 그 바탕에는 대규모 온라인 커뮤니티에 주인 의식을 고취시키는 ‘온라인 민주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 운영 방식이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지금까지 ‘조직은 항상 환경 변화와 함께 해왔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밝히면서, ‘미래의 조직 역시 미래 경영 환경에 맞춰 만들어질 것’임을 사례를 통해 제안했다. 스탠퍼드대 해롤드 리빗(Harold Leavitt) 교수와 클레어몬트대의 진 블루먼(Jean Bluemen) 교수도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하고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지금보다 ‘덜 조직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덜 조직적’이라는 뜻은, 명확한 역할을 규정해 놓고 규정대로 행동하는지 여부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리·통제형 조직들은 창의성, 유연성 등과는 거리가 멀고, 결국 변화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질서정연한 조직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조직 체제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과연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움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가 문제다. 앞서 소개한 셈코의 성공 경영 방식을 배우러 온 기업과 경영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셈코의 일하는 방식을 실제 본 후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분열과 혼란으로 곧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셈코의 방식은 ‘경영’이라고 부를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셈코는 연간 매출액이 7조 원에 달할 정도로 성공한 기업이다.
 
경영철학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새로운 조직 형태가 처음부터 문제없이 성공하기는 힘들다. “맞는 이야기이긴 해”라고 수긍하면서도, “그런데, 되겠어?”라는 핑계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변화를 차일피일 미루다간 결국 한꺼번에 조직 모두를 바꿔야 하는 위기에 봉착하기 쉽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궁극적으로 변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변화를 위한 기반을 착실히 조성해 나가는 일이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와 석사(조직 행동 전공) 학위를 받았다. 현대경제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 휴잇어소시엇츠를 거쳐 타워스페린의 컨설팅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피플솔루션(www.pscnc.com) 대표로 조직·인사 분야의 컨설팅과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