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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초우량 기업 따라하는 벤치마킹, 藥 또는 毒

신동엽 | 66호 (2010년 10월 Issue 1)
 
 

벤치마킹은 20세기 후반 이후 전세계 기업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경영기법 중 하나로 꼽힌다. 1980년대를 전후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벤치마킹은 기업 성과 및 경쟁력 향상에 큰 기여를 했지만, 동시에 단순한 초우량 기업 모방이나 유행하는 첨단 기법 채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벤치마킹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경영 현장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로 베스트 프랙티스를 벤치마킹해도 당초 기대보다 성과가 부진하고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 따라서 벤치마킹이 기업 성과와 경쟁력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려면 먼저 벤치마킹을 할 것인지 여부와 왜 하려고 하는지부터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또 만일 벤치마킹을 한다면 언제, 무엇을, 어떻게 벤치마킹할 것인가를 논리적으로 따져본 후 결정을 하는 등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벤치마킹의 역사적 발전
벤치마킹의 어원은 원래 제화공이 신발을 맞추거나 수선할 때 그 맞춤틀인 ‘벤치’에 고객의 발을 올려놓고 신발 크기와 모양을 측정하던 데에서 비롯됐다. 이는 토목 분야에도 적용돼 측량의 기준점을 뜻하는 용어인 ‘벤치마크’로 사용됐다가 기업 경영에 도입됐다. 경영용어로서 벤치마킹이 처음 사용됐을 때는 기업이 자신의 경영 프로세스 및 성과를 다른 기업이나 다른 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와 비교 평가해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문제 해결과 혁신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베스트 프랙티스를 찾아서 모방하고 확산시키려는 노력은 현대적 기업경영의 선구자인 테일러(Frederick Taylor)나 포드(Henry Ford) 등에 의해 20세기 초부터 부단히 시도됐다. 예를 들면, 20세기 최고의 경영혁신인 포드사의 컨베이어벨트 기반 대량생산 시스템은 원래가 포드가 닭고기 공장의 작업벨트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그러나 벤치마킹이라는 공식 명칭 하에 체계적으로 이를 실천한 최초의 기업은 미국의 제록스(Xerox)와 영국 랭크(Rank)의 합작기업인 랭크제록스(Rank Xerox)사였다. 제록스는 1970년대 중후반 글로벌 복사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벤치마킹을 경영의 핵심 툴로 사용했다. 복사기 시장을 독점해오던 제록스가 1970년대 중반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 파격적인 저가로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기 시작한 일본의 캐논(Canon)을 벤치마킹 타깃으로 정하고 품질관리, 원가관리, 디자인, 가격정책, 제조, 마케팅 등 모든 프로세스를 자사와 비교 평가하면서 벤치마킹이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그 후 1982년, 당시만 해도 무명의 컨설턴트에 불과했던 톰 피터스(Tom Peters)와 로버트 워터만(Robert Waterman)이 세계적 초우량 기업들의 공통 베스트 프랙티스들을 정리한 경영서적인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넓은 의미의 벤치마킹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됐다. 특히 1989년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Jack Welch) 회장이 워크아웃(Work-Out) 경영혁신 프로그램에 벤치마킹을 포함시킨 게 벤치마킹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웰치는 ‘GE식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을 통해 전 세계 초우량 기업들이 사용하는 각 부문별 글로벌 최고의 경영기법들을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도입해 전사적으로 공유했다. 이를 통해 GE를 성공적으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이는 이미 불타오르고 있던 벤치마킹 붐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벤치마킹의 대상은 웰치 회장이 강조했듯 조직 안팎을 가리지 않고 다양화할 수 있다. 자기 조직 내부의 다른 사업부나 부서와 비교 평가하는 내부 벤치마킹, 동종 산업 내 유사 조직과 비교 평가하는 경쟁자 벤치마킹, 그리고 심지어 다른 산업의 초우량 기업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또 벤치마킹의 유형도 상품 벤치마킹, 기술 벤치마킹, 프로세스 벤치마킹, 성과 벤치마킹, 재무 벤치마킹, 기능 벤치마킹, 오퍼레이션 벤치마킹, 전략 벤치마킹 등 다양하다.
 
그러나 실제 기업경영에서 벤치마킹은 높은 성과를 창출한 초우량 기업들의 경영기법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유행하는 첨단 경영 기법들의 맹목적 채택과 유사한 의미로도 통용되고 있다. 물론 초우량 기업들의 베스트 프랙티스와 첨단 유행 기법들을 모방하는 경향은 전 세계 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됐지만, 그 정도와 강도에서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은 벤치마킹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예를 들어 팀제, 연봉제, 6시그마 등 베스트 프랙티스로 인식되는 새로운 경영기법이 소개되면 우리 기업들은 업종 등 각 기업 고유의 특수성에 상관없이 앞 다투어 이를 모방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벤치마킹의 이론적 기반: 불확실성과 벤치마킹
전세계 기업들이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잘 설명하는 이론은 경영학 조직이론 분야에서 카네기학파의 조직학습 이론(Organizational Learning)과 신제도 이론(Neo-Institutional Theory)이다. 이 두 조직이론 학파에서 벤치마킹이 성행하게 되는 공통적인 조건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특히 기업경영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두 가지 유형들 중 조직학습 이론은 성과 불확실성에, 신제도 이론은 프로세스 불확실성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조직학습 이론은 성과의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1950년대와 1960년에 걸쳐 제임스 마치(James March) 교수와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교수를 중심으로 한 카네기학파는 행동과학적(Behavioral Science) 사회과학을 창시했다. 이들은 최근 21세기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신조류로 떠오르고 있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과 이들의 제자였던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 교수의 거래비용경제학(Transaction Cost Economics)의 원류가 됐다. 뿐만 아니라 최근 자연과학에서 핵심 화두가 되고 있는 다른 학문 분야들 간 통섭을 이미 1950년에 강조해 경영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인류학 등 모든 사회과학 분야들을 아우르는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을 중심으로 경영이나 경제, 사회 현상에 대한 학제간(interdisciplinary) 접근을 주창했다. 조직이론과 경영학뿐 아니라 모든 사회과학 분야들을 통틀어 최고의 시기를 구가한 셈이다.
 
카네기학파의 핵심 관심사이자 마치와 사이먼 교수가 주로 연구했던 주제가 바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는 인간 본연의 한계로 발생하는 성과의 불확실성이었다. 조직학습 이론에서 마치 교수와 사이먼 교수는 기업이 어떤 성과를 창출했을 때 그 성과가 높은지 낮은지를 평가할 절대적 기준이 없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과가 가지는 의미와 그 성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높은 불확실성에 당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과가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할 기준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마치와 사이먼 교수가 말하는 열망 수준(aspiration)이다. 즉 기업이 성과를 판단할 때는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열망 수준을 기준으로 그보다 높으면 만족스럽게 판단하고, 낮으면 불만족스럽게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성과가 열망 수준에 비해 낮아 불만족스러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해결형 탐색(problemistic search)’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혁신이 나온다는 게 핵심이다.
열망 수준과 대비한 성과평가 이론은 성과의 고저를 연속적인 개념으로 봤던 기존 경제학이나 전통적인 의사결정 이론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사이먼 교수가 경제학자가 아닌 조직이론가인데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기업이 성과의 고저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만족-불만족 판단기준인 열망 수준(aspiration level)은 어디에서 올까? 마치 교수와 그 동료들에 따르면 열망수준은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오는 역사적 열망 수준(historical aspiration level)과 자신이 비교대상으로 삼는 다른 준거 기업(reference organizations)들의 성과 수준에서 오는 사회적 열망 수준(social aspiration level)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적 열망 수준은 자신의 과거 성과이기 때문에 경로 의존적(path dependent)이므로 경영자의 개입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동일한 성과 수준에 대해 왜 어떤 기업은 만족하고, 다른 기업들은 불만족하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회적 열망 수준이며, 이 사회적 열망 수준은 바로 벤치마킹 대상 기업들의 선택과 그 대상들의 성과에 의해 결정된다. 즉 기업이 자기 성과 수준을 벤치마킹할 때 고성과를 창출한 초우량 기업들을 비교대상으로 삼을수록 사회적 열망 수준이 높아지고, 그 결과 동일한 성과 수준에 대해서도 불만족 수준이 높아지므로 혁신 등의 시도를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게 바로 카네기학파의 조직학습 이론의 핵심이다.
 
조직학습 이론이 성과 수준 평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벤치마킹의 역할을 설명한다면, 최근 20여 년간 가장 활발하게 연구된 조직이론 학파인 신제도 이론(Neo-Institutional Theory)은 조직 경영 프로세스의 수월성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벤치마킹 행동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일급 저명학술지에서만 9000회 가까이 인용되어 모든 사회과학 분야들을 통틀어 역대 가장 많이 인용된 걸작으로 손꼽히는 1983년 논문인 ‘현대 조직의 재해석(Iron Cage Revisited)’에서 신제도 이론의 대표적 거장인 폴 디마지오(Paul DiMaggio) 교수는 조직들의 구조와 제도, 시스템 등이 점차 서로 유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로 조직들이 어떤 경영 프로세스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의존하는 벤치마킹 행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마지오에 따르면 어떤 조직경영 프로세스가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지는 정밀한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더라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극도로 불확실하다. 즉 성과와 그 창출 프로세스 사이에는 높은 인과관계 모호성(causal ambiguity)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들은 구조나 제도, 시스템 등 경영프로세스를 설계할 때 여러 대안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될까? 디마지오는 어떤 경영프로세스가 실제로 높은 성과를 창출할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높은 불확실성에 당면해 대부분의 조직들은 다른 조직들의 행동을 벤치마킹해서 모방하게 되고, 그 결과 조직들의 구조나 제도, 시스템은 점차 유사해지게 된다고 한다. 디마지오 교수는 조직들이 경영프로세스 설계에서 다른 기업들 사이에서 당연시되고 제도화된 구조나 제도, 시스템을 모방해 벤치마킹한 결과 그 형태가 점차 유사해진다고 해서 이를 ‘모방적 동형화(mimetic isomorphism)’라고 부른다.
 
10여 년 전 외환 위기 직후 우리나라에 연봉제적 단기 성과주의가 유행하자 산업이나 업종, 부문의 차이를 불문하고 심지어 비영리공공부문에서까지 모든 조직들이 연봉제를 채택해 ‘전국민의 연봉제화’라는 기현상을 초래한 것이 바로 불확실한 환경 하에서 벤치마킹에 의한 모방적 동형화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다. 팀제, 6시그마, BPR, ERP, 비정규직 등 우리나라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한 대부분의 첨단 경영 기법들의 확산은 신제도 이론의 모방적 동형화 관점에서 보면 조직 프로세스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벤치마킹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디마지오를 중심으로 한 신제도 이론은 벤치마킹이 유행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불확실성이며, 따라서 성과와 창출 프로세스 간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나 상황에서는 벤치마킹 시도도 많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벤치마킹의 파워와 한계
그렇다면 벤치마킹은 실제로 기업 성과와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은 기업 성과와 경쟁력 향상에 실제로 긍정적으로 기여하는가?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즉 학술연구 결과들과 실제 사례들을 보면 벤치마킹이 기업 성과와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를 한다는 쪽과 전혀 상관없거나 오히려 성과를 저해하기도 한다는 정반대의 결과들이 혼재한다. 이론적 논리의 관점에서 볼 때도 벤치마킹이 기업 성과와 경쟁력에 긍정적 기여를 할 가능성과 부정적 폐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벤치마킹이 기업 성과와 경쟁력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다양하다.
 
첫째, 벤치마킹은 무엇보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내부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외부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성과와 프로세스의 현 위치와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외부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특히 자신보다 우월한 글로벌 리더나 초우량 기업들의 벤치마킹은 자신의 한계와 현 위치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적정 수준 성과에 만족하는 무사안일한 태도를 극복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기업은 섬처럼 고립되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과 협력이라는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루 하루 살아간다. 따라서 각 기업이 자신의 성과와 프로세스를 평가할 때 다른 기업들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외부적 관점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내부적으로 아무리 높은 성과를 창출하고 있고 프로세스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더라도 외부 경쟁자와의 비교에서 열등하면 장기적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의 조직이론은 효율성(efficiency)과 효과성(effectiveness)을 대비시킨다. 디마지오 등을 중심으로 한 신제도 이론의 원류로서 20세기 중반 경 조직이론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필립 셀즈닉(Philip Selznick) 교수의 초기 제도이론(Old Institutional Theory)과, 또 AT&T CEO 출신으로 현대 경영이론의 초기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체스터 바나드(Chester Barnard)는 조직성과의 내부 기준인 효율성과 외부 기준인 효과성을 구분하고 있다. 이들은 조직이 내부적 효율성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반드시 외부적 관점인 효과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벤치마킹은 각 기업이 자신의 성과와 프로세스의 수월성 여부를 평가할 때 내부 기준을 넘어서서 ‘외부와의 비교’라는 상대적이고 객관적 기준을 가지게 함으로써 조직 효과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둘째, 벤치마킹은 조직학습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학습의 효율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즉 벤치마킹은 조직학습의 여러 가지 유형들 중 간접학습(vicarious learning)의 방법으로서 직접적 경험학습(learning by doing)에서 불가피한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과 위험을 대폭 줄여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기업들이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전략이나 경영방식을 시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창조적 혁신 시도는 대개 실패율이 높다. 이는 직접적 경험학습에 따른 시행착오의 비용과 위험 때문이다. 이에 비해 벤치마킹은 이미 다른 기업들이 무수한 시행착오와 경험적 학습을 통해 파악한 베스트 프랙티스를 모방하는 것이므로 학습 비용과 위험 측면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다.
 
셋째, 이런 면에서 벤치마킹은 전략경영의 관점에서 볼 때 후발 주자가 앞선 기업들을 따라잡는 추격전략에는 필수적 요건이다. 선두 기업의 성과 수준과 경쟁력, 그리고 그 창출 기반을 따라잡지 않고는 추격을 할 수 없으므로 선두 기업에 대한 철저한 벤치마킹은 반드시 필요한 프로세스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구미 기업들을 추격할 때나, 우리 나라 기업들이 일본이나 구미 기업들을 추격할 때 벤치마킹을 활용했다. 일본의 도요타나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등 글로벌 리더들을 추격하는 데 성공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의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을 강조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벤치마킹은 장점 못지 않게 무수한 단점도 있다는 양면성을 가진다.
첫째, 무엇보다 벤치마킹의 대상인 베스트 프랙티스가 과연 존재하는가 여부에 대한 논란이 가장 중요하다. 20세기 초 테일러와 포드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과학적 경영운동(Scientific Management)’과 대량생산 시스템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이래, 산업이나 국가의 특성에 상관없이 모든 환경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절대적인 베스트 프랙티스를 찾는 노력이 계속돼 왔다. 이런 시도가 체계화된 것이 바로 벤치마킹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 경영학과 조직 이론의 가장 중요한 관점인 상황적합성 이론(Contingency Theory)과 전략경영 이론이 등장한 1960년대 이후 모든 환경과 상황에서 항상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절대적인 베스트 프랙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또 최적의 경영방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각 기업이 처한 특수한 환경의 요구와의 일관성 여부인 외적 적합성(external fit)과 또 그 기업의 다른 특성들과의 일관성 여부인 내적 적합성(internal fit)이라는 주장이 급속하게 힘을 얻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행하는 베스트 프랙티스를 맹목적으로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자기 기업의 환경이나 기존 경영시스템과의 부적합성(misfit)을 초래해 심각한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
 

둘째, 벤치마킹의 또 다른 위험은 정확한 벤치마킹의 가능성 여부와 관련됐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업 성과와 경쟁우위의 창출 원천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기업의 성과와 창출 원천 사이에는 높은 인과관계 모호성(causal ambiguity)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경쟁우위가 다른 기업들의 모방 시도에도 아랑곳없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치 교수는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초우량 기업들의 겉으로 보이는 경영방식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성과나 경쟁력과 상관없는 엉뚱한 요소들만 모방하다 귀중한 자원과 노력을 낭비하는 ‘미신적 학습(superstitious learning)’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완벽하게 정확한 벤치마킹은 기존 베스트 프랙티스의 단순한 모방과 확산만 가져오지만, 부정확한 벤치마킹이 오히려 의도하지 않게 혁신으로 연결된다는 주장도 있다. 즉 부정확한 모방이 간헐적으로 혁신을 창출하기도 하나, 정확한 벤치마킹이 극도로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셋째, 마이클 해넌(Michael Hannan)과 글렌 캐럴(Glenn Carroll) 교수의 밀도의존 이론(Density Dependence Theory)에 따르면 다른 기업들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벤치마킹하는 전략은 그 베스트 프랙티스가 출현한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성과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베스트 프랙티스를 채택한 기업들의 수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동아비즈니스리뷰<DBR 59호(2010년 6월 15자) 80쪽 참조). 즉 어떤 새로운 기업기법이 처음 출현했을 때, 만일 그 기법이 성과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술적 효율성이나 합리적 논리 기반이 있으면 다른 기업들에 비해 차별적 경쟁우위를 누릴 수 있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베스트 프랙티스가 폭넓게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를 채택했을 때에는 오히려 기업들 사이의 경영방식에 동질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서 유사한 기업들끼리의 경쟁만 심화시켜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벤치마킹은 어디까지나 선두 기업을 추격하려는 세컨드 무버의 전략이다. 즉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는 그 벤치마킹 대상 기업의 성과와 경쟁력을 따라잡는 추격이다. 그러나 21세기 초경쟁환경처럼 창조적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퍼스트 무버가 독점적 경쟁우위를 가지는 ‘승자독식경제(winner takes it all economy)’에서는 단순한 추격전략은 경쟁우위는커녕 생존도 보장하지 않을 위험이 높다. 게다가 이런 창조적 기업들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통해 추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변화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와 시장지배력 확대를 추구하던 20세기 산업사회에서는 적합했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쟁우위를 끊임없이 창출해야 하는 21세기 초경쟁환경에서는 부적절한 경영방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합리적 벤치마킹 전략
이렇게 볼 때 벤치마킹은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가진 ‘양날의 칼’과도 같은 경영기법이다. 따라서 벤치마킹에 대한 합리적 접근은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잠재적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혹은 ‘초우량 기업의 경영기법’, ‘경영혁신 기법’ 등 수많은 그럴듯한 포장 하에 유행하는 첨단 경영기법, 즉 유행하는 경영풍조(managerial fads)를 모방적으로 따라 하는 맹목적 벤치마킹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동시에 벤치마킹의 잠재력과 장점을 극대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벤치마킹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벤치마킹의 원래 목적으로 되돌아가서 유행하는 경영기법의 모방보다는 초우량 기업의 성과 수준과 자사의 현 상태와의 대비를 통한 냉철한 자기 평가와 동기부여 기능을 강조해야 한다. 벤치마킹을 상당한 수준의 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우량 기업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성공의 덫(success trap)’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항상 권장할 만하다.
 
둘째, 그러나 이때는 벤치마킹 대상의 선택이 중요하다. 즉 이제까지의 성과 수준인 ‘역사적 열망수준’을 비교대상으로 삼거나, 또는 유사한 상황에 있는 경쟁자들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은 혁신을 위한 동기부여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벤치마킹 대상은 항상 자사보다 우월한 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고성과 기업들이어야 한다. 필자는 벤치마킹 대상 기업의 성과가 높을수록 좋다고 강조한다.
 
셋째, 단순히 자사의 성과 수준을 외부와의 비교를 통해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성과 기업의 구조나 제도, 시스템 등 조직경영 프로세스를 따라하는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의 경우에는 적합성(fit) 관점에서의 차별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다른 기업에서의 베스트 프랙티스가 자기 기업의 상황과 부적합성(misfit)을 야기할 위험을 고려, 내외부 적합성의 관점에서 자신의 특수한 환경과 기존 경영 프로세스와의 일관성을 기준으로 차별적으로 벤치마킹을 시도하는 합리적 벤치마킹 전략이 바람직하다.
 
넷째,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제까지 해왔듯이 단순히 베스트 프랙티스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의식적으로 독창적 요소들을 가미하는 혼합형 벤치마킹 전략은 여전히 상당한 경쟁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전략을 활용하면 애플이나 구글 등과 같이 진정으로 창조적인 기업들처럼 21세기 초경쟁환경의 글로벌 경쟁을 주도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독창적 요소를 가미하는 정도와 규모, 범위를 확대한다면 창조적 혁신 못지 않은 경쟁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 필자가 ‘모방적 혁신(imitative innovation)’이라고 부르는 이 전략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존 역량과 문화, 그리고 전략의 관점에서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벤치마킹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초경쟁환경에서 퍼스트 무버 전략을 시도하는 애플이나 구글 등의 창조적 기업들도 어느 정도의 벤치마킹은 반드시 필요하다. 경쟁자들이 시도한 적이 없는 새로운 창조적 혁신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현 상황과 미래 진행 방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는 고전적 격언이 21세기 벤치마킹 전략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를 비롯해 다수의 저널에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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