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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초우량 기업 따라하는 벤치마킹, 藥 또는 毒

신동엽 | 66호 (2010년 10월 Issue 1)
 
 

벤치마킹은 20세기 후반 이후 전세계 기업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경영기법 중 하나로 꼽힌다. 1980년대를 전후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벤치마킹은 기업 성과 및 경쟁력 향상에 큰 기여를 했지만, 동시에 단순한 초우량 기업 모방이나 유행하는 첨단 기법 채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벤치마킹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경영 현장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로 베스트 프랙티스를 벤치마킹해도 당초 기대보다 성과가 부진하고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 따라서 벤치마킹이 기업 성과와 경쟁력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려면 먼저 벤치마킹을 할 것인지 여부와 왜 하려고 하는지부터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또 만일 벤치마킹을 한다면 언제, 무엇을, 어떻게 벤치마킹할 것인가를 논리적으로 따져본 후 결정을 하는 등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벤치마킹의 역사적 발전
벤치마킹의 어원은 원래 제화공이 신발을 맞추거나 수선할 때 그 맞춤틀인 ‘벤치’에 고객의 발을 올려놓고 신발 크기와 모양을 측정하던 데에서 비롯됐다. 이는 토목 분야에도 적용돼 측량의 기준점을 뜻하는 용어인 ‘벤치마크’로 사용됐다가 기업 경영에 도입됐다. 경영용어로서 벤치마킹이 처음 사용됐을 때는 기업이 자신의 경영 프로세스 및 성과를 다른 기업이나 다른 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와 비교 평가해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문제 해결과 혁신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베스트 프랙티스를 찾아서 모방하고 확산시키려는 노력은 현대적 기업경영의 선구자인 테일러(Frederick Taylor)나 포드(Henry Ford) 등에 의해 20세기 초부터 부단히 시도됐다. 예를 들면, 20세기 최고의 경영혁신인 포드사의 컨베이어벨트 기반 대량생산 시스템은 원래가 포드가 닭고기 공장의 작업벨트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그러나 벤치마킹이라는 공식 명칭 하에 체계적으로 이를 실천한 최초의 기업은 미국의 제록스(Xerox)와 영국 랭크(Rank)의 합작기업인 랭크제록스(Rank Xerox)사였다. 제록스는 1970년대 중후반 글로벌 복사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벤치마킹을 경영의 핵심 툴로 사용했다. 복사기 시장을 독점해오던 제록스가 1970년대 중반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 파격적인 저가로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기 시작한 일본의 캐논(Canon)을 벤치마킹 타깃으로 정하고 품질관리, 원가관리, 디자인, 가격정책, 제조, 마케팅 등 모든 프로세스를 자사와 비교 평가하면서 벤치마킹이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그 후 1982년, 당시만 해도 무명의 컨설턴트에 불과했던 톰 피터스(Tom Peters)와 로버트 워터만(Robert Waterman)이 세계적 초우량 기업들의 공통 베스트 프랙티스들을 정리한 경영서적인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넓은 의미의 벤치마킹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됐다. 특히 1989년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Jack Welch) 회장이 워크아웃(Work-Out) 경영혁신 프로그램에 벤치마킹을 포함시킨 게 벤치마킹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웰치는 ‘GE식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을 통해 전 세계 초우량 기업들이 사용하는 각 부문별 글로벌 최고의 경영기법들을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도입해 전사적으로 공유했다. 이를 통해 GE를 성공적으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이는 이미 불타오르고 있던 벤치마킹 붐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벤치마킹의 대상은 웰치 회장이 강조했듯 조직 안팎을 가리지 않고 다양화할 수 있다. 자기 조직 내부의 다른 사업부나 부서와 비교 평가하는 내부 벤치마킹, 동종 산업 내 유사 조직과 비교 평가하는 경쟁자 벤치마킹, 그리고 심지어 다른 산업의 초우량 기업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또 벤치마킹의 유형도 상품 벤치마킹, 기술 벤치마킹, 프로세스 벤치마킹, 성과 벤치마킹, 재무 벤치마킹, 기능 벤치마킹, 오퍼레이션 벤치마킹, 전략 벤치마킹 등 다양하다.
 
그러나 실제 기업경영에서 벤치마킹은 높은 성과를 창출한 초우량 기업들의 경영기법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유행하는 첨단 경영 기법들의 맹목적 채택과 유사한 의미로도 통용되고 있다. 물론 초우량 기업들의 베스트 프랙티스와 첨단 유행 기법들을 모방하는 경향은 전 세계 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됐지만, 그 정도와 강도에서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은 벤치마킹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예를 들어 팀제, 연봉제, 6시그마 등 베스트 프랙티스로 인식되는 새로운 경영기법이 소개되면 우리 기업들은 업종 등 각 기업 고유의 특수성에 상관없이 앞 다투어 이를 모방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벤치마킹의 이론적 기반: 불확실성과 벤치마킹
전세계 기업들이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잘 설명하는 이론은 경영학 조직이론 분야에서 카네기학파의 조직학습 이론(Organizational Learning)과 신제도 이론(Neo-Institutional Theory)이다. 이 두 조직이론 학파에서 벤치마킹이 성행하게 되는 공통적인 조건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특히 기업경영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두 가지 유형들 중 조직학습 이론은 성과 불확실성에, 신제도 이론은 프로세스 불확실성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조직학습 이론은 성과의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1950년대와 1960년에 걸쳐 제임스 마치(James March) 교수와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교수를 중심으로 한 카네기학파는 행동과학적(Behavioral Science) 사회과학을 창시했다. 이들은 최근 21세기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신조류로 떠오르고 있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과 이들의 제자였던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 교수의 거래비용경제학(Transaction Cost Economics)의 원류가 됐다. 뿐만 아니라 최근 자연과학에서 핵심 화두가 되고 있는 다른 학문 분야들 간 통섭을 이미 1950년에 강조해 경영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인류학 등 모든 사회과학 분야들을 아우르는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을 중심으로 경영이나 경제, 사회 현상에 대한 학제간(interdisciplinary) 접근을 주창했다. 조직이론과 경영학뿐 아니라 모든 사회과학 분야들을 통틀어 최고의 시기를 구가한 셈이다.
 
카네기학파의 핵심 관심사이자 마치와 사이먼 교수가 주로 연구했던 주제가 바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는 인간 본연의 한계로 발생하는 성과의 불확실성이었다. 조직학습 이론에서 마치 교수와 사이먼 교수는 기업이 어떤 성과를 창출했을 때 그 성과가 높은지 낮은지를 평가할 절대적 기준이 없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과가 가지는 의미와 그 성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높은 불확실성에 당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과가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할 기준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마치와 사이먼 교수가 말하는 열망 수준(aspiration)이다. 즉 기업이 성과를 판단할 때는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열망 수준을 기준으로 그보다 높으면 만족스럽게 판단하고, 낮으면 불만족스럽게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성과가 열망 수준에 비해 낮아 불만족스러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해결형 탐색(problemistic search)’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혁신이 나온다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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